엊그젠가 카페 단골인 황선생이 카페를 '글 공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 내듯이 글을 찍어내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학교 다닐 때 신문을 한동안 돌린 적이 있다. 서울에서 주일마다 발행되는 신문을 마산역에 가서 찾아와서
각 학급마다 찾아다니면서 학급총무에게 전달하고 수금해서 본사로 보내는 업무였다. 신문배달은 별 게 아닌데 수금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장이 잘 돌아가려면 우선 경기가 좋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좋은 제품을 싼값에 공급해야 팔리기 마련이다.
글공장이라 해서 남의 제품을 마구 베껴서 찍어 냈다간 지적소유권에 저촉된다.
어떤 때는 괜히 글공장을 차려가지고 생고생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는 공장이 아니라 친구들 오다가다 만나는 주막이나 카페로 개설을 했다가 찾는 손님이 줄어 할 수 없이 공장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찾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애써 물건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게 장인정신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제품을 만드는 공정까지도 밝히는 것이 좋겠다.
제품이라해도 내 개인의 신변잡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특별한 작가도 못되는 주제에 용빼는 재주도 없는 장삼이사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물건을 만들었으면 제대로 마무리라도 된 물건을 올려 놓아야 하는건데 미완성인채로 올려 놓는 수가 많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물건 하나를 만드는데도 생각의 선택에서부터 설계, 생산, 다듬기, 출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꽤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카페에서 장시간 노출로 작업해 놓은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수가 많았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발부터 밀어넣기'였다. 우선 등록부터 해 놓자는 식이었다.
오늘 메뉴는 '꼬리곰탕'이 아니라 용두사미에 나오는 그냥 '꼬리'다. 배를 타면서 선원들이 꼬리곰탕 재료인 꼬리를 사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다.
미국,영국,호주 등지에서는 소대가리나 발목,뼈 등은 먹지 않고 폐기처분 할 정도로 아주 싼값에 나온다. 호주에 입항하는 국적선의 경우에는 선식업자에게 부탁하여 쇠꼬리부분만 포장된 것을 싼 값에 구입하여 집에 가지고 가서 꼬리곰탕을 해 머는다고 들었다.
한때는 뉴질란드에 원목선이 들락거렸는데 사슴농장에서 녹용을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을 보고 공짜로 얻어와 배에서 주전자에 녹용을 넣고 무슨 보약이라고 다려 먹고는 모두 설사를 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동물은 다 꼬리가 있다. 사람은 없다고? 원래는 사람도 꼬리가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여자가 꼬리친다'는 말만 봐도 증거가 된다. 다만 쓸모가 적어 퇴화됐을뿐이다. 꼬리가 없다고 그 역할이 준 것은 아니다. 역할은 눈이 대신 하고 있다.
개는 꼬리로 인사를 나누고 소통을 한다. 맞서 싸울 의지가 없을 때는 항복의 표시로 꼬리를 내린다. 소꼬리는 죽어서는 꼬리곰탕의 원자재가 되지만 살아서는 쇠파리나 다른 곤충이 붙는 것을 쫓는데 유용하게 쓴다. 쥐꼬리는 사회초년병의 월급봉투로도 표현되지만 쓰임새가 다양하다. 도망갈 때는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추격자의 시선을 어지럽히기도 하며 공동작업시나 고소작업시에는 로우프 역할도 한다. 우리 어릴때는 쥐잡기 운동으로 쥐꼬리 공출 숙제도 있었다.
얼마전 외손녀가 키우던 도마뱀이 천수가 다 됐는지 죽었다.
먹이를 주기 위해서 벌레까지 키워가면서 애를 썼는데 도마뱀이 죽고 나서 그렇게 슬피 울었단다.
배를 타고 동남아로 내려가면 웬만한 집에는 방안에 도마뱀이 천정에 몇마리씩 붙어 있다. 심지어 호텔룸 안에도 들어와 있는 경우도 있다. 도마뱀은 파리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 먹는다. 긴 혀를 이용해 전광석화같이 해 치운다. 도마뱀은 급할 때는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다. 이 원리를 눈여겨 보고 배운 무리들이 정치권이다. 지금 난리가 난 화천대유도 결국은 꼬리 자르기로 가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