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전처(김호남)의 딸 박재옥 씨의 수기 중에서...
...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던 상모리의 대가족들이 아버지에게 갖는 불만도 컸다. 집안에서 대통령이 났는데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친척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냉랭한 태도에 속이 상한 친척들은 나만 보면 참았던 이야기들을 퍼부어댔다. 아버지에게 가서 이런 얘기를 해봐라, 저런 부탁을 해봐라, 나에게 쏟아지는 이야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것에 관해서는 입도 뻥끗 하지 못했다. 나는 친척들에게 아예 "저도 청와대에 못 들어가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친척들은 "딸도 못 들어오게 한다더냐"며 화를 내곤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냉정하게 대했다. 아버지는 서울로 이사를 온 고모를 특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대통령이 돼도 내가 된 것이고 가족들이 시켜준 것도 아닌데, 하던 농사나 계속할 것이지 왜 서울로 이사를 오느냐"며 고모가 청와대에 발길도 하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는 아예 그 집을 드나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감시하는 사람까지 붙여 놓았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군대에 계시던 시절에 고모가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재옥아, 우리 아들들 인민군 손에 다 죽고 하나 남은 아들이 군에 갔는데 전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 아들이야 군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네가 아버지한테 가서 말 좀 해라. 후방으로 좀 보내주든지 아니면 아버지가 좀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전방에 있다가는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구나."
고모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울며 하소연을 하시는데 내가 듣기에도 딱한 사정인 듯했다. 그래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아버지에게는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나에게 어깨를 주무르라고 하시기에 잘 됐다 싶어 고모 이야기를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반응은 이랬다.
"가서 그래라. 편지를 쓰든지. 아무 걱정 말라고 그래. 만일 그런 부탁 한 번만 더 하면 그때는 아예 최전방으로 보내서 정신을 고쳐놓겠다고. 아들을 좀 매섭게 키워야지, 늘 아들 아들..."
나는 아버지와 친척들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다. 지금도 친척들은 "나는 청와대에 가서 물 한잔 못 얻어먹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사람들은 내게, 그래도 18년 동안 집권한 대통령의 딸이었는데 얼마나 호강을 했느냐고들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가급적이면 입을 꼭 다물고 지내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