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인산을 사랑하는 벗님들 원문보기 글쓴이: 지지
원자력 공인검사사업단장 이주석 박사의 쑥뜸체험 수기(男 O형)
필자는 1993년 한국기계연구원의 원자력공인검사사업단의 단장으로 임명된 사람이다. 사업단의 주임무는 국내 원자력 발전소에서 운용되고 있는 주요 기기들이 안전성이 확보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업무로서, 원전의 대 국민 안전성확보의 아주 중요한 한 축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그 동안 원자력공인검사 업무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라 업무정립을 위하여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즉,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하고 있는 영광, 고리, 월성 그리고 울진으로 매주 출장을 다녔으며 또 관계기관과의 업무 조율 등으로 서울, 대전으로의 출장도 무척 많았다. 또 본 업무의 구체화를 위한 해외출장도 자주 있었다. 출장이 많아짐에 따라 출장지에서의 과식, 과음도 빈번하였다. 원자력 선진국과의 양해각서도 몇 개 서명을 하는 등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업무가 정착됨에 따라 긴장이 다소 풀리고 돌 같았던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필자는 평소 축구, 테니스, 탁구, 유도, 씨름, 골프 등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였으며 별명은 돌, 뽀빠이 등으로 불리어 왔다. 나이가 50이니 몸의 각종 부위가 노화해서 그렇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렇다 등등 주변의 이야기와 또 건강검진 기관에서 각종 검사를 했으나 해부학적으로 전혀 이상이 없었다. 나이가 있으니 젊을 때와 같을 수는 없으며 아마도 스트레스성일 것이라는 전문가의 진단의견이었다.
그러나 과거와 몸이 다르게만 느껴졌다. 목도 아프고 가래도 많이 끼는 것 같고, 가슴도 답답하고 호흡도 곤란한 것 같고…유쾌하지 못한 날들이 계속되는 중 동료가 목 아픈 데는 죽염이 좋다는 조언을 하였다. 마침 5년 전에 사놓은 죽염이 있었기에 복용을 시작하였다. 상태가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죽염을 복용하게 되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1년 정도 복용을 하고 있다.
본인은 T시의 K고교를 졸업하였다. 동창생이 약 480명 정도이다. 그러나 같은 대학교를 다녔거나 유사한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는 이미 졸업한 지 30여 년이 지났으니 겨우 소식을 듣는 정도이지 대화를 할 기회는 거의 없는 동창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30여 년간 소식이 없었던 동창생을 초상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바로 류효익(영남대 교수) 박사였다. 초상집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경우는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참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죽염에 관한 연구를 한다니 더욱 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류 박사는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의 생명공학 분야에 장기간 연구 실적을 쌓은 후 현재 귀국하여 대학에서 생명과학분야의 강의를 하면서 또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여튼 대단히 반가운 인연이었다.
류 박사로부터 올 2월 17일(토) 함양의 인산가에서 쑥뜸에 대한 세미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본인은 해외 여행 중이었으나 이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였다. 해외에서 2월16일 김포에 도착하였으나 폭설로 인하여 국내선이 결항되어 심야 우등고속을 이용하여 2월17일 아침 창원에 도착하였다. 업무를 정리한 후 급히 함양으로 출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류 박사도 참석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죽염공장을 견학한 후 인산농장의 황토방에 여장을 풀었다. 잠시 누워서 쉬는 동안 살푸시 잠이 들었다. 긴장도 풀리고 장기간의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김윤세 선생이 쓴 인산쑥뜸요법을 탐독하였다. 아무래도 그냥 집에서 혼자 뜸을 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일단 인산농장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자세히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2월21일(수) 다시 인산농장으로 향했다. 2월17일 잡은 쑥뜸 자리도 몇 번의 샤워 후 다 지워져 버렸다. 인산가의 정병조 부장님에게 연락을 하였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전 날 정 부장님께서는 몹시 바쁜 일이 있어 잠을 거의 못 잔 것 같았다. 그러나 평소 필자는 상대의 입장을 비교적 존중하는 편이었으나 그날은 여유가 없었다. 일단 뜸자리를 잡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 아닌가. 염치 불구하고 아래 수동에 있는 조 부장님을 만나 뜸자리를 잡았다. 이미 해는 지고 정부장님은 몹시 피곤한 눈치였으나 일정이 급했다.
일단 ‘뜸을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좋다’고 하였다. 대체적인 뜸법은 책을 통하여 알고 있었고 또 각오도 하였으나 막상 뜸장을 올려 놓으려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몸에 힘을 빼고 수양하듯이 조용히 누웠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게 아마 30초 뜸장인 것 같았다. 조금 따끔했으나 견딜 만 하였다. 정 부장은 뜸을 뜨면서 계속 말을 시켰다. ‘견딜 만 하냐’고. 뜸의 효력에 대하여 얘기했다. 즉, 뜸을 뜬 후에 힘이 배가 되는 것 같았으며, 시력이 좋아지며, 숙변이 빠지며 등등.
조금 있으니 약간 더 뜨거워졌다. 아마도 3분장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견딜 만 했다. 정 부장 왈, 뜸은 몸에도 좋지만 최고의 정신수양 도구란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뜸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드디어 5분장 살이 타는 소리가 난다. 냄새보다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하는데 내가 못할 것이 무어냐 하고 생각도 했다. 원래 아픔은 잘 견디는 편이었다. 정 부장, 이 분은 좀 무대뽀성 인간이신 것 같다. 보기에도 어깨가 딱 벌어졌고 손도 힘 좀 쓰게 생겼다.
하여튼 견딜 만 했다. 멀리 캐나다에 있는 아내와 딸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2시간이 지났을까. 쉬고 싶었다. 정부장도 피곤한 듯 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고 했다. 나도 찬성하였다. 정 부장 왈, 뜸을 받아들이는 얼굴상이 매우 인상적이란다. 뜨거운 쑥불에도 불구하고 감히 부처님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잘 참기는 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이 정도 배우고 귀가하여 쑥뜸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주변에 쑥과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고 더욱이 기숙사가 아닌가. 며칠 더 머물면서 결정하기로 작정하였다. 어제 저녁에는 맛있게 식사를 하였으나 이 날 아침 식사는 어제 용을 쓴 덕분인지 그리 맛이 없었다. 하여튼 한 그릇을 비우고 숙소에 들어와 이왕 뜸을 뜨러 왔으니 시작하기로 하였다. 뜸장을 만들고 대략 1시간 정도 뜨고 10분 정도 쉬는 방법을 내 마음대로 채택하였다.
5분장 정도 되는 것을 중완과 단전에 각 9장 뜨기로 하였다. 혼자서 하니 어젯밤 보다 훨씬 더 뜨거운 것 같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뜸장을 올려놓을 때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서 중완과 단전 부위에 인장력이 가해지곤 했다. 9장을 다 떴다.
뜸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고, 또 ‘사전 체력 보강도 없이 과감하게 도전한 것이 무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무통 상태를 지나 뜸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시작하여 끝을 내지 않았던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것도 어떻게든 끝을 내야지…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본다. 체력 소모가 큰 것 같았다. 얼굴과 이 그리고 손등은 힘을 다 뺐다고 생각했지만 엉치뼈부터 어깨죽지까지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오후에는 좀 쉬기로 하였다. 체력의 안배가 필요할 것 같았다. 오후를 쉬고 나니 좀 아쉬웠다. 뜸 뜨러 와서 쉬다니. 아직 쑥은 반의 반 근도 못 뜬 것 같았고, 마음은 바쁘고.
저녁 식사 후 정 부장이 다시 왔다. 정 부장은 체력이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았다.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나의 뜸을 위하여 수고를 해 쥐서 대단히 고마웠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뜸을 떠 보잔다. 나도 오후에 푹 쉰 터라 저녁에는 뮌가 실적을 올리고 싶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웠다. 5분장부터 시작하였다. 5분장은 힘들이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조금씩 뜸장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 부장이 나의 반응을 보고서는 급히 뜸장의 크기를 증가시키는 것 같았다.
정 부장의 지론은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났다고 이왕 큰 뜸장으로 갈 것인데 미리 뜸자리를 크게 잡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뜸을 뜨는 당사자로서는 심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7분 정도는 된 것 같고 또 10분장은 되는 것 같았고... 부처님, 관세음보살, 사랑하는 내 가족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이들의 도움으로 10분까지는 별로 동요 없이 잘 견디어 내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등은 축축하였다. 잠시 휴식, 약 1시간 반이 지난 것 같았다. 정 부장 왈 뜸뜨는 인상이 무척 독특하단다.
부처님의 미소가 있었단다. 부끄러운 말이다. 후반전 10분에서 13분 급기야 15분장까지 지나갔다. 뜸은 정신수양이라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뜸장을 대하라. 과거에 잘못된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온갖 과거의 흡족하지 못했던 일들이 영사기처럼 뇌리에 떠 올랐다가는 사라졌다. 부처님께 용서를 빌었다. 이틀만에 15분장을 올린 것이다. 정 부장은 연신 이왕 가야할 길이라면 먼저 가는 것이 좋다는 논리이다. 즉, 초기에 뜸자리를 크게 잡아야 나중에 편하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뜸자리에는 물집이 심하게 잡혔다. 직경이 4-5cm이 되는 것 같았다. 단전과 중완 그리고 배꼽은 온통 재로 뒤범벅이 되어 지저분하게 되었다 2월23일(금), 3일 째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많이 아픈 것을 느꼈다.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일반적인 경우에 뜸을 뜬 후 후통이 온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뜸뜬 후에는 그렇게 후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자고 나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뜸뜬 곳이 아프고 운신도 편안하지 못했다. 밥맛도 없고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시 뜸장을 올릴 기분이 아니었다. 전체 뜸을 뜬 시간은 6시간 정도인 것 같았다. 그러나 소모한 쑥은 아직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2근 반을 뜰 수 있을까? 몇 가지 사례를 보니 대략 2-3근이 일반적이었다. 만만하게 보고 뜸에 도전한 게 잘못인가? 포기할 수도 없고... 할 수 있나 끝을 봐야지.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많은 경우 시간이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오전에는 쉬고 오후에 10장 정도 뜸을 떴다. 우선 체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옆방의 왕 회장님이 보내주신 사골곰탕을 한 그릇 마시고 저녁도 한 그릇 이상 먹었다. 뜸은 인내를 시험하는 과정이란 생각도 들었다. 한시간 쯤 쉬고 정 부장의 도움으로 뜸을 시작하였다. 8분장부터 시작하였다. 견딜 만 했다. 10분장도 견딜 만 했다. 중완과 단전이 훈훈해 왔다. 몸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구미에서 오신 한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이분은 작년에 뜸을 뜨시고 많은 효과를 보신 분이란다. 한마디로 쑥뜸 칭송가였다. 훈훈한 불덩어리가 내 몸속으로 서서히 들어옴을 느꼈다. 뜨거움은 그리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이 정도면 밤새도록이라도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2시간 이상 뜬 것 같았는데 기분이 아주 상쾌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찌르는 듯한 주기적인 아픔이 왔다. 약 20초간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그리고는 약 5초 정도 언제 아팠냐는 평안함 그리고는 다시 엄청난 아픔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견딜 만하냐는 정 부장의 물음이다. 좀 아프다고 했다. 17분 정도의 뜸장을 올렸단다. 평안함은 물러가고 고통의 시간이... 아! 언제 무통상태가 오려나.. 옆방의 왕 회장님은 무통이 왔단다. 부러웠다. 그래도 오늘은 제법 많은 량의 쑥을 소모했다. 전체 1근은 넘게 뜸을 떴다. 뱃가죽이 좀 당기는 것 같았다. 뜸맛을 조금은 안 날이었다고 생각되었다. 2월24일(토), 옆방의 왕 회장님은 오늘 새벽 3시까지 무통이 계속되었고 뜸을 마치셨단다. 왕 회장님은 연세가 78세이신 할머니였다. 나도 뜸을 뜨는 입장이지만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노인네께서 어떻게 이렇게 뜨거운 뜸을...
왕 회장님은 또 젊은 사람이 불쌍하게 쯧쯧 하시면서, 나보고 가족도 없이... 그렇게 불쌍해 보였단다. 조바심이 났다. 시간도 없는데 이렇게 무통은 안 오고, 왕 회장님은 떠나시는데... 오늘은 결단을 내야지 단단히 각오을 하였다. 어젯밤의 경험으로 10분장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저녁 식사 후 혼자서 뜸장을 준비하고. 7시30분 경 드디어 뜸을 시작하였다. 혼자서 하니 쓸데없이 힘 들어가는 부분이 많고 그럴 때마다 뱃가죽이 당겨지고 아프고 뜨거웠다.한 30분이 지났을까 정 주임이 들어왔다. 바로 왕 회장님의 뜸을 도와주시던 분이다.
그때 내가 뜨거워하니까 뜸장을 정확하게 놓지 않고 뜸을 뜨고 있다고 하였다. 생살에 뜸장을 올려놓았으니 뜨거울 수밖에... 뜸을 도와주니 아주 편했다. 정 부장처럼 무대뽀도 아니고…얼마 짜리를 올렸는지 전혀 뜨겁지 않았다. 정 부장이 상태를 물으니 정 주임 말이 내가 무통이 왔단다. 이상했다. 어제 저녁에는 이보다 더 기분이 좋았는데 무통이 아니고 이런 기분은 어제 저녁 이미 느꼈는데, 이게 무통이면 이미 무통은 어젯밤에 온 것이 아닌가. 그러면 하루를 절약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뜸장을 올렸다. 4-5시간이 지나니 엉치뼈가 무척 아파왔다. 쉬고 싶었다. 그러나 쉬면 안 된단다. 무통이 왔을 때는 계속 뜸장을 올려야 한단다. 할 수 없이 버티는 수밖에. 8분~10분 사이의 뜸장을 계속적으로 올려놓았다. 어언 아침이 되었다. 밤이 새도록 뜸을 뜬 것이다. 정주임이 무척 고마웠다. 나는 누워 있었지만 이분은 거의 앉아서 밤을 샌 것이다. 뜸을 뜨고 난 후 남는 재가 수북히 쌓였다. 2근 반 정도를 뜬 것 같았다.
아침 식사 후 계속 뜸장을 올려놓았다. 오늘은 15분 정도의 뜸장을 올려달라고 주문했다. 아무래도 뜸장이 커야 많은 양의 쑥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뜸장을 올려놓기만 하면 나는 잠이 든단다, 미소를 머금고. 한번은 잠을 자는데 갑자기 단전이 뜨거워왔다. 무통상태가 끝났는가 생각했다. 뜨겁다는 소리에 정주임이 놀랐다. 정주임이 피곤하여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시계를 보더니 21분짜리 뜸장을 올렸단다. 아무리 무통상태이지만 너무 큰 뜸장은 이미 잡혀 있는 뜸자리를 초과하기 때문에 그 가장자리 부분이 뜨거울 수밖에 없단다. 이후 17-18분 정도의 뜸장을 계속 올렸다. 그러나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무통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뜨거운 뜸장을 중완과 단전에 올려놓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모습을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쑥이 무진장 소모되었다. 중간에 잠시 2-3시간 정도 몇 번 쉬긴 했지만 전체 80여 시간 동안 계속 해서 뜸을 떴다. 무려 3일 이상을 계속해서 뜸을 뜬 것이다. 거의 8근을 떴다.
정 부장 왈 무통상태에서 통증이 올 때까지 몸이 뜸을 받아들이는 효율이 가장 높단다. 끝을 보라고 하였다. 좋다. 이왕 무통이 온 만큼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주임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연변에서 오신 분인데 정성이 지극하신 분 같았다. 진심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본격적인 뜸을 위해서 시내의 식당에서 오랜만에 갈비를 충분히 먹었다. 저녁 식사 후 본격적인 뜸을 시작할까하는 순간 정 부장이 와서는 뜸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하였다.
아니 아침에는 끝장을 보라고 하시더니만... 필자의 혈액형이 O형이기 때문에 무리하는 것은 화독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사장님도 거들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기야 8근이나 떴으면 목표는 달성한 것 같았다. 조언을 받아들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았다. 육체는 다소 피곤하고 눈은 조금 들어갔지만 정신은 더할 나위 없이 맑다. 피부도 피곤으로 거칠었던 것이 희고 매끈하게 바뀐 것 같다. 또 지독한 냄새의 묽은 대변을 보았다. 숙변이 제거된 것이다. 아마도 신비한 뜸의 효능이리라.
[출처] www. insanga. co.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