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그런가 모르겠습니다. 총기류 무기를 들고 집단으로 이웃나라를 자기 집 드나들 듯이 드나드는 일이 가능한가요? 차량도 한 대가 아닙니다. 떼거지로 몰려 들어갑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잘 아는 대로 미국 대통령이 국경선을 따라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디까지 쌓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지라도 할 만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드나들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길을 내는 것은 돈입니다. 돈을 벌겠다고 불법이민 하려고 하니까 막는 것이지요.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겠다고 하면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거금을 내면 막힌 담도 열립니다.
어쩌면 이런 환경을 이용할 수 있기에 처절한 복수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 쪽에서는 수적으로 봐도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요새(?)로 불러들이는 것이 유리합니다. 철저히 준비하여 유인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복수하려고 몰려올 것입니다. 혼자서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마련되었습니다. 오래도록 유지해온 지하요새입니다. 그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이놈들에게 철저히 되갚아주어야 합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에 있을 가치가 없는 놈들이니 가차 없이 응징해서 세상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더구나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이 무참히 죽음을 당했으니 가치를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복수를 한다고 찢어진 상처가 아물 수 있습니까?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은 평생 짊어져야 할 숙제입니다. 새겨진 아픔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수시로 생각으로 나와서 가슴을 찌를 것입니다. 기자의 말대로 참고 잊으며 사는 것이 방법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택한 길이지 최선의 방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과연 최선의 방책이 있습니까? 안타깝지만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스스로 보듬고 이겨나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좀 다른 차원이지만 오히려 ‘용서’가 최선입니다. 원한으로 남긴다면 언제나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가슴을 찌를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용서를 한다면 잊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아비에게 버림당한 딸이 할머니를 따라 이웃나라로 건너와 ‘람보’를 만나 삼촌처럼 여기며 동거합니다. 퇴역한 람보는 전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에 치료 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자기 삶을 만들어갑니다. 물론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며 자기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소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이기는 하지만 믿음직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전쟁 트라우마와 겹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그것도 자책하며 한동안 아파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위로해도 속 깊이 미치기 어렵습니다. 자기만이 지니고 해결해야 할 아픔입니다.
어느덧 다 자란 ‘가브리엘’이 대학을 간답니다. 딸처럼 아끼며 그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 보아왔습니다. 대견스럽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비를 찾아 멕시코에 다녀온답니다.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철부지의 투정입니다. 물론 아비를 보고 싶고 궁금하겠지요. 어떻게 자기 자식을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엄마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서 자랐습니다. 그래도 자라면서 궁금한 사실, 마음속에 품고 자랐습니다. 이제 이만큼 컸으니 혼자서도 알아볼 수 있으리라 자신이 생겼습니다. 할머니도 람보도 극구 만류합니다. 아비라는 사람의 사람됨을 진작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그 사는 동네가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결코 허락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딸은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아비의 처소를 알아낸 가브리엘은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서는 혼자서 찾아갑니다. 그리고 처참한 상황에 놓입니다. 사실을 알게 된 람보가 찾아 나섭니다. 처음에 찾아가서는 호되게 당하고 취재기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벗어납니다. 다시 몸을 추스르고 일단 가브리엘을 찾아내 돌아오기는 하지만 집에까지도 못 와서 숨을 거둡니다. 이제는 복수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람보 스타일의 복수가 전개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적으로 절대 열세입니다. 일대 오십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적진에서 싸운다는 것은 절대 불리합니다. 자기 쪽으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박살을 내는 것이지요.
영화 ‘테이큰’이 생각납니다. 딸을 납치당하여 잃은 아비의 복수전입니다. 거기서나 여기서나 소녀가 당하는 일은 뻔합니다. 인신매매단에게 넘겨지는 것이지요. 요즘도 이런 일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당하는 아이들과 아이를 잃은 부모를 생각하면 온몸이 떨립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래서 뻔한 이야기지만 그 복수전은 눈에 불을 켜고 봅니다. 처절하고 더욱 잔인하게 응징을 해줌으로써 통쾌함을 얻습니다. 어떤 감동을 얻고자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쾌함과 시원함을 얻고자 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람보’ 30년 넘게 보아왔습니다. 우리 자신 법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연약하고 지루합니다. 우리 속의 바람을 이루어주는 확실한 영웅이지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꿈이기는 하지만 그 꿈마저 없다면 그야말로 무슨 재미로 삽니까? 영화 ‘람보 - 라스트 워(Rambo - Last Blood)’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복된 주말입니다. ^&^
좋은영화평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