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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동양사 Re:하하.. 염병할 공성전
청4대황제강희제 추천 0 조회 438 05.06.07 17:50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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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06.06 18:54

    첫댓글 귀갑차의 형태에 대해 궁금하군요.사료에 표현된건 봤지만,정작 어떻게 생긴지는 한번도 못봤군요.폐하,한번만 더 수고 좀 해주시죠.^^;

  • 05.06.06 20:06

    4번은 교텐바시(行天橋)로군요. 일본내에서도 그다지 일반적인 공성구(攻城具)는 아니었으니 1차진주성공격때는 쓰이지 않았을듯 합니다. 2차공격때는 어쩌면 쓰였을지도 모르죠.

  • 05.06.06 20:17

    위에 나오는 무기 중에 몇몇은 에도기에 쓰여진 중국의 병서(兵書) 번역본에 나오는것들이라 실제로 사용되었는지 의문시하는 시각도 있으나 센고쿠시대 당시 중국의 병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이묘들이 어느정도 있었던것을 감안할때 중국병서에 실린 공성구들도 실제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 05.06.06 20:44

    솔직히 운제같은 경우엔 나온지 천년하고도 수백년이 지난 무기기때문에 무리가 없습니다.

  • 05.06.06 22:30

    일본군의 초기진공때에는 기동력을 중시하느라 무게가 많이 나가는 공성구들은 따로 챙겨올 여유가 없었겠지만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져든 이후로는 일본에서 운반해오든지 현지에서 조립을 하든지 해서 대형 공성구들도 준비했을겁니다.

  • 05.06.06 22:33

    성도 쌓고 조선농민에게 농사도 시켰는데 공성무기 못 만들 이유가 없지요.-_-.엄연히 숲의 나라인데...

  • 05.06.06 22:34

    진주성이 계사년의 2차공세를 버티지 못한데에는 단순히 병력차뿐만 아니라 일본측의 공성구가 임진년의 1차공세보다 훨씬 충실해있었던것도 원인의 하나겠죠

  • 05.06.06 23:01

    16번의 목만(木幔)은 주재료가 나무와 소가죽이니 재료를 구하기 쉬운 조선에서는 얼마든지 현지조립이 가능하겠군요.

  • 05.06.07 00:30

    2차공격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요.첫째는 왜군이 앙갚음에 혈안이 되어(육전에서의 첫 대패) 총공세(10만?,귀갑차 등)를 하였고 둘째는 명장 김시민이 1차에 이마에 총탄을 맞아 앓다가 죽어 인재적인 면과,셋째는 치명적으로 장마에 성이 무너져 물밀듯이 밀려들어 온것이죠.

  • 작성자 05.06.07 17:46

    중요한건, 실제 진주대첩에서는 드라마에 나온 그 유럽식 공성타워는 쓰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05.06.07 21:44

    그런데 강희제님......... 17,18번은 대나무를 사용한것 맞습니다. 17번은 타케타바네우시(竹束牛)이고 18번은 쿠루마타케타바(車竹束)이죠. 그림상으로는 대나무의 마디가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희제님이 오해를 하셨나 보군요.^^;

  • 작성자 05.06.10 16:29

    대나무 가지를 여러개 묵어둔거였군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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