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2월 17일 구마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귀경길에 해인사(海印寺)를 들를 예정이었다. 수행원들이 대통령의 의중을 받들어 방장(方丈)인 성철 스님의 영접을 요청했다. 해인사 주지 스님과 맏상좌인 천제 스님이 성철 스님이 기거하는 백련암(白蓮庵)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백련암은 해인사 암자 가운데 가장 높고 가파른 곳에 위치하여, 대웅전(大雄殿)에서 불과 800미터 떨어져 있지만 30여분은 족히 걸린다. 도착하자마자 주지 스님이 큰 스님에게 다급하게 청했다. "대통령께서 오시니 스님이 큰절까지 내려와 영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성철 스님은 한참 주지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돌아앉았다.
"나는 산에 사는 중인데, 대통령 만날 일이 없다 아이가. 세상에선 대통령이 어른이지만 절에 오면 방장이 어른이므로 부처님께 3배(三拜)를 안 할 바에야 만나지 않는 게 낫다". 주지 스님과 천제 스님은 애원하듯 성철 스님을 설득하려 애를 썼으나 성철 스님은 끝내 큰절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지 스님이 나서서 대통령에게 감히 3배를 요청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황망한 일이 생긴 것이다. 성철스님이 신도들에게는 3배가 아니라 3천배를 요구해왔으니 이 청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방장 대신 주지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열반한 홍제암(弘濟庵)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성철 스님이 박대통령을 영접하지 않은 일을 두고 산내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한쪽은 “성철 스님이 박대통령을 영접해 한마디만 했으면 퇴락해가던 해인사를 일신하는 큰 지원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으나, 다른 한쪽은 “성철 스님이 선승들의 권위을 지켜주었다”는 찬사였다. 선승들의 큰 스님으로서 세속의 최고 권력을 가벼이 봄으로써 산중의 권위와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주로 선방에서 수행 중이던 선승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성철 스님은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3천배를 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 얼굴 보여주려고 3천배 하라는 게 아니라, 절에 왔으면 부처님을 먼저 보라는 거지, 나 보라고 하는 게 아니야. 내가 뭐 잘났다고. 그래서 내가 맨날 나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가라고 말하는 것이지. 나를 찾아와봐야 아무 이익이 없어.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라. 그래서 그 기회를 이용해 부처님께 절하라 카는 거지."
성철 스님은 돈 많은 신도들에게 굽신 거리고, 가난한 신도들을 낮춰보는 일부 스님들을 자주 꾸짖기도 했다. "중이 신도를 대하는데 사람은 안보고, 돈과 지위만 본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일주문(一注門)에 들어올 때는 돈 보따리와 계급장은 소용없으니 대문밖에 걸어놓고 알몸만 들어오라고 하지. 사람만 들어오라 이거야. 들어와 부처님을 뵙고 가라 이거지." 이런 원칙은 성철 스님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켜졌다.
첫댓글 .. 부처님을 먼저 보라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감사헙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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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자기 동상세운 돌중은 버선발로 내려올건데... 역시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