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 김철수 선생의 필적
나의 유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우물가 옆집, '삼성약방'은 모스크바 공산당 대학을 나왔다는 지운 김철수 선생, 그의 따님이 공화당 시절 독신으로 사시면서 운영하던 동네 유일한 "약국집"이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주보이는 벽면 윗쪽으로 꽃잎처럼 아름답고 기운이 생동하는 글씨가 가로 한줄로 우에서 좌로 길죽하게 유리 없는 액자에 끼워져 '만물회춘 뭣뭣뭣 의재 허백련'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 어린 새김으로는 약으로 인간을 건강하게 살려낸다는 뜻으로 알았다.
공화국 정권의 서슬퍼런 감시망을 피해 고추장 단지를 짊어지고 전국의 산으로 섬으로 떠돌아 다니던 그녀의 아버지 지운 김철수 선생과 노자와 의복을 극진히 챙겨드리며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며 사시던 할머니가 된 효녀딸은 구비문학 대계나 장편의 소설을 마악 읽고난 것처럼 지금도 나의 기억속에 생생하다.
참으로 사람의 일이란 묘한 것이다.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 하였지만 나의 유년시절 부터 지금까지 글쓰기와 서예는 필연처럼 삶의 일부분을 차지 하였다. 사군자와 수묵산수화를 우계 오우선 선생을 사사 하였고, 우계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의 큰 제자이시다. 또한, 의재 선생의 절친이 지운 김철수 선생이신데 두 분의 우정은 1991년 鍊真㑹발행 '近仁堂唱和集'에 잘 나타나 있다. 어제, 한국 난계의 대부격이신 차익현 회장댁에서 묵은 서화간찰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지운 선생의 쌍관 낙인과 8곡병을 비롯한 다수의 유묵을 발견하고 흠상하며 그 자리에서 몇 점을 증여 받았다.
(80년대초 내가 한국 최초의 난모임 소심회의 일원이 되어 총무일을 맡아볼때 차익현 회장은 소심회 회장과 동양란총연합회 회장직을 엮임하시고, 조직배양기술 연구와 한국란계의 국제교류및 난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하셨다)
스무살에 공무원 임용 발령을 받고난 후, 십 수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 어린시절 보았던 그 글씨가 여전히 그곳에 있을지, 그때의 그 감정을 성인이 된 후에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지 설래는 마음으로 약국집 할머니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의재선생이 쓴 횡액은 보이지 않았다. 보관했던 유품들은 자식들이 나눠 갖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보관중인 얼마 남지않은 나머지, 병풍과 화선지 뭉치에서 등소평의 글씨와 지운 선생의 유묵을 찾아 감상하였다. 이후 다시 십 수년이 지난 오늘도 좋은 인연으로 하여 소장하게된 애국지사이자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 선생의 유묵을 대하니 감회가 새롭다.
前歩有能後步能 背石穿沙自作家
青山一脈寒泉裏 不願江湖萬里波
慎獨齊先生詩 壬戌新正 後學 九十歲錣洙
이조 효종때의 대 유학자 신독제 김집의 게에 대한 시를 임술년 신정 후학 철수는 90세에 쓰다.
<해석>
앞으로도 잘 걷고 뒤로도 잘 걷고
돌밑 모래속에 스스로 집을 짓는다네
청산속 한줄기 차디찬 샘물일지언정
강호만리의 물결은 되기 싫도다
(게걸음을 걷는다는 핀잔을 받자 게를 예찬하여 쓴 시)
다음은 8곡병에 쓰시길
"기미년 석류꽃 피는 계절 큰 비가 사방천리에 내리니 사람들이 풍년 들 조짐이라 하였다. 내가 수성 이안실에 홀로 앉아 임백호 선생의 물곡사를 추억하며 백이송을 쓰고 설명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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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송 [伯夷頌]
士之特立獨行하야 適於義而已요
不顧人之是非는 皆豪傑之士 信道篤而自知明者也라
一家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寡矣요 至於一國一州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는 蓋天下一人而已矣요 若至於擧世非之라도
力行而不惑者는 則千百年에 乃一人而已耳라
선비가 特立 獨行하여 義에 맞게 할 뿐이요
남의 是非를 돌보지 않음은 모두 호걸스런 선비가 道에 믿음이 돈독하고
스스로 알기를 밝게 하는 자이다.
한 집안이 비난하더라도 힘써 행하고 의혹하지 않는 자가 적으며,
한 나라와 한 고을이 비난하더라도 힘써 행하고 의혹하지 않는 자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한 사람 밖에 없으며, 만일 온 세상이 비난하더라도 힘써 행하고
의혹하지 않는 자로 말하면 천백 년에 한 사람 밖에 없을 뿐이다
若伯夷者는 窮天地亘萬世而不顧者也라
昭乎日月이 不足爲明이오 줄乎泰山이 不足爲高요
巍乎天地가 不足爲容也로다. 當殷之亡, 周之興하야
微子는 賢也라 抱祭器而去之하고 武王周公은 聖也라 率天下之賢士與
天下之諸侯而往攻之로되 未嘗聞有非之者也어늘 彼伯夷叔齊者 乃獨以爲不可하고 殷旣滅矣에 天下宗主어늘 彼二子乃獨恥食其粟하야 餓死而不顧하니 由是而言이면 夫豈 有求而爲哉리오 信道篤而自知明也일새라
伯夷로 말하면
천지를 다하고 만고에 뻗치도록 돌아보지 않을 자이다.
밝은 日月도 밝음이 될 수 없고, 높은 泰山도 높음이 될 수 없고
넓은 천지도 용납할 수가 없다.
殷나라가 망하고 周나라가 흥할 때를 당하여 微子는 賢人이라 祭器를 안고 떠나갔고, 武王과 周公은 聖人이라 천하의 賢者와 천하의 諸侯들을 거느리고 가서 정벌하였는데, 일찍이 이것을 비난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저 伯夷 叔齊는 마침내 홀로 불가하다 하였으며,
殷나라가 이미 멸망하자 천하에서는 주나라를 宗主로 삼았는데,
저 두 분은 마침내 홀로 그 곡식(녹봉)을 먹기를 부끄러워하여 굶어죽으면서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어찌 구함이 있어서 한 것이겠는가.
道에 대한 믿음이 돈독하고 스스로 알기를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今世之所謂士者는 一凡人譽之면 則自以爲有餘하고
一凡人沮止면 則自以爲不足이어늘 彼獨非聖人而自是如此하니
夫聖人은 乃萬世之標準也라 余故曰 若伯夷者는 特立獨行하여 窮天地亘萬世而不顧者也라하노라 雖然이나 微二子면 亂臣賊子接跡於後世矣리라
지금 세상에 이른바 선비라는 자들은
한 凡人이 칭찬하면 스스로 유여하다고 여기고,
한 범인이 저지하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데,
저 두 분은 홀로 聖人(武王 周公)을 그르다 하고 스스로를 옳다고 여김이
이와 같았으니, 聖人은 바로 萬世의 표준인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말하기를 "백이로 말하면 특립 독행하여 천지를 다하고 만고에 뻗치도록<그르다 하여도>돌아보지 않을 자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이 아니었다면 亂臣 賊子가 후세에 발자취를 이었을 것이다.
출처 : 고문진보
백호 임제 선생의 임종 때 자식들에게 경계해 들려준 물곡사(勿哭辭)
四夷八蠻 皆呼稱帝
사이팔만 개호칭제
惟獨朝鮮 入住中國
유독조선 입주중국
我生何爲 我死何爲 勿哭
아생하위 아사하위 勿哭
사이팔만(四夷八蠻)의 오랑캐가 모두 한 번씩 중원을 정복하고 황제를 칭했거늘, 그러지도 못한 작은 나라 조선에서 나서 살다가 죽을진대 무엇이 그리도 서러워서 운다는 말이냐.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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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金綴洙, 1893 ~ 1986)는 한국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지운 선생과 차녀 김용화 관련 자료
http://m.blog.daum.net/enature/15851486
http://m.blog.daum.net/enature/15851486
2015. 5.23 석애
첫댓글 훌륭한 어른의 유묵을 소장 하신가 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우리 김선생도 대단 하시네요.
잘 모르고 해석이나 읽어보니 참 좋은 글 같습니다.
역시 김선생은 격이 한 수 위로 보입니다 그려....
멋쟁이셔 --- !!!
지운 선생의 따님이 제 고향집 바로 앞에 사셨습니다.
어릴적 할머니가 고생하며 사시는 모습과 형사들이 배회하는 모습을 지켜 봤습니다. 당시 할머니가 좀 무섭긴 했습니다. 어릴적에는 잘 몰랐지만 대단한 분이시더균요
지운 선생도 그 따님도 .,.. 기자분이 올려놓은 자료를 찾아보니 세세히 내용이 적혀 있네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24 14:0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25 1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