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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전라도 땅 이였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청도로 편입된 인삼과 충절의 고장 금산땅 처럼 이곳 울진도 현재는
경상북도 이지만 본시는 강원도 땅 이였다고 한다.
드 높은 태백 준령 덕분에 사람의 발길이 드문 이곳 산간 오지 울진땅에 68년도 어느 날 약 120 여명의 불청객이 어선으로 위장한
공작선을 타고 동해안에 상륙하곤, 곧 바로 찾아 들기 바쁘게 아무런 죄 없는 양민들을 도륙하기 시작 한다.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이 일대는 소위 말 하는 빨갱이들의 해방구가 되면서 양민들을 모아 놓고 죽이고
사상 교육 하면서 민중 봉기를 유도하는 그 몇 며칠간을 열악한 통신과 도로 사정으로 남한 정부 당국에선 까마득히 몰랐다고
한다.
부모 형제들과 평화롭게 살던 초등학교 2학년 생 이 승복 어린이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이 한마디 덕분에 칼로 입을
찢어 죽이는 처참한 죽임을 당 하게 된다.
참으로 서글푼 민족 상잔의 비극이 벌어 졌었던 이곳 울진땅을 느림보 산악회가 찾아 든다는 소식을 뒤 늦게 접 하곤 미어 터지는
예약 인파를 헤 치고 어렵고 어렵게 한 좌석을 갠신히 얻어 든 이유는 울진 왕피천의 발원지가 영양군 수비면이고 그 수비면
가까이에 내 어머님의 친정땅인 영양군 청기면이 있기 때문 이였다.
하시라도 대 소변을 용이하게 볼 수 있는 밑 터진 개구멍 바지를 입고 다니던 시절 어머님 무릎팍에 머리를 누이고 들었던
수비면 골짜기 이야기, 그 중에서도 민가에도 자주 출몰 하였다던 재범(백호) 이야기는 지금도 내 머릿속엔 석류알 처럼 고이
보듬어 안고 싶은 아름다운 전설 이다. 증말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아니 존경하는 예팬네님의 윤허만 내려 준다면 아예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은 이상향의 땅 이다.
울진 하면 또 생각 나는 곳이 우리나라에서 수질이 가장 좋다고 하는 온정면에 있는 백암 온천이 바로 그 곳인데 사십 여년 전
고삐리를 막 졸업하곤 친구 몇 넘과 군용 A 텐트 하나 달랑 울러 매고 떠났던 무전 여행? 반더 포켈? 오지 탐사? 좌우간
지도 한장 제대로 없이 산 넘고 물 건너 참으로 우연찮게 당도 하였던 곳이 백암 온천 이였었는데 당시만 해도 외부인들의
백암 온천 접근이 워낙이 어려워 소위 말 하는 원탕이라고 하는 온천이 허룸한 가건물 형태로 지어져 있었고 온천객이라고
해 봐야 하루에 몇 명 되지가 않았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탕으로 입장을 하면 미끄러 지고 자빠 지고 난리 부루스를 치게 된다. 수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아서 그 미끄러움이 마치 약품을 첨가한 것 처럼 보이는데 온천을 하고 오면 약 일주일 정도 꺼정도
온천효과 즉 피부의 매끄러움이 유지될 정도 였었는데 막상
탕엘 들어 가니 무전 여행을 떠났던 처지라 비누와 수건을 준비 하질 못 했고 남탕엔 우리 일행들 뿐 인지라 주위를 둘러 보니
아니 글쎄 옆에는 여탕이 있는 가 본데 남탕과 여탕을 분리하는 벽체가 나무 송판으로 대충 칸막이를 해 두었는데 그 칸막이
윗부분 즉 사람 키높이 이상은 뻥 뚫린 허당 이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행여 하는 마음으로 여분의 비누와 수건이 있냐고 하니 비누를 싼 면수건 한장이 한마리 비둘기 처럼
우리 쪽으로 날아 든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지만
그 보다 더 어린 시절 울산 출신 어떤 군인 아저씨로 부터 들었던 얘기가 생각 난다.
경제 사정이 어렵던, 목욕을 년중 행사 정도로 어쩌다 한번씩 하곤 하던 시절 울산에 사는 남정네들은 목깐통엘 갈 적엔
꼬옥 송곳이나 드라이버를 휴대 하곤 갔었다고 한다.
울산에 있었던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을 브로크로 벽을 해 두었었는데 이 브로크는 매지라고 하여 시멘트 모르타르로 이음새를
하는 데 문제는 이 모르타르 부분이 상당히 취약 하다는 것이다. 송곳으로
어렵지 않게 모르타르 부분에 구멍을 내고 눈까리를 바짝 드리 대기만 하면 김이 무럭 무럭 나는 선녀탕 속에서 노니는
나신들을 양껏 엿 볼 수가 있었다고 한다. 숫넘들이란
누구라 할 것 없이 약간의 변태 성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지 없는 넘이 없다고 하는데 요즘 아파트 현관문에 부착 되어
있어 좁은 구멍으로 바깥을 훤히 내다 볼 수 있는 렌즈 있지 않습니껴?
제가 학창시절 영어 실력 증진을 위하여 매진 하던 시절 애독 했던 플레이 보이나 팬트 하우스 같은 영어 참고서 광고란에 보면
옆 방을 손 쉽게 엿 볼 수(peep) 있는 매직 렌즈 라고 하면서 통신 판매를 하던 시절도 그리 오래 된 얘기가 아닙니다.
그 렌즈 증말 손에 넣고 싶었던 음심이 새삼 그리워 집니다. 짜장
어찌 어찌 하다 다른 대한의 남아들 처럼 군바리에 입대를 하였었는데 제대를 앞둔 그 해에 재수가 옴이 붙었는지 빌어 먹을
여의도 행사 병력으로 차출이 된다.
당시는 북괴와 일촉 즉발의 대치 상태로 군비를 증강하던 시절인지라 매년 10월 1일 즉 국군의 날이 되면 여의도 5.16 광장에서
수 많은 군인들이 열병 분열을 실시하곤 서울 시내로 시가 행진을 하였었는데 각자의 부대에서 오랜 시간 일정한 훈련을 마친
군인들은 10월 1일 행사를 앞 두고는 약 한달간을 여의도에 임시 막사를 설치하곤 여의도에서 먹고 자면서 합숙 훈련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최정예 군인 집단들은 죄
이곳으로 모이는데 그 중에서도 당연 시선을 끄는 집단은 기관단총을 어깨에 매고 하얀 스커트를 입곤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을
하는 여군이 아닐 수가 없다. 지휘관이
눈까리를 옆으로 돌리지 말라고 아무리 악을 써도 여군들만 옆으로 지나 갔다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옆에서 행진을 하는 전우와 어떤 문제를 놓고 격한 언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군인들이란 본시 생필품을 비롯하여 제반 의식주를
국가에서 지급하여 주는데 과연 여군들의 블래지어와 팬티는 개인이 구입하는지? 아니면 국가에서 지급을 하는지를 두고
설왕 설래를 하다 보니 여군들만 옆으로 지나 갔다 하면 저 뽀얀 스커트와 블라우스 밑에는 과연 어떤 기묘한 물체가 들어
있는 지가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흐 흐.
합숙 훈련이 거의 끝나 가던 어느 날 야간 점호를 마치고 침상에 누운 내 전우놈이 눈알 뒤 집어 질 폭탄 선언을 한다.
오전에 여의도 광장을 한바퀴 돌면 오전 일과 끝, 그리고 중식에 이어 약간의 오침을 하곤 오후 훈련으로 여의도를 한바퀴 더 돌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단조로운 훈련의 연속이 이어 지는 어느 날 바삐 중식을 마친 이 용감한 녀석이 오전 훈련을 마치고는
달콤한 오침을 즐기는 여군 막사로 아무도 몰래 잠입을 하여 창문 너머로 여군 내무반 내부를 엿 보았는데 그 풍광이 참으로
놀랍더란 것이다.
점심을 먹은 여군들이 일분이라도 더 많이 잠을 잘 욕심에 와당탕 거리며 내무반에 들어 오기 바쁘게 아랫도리 윗도리를 화악
벗어 제키곤 내무반 침상 즉 마루바닥에 드러 눕는데 남자 군인들과는 달리 아니 날씨도 덥고 하니깐 창문 쪽에 있는 관물대
위로 두 다리를 쩌억 벌린 채 올리곤 금새 코를 곯기 시작하는데 팬티 색깔이며 생김새가 제각각 인 걸로 보아서 아무래도 개인이
구입한 사제가 틀림 없다고 한다. 과유 불급이라고 이쯤 해서
그만 두었으면 물론 아무런 일도 없었을 터 인데 이 용감한 녀석의 머릿속엔 그 너무 팬티속엔 과연 어떤 신묘한 물체가
터억 허니 들러 붙어 있는지가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궁리 끝에
느림보 리무진이 왕피천 입구에 도착 하니 강 대장님께서 미리 예약을 해 둔 ,트래킹이 시작되는 구산3리 까지 이동할
1톤 카고트럭 두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을 상상만 해 보셔요.
좁은 화물칸에 옹기 종기 모여 앉아 내려 쬬이는 뙤약볕을 마다 않고 그 신비의 오지 왕피천을 향해 우리 느림보 전사님들 께선
마냥 즐거워들 하시며 달리고 또 달린다.
내 다리통에 털 나고 요런 쏠쏠한 재미는 처음 이다.
왕피천 계곡 주위에 어쩌다 있는 평지엔 한때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아스라한 추억 처럼 여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오래 된 함석 지붕엔 이미 녹이 벌겋게 생겨 났고 마당가엔 잡초만 무성한 몇 몇 독가촌들이 띄엄 띄엄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어느 곳에 있는 안내판엔 이곳이 숯을 굽던 가마터 라고 소개를 한다. 힘들게 숯을 구어서
험한 계곡과 고갯길을 지게에 울러 매고 넘나 들었던 그 분들의 수고로움과 애환을 생각해 보면서 잠시 시공을 초월한
상념의 나래를 펼쳐 본다. 과연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이란? 그 자취만 남겨 두고 이곳을 떠났던 어떤 이들 처럼, 긴 그림자를 끌고 힘 겨운 발걸음을 하고 있는
나 라는 이 요사한 물건 덩어리의 끝간데는 어딜까?
뫼비우스의 띄 처럼 구냥 영원한 숙제로만 남기기엔 아직은 내 젊음이 너무도 아름 답다. 비록 대가리는 반백이 다 되었지만...
션한 계곡물이 철철 거리는 어느 가지 계곡 그늘에서 발을 담구고 쐐주 한잔 곁 들여서 점심을 먹으니 돈병철이가 부러버
돈황제 주영이가 부러버 이도 아니면 아니철수가 부러버? 오늘 하루는 온전한 내것이란 생각이 절로 절로 든다.
학소대를 지나 용소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고대하던 물놀이가 시작 된다.
기대 만땅으로 풍덩하고 물에 뛰어 들었는데 에이구머니나 계곡물이란게 으 으 음 머랄까?
쌀뜻물에 거시기 담가 놓은 것 처럼 뜨뜻 미지근 하다. 거시기 나온 김에 여군 팬티속 탐방기는 어찌 되었느냐구요?
개콘 감수성이란 프로를 보면 여러개의 군기를 세워 둔 모습이 보인다.
군기를 매 다는 장대는 끝 부분에 창날이 꽂혀 있는데 내 전우 용감한 녀석은 이 창날에 약간의 소케(솜) 뭉치를 꽉 꽉 눌려서
붙이고 실로 몇 번이나 칭칭 감고선 그날도 창문 틈새로 여군들의 잠 자는 모습을 감상하다가 이 장대를 창문 틈새로 드리 민다.
우선 감각을 무디게 할 욕심으로 솜뭉치가 달린 장대끝으로 팬티 위를 상하 좌우로 슬슬 문질러 준다.
곤한 잠에 중요한 부위 마져 시원하니깐 잠은 점점 깊이 들기 시작한다.
쌩침을 꼴까닥 거리며 창문 틈새로 장대를 집어 넣고 마악 팬티 끝 부분을 살짝 치켜 올리는 순간 용감한 녀석의 뒷통수에
오파운드 무쇠 함마가 떨어 진다.
막사를 순시하던 여군 지휘관께선 비록 계급은 육군 대위 였지만 여타 남정네 군바리 들과는 그 끗발이 차이가 마니 난다.
여군 막사에서 거의 초주검이 될 정도로 얻어 맞아 얼굴 형태를 거의 알아 볼 수 없게 된 용감한 녀석은 곧 바로 여군 대위의
손에 뒷덜미를 잡힌 채 여의도 행사 제병지휘관인 육군 중장 지휘소로 개 끌리듯 끌려 간다.
자초 지종을 설명한 여군 대위는 제병지휘관께 이룬 치사빤쓰 가튼 남정네 군바리들과는 함께 훈련을 할 수가 없다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친다. 제병지휘관도 참으로 입장이 난처 하다.
군형법 법률 조항을 아무리 뒤지고 또 뒤져 봐도 이 놈을 처벌할 근거 조항이 업따.
훈련이 막바지에 접어 들면서 한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이 녀석의 소식이 궁금해 질 즈음, 군가를 힘 차게 부르며 행진을 하다
언덕 받이에 있는 여군 숙소로 어쩌다 눈을 돌려 보면 이 용감한 녀석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들어 온다.
여군 숙소에 있는 임시 화장실 밑에 놓인 드럼통을 끄집어 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 소변을 함께 보는 여군 화장실 드럼통엔 언제나 건더기 보단 오줌물이 더 많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솜뭉치 달린 장대 대신 기다란 봉걸레로 여군 막사와 화장실을 청소 하면서 이 용감한 녀석의 파란 만장한 여의도 훈련도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된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용감한 녀석은 여태도 친지들과 대포 한잔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남들 처럼 이룬 개구라를 떨고 있을 게
틀림 없다.
특수 부대에서 끗빨 좋게 육군 중장의 명령을 직접 받으면서 아주 비밀스런 임무를 성실히 수행 하였느라고.
하천의 물은 일반적으로 그 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엔 대충 2킬로 정도만 흐르면 자체적으로 정화가 되는 기능 즉 자정 작용
이란게 있다.
왕피천 발원지와 그 상류 부근엔 아마 모르긴 해도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어떤 시설물이 여럿 있는 게 틀림 없어 보인다.
심한 가뭄으로 수량이 줄어 들었다 손 쳐도 바위와 자갈을 덮고 있는 볼썽 사나운 이물질 들이 너무도 눈에 거슬린다.
자연 보호란 말이 더욱 절실한 곳이 이곳 왕피천이란 생각이 간절 하다.
이번 왕피천 트래킹엔 느림보 산악회의 원년 멤버이자 총무직을 맡아 봉사 하셨던 메아리님과 2010년 6월 경 인제 방태산
산행을 써니 1 이란 아이디로 함께 하셨던 지원님 께서 오랫만에 느림보를 찾아 주셨다.
한비자에 의하면 인재란 주머니 속에 든 송곳 처럼 아무리 감추어도 필경은 그 진가가 도출 되게 마련이라고 한다.
등산모에 짙은 썬글래스로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 내지 않을려고 무쟌 애를 쓰셨지만 은은히 풍기는 광채가 북극의 오로라를
연상케 하는 참으로 훌륭하신 산벗을 새로이 만난 왕피천 트래킹의 긴 여정을 마무리 하면서 느림보 산악회가 분당에서
물 끈내 주는 산악회로 명성이 자자한 이유를 새삼 깨 닫게 된다.
뭍 세인들의 오해와 질투란게 없다면 이 두 분의 미모,지성,인품 등등에 대해서 입에 개거품을 물고 시푼 생각이 간절하지만
뭍 세인들에게 마쟈 디질까 거비 나서...
참 글구 제가 왕피천 트래킹을 마치고 강 대장님께서 특별식으로 끓여 내 주신 어죽을 뒷풀이 장소에서 맛 나게 들면서
계속해서 자연 보호를 강조 하자 옆에 계시던, 아이디를 잘 모르는, 바비 인형 처럼 날씬한 다리에 여선생님 처럼 고상한 풍모를
지니신 어떤 산벗님께서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어 자연 보호가 먼 말인지 알기나 알고 씨부렁 거리느냐고 하더라구요.
눈을 내려 깔고 주둥이를 꾸욱 닫고 있으니 여호와 께서 불벼락과 함께 모세에게 내려 쳤던 십계명이 생각 나는 한말씀이
있으시더만요.
자X를 욜씌미 연마하여 보X를 보호 하자.
탄천변에서 왕피천에 빠져도 주둥이만 동동 뜨는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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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저 시간되서 안가본 곳이니 가보자 하고 설렁설렁 울진 왕피천에 고개 디민 저와는리, 가시는 곳마다 깊은 속사연 있으신 사정은 미진진하군요^^
참으로 한편의 단편소설처럼
읽다가 혼자 까르르 웃기도 하고
특히 여군 내무반 사건의 주인공을 "특수 부대에서 끗빨 좋게 육군 중장의 명령을 직접 받으면서 아주 비밀스런 임무를 성실히 수행 하였느라고."
이대목에서 무쟈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남자들은 원래 뻥 또는 구라가 좀 심하니까요
더우기 놀란것은 제가 느림보에 처음 방태산 답사차 왔던 걸 기억하시는 것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이러니 제가 애독자 팬이 될 수밖에
또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
어떤사람과 산행하느냐에 따라 산행의거움이 라집니다.)에 의해서가 아니라
돌삐님과 걸음을 맞추면 이야기의 보고에 놀라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어떤 화제라도 돌삐님의 해박한 지식과 구수한 입담으로
누에고치에서 실이 뽑히듯 술술술...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읽으수도 있으니
돌삐님의 협박(
자진해서 모시고 산행해야 함은 산나리는 잘 알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