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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4(월)
오늘은 이틀간 하지 못한 마늘밭 검질을 매고 있는데
상군해녀 선녀씨가 다가오더니 당신 밭에 물주는 것을 부탁했다.
시계가 없다고 말하자 자기 시계를 내 손목에 채워주며 1시간 30분 마다
스프링 쿨러를 차례로 틀어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도 다음 달 일주일 이상 집을 비워야 하기에
그때 우리밭에 물주는 것을 부탁하자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40이 넘은 아들이 최근 반려자를 만나 12월 초 제주시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꼭 참석해 달라고 하여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점심을 먹고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집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등기가 왔다고 우체국 직원이 말하여 바람에 날라가지 않게
정자밑에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일을 마치고 등기우편물을 보니 이태리에서 귀국한
장바울라 수녀님이 보낸 교황님 강복장이었다.
우리 부부 강복장과 딸, 사위, 손녀 이름이 적힌 강복장이었다.
너무나 고마워 수녀님께 전화해서 고맙다고 전하고
수녀님께 보답하고 싶다고 말하자, 당신은 아무것도 필요없고
제주 엠마오 연수원에 계신 동생 신부님께 나중에
귤이라도 한 박스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시간되면 찾아뵙고 인사하고 수녀님 안부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전 제주 한 달 살이하신 자매님과 아내가 점심을 함께 했다고 했다.
아내가 서울 딸 집에 있기에 시간을 내서 만난 모양이다.
그때 잠깐 우리집에 들리셨던 형제님이 터키, 그리스 순례중이신데
자매님은 허리가 불편해 혼자 가셨다고 한다(부부동반)
내일 귀국하신다고 하며 그리스 메테오라 수도원 사진을 보내오셨다.
언제 봐도 수도자들이 하느님 사랑을 갈구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수도원이다.
나도 이스라엘과 사도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
터키를 거쳐 그리스까지 다녀오고 싶다.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6)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2)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뒤에 행동이
바로 쉬시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쉼은 창조의 완성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래 안식일은 사람을 쉬게 하는 것,
그리하여 사람이 하느님 창조의 그 본뜻에
충실히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안식일에는 사람을 살리는 행위를 해야 하고
그것으로 인간은 창조의 본 모습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안식일 본래의 의미를 잊은 채 그저 겉만 바라보고 있는
회당장처럼 규율이나 법칙에만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안식일처럼 제도를 만드신 하느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고
그 뜻에 맞게 신앙을 실천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기에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고쳐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일깨워 주신다.
우리가 주일 미사를 참석하는 것도 계명이나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날이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날이기에
그분께서 이루신 부활의 은총과 복을 누리고자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의 모든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삶의 힘겨움에서 벗어나
하느님 안에서 쉬는 시간이 주일입니다.
하루 내내 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공기 좋은 데 놀러 다닌다고 해서
잘 쉬는 것은 아닙니다.
세속의 온갖 혼잡함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침묵 속에 기도하며
‘영적 쉼’의 시간을 가질 때 진정한 쉼이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느님 안에서 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상에 살면서도 뒷날의 ‘영원한 쉼’의 날을
미리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나라가 낯설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거울입니다.
내 모습을 비춰 줍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웃으면 그들도 웃고, 내가 화내면 그들도 화냅니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2022.10.25(화)
오늘은 억새 나들이를 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6시 30분에 아끈다랑쉬 오름으로 출발했다.
정원에 나오니 향긋한 냄새가 풍겨 기분이 좋았다.
어디서 나는가 살펴보니 마당에 있는 백목서 3그루에서 풍겼다.
꽃이 핀 것도 모르고 있다가 발견한 것이다.
이제야 알게 된 백목서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백목서야 미안하다.
오늘 일정은 아끈 다랑쉬 - 용눈이 오름 - 산굼부리 - 새별오름- 정물오름에
이르는 왕복 170 킬로미터의 여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2022년 억새나들이'란 제목으로
별도 포스팅을 했기에 생략한다.
오늘로 한 달 나홀로 피정한지 25일이 지났다.
피정목적 3가지 중 두 가지는 잘 지키고 있는데,
체중조절은 잘 안되어 2킬로 감량에 그치고 있다.
운동은 그런대로 하지만 여러가지 행사와 식탐으로
단식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망보다는 먹을 수 있을 때 잘 먹자는 말로 자위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내 건강에 이로우니까 ~^^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루카 13,19)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누룩이 부불어 오를 수 있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씨가 저절로 나무가 되고,
누룩이 부풀어 오르지 않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을 가만히 두면 썩어 없어질 뿐이지요.
겨자씨가 자라게 하고 누룩이 크게 부풀기 위해서는
그 씨를 심고 관리하는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누룩이 부풀기 위해서는 밀가루 속에
누룩을 집어넣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그분의 나라가 펼쳐지기 위해서는 그분의 도우심뿐만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겨자씨가 얼마나 자랄지, 누룩이 얼마나 부풀어 오를지는
그분께서 알아서 하실, 그분의 몫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남보다 더 높은 나무가 되라고,
남의 것보다 더 풍성한 반죽을 만들어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그분이 주시는 몫을
기쁘게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
해답은 언제나 스스로 우리를 찾아온다.
복잡한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고요함 속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온다.
비록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 해답을 얻게 된다.
- 에크하르트 톨레-
2022.10.26(수)
열흘 전 산수를 맞으신 형님으로부터 받은
카톡내용이 너무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홀로 피정하고 있고, 위령성월도 며칠 앞둔 시점이기에 더욱~
그래서 포스팅을 하며 오늘 피정의 화두로 삼았습니다.
오늘은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를 보았다.
아울러 나바호족이 살고있는 모뉴멘트밸리에
1989년 광고모델 이현세, 오리콤 CF팀, 미국현지 촬영팀과 함께
오비수퍼드라이 광고촬영차 갔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나바호 인디언의 삶의 지혜를 생각하면서 피정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망각하면 안 될 세 문장이라는 제목으로
별도 포스팅을 했기에 생략합니다.
아침식사를 한 후 모슬포 5일장에 갔다.
내일 아내가 육지에서 돌아오기에 오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물오징어와 양말 몇 켤레를 사고
무엇보다도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보고싶었다.
요즈음 삶이 어렵고 걱정들을 많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시장은 늘 활기찬 모습니다.
물건을 파는 상인이나 구매하는 소비자 모두 활기있게
삶을 긍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시장에 가면 에너지가 넘친다.
오는 길에 제주양돈축산협동조합판매점에 들러
찌개용 돼지고기와 국거리 소고기를 구매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천국은 일인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사람, 그분과 일치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주렁주렁 달린 온갖 탐욕들을 떼어 내고 작아지지 않으면,
그리고 깨끗이 정화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좁은 문은 ‘작은 문’입니다.
작아지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하지만 작아지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누구나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죄인으로서 생을 마감하려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작아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을 사귀고,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업적을 남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기준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관일 뿐입니다.
그분께 맡기며 기쁨과 감사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구원은 삶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2022.10.27(목)
오늘은 국내 성지 순례 계획(10일간)을 다시 점검하며
주일미사 할 곳을 미리 정해 두었다.
이제 출발일이 일주일 앞으로 임박했기 때문이다.
마늘밭에 물 주는 부탁, 민구 밥과 산책 부탁 등도 챙겼다.
그리고 이발을 하고 목욕도 했다.
11월이 얼마 남지않아 독서단 축일을 보니 많았다.
모두 6명(35명 중)이나 되었다.
순례 중에도 2명이나 있어 미리 성인들의 간단한 내용을
정리하고 내 카톡으로 PDF 파일을 보냈다.
여행중에 전달하고 축하메시지만 보낼 수 있도록~
오후 3시에 공항으로 출발해 돌아오는 아내 마중나갔다.
1시간 정도 함께 오면서 그 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감주사는 서울에서 맞았다고 하며
이번 주 위령성월 제대 꽃꽂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성지순례도 있어 금방 시드는 꽃보다는
나무나 다른 재료를 주로 사용하고 집에 피어있는
노란 국화꽃을 소량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집에 도착해 보니 중학교 담임선생님 이셨던
유 선생님으로부터 택배가 왔다. 홍삼정 2박스 였다.
전화를 하니 건강관리하라고 아내와 내것을 보내셨단다.
이제 85세가 되니 허리와 고관절로 고생하신다면서
건강관리를 잘 하라고 부탁하셨다.
유 선생님은 나와 딸(교장), 즉 부녀의 스승님이다.
제주 이사오기 전에는 매년 스승의 날 찾아뵜는데
못본지가 7년이 넘었다.
사춘기 때인 중학교시절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귤이라도 보내드릴려고 농장에 알아보니
열 흘정도 지나야 당도가 올라가 수확한다고 한다.
순례갔다 온 후 지인들과 은인들에게 보내야겠다.
헤로데의 위협과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질시와 고발, 사람들의 몰이해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당신의 사명을 위해 흔들림이 없으시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당신의 길을 걸어가신다(루카 13,31-35).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재상이 임금께
어떻게 하면 깨끗한 충신으로 살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물이 가득 든 그릇을 주며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정한 시간에 돌아오면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재상은 임금이 말한 대로 물 컵을 들고 정해진 고을을 돌아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장 안에 떨어진 돈다발이 있었는데 그것을 못 보았는가?”
그가 대답했습니다. “보지 못했습니다.”
임금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궁녀 무리가 부채춤을 추며 행렬하고 있었는데 보지 못했는가?”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임금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그릇의 물을 흘리지 않는 데만 온통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말했습니다.
“깨끗한 충신으로 사는 방법은
이렇게 주변 것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목적과 목표에 온 마음을 쏟는 것이라네.”
이 이야기를 바꾸어 말하면,
주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면 깨끗한 신앙인으로 충실하게 살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어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우리 삶의 그릇에 담긴 ‘생명의 물’이 엎질러지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하여 살라고 일러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조심스럽게,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살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 것에 너무나 많이 두리번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윤리에 어긋나든
인생에 독이 되든 아무 생각 없이 몰려듭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소질과 취향에 관계없이 따라나섭니다.
삶의 중심이 없고 인생의 목표와 철학이 없을수록
세상의 가치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헤로데에게 끊임없이 위협받으시고,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질시와 도전을 받으심니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신앙의 가치로 중심을 잡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앞만 바라보며 걸어갑니다.
세상의 속된 가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첫댓글 좁은문 안에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진정한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은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겸손하게 섬기는 삶이라니 어렵게 느껴집니다 ㅠ
공감합니다.
하지만 구원을 위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 가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