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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3:5-10 눅 5:5-7 말씀에 의지하여 한 번 더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을 보면 의외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과 배고픈 사람들과 초라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 시대 뒤쳐진 사람들은 다 그곳에 몰려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한 무리가 고기 잡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베드로 형제 일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고기 잡는 모습을 멀찍이 서서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집념 --하나는 집념입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던지는 회수에 비해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밤새도록 그물을 몇 번이나 던졌을까요?
어둠이 시작된 후부터 고기를 잡았을 것이니
저녁 9시부터 새벽 동트기 전 5시간까지 고기를 잡았다면 8시간이 됩니다. 한 시간에 50번 정도 그물을 던졌다면 400번을 던졌는데도 한 마리도 잡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좀처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에 감동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원인을 보면 가장 큰 원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몇 번 해 보다가 안 되면 곧 바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메시 [169m] 부상,슬럼프, 모진소리... 항상 도전자의 자세...지금의 축구 스타.
어느 음식점을 하는 분이 말하기를 사업은 끝까지 해 보아야 하는데 얼마 해 보다가 안 되면 곧 철수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몇 번 해 보았는데 일이 잘 되었다 하면 세상에 누가 실패하겠는가고 반문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지금 일이 잘 안 되고 있습니까.
그래서 곧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매사가 그렇습니다.
공부도 잘 납득이 안 되고 의미가 없고 재미가 없다고 철수하려고 합니다.직장 생활에 적성이 맞지 않아 옮길 생각부터 합니다.
그러니 일이 손에 잡히겠습니까. 성적이 오르겠습니까. 열정 있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 일행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 베드로 일행을 보십시오. 던지고 또 던지고 밤새도록 최소한 400번은 던졌습니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데도 쉬지 않고 던집니다.
예수님이 이들의 모습에서 집념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제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열정---예수님 베드로 일행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았느냐”,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면 깊은 데로 가서 한 번 더 던져보라”,
여기서 베드로는 두 가지 위대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그물을 들고 나가 또 던졌습니다.
이제는 고기가 잡힌다 해도 귀찮을 것이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텐데 마다하지 않고 그물을 들고 또 나가 던집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무엇인가 이유가 있습니다.
에디슨은 평생 3천여 개의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를 발견할 때마다 수백 번씩 실패를 거듭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마지막에는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낸 것입니다.
2004년도 아테네 올림픽을 위해서 수영선수들을 사이판으로 데리고 가서 전지훈련을 하였습니다. 수영선수들을 물에 집어넣고 무제한 연습을 하도록 하 했습니다. 하나둘 지쳐서 물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중 3 짜리 14살 먹은 박태환은 끝까지 남아 연습을 하였다고 합니다.하루 1만 5천 미터씩 즉 길이 50미터짜리 트랙을 150번씩 왕래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수영선수는 총 5만키로 씩을 연습하게 되는데 그 길이는 지구 반 바퀴 길이입니다.
이 길이는 매일 1만 킬로씩 연습한다면 16년 반에 해당하는 길이입니다. 세계의 보통 양궁선수는 매일 100발식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매일 500발씩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마라톤 선수 이봉주는 매일 40km를 뛰었습니다.
그가 연습한 총 길이가 지구 다섯 바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승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에게 이 집념이 있으니까 성공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밤새워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깊은 곳에 한 번 더 던져보라는 말씀을 듣고 또 그물을 들고 나가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마침내 그물 가득히 고기를 잡는 기적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 열정이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왜 ?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을까. 열정, 집념도 있는데...
그리고 예수님은 상식밖에 말씀을 합니다.
비록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던져지만 기대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8절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런일이...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많은곳에서 합니다 .
아브람에게 . 이삭을 모리아산에 드리라...
욥에게 이해 할수 없는 고난.... 헤어날 수 없다.
결국 인생의 답은 “ 하나님의 말씀에 ”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치는 것입니다.
노아 “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 구원 받습니다.
욥의 곤경은 “ 말씀되신 하나님을 만나후 마음, 영, 육.이 회복 됩니다.
이 부분은 참 베드로가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참 대단한 일입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그물을 들고 나가 또 던지는 모습도 대단하지만 예수님 말씀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순종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절정입니다.
이 순종이 절정인 까닭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기 잡는데 문외한입니다.
베드로는 고기잡이에는 베테랑입니다.
보통 물고기는 밤시간에는 얕은곳에, 낮에는 깊은곳에서 물고기가 있는데 예수님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기 잡는데 베테랑인 사람에 고기잡이에 문외한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합니다.
그때 대부분은 “다 해 봤어, 소용없어”라는 대답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즉시 순종합니다.
여러분, 경험은 참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런데 경험은 때로 자신을 새롭게 하는데 장애가 될 때도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누군가 새로운 제안을 하면 “다 해봤어, 소용없어”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옵니다.
그래서 발전을 못하고 새로운 길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400번이나 그물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의 조언을 듣자마자 또 시도하고 또 던졌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모습에서 집념도 보셨고 열정도 보셨습니다.
이 베드로의 모습을 참으로 대단한 승리의 요인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왜 예수님의 조언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부분이 본문 말씀의 키이며 이유입니다.
고기잡이에는 문외한인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고기잡이에 경험이 많은 베드로가 토를 달지 않고 그렇게 순종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5절에 나와 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입니다.
1절을 보면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일행은 고기잡이를 떠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서 권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일행은 예수님에 대한 선 이해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일 때 그 예수님이 오셔서 한마디 조언을 해 주실 때 베드로는 그 말씀의 권위에 절대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종의 결과 그날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역대하24;20 ]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엠 백성을 광야로 이끄십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만나, 물, 고기 주시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것을 가르치기 원합니다.
모세, 다윗 ,믿음의 사람,,,,집념과 열정이 있는데 ... 안됩니다.. 결국 하나님에 말씀에 세워질 때 하나님이 쓰십니다.
이 세상은
롬1;20-23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학력 위조.. 대학가고,,, 의사되고,, 그런데 “이해한다고 합니다., 왜? 성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할수도 있지... 그리고 나도 그환경이 되면 그렇게 할수 있겠다. 성공과 돈 위해서 수단, 불법, 용납 됩니다.
성경은 28-32 ]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칼과 토라는 하늘에서 섞인 채로 내려왔다(*Sifre, Ekeb 11:12)
이스라엘에게만 해당하는 잠언입니다. “이스라엘은 토라의 말씀을 지키면 칼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나지만 만약 지키지 않으면 칼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Sifre, Ekeb 11:12)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맡겨진 책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탈출한지 50일밖에 안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토라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거기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면 복이요, 지키지 않으면 재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렘26;13-16]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의 말씀은 인생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발에 등이 되고 우리 길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빛은 어두움에 싸여 밝음을 [선, 바름,지혜을 밝힌다]
배교란 ? 진리를 아는지식을 받고 난후 에도 여전히 부패한 죄를 일삼는 것을 의미한다.
배교의 결과 는 무엇인가 ? 그 결과는
히10;27절]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10;29절]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할 때 이처럼 강력한 말씀은 없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들을새”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행합니다.
오늘 신앙인은 대부분 “이 말씀을 들을새”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경륜도 중요합니다. 신앙 연조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에 의하여”입니다.
말씀의 순종이 없으면 허울 좋은 신앙이 됩니다.
물 없는 저수지와 같은 신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것은 불행입니다. 그것이 바리새인의 믿음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신앙인에게 말씀이 없으면
내 경험이 주가 되고 .내 신념이 신앙화 하게 됩니다.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내 안에 이 말씀이 약화되면 이런 인간적인 것이 강화됩니다. 그래서 인간주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10년 한 사람도 어느 날 미련 없이 이 길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연조도 중요합니다. 직분도 중요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에 의지하여“입니다.
말씀은 창조능력이 있습니다.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의지하여가 중요한 신앙인의 태도인 것입니다.
모세는 40년간 왕궁생활을 할 때 기고만장하였습니다. 그때는 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입니다.
그의 생각 안에는 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강조되었고 불가능이 없다고 건방진 소리를 하는 그런 시절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내가 강조되는 한 하나님은 거들떠보시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광야생활 40년을 하면서 그는 자아를 부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 말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호렙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하고 무릎을 꿇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말씀에 사로잡히기를 원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가서 고통 받는 민족을 구원하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엎드릴 때 하나님은 다가오셨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노년에 화려하게 부활하게 됩니다.
46년 반 동안 3,000명의 고아들을 길렀는데 빵이든 우유든 무엇이든 떨어지면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을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이 약속대로 주세요. 이 약속대로 주세요.”하고 기도했답니다. 그래서 뮐러 목사님의 성경에는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 부분에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따라 합시다.성경에 구멍을 내야 됩니다.
“이대로 해 주십시오. 약속대로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만나도 그 일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천사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의 디딤돌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도 내가 해야 될 일은 내가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간증거리가 되고, 모든 문제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나왔다 갔다 한다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험생이 매일 밤을 새워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축구선수가 운동장을 황송아지처럼 뛰어다닌다고 공이 골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낚싯대를 강물에 던지기만 하면 고기가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가 있을 곳에 가서 던져야 고기가 잡힙니다.
축구공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이 오면 받아 쳐야 골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수험생은 공부의 맥을 알고 공부해야 성적이 오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맥을 정확히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그날 밤 밤새도록 수고는 하였지만 길도 찾지 못하고 맥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실패하고 피곤하고 지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기적을 연출하게 됩니다. 만선의 기적을 일굽니다.
모든 문제의 키는 “말씀의 은혜를 입는 길”입니다.
미래 형통하게 되고 싶으십니까. 지금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까. 먼저 “말씀에 의지하여”로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매사 말씀에 의지하여 결단하고 판단하고 결정해 보십시오. 그것이 신앙인의 지름길입니다. 신앙의 길입니다.
능력에 사로잡히는 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빈 그물이 가득 채워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