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 4.19 민주묘지
4.19 혁명은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이었다. 4.19 혁명의 발단은 이승만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에서 시작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존경 받앗지만 한국전쟁과 부산정치파동을 통해서 독재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민들에게 종신집권을 위한 음모라고 비춰졌다. 1960년 2월에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세상을 뜨자 이승만은 단독 후보가 되었다. 자유당의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금권을 통한 부정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의 선거유세에 참석을 못하도록 1960년 2월 28일 일요일에도 대구 경복고등학고 학생들이 등됴하도록 강요한 것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학원의 자유를 보장하라', 독재정치, 부정부패를 물리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구에서 벌어진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4월 29일에는 약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수천 명의 시민과 함께 경무대를 향해 돌진했다. 이날 130명이 총상을 입어 사망했다. 4월 25일 약300명의 교수들이 죽어간 제자들의 피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다. 결국 이승만은 4월 26일 사임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가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이곳 국립 4.19 민주묘지는 1960년 4.19혁명에 참가했던 희생자들을 위한 묘지다. 1993년부터 4.19묘지가 성역화 되고 '국립4.19민주묘지'로 변경되었다. 약 3만 평의 터에 유영봉인소, 기념관 그리고 315기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다. 묘역 좌측과 우측 양편에는 수호예찬 시비가 세워져 있다. 구상 '진혼곡', 조지훈 '합장', 박목월 '죽어서 영원히 사는 분들을 위하여', 정한모 '빈 의자', 유안진 '꽃으로 다시 살아' 등 많은 시인들의 시비가 죽어간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다. 가을 빛이 농익어 가는 오늘, 국제펜 문인들은 뜻깊은 곳에서 가슴 시린 시를 읽으며 아름답지만 시린 햇살에 젖었다. 시비와 묘역, 기념탑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번 행사의 일정을 마쳤다. 금년은 이것으로 국제펜 서울문학 탐방 행사가 끝난다. 올해 나는 수필가인 남편 유기섭님과 알차게 국제펜 서울문학 탐방 행사에 참여했다. 큰 아들이 둘째 손주를 4월 29일에 안겨주었는데, 큰 며느리와 갓난아기의 안정을 위해, 그리고 5살된 큰 손자를 돌보느라 그 다음 달인 5월 행사에만 참여하지 못하고 매월 모두 참가했다. 보람되고 뜻깊은 국제펜 서울문학 탐방은 내년에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문인 부부는 내년에도 열심히 참여하여 문인의 길에서 더욱 사명에 충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