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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農軍)
이 태 준
1
봉천행 보통 급행 삼등실,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다. 세면소에는 물도 떨어졌거니와 거기도 기대고, 쭈크리고, 모두 자기 체중에 피로한 사람들로 빼곡하다. 쳐다보면 시렁도 그뜩, 가죽 가방, 헝겊 보따리, 신문지에 꾸린 것, 새끼에 얽힌 소반, 바가지쪽, 어떤 것은 중심이 시렁 끝에 겨우 걸치어 급한 커브나 돌아간다면 밑엣 사람 정수리를 내려치기 알맞다.
차는 사리원(沙里院)을 지나 시뻘건 진흙 평야를 달린다. 한쪽 창에는 해가 뜨겁다. 북으로 달릴수록 벌써 초겨울의 풍경 이긴 하나 훅
* 이 소설의 배경 만주는 그전 쟝 쭤린(張作霖) 정권 시대임을 말해둔다.
훅 찌는 사람내 속에 종일 앉았는 얼굴엔 햇볕까지 받기에 진땀이 난다.
개다리소반에 바가지쪽들이 차가 쿵쿵거리는 대로 들썩거리는 시렁 밑이다.
“뜨겁죠, 할아버지? 이걸 내립시다.”
스물두셋 된 청년, 움푹한 눈시울엔 땀이 흥건하다.
“그냥 둬 뜨건 게 낫지. 밖을 볼 수 있어야지.”
할아버지는 찌적찌적 한 눈을 슴벅거리면서 담뱃대를 내어 희연*을 담는다. 두어 모금 빨더니 자기 담배 연기에 기침이 시작된다. 멎을 듯 멎을 듯, 이 노인의 등이 굽은 것은 이 기침병 때문인 듯하다. 땀을 쭉 빼더니 겨우 진정하고 이내 담배를 털어 고무신으로 밟아버린다.
“그리게 아버닌 담밸 끊으서야 한대두.”
맞은편에 끼여 앉아 걱정하는 아낙네도 머리가 반백은 되었다.
“거 윤풍언이 차에서 피라구 한 봉지 사주더구나…… 망절 눔의 기침, 물이나 갈아 먹음 원, 어떨지……”
똑 수염이 염소 같은 턱은 그저 후들후들 떨면서 햇볕 뜨거운 창 밖을 머르레* 내다본다.
“흙두 되운 뻘겋다. 저기서 곡식이 돼?”
“뻘겋기만 허지 돌이야 어딨에요? 한새울겉이 돌 많은 눔으 데가 어딨에요. 우리 동네니깐 떠나기 안됐지, 농토야 한 자리 탐날 게 있나요?”
하며 청년도 눈을 찌푸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우리 가는 덴 흙이 댓진 같대지?”
“한 댓 핸 거름 않구두 조이삭 하내 개꼬리만큼씩 수그러진대니까요.”
“채심이가 거짓 말야 했겠니……”
영감은 창에서 물러나더니 군입을 쩍쩍 다신다.
“거 웃골 서깟*은 괜히 팔았느니라.”
“또 아버닌!”
하고, 청년에겐 어머니요 노인에겐 며느리인 듯한 아낙네가 노인의 말문을 막는다.
“글쎄 할아버지두 되풀일 허심 뭘 허세요? 묘(墓)자리가 백이문 뭘 해요. 여간 사람 아니군 허갈 맡아야 쓰잖어요?”
“몰래두 잘들만 쓰더라 원.”
하고 노인은 수그리더니 침을 퉤 뱉는다. 그리고 들릴락 말락 하게 혼잣말처 럼 지껄였다.
“그저 난 병만 들건 차에 얹어라……칠십 년이나 살던 델 두구 어디 가 묻히란 말이냐! 한새울 사람들이 아무 밭머리에구 나 하나 감장 안해주겠니…….”
“아버닌 자계 생각만 허시는군! 재 아버진 뭐 묻구퍼 공동메다 묻었나…….”
하더니 아낙네는 여태 무릎 위에 얹었던 신문 뭉치를 펼친다. 팥알들이 꼬실꼬실 마른 시루떡 부스러기다. 파리가 와 붙은 대로 아들한테 내민다.
“싫수.”
“입두 짧기두 허지…… 너두 참, 배고프겠다.”
하고 이번엔 영감 옆에 앉은 처녀인지, 색시인지 분간 못할 젊은 여자에게 내어민다. 살결이 맑지는 않은데 햇볕을 못 본 얼굴인 듯, 너리*도 없는 이빨이 누렇게 보이도록 창백하다. 트레머리인지 쪽인지 손질은 많이 했으나 디룽거린다. 갓 스물은 되었을까, 눈이 가늘고 이마가 도드라진 것이 약삭빠르게는 보인다. 시루떡을 집으러 오는 손이 새마다 짓물렀던 자리가 있다.
어떤 손가락 사이엔 아직도 붕산말 같은 가루약이 묻어 있다. 햇볕에 구릿빛으로 그을은 노인, 아낙네, 청년, 이들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한 일행이다.
무어라는 소리인지 차 안은 한쪽 끝에서부터 수선스러진다. 차장이 들어섰다. 차장이니 남의 어깨라도 넘어 헤치고 들어오며 차표 조사다. 이 청년은 이내 조끼에서 차표 넉 장을 내어 든다.
차장 뒤에는 그냥 양복쟁이 하나가 뒷짐을 지고 넘성넘성 차장이 찍는 차표와 그 차표를 낸 승객을 둘려보며 따라온다. 차장은 청년의 손에서 넉 장 차표를 받아 말없이 찍기만 하고 돌려준다. 그런데 양복쟁이가 청년에게 손을 쑥 내미는 것이다. 청년은 조끼에 집어넣으려던 차표를 다시 내어주었다. 양복쟁 이는 차표에서 장춘(長春)까지 가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도,
“어디꺼정 가?”
묻는다.
“장춘꺼지요.”
“차는 장춘꺼지지만 거기선?”
“네……”
청년은 손이 조끼로 간다. 만주 어느 지명 적은 것을 꺼내려는 눈치다.
“이리 좀 나와.”
청년은 조끼에 손을 찌른 채 가족들을 둘러보며 일어선다. 가족들은 눈과 입 이 다 뚱그레진다. 청년은 속으로 경관이거니는 하면서도,
“왜요, 어디루요?”
맞서 본다.
“오래니깐…….”
청년은 양복쟁이의 흘긴 눈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찻간 끝에 변소만한 방, 차장의 붉은 기와 푸른 기가 놓인 책상, 그리고 양쪽에 걸상이 있었다.
“앉어……어…… 이름이 뭐?”
“윤창권입니다.”
“쓸 줄 아나?”
“네.”
창권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에 ‘尹副藿’ 이라 써 보인다.
“원적은?”
“강원도 × ×군…….”
형사가 적는 대로 글자까지 불러준다.
“누구누군가? 젊은 여잔 아낸가?”
“네.”
“어째 얼굴이 혼자 그렇게 하얀가?”
“공장에 가 있었습니다.”
“무슨?”
“읍에 고치실 켜는 공장입니다.”
“응, 방적 회사 말이로군?”
“네.”
“늙은인?”
“조부님입니다.”
“아버진?”
“안 계십니다.”
“부인넨 어머닌가?”
“네.”
“만주엔 누가 가 있나?”:
“저희 동네서 한 삼 년 전에 간 황채심이란 이가 있습니다. 그이가 늘 들어만 옴 농산 맘대로 질 수 있대서요. 그런데 조선 사람들만 한 삼십 가구 한데 돼서 땅을 여러 백 섬지기 사기루 했다구요. 한 삼사백 원어치만 맡아두 대여섯 식군 걱정없을 만치 논을 풀 수 있대나요.”
“황채심이…… 그자는 믿을 만헌가? 사람이?”
“네, 전에 동장두 지내구, 저 댕긴 사립학교 선생님이더랬습니다.”
“돈 얼마나 가지구 가나?’:
“한 오백 원 됩니다.”
“오백 원, 웬 건가?”
“밭허구 산허구 집서껀 판 겁니다.”
"집두 있구 밭두 있으면 왜 고향서 안 살구 가는 거야?”
“발이라구 모두 삼백이십 원 받은걸요. 조선서 삼백이십 원짜리 밭이나 가지군 살 수 있어야죠. 남의 소작도 해봤는데 땅 나쁜 건 품값두……”
“듣기 싫여…… 아내가 벌었다며?”
“네. 돈 쓸 일은 걸루 다 메꿔나갔습죠. 그렇지만 밤낮 공장에만 갖다둘 수 있습니까?”
마침 차가 꽤 큰 정거장에 머문다. 형사는 수첩을 집어넣더니, 쓰다 달단 말도 없이 차를 내린다.
“얘, 무슨 일이냐?”
어머니가 따라와 진작부터 서 있었던 것이다.
“괜찮어요. 으레 조사허는 건 데요.”
“글쎄, 그래두…….”
어머니와 아들은 뒤를 돌아보며 서로 이끌며 저희 자리로 돌아왔다.
2
이튿날 새벽, 찻속은 몹시 추웠다. 어제 조선에서처럼 자리가 붐비지는 않아 한 자리에 둘씩은 제대로 앉을 수가 있으나 다리를 뻗어볼 도리는 없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한 자리에서 서로 마주 보듯 양편으로 기대어 입을 떡 벌리고 잠이 들었고, 맞은편 자리에서 창권이 양주는 진작부터 잠이 깨어 있었다.
“여기가 어딜까?”
“…….”
남의 집에 가서 자고 깬 것처럼 차 안이 휑한 게 서툴러 보인다. 자는 얼굴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어머니, 다 남처럼 서먹해 보인다. 창권은 이웃집에 주고 온 강아지 생각이 문득 난다.
“몇 점이나 됐을까?”
“글쎄.”
창권은 뒤틀어 기지개를 켜고 창장을 치밀고 밖을 내다본다. 동이 훤히 트기 시작한다.
“벌써 밝는데.”
아내도 목을 길게 빼 내다본다.
“아무것 두 뵈지 않네.”
“인제 조꼼만 더 감 땅이 뵈겠지.”
“밤새도록 왔으니 얼마나 멀어졌을까!”
둘이는 다시 눈을 감아본다. 몇 달을 간대도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치 조선이 멀어진 것 같다.
“왜 벌써 깼어?”
하고 창권은 아내의 몸으로 바투 가 기대본다. 아내의 몸은 자기보다 한결 따스하게, 느껴진다.
“공장에선 늘 이맘때 깨던걸 뭐.”
아내가 공장에서 나와버렸을 때는 집을 팔아버리고 동넷집 단칸방 하나를 빌려 임시로 들어 있을 때였다. 아내와 몸 운기라도 같이 통해보는 것은 달포 만이다. 만주로 간대야 쉽사리 저희 내외만의 방을 가져볼 것 같지 않다.
“가문 집은 어떡하우?”
“봐야지…… 아무케나 서너 간 세야겠지.”
“겨울 안으루 질 수 있을까?”
“그럼.”
“말르나 벽이?”
“그래두 살게 마련이겠지.”
창권은 아내의 손을 꽉 잡아보고 놓는다. 아내는 눈물이 글썽해진다.
창권은 다시 창 밖을 주의해 내다본다. 시커멓던 유리창에 희끄무레하게 떠오르는 안개, 그 안개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땅, 창권이네 게는 새 세상의 출현이다. 어룽어룽 누비바탕 같은 것이 지나간다. 그 어룽이는 차츰차츰 밭이랑으로 변한다. 밭이랑은 까마득하게 끝이 없다.
“밭들 봐! 야…….”
아내도 또 다가와 내다본다.
“아이, 벌판이 그냥 밭이죠!” ¨
어쩌다 버드나무가 대여섯씩 모여 서고 거기엔 무덤 인지 두엄 가리 인지 한둘씩 있을 뿐, 그냥 내처 밭이다.
“저렇게 넓구야 거름을 낼래 낼 수 있어!”
“저걸 어떻게 다 갈까!”
“젠장 저기 뿌리는 씨알만 해두!”
“그리게 말유!”
지붕 낯선 이곳 사람들의 부락이 지나간다. 겉에는 푸른 옷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멀거니 서서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는 것이겠지만 창권이 내의에겐 이상히 무서워 보인다. ‘밭이 암만 많음 어쨌단 말야? 다 우리 임자 있어. 뭐러 오는 거야?’ 하고 흘겨보는 것만 같다.
창권은 허리띠 밑으로 손을 넣어 전대를 더듬어본다
3
쟝쟈워푸(姜家窩柵), 눈이 모자라게 찾아보아야 한두 집, 두세 집, 서로 눈이 모자랄 거리로 드러난다. 이런, 어느 두세 집이 중심이 되어 장쟈워푸란 동네 이름이 생겼는지 알 수 없다. 산은커녕 소 등어리만한 언덕도 없다. 여기 와 개간권운동을 해가지고 황무지를 사기 시작하는 조선 사람들도 처음에는 어디를 중심으로 하고 집을 지어야 할지 몰랐으나 차차 자기네의 소유지가 생기자 구 땅 한쪽에 흙을 좀 돋우고 돌 하나 없는 바닥에다 돌 주초 하나 없이 청인에게서 백양목 따위 생나무를 사다가 네 귀 기둥만 세우면 흙으로 싸올리는 것이, 근 삼십 호 늘어앉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쟝쟈워푸라면 이 조선 사람들 동네가 중심이 되었다.
창권이네가 온 데도 여기다. 창권이네도 중국옷을 입은 황채심이가 시키는 대로 황무지를 십오 상(15晌, 약 3만평)을 삼백 원을 내고 샀다. 그리고 이십 리나 가서 밭머리에 선 백양목을 사서 찍어다 부엌을 중심으로 하고 양쪽에다 캉(걸어앉을 정도로 높은 온돌)을 만들었다. 그리고 채심이가 시키는 대로 좁쌀을 열 포대, 옥수수 가루를 다섯 포대 사고, 소금을 몇 말 사고, 겨우내 땔 조·기장·수수 따위의 곡초를 산더미처럼 두어 낟가리 사서 쌓고, 공동으로 사온 볍씨 값을 내고, 봇도랑을 이뚱허(伊洞河) 란 내에서 삼십 리나 끌어오는데 쿨리(苦力, 그곳 노동자) 삯전으로 삼십 원을 부담하고, 그러고는 빈손으로 날마다 봇도랑 째는 것이 일이 되었다.
깊은 겨울엔 땅속이 한 길씩 언다. 얼기 전에 삼십 리 대간선(大幹線)은 째어놓아야 내년 봄엔 물이 온다. 이것을 실패하면 황무지엔 잡곡이나 뿌릴 수밖에 없고, 그 면적에 잡곡이나 뿌려가지고는 그다음 해 먹을 수가 없다.
창권이넨 새로 와서 지리도 어둡고, 가역도 끝나기 전이라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구역을 맡았다. 한 삼 마장 길이 되는 대간선의 끝 구역이었다. 그것을 쿨리 다섯 명을 데리고, 넓이 열두 자, 깊이 다섯 자로 얼기 전에 뚫어놔야 한다. 여간 대규모의 수리공사(水理工事)가 아니다. 창권은 가역 때문에 처음 얼마는 쿨리들만 시키었으나, 날이 자꾸 추워지는 것이 겁나 집일 웬만한 것은 어머니와 아내에게 맡기고 봇도랑 내는 데만 전력 하였다.
쿨리들은 눈만 피하면 꾀를 피웠다. 우묵한 양지쪽에 앉아 이를 잡지 않으면 졸고 있었다. 빨리 하라고 소리를 치면 그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마주 투덜대었다. 다행히 돌은 없으나 흙일은 변화가 없이 타박타박해 힘들고 지리 했다.
이런 일이 반이나 진행되었을까 한 때다. 땅도 자꾸 얼어들어 일도 힘들어졌거니와 더 큰 문제가 일어났다. 이날도 역시 모두 제 구역에서 제가 맡은 쿨리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데 쿨리들이 먼저 보고 둔덕으로 뛰어올라가며 뭐라고 떠들어댔다. 창권이도 둔덕으로 올라서 보았다. 한편 쪽에서 갈까마귀떼처럼 이곳 토민들이 수십 명씩 무더기가 져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것이다.
“마적떼 아닌가!”
그러나 말을 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더러는 이쪽으로 몰려오고 더러는 동네로 들어간다. 창권은 집안 식구들이 걱정된다. 삽을 든 채 집으로 뛰어들어가다가 그들 한패와 부딪쳤다. 앞을 턱 막아서더니 쭉 에워싼다. 까오리, 까오리팡쯔* 어쩌구 한다. 조선 사람이냐구 묻는 눈치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한 자가 버럭 나서며 창권이가 잡은 삽을 낚아챈다. 창권은 기운이 부쳐서가 아니라 얼떨결에 삽자루를 놓쳤다. 삽을 빼앗은 자는 삽을 번쩍 쳐들고 창권을 내려치려 한다. 창권은 얼굴이 퍼렇게 질려 뒤로 물러났다. 창권에게 발등을 밟힌 자가 창권의 등덜미를 갈긴다. 그러고는 일제 깔깔 웃어댄다. 삽을 들었던 자도 삽을 휘휘 두르더니 밭 가운데로 팽개쳐버린다. 그러고는 창권의 멱살을 잡고 봇도랑 내는 데로 끄는 것이다.
창권은 꼼짝 못하고 끌렸다. 뭐라고 각기 제대로 떠들고 삿대질이더니 창권을 봇도랑 바닥에 고꾸라뜨린다. 창권이뿐 아니라 봇도랑 일을 하던 쿨리들도 붙들어가지고 힐난이다. 봇도랑을 못 내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자 윗구역에서, 또 그 윗구역에서 여깃말 할 줄 아는 조선 사람들이 내려왔다. 동리에서도 조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타났다. 창권은 눈이 째지게 놀랐다. 윗구역에서 내려오는 조선 사람 하나가 괭이를 둘러메고 여기 토민들 몰려선 데로 뭐라고 여깃말로 호통을 치면서 그냥 닥치는 대로 찍으려 덤벼드는 것이다. 몰려섰던 토민들은 와 흩어져버린다. 창권을 둘러쌌던 패들도 슬금슬금 물러선다. 동리에서는 조선 부인네들 몇은 식칼을 들고, 낫을 들고 달려들 나오는 것이다. 낫과 식칼을 보더니 토민들은 제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창권은 사지가 부르르 떨렸다.
‘여기선 저럭해야 사나보다! 아니, 이 봇도랑은 우리 목줄이 아니고 뭐냐!’
아까 등덜미를 맞고, 멱살을 잡히고 한 분통이 와락 터진다. 다리 오금이 날갯죽지처럼 뻗는다.
“덤벼라! 우린 여기서 못 살면 죽긴 마찬가지다!”
달아나는 녀석 하나를 다우쳤다. 뒷덜미를 낚아챘다. 공중걸이로 나가떨어진다. 또 하나 쫓아가는데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난다. 어머니가 달려오며 붙든다.
이 쟝쟈워푸를 수십 리 둘러 사는 토민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조선사람들이 봇동 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반대하는 이유는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봇동을 내어 논을 풀면 그 논에서들 나오는 물이 어디로 가느냐였다. 방바닥 같은 들이라 자기네 밭에 모두 침수가 될 것이니 자기네는 조선 사람들 때문에 농사도 못 짓고 떠나야 옳으냐는 것이다. 너희들도 그 물을 끌어다 벼농사를 지으면 도리어 이익이 아니냐 해도 막무가내였다. 자기넨 벼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거니와 이밥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고소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배가 아파진다는 것이다. 그럼 먹지는 못하더라도 벼를 장축으로 가지고 가 팔면 잡곡을 몇 배 살돈이 나오지 않느냐? 또 벼농사를 지을 줄 모르면 우리가 가르쳐줄 터이니 그대로 해보라고 하여도 완강히 반대로만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 사람이 칼이나 낫으로 덤비면 저희에게도 도끼도 몽둥이도 있다는 투로 맞서는 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일을 계속하기가 틀렸다. 쿨리들이 다 달아났다. 땅이 자꾸 얼었다. 삼동 동안은 그냥 해토되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해토가 된다 하여도 조선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못자리는 우물물로 만든다치더라도, 모낼 때까지 봇물을 끌어오게 될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 봇동 이외에 달리 살길은 없다. 겨울 동안에 황채심과 몇몇 이곳 말 잘하는 사람들은 나서 이웃 동네들을 가가호호 방문하였다. 봇동을 낸다고 물을 무제한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요, 완전한 장치로 조절한다는 것과 조선서는 봇물이 오면 수세를 내면서까지 밭을 논으로 만든다는 것과 여기서도 한 해만 지어보면 나두 나두 하고 물이 세가 나게 될 것과 우리가 벼농사 짓는 법도 가르쳐주고, 벼만 지어놓으면 팔기는 우리가 나서 주선해줄 것이니 그것은 서로 계약을 해도 좋다고까지 역설하였으나 하나같이 쇠귀에 경 읽기였다. 뿐만 아니라 어떤 동네에선 사나운 개를 내세워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였다.
조선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치고 악만 남았다.
추위는 하루같이 극성스럽다. 더구나 늦게 지은 창권이네 집은 벽이 모두 얼음장이 되었다. 그냥 견딜 수가 없어 방 안에다 조짚을 엮어 둘러쳤다. 석유도 귀하거니와 불이 날까보아 등잔도 별로 켜지 못했다. 불 안 켜는 밤이면 바람소리는 더 크게 일어났다.
창권이 할아버지는 물을 갈아 먹어 낫기는커녕 추위 때문에 기침이 더해졌다. 장근 두 달을 밤을 새더니 그만 자리보전을 하고 눕고 말았다. 하 추우니까 인젠 조선 나가는 차에까지 내다 실어달라는 성화도 못하고 그저 불만 자꾸 더 때달라다가, 또 머루를 달여 먹으면 기침이 좀 멎는 법인데, 머루만 좀 구해 오라고 아이처럼 조르다가, 섣달 그믐을 못 채우고 눈보라 제일 심한 날 밤, 함경도 사투리 하는 노인, 경상도 사투리 하는 노인, 평안도 사투리 하는 이웃 노인들에게 싸여, 오래간만에 돋아놓은 석유 등잔 밑에서 별로 유언도 없이 운명하고 말았다.
4
봄이 되었다. 삼십 리 봇도랑은 조선 사람들의 다시 참호(塹壕)가 되었다. 땅이 한 치가 녹으면 한 치를 걷어내고 반 자가 녹으면 반 자를 파낸다. 이 눈치를 챈 토민들은 다시 불온해졌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봇도랑에 나갈 때 괭이나 삽만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 있는 물자는 이 황무지와 이 봇도랑을 위해 남김없이 바쳐버렸다. 이것을 버리고 돌아설 데는 없다. 죽어도 여기밖에 없다. 집도 여기요 무덤도 여기다. 언제 토민들이 몰려오든지, 오는 날은 사생결단이다. 낫이 있는 사람은 낫을 차고 식칼밖에 없는 사람은 식칼을 들고 봇도랑으로 나왔다.
토민들은 조선 사람들이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드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저희 관청에 진정을 하였다.
쉰징(순경)들이 한둘씩 여러 번 말을 타고 나타났다.
나타날 때마다 조선 사람들은 현정부로부터 현지사(縣知事)의 인이 찍힌 거주권과 개간권의 허가장을 내어보였다. 그러나 그네들은 그런 관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처럼, 저희 관청 문서를 무시하고 덤비었다.
그러나 삼십 리 긴 봇동에 흩어진 사람들을 일일이 어쩔 수는 없어 그냥 동네 가까운 데로만 다니며 울근거리다가 저희 갈 길이 늦을 듯하면 그냥 어디로인지 사라져버리곤 하였다.
조선 사람들은 밤낮 없이, 남녀노소 없이 봇도랑을 팠다. 물길이 될지, 무덤이 될지 아무튼 파는 길밖에 없었다.
토민들은 자기네 관헌이 무력한 것을 보고 돈을 걷어서 군부(軍部)의 유력한 사람을 먹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순경 대신 총을 멘 군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다섯 명이 와서 잠자코 봇도랑을 한 십 리 올라가며 보기만 하고 갔다. 다음 날엔 이십 명이 역시 총을 메고 말을 타고 나왔다. 황채심 이하 사오 인이 그들의 두목 앞으로 나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역시 현정부에서 얻은 개간 허가장을 보이고 또 여기 삼십 호 조선 농민은 가지고 온 물자는 이 황무지와 봇동에 남김없이 바쳤기 때문에 이 황무지에 물을 대고, 모를 꽂지 못하는 날은 죽는 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곡히 사정 하였다. 그러나 그 군인들은 한다는 소리가,
“타우첸바(돈 내라).”
“늬문 구냥 화칸(너희 딸 이쁘다).”
이따위요, 이쪽 사정은 한 사람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날 밤 조선 사람들은 동회를 열었다. 여기서도 군대의 우두머리를 먹이자는 공론도 없지 않았지만 애초에 개간권 허가 운동을 할 때에도 공안국장(公安局長) 에게 돈 오백 원, 현지사 부인에게 삼백 원을 들여 순금 손목걸이를 해다 바쳤던 것이다. 이제는 삼십 호 집집마다 털어 모은대도 단돈 오십 원이 못될 것이다. 그것으로는 구석구석에서 벌리는 입을 하나도 제대로 씻기지 못할 것이다. 생각다 못해 여기서도 현정부에 진정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공론이 돌았다. 진정서를 꾸며가지고 이튿날 황채심이가 장춘으로 갔다.
그런데 사흘이 되어도 황채심이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이 갔다.
또 돌아오지 않는다.
이번에 두 사람이 갔다.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
가는 족족 잡아두고 보내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무장한 군인들은 수십 명이 봇도랑에 나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면서 봇도랑을 파지 못하게 으르대고 욕하고 때리고 하였다.
그러나 매맞는 것은 죽는 것보다 나은 것이 너무나 엄연하다. 병정들이 저쪽으로 가면 이쪽에선 그냥 팠다. 이쪽으로 오면 저쪽에서 그냥 팠다.
얼마 안 파면 물곬*은 서게 되었다.
병정들은 나중엔 총을 놨다. 총소리는 이들에게 물길이 아니면 무덤이란 각오를 더욱 굳게 하였다. 총소리를 들으면서도 멀리서는 저꾸 팠다.
총알이 날아와 흙둔덕을 푹 파혜쳐놓는다. 어떤 사람은 도리어 악이 받쳐 웃통을 벗어던지고, 보아라 하는 듯이 흙삽을 더 높이 더 높이 떠올려 던졌다.
창권이네 식구도 모두 봇도랑에 나와 있었다. 창권이는 안사람들만 집에 두기 안되었고, 어머니나 아내는 또 창권이만 봇동에 두면 무슨 일이 나는 것도 모르고 있을까보아 따라나왔다.
봇도랑 속은 거의 한 길이나 우묵해지고 양지가 되어 집에 있기보다 따스하고 그 구수하고 폭신한 흙은 냄새도 좋고 만지기에도 좋았다. 물만 어서 떨떨 굴러와 논자리들이 넘실넘실 넘치도록 들어가만 준다면 논은 해먹지 않고 그것만을 보고 죽더라도 한이 풀릴 것 같았다. 까마득한 삼십 리 밖, 이 푹신푹신한 생흙바닥으로 물이 고이며 흘러오리라고는, 무슨 꿈을 꾸고 나서 그것을 생시에 바라는 것같이 허황스럽기도 했다. 더구나 여기 토민들 가운데는, 이뚱허보다 여기 지면이 높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이 암만 봇도랑을 내어도 물이 올 리가 없다고 장담을 하는 패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채심이란 전에 조선서 세부측량 때 측량 기수도 따라다녀본 사람이다. 그가 지면고저(地面高低) 에 어두울 리 없다.
창권이네가 맡은 구역은 제일 끝 구역이다. 여기만 물ㅇ] 지나간다면 흙이 태곳적부터 썩어 댓진 같은 황무지는 문전옥답으로 변하는 날이다. 삼만 평이면 일백오십 마지기(150두락)는 된다. 양 석씩만 나준다면 삼백 석 추수다. 대뜸 허리띠 끈을 끌러놓게 되는 날이다. 무연한* 벌판에 탐스런 모춤이 끝없이 꽂혀나갈 광경을 그려보면 팔죽지가 근지러워진다. 창권은 후닥닥 뛰어일어나 날 깊은 괭이를 내리찍는다. 잔돌 하나 없는 살흙은 허벅지에 퍽 박힌다.
5
아흐레 만에 황채심 만이 순경들에게 끌리어 돌아왔다. 현정부에서는 거주권도 개간권도 다 승인한다는 것이다. 다만 논으로 풀지 말고 밭으로만 일구라는 것이다. 그것을 들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더니 가는 족족 잡아 가두었고 나중에는 황채심을 시켜 조선 이민들에게 밭으로만 개간하도록 설복을 시키려 끌고 나온 것이다.
이날 밤이다. 황채심은 순경들이 못 알아듣는 조선말로 도리어 이민들을 격려하였다.
“여러분, 여러분네 알다시피 저까짓 땅에 서속이나 심자구 우리가 한 상에 이십 원씩 낸 건 아뇨. 잡곡이나 거둬가지군 그식이 장식요. 우리가 만리타관 갖구 온 거라군 봇도랑에 죄다 집어넣소. 것두 우리만 살구 남을 해치는 일이면 우리가 천벌을 받어 마땅하오. 그렇지만 물만 들어와보, 여기 토민들도 다 몽리*가 되는 게 아뇨? 우린 별수 없소. 작정한 대루 나갈 수밖엔·……낮에 일할 수 없음 밤에들 나와 팝시다. 낼이구 모레구 웬만만험 물부터 끌어넣고 봅시다……”
어세와 팔짓을 보아 순경들도 눈치를 챘다. 대뜸 황채심의 면상을 포승줄로 후려갈긴다. 코피가 쭈르르 쏟아진다. 와, 이민들은 몰리고 흩어지고 어쩔 줄을 몰랐다.
황채심은 그길로 다시 끌려갔다.
이민들은 최후로 결심들을 했다. 되나 안되나 이 밤으로 가서 물부터 끌어넣기로 했다. 십 여 명의 장정이 이뚱허로 밤길을 올려달았다. 그리고 제각기 제 구역에서 남녀노소가 밤이슬을 맞으며 악에 받쳐 도랑 바닥을 쳐낸다.
새벽녘이다. 동리에서 한 오 리쯤 윗구역에서다. 무어라는 것인지 지르는 소리가 났다. 중간에서 같이 질러 받는다. 창권이는 둑으로 뛰어올라갔다. 또 무어라고 소리가 질러온다. 그쪽을 향해 창권이도 허턱 소리를 질러 보냈다. 그러자 큰길 쪽에서 불이 반짝하더니 탕 소리가 난다. 그러자 쉴 새 없이 탕탕탕 몰방을 친다. 창권은 두 발자국이나 뛰었을까, 무에 아랫도리를 후려갈겨 고꾸라졌다.
“익……”
얼른 다시 일어서려니까 남의 다리다. 떼구루루 굴러 도랑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머니와 아내가 달려왔다. 총소리는 위쪽에서도 난다. 뭐라고 하는 것인지 또 악쓰는 소리가 온다. 또 총소리가 난다. 조용하다.
창권의 넓적다리에선 선뜩선뜩 피가 터지었다. 총알이 살만 뚫고 나갔다. 아내의 치마폭을 찢어 한참 동이는 때다. 무에 시커먼 것이 대가리를 휘저으며 도랑 바닥을 설설 기어오는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는 으악 소리를 지르고 물러났다. 아! 그것은 배암이 아니었다. 물이었다. 윗녘에서 또 소리를 질렀다. 물 내려간다는 소리였다. 아, 물이 오는 것이었다.
창권이네 세 식구는 그제야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물줄기는 대뜸 서까래처럼 굵어졌다.
모두 물줄기로 뛰어들었다. 두 손으로들 움켜본다. 물은 생선처럼 찬 것이 펄펄 살았다. 물이다. 만주 와서 처음 들어보는 물 흐르는 소리다. 입술이 조여든 창권은 다시 움켜 흙물인 채 벌꺽벌꺽 들이켰다.
물은 기둥처럼 굵어졌다.
어디서 또 총소리가 몰방을 친다.
물은 철럭철럭 소리를 쳐 둔덕진 데를 때리며 휩쓸며 내리쏠린다. 종아리께가 대뜸 지나친다. 삽과 괭이를 둔덕으로 끌어올렸다.
동이 튼다.
두 칸통 대간선이 허옇게 물빛이 부풀어오른다. 물은 사뭇 홍수로 내리쏠린다. 괭잇자루가 떠내려온다. 삽자루가 껍신껍신 떠내려온다.
“저런!”
사람이다! 희끗희끗, 붉은 거품 속에 잠겼다 떴다 하며 내려오는 것이 사람이다. 창권은 쩔룩거리며 뛰어들었다. 노인이다. 총에 옆구리를 맞은 듯 한편 바짓가랑이가 피투성이다. 바로 창권이 할아버지 운명할 때 눈을 쓸어 감겨주던 경상도 사투리 하던 노인이다. 창권은 가슴에서 뚝 하고 무슨 탕개*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차라리 제 가슴 복판에 총알이 와 콱 박혔으면 시원할 것 같았다.
피와 물에 홍건한 노인의 시체를 두 팔로 쳐들고 둔덕으로 뛰어올랐다.
‘아!……’
창권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몇 달째 꿈속에나 보던 광경이다. 일망무제, 논자리마다 얼음장처럼 새벽 하늘이 으리으리 번뜩인다. 창권은 더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어 노인의 시체를 안은 채 쾅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내 재처 일어났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부축이 되며 두 주먹을 허공에 내저었다. 뭐라구인지 자기도 모를 소리를 악을 써 질렀다. 위쪽에서 위쪽에서 악 쓰는 소리들이 달려 내려온다.
물은 대간선 언저리를 철버덩철버덩 떨궈 휩쓸면서 두 칸통 봇동이 뿌듯하게 내리쏠린다.
논자리마다 넘실넘실 넘친다.
아침 햇살과 함께 물은 끝없는 벌판을 번져나간다.
『문장』 임시증간 창작32인집(1939. 7): 『돌다리』 (박문서관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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