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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제5부 생명, 그 자체
제26장 생명의 물질
- 사람들의 유전자는 99.9퍼센트는 똑같다. 나머지 0.1퍼센트의 차이가 우리에게 개성을 부여해준다.
- 세포 속에는 핵이 있고 각각의 핵 속에는 모두 46개의 염색체가 짝을 이루고 있다. 염색체는 DNA(데옥시리보핵산)라고 부르는 실 모양으로, 당신을 만들고 유지시키는 데 꼭 필요한 완전한 지시사항을 가지고 있다.
- DNA는 DNA를 만든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존재한다. 몸속에는 1만조 개의 세포가 있고 거의 모든 세포에 거의 1.8미터의 DNA가 단단하게 뭉쳐져 있고 32억개의 암호를 가지고 있다. 몸 속에 있는 DNA를 모두 합치면 그 길이가 2,000만 킬로미터, 몸속의 DNA를 한 줄로 이으면 지구와 달을 수없이 왕복할 수 있다.
- DNA 자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가장 반응성이 낮고 화학적으로 비활성인 분자다. 그래서 살인 사건 수사에서 오래 전에 말라버린 혈액이나 정액에서 DNA를 채취할 수 있고 고대 네안데르탈인의 뼈에서 DNA를 우려낼 수 있다.
- DNA는 1869년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일하던 스위스의 과학자 요한 프리드리히 미셰르가 발견. 세포의 핵 속에 있다고 해서 뉴클레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세기동안 이 물질은 유전 문제에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 DNA는 리보핵산, 즉 RNA의 통역을 통해 단백질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RNA는 리보솜이라는 화학 서기의 도움을 받아 세포의 DNA에서 전달되는 정보를 단백질이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전환시켜준다.
- 염색체는 1888년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 토머스 헌트 모건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수백만 마리의 파리들을 교배와 잡종교배를 시키고 유전에 따른 작은 변이들을 살펴보았다. 파리에게 돌연변이를 일으키려고 다양한 실험을 했고 6년만에 반복적인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보통의 붉은 눈 대신에 흰 눈을 가진 파리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 파리를 이용해 후손에게 전해지는 유전을 추적할 수 있는 유용한 기형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방법으로 특별한 특징과 각각의 염색체 사이의 상호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고 결국은 염색체가 유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게 되었다. 모건은 염색체 유전 이론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1933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 그 때까지도 사람들은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실한 사실은 염색체와 관련된 무엇인가가 세포의 복제를 지휘하고 있다는 것인데, 맨해튼의 록펠러 의학 연구소에서 15년 연구 결과 1944년, DNA가 단순히 수동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분자가 아니라 유전의 능동적인 일부임을 증명했다.
- 미국인 천재 제임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신비를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런던 킹스 칼리지의 학자인 윌킨스와 프랭클린이 훨씬 앞서 있었다. 윌킨스와 왓슨, 크릭은 함께 1962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 DNA가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티민(T)의 네 가지 유기염기를 가지고 있고 그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짝을 짓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왓슨과 크릭은 분자 모양으로 잘라낸 판지 조각을 이용해서 그것들이 어떻게 맞춰지는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왓슨과 크릭의 발견은 실제로 1980년대까지는 확인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유전학은 DNA의 구조를 이해한 후부터 빠르게 발전했다.
- 염색체는 책의 장에 해당하고,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개별적인 지침에 해당하며, 모든 유전자들을 합쳐 놓으면 인간 유전체라고 알려진 위대한 교향악이 된다. 그런 지침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코돈(유전 암호, 특정 아미노산을 결정짓는 mRNA 상의 3개의 염기서열)이고, 글자는 염기(base)라고 알려져 있다. 유전 알파벳의 글자에 해당하는 염기는 앞에서 설명한 아데닌, 구아닌, 사이토신, 티민을 비롯한 네 종류의 뉴클레오타이드들이다.
- DNA 분자의 모양은 이중 나선이다. 가로대(계단)는 두 개의 염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두 가지 방법으로만 결합할 수 있다. 구아닌(G)는 항상 사이토신(C)과 결합하고, 티민(T)은 항상 아데닌(A)과 결합한다. 사다리를 오르내릴 때 이 글자들이 나타나는 순서가 DNA 암호이다. 그런 글자들을 모으는 것이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 DNA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복제의 방법이다. 새로운 DNA 분자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나선을 이루는 두 개의 사슬이 재킷에 붙어 있는 지퍼처럼 중간이 열리고, 각각의 사슬이 새로운 짝을 형성한다. DNA의 한쪽 사슬만 가지고 있으면, 필요한 짝을 찾아서 다른 사슬을 쉽게 만들 수 있다.
- 대부분의 경우에는 DNA의 복제가 매우 정확하게 이루어지지만, 100만 번에 한 번 정도씩은 글자가 잘못된 자리에 들어가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경우를 단일 염기 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SNP)이라고 부르는데, DNA 염기서열에서 하나의 염기서열(A,T,G,C)의 차이를 보이는 유전적 변화 또는 변이를 하며, 인구집단에서 1% 이상의 빈도로 존재하는 2개 이상의 대립 염기서열이 발생하는 위치를 SNP이라고 한다. 사람의 유전자가 0.1퍼센트 다르다는 사실은 스닙에 의해서 설명된다.
일반적으로 그런 스닙들은 비유전자 DNA 부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몸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가끔씩 어떤 병에 쉽게 걸리도록 만들기도 한다. 과정에서의 정확성과 실수의 균형은 아주 섬세한 것이다. 실수가 너무 잦으면 생물이 기능을 할 수 없고, 너무 적으면 변화에 대한 적응성을 잃게 된다. 그래서 진화를 통해서는 너무 많이 달라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 당신의 DNA 중에서 대부분은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DNA 자신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흔한 유전자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의 기능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역전사 효소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단백질의 유일한 기능은 AIDS 바이러스와 같은 레트로바이러스가 아무도 모르게 인체에 숨어들어가게 해주는 일이다. 즉 우리 몸은 우리에게 혜택을 주기는커녕 때로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일을 하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유전자가 그렇게 명령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노예들이다.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려는 욕구는 자연에서 가장 강력한 충동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성(性)은 우리의 유전물질을 후손에게 전해주도록 부추기기 위한 보상 매커니즘일 뿐이다.
- 쥐의 눈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선택해서 초파리의 유충에 삽입시켜보았다. 실제로 쥐 눈의 유전자가 초파리에서 정상적인 눈을 만들기는 했는데, 그것은 초파리의 눈이었다. 5억년 이상 공통의 조상을 가지지 않았던 두 생물이 마치 자매 사이인 것처럼 유전물질을 서로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 인간의 DNA를 초파리의 세포에 넣어주면 초파리들은 그것이 자신의 유전자인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사실, 인간 유전자의 60퍼센트 이상이 근본적으로 초파리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 적어도 인간 유전자의 90퍼센트는 쥐에서 발견되는 유전자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유전자가 여러 가지 질병과 관련이 많다는 사실- 비만, 정신 분열증, 동성애, 범죄성, 폭력성, 알코올 의존증, 좀도둑질, 노숙자의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있다.
- 유전자들은 서로 협력한다- 혈우병, 파킨슨씨병, 헌팅턴병 등 몇몇 질병들은 하나의 잘못된 유전자 때문에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에 항구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훨씬 전에 자연선택에 의해서 제거된다. 우리의 운명이나 건강, 눈의 색깔도 각각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들의 연학 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 최근에는 생각하는 것조차 유전자가 작동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고, 일부 중요한 유전자를 파괴하면 다른 유전자들이 그 틈을 채워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v 단백질체란 유전체나 세포, 조직, 유기체 등 생물이 생산하는 총 단백질군을 일컫는다.
- 이제 인간 단백질체가 목표로 등장했다. 단백질체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정보를 모은 목록이다. 단백질체는 유전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단백질의 거동과 기능은 유전자의 경우처럼 화학적 특성만이 아니라 그 모양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단백질은 미친 듯이 구겨 놓은 옷걸이처럼 보인다. 단백질은 그 기분과 대사환경에 따라서 인산화, 글리코실화, 아세틸화, 유비퀴틴화, 황산화가 되는 등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화학적 변환을 일으킨다. 포도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몸속에 있는 단백질의 수와 종류가 바뀌게 된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초파리나 채소에 훨씬 더 가깝다.
- 다시, 모든 생명체는 하나다. 38억 년에 걸친 케케묵은 조절, 적응, 변이 그리고 행운의 수선 결과일 뿐이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이고, 그렇다는 사실이 앞으로 증명될 것이라고 믿는다.
제6부 우리의 미래
제27장 빙하의 시대
- 따뜻한 프랑스 남부에서 북극 지방의 순록의 뼈가 발견되었고, 거대한 바위가 이상한 곳에 남겨져 있었다.
- 몇몇 박물학자, 지질학자들은 빙하작용을 주장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했다. 박물학자 아가시는 1846년 미국에서 강연하면서 처음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으나, 그의 이론의 핵심적인 단점은 그 빙하시대가 시작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다.
- 제임스 크롤 : 1864년 [철학지]에 발표된 지구 궤도의 변이 때문에 빙하기가 시작되었다는 논문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는 지구 궤도의 모양이 주기적으로 타원에서 거의 원형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타원으로 바뀌는 것이 빙하기의 시작과 끝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처음 주장했는데, 그 전에는 아무도 천문학을 이용해서 지구 기후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 아가시는 가는 곳마다 거의 모든 곳에서 빙하가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적도 근처에서도). 그는 지구 전체가 빙하에 덮였기 때문에 모든 생물들이 멸종했고, 신이 다시 부활시켜야만 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 크롤의 계산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있었던 빙하기는 8만년 전이었지만 더 최근에 지구에 심한 변화가 있었다는 지질학적 증거가 계속 밝혀지고, 빙하기가 왜 시작되었는지 설명을 하지 못했던 그의 이론은 사장되었다.
- 세르비아 기계공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는 크롤의 이론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공간에서 움직이는 지구는 궤도의 반경과 모양뿐 아니라, 태양과 기울어진 각도와 흔들리는 정도도 주기적으로 변하며, 그런 모든 것들이 어느 지역에 햇빛이 비치는 시간과 세기에 영향을 준다. 장기적으로는 지구 궤도의 황도 경사, 세차, 이심률의 세가지가 변하게 된다. 밀란코비치는 100만년 동안 지구의 모든 위도에서 계절에 따라 태양복사의 각도와 기간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계산했고, 20년간 계속 표를 만들어갔다. 빙하기와 행성의 흔들림 사이에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맞지만, 그도 오랜 빙하기는 추운 겨울이 점진적으로 길어지면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 쾨펜은 빙하기의 원인을 혹독한 겨울이 아니라 서늘한 여름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이 너무 서늘해서 일정한 지역에 내린 눈이 녹지 않게 되면 들어오는 햇볕이 모두 눈 표면에서 반사되기 때문에 냉각효과가 더욱 악화되면서 더 많은 눈이 내리게 된다. 눈이 쌓여서 빙원이 만들어지면, 그 지역은 더욱 추워지고 얼음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빙하학자 괸 슐츠는 빙원이 만들어지는 것은 눈의 양 때문이 아니라 눈이 녹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은 눈이 열(햇볕)을 반사하면 냉각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맥피는 그런 과정이 스스로 증폭되면, 멈출 수가 없으며, 일단 늘어나기 시작한 얼음은 움직이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빙하가 확대되면서 빙하기가 시작된다.
- 밀란코비치는 자신의 사이클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고 1958년 사망했다. 그런 이론은 1970년대에 퇴적물의 연대를 알아내는 포타슘-아르곤 연대 측정법이 정립되면서 마침내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밀란코비치 사이클만으로는 빙하기 사이클을 설명할 수 없었다.
- 마지막 간빙기는 8000년 정도 지속되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간빙기는 이미 1만 년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 빙하기에 살고 있다. 약 2만년 전에 지구 육지의 30퍼센트가 빙하에 덮여 있었고, 지금도 지구의 10퍼세트는 빙하에 덮여 있고 14퍼센트는 영구 동토층을 이루고 있다. 지구상의 민물 중에서 75퍼센트는 얼음에 갇혀 있고, 북극과 남극 모두에 만년설이 있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눈이 내리는 겨울이 찾아오고, 뉴질랜드와 같은 온화한 지역에도 영구 빙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지구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상황에 해당한다. 현재의 빙하기는 대략 4000만 년 전에 시작되었고, 그 사이에 살인적으로 혹독했던 빙하기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던 빙하기가 섞여 있었다.
- 현재 빙하기가 시작된 주된 원인 중 하나는 히말라야 산맥이 솟아오르면서 공기의 흐름을 차단해버린 것, 다른 하나는 파나마 지협이 형성되면서 해류의 흐름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지난 4500만 년 사이에, 섬이었던 인도가 3000킬로미터나 밀려 올라가서 아시아에 붙게 되면서 히말라야 산맥이 솟아오르고, 광활한 티벳 고원이 만들어졌다. 그런 후에 대략 500만년 전부터 파나마가 바다 밑에서 솟아오르면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의 틈을 가로막으면서,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난류의 흐름을 차단해서 적어도 전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강우양식이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아프리카의 건조화였다. 결국 유인원들은 나무에서 내려와서 새로 나타나는 사바나에서 적응해서 살아가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가지게 되었다.
- 존 맥피에 따르면, 앞으로 대략 40만 년 정도 지속되는 작은 빙하기가 50차례 정도 더 찾아온 후에는 정말 모든 것이 녹아버릴 것이다.
- 22억년 전에 엄청난 빙하기가 있었고, 이후 약 10억 년 정도는 온화한 기후가 계속되었다. 그 후 첫번째 빙하기 보다 더 큰 규모의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지구 전체가 남극 대륙처럼 되어버렸다. 지구가 완전히 얼어붙었다면, 어떻게 다시 따뜻해졌는가? 그것은 화산이 터져 얼음이 녹고 다시 대기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 지구는 약 1만2000년 전에 있었던 대빙하기가 끝날 무렵부터 상당히 빠른 속도로 더워지기 시작했다. 1000년 가까이 지속된 신드라이어기라는 추운 기간이 갑자기 찾아왔고 다시 20년 동안 7도나 올라갔다. 10년 사이에 15도가 바뀌어서 강우양식과 식물의 성장 조건이 극적으로 변했다. 어떤 자연현상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그렇게 급속하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충적세라고 부르는 지금 살고 있는 비정상적으로 평온한 시기가 찾아왔다.
- 지구 온난화는 역설적으로 북아메리카와 북부 유럽에 대한 지역적 냉각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 다시 대륙빙이 만들어진다면 얼어붙게 될 물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지난 50년 동안 남극 대륙 주변의 수온은 섭씨 2.5도나 올라갔고, 대륙빙은 놀라운 규모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제28장 신비로운 이족 동물
인류 진화의 역사/ 한바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anbadaa/222883502415
- 1887년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의 수마트라에 도착한 네덜란드 의사 마리 유진 프랑스아 토마스 발굴단이 초기 인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최초의 발굴단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유골이 발굴되면서 새로운 이름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1960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의 두 속만을 남기고 다른 종들을 합리적으로 재분류하는 방법을 제안해 자바와 베이징인은 모두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었다. 다시 수많은 발견들이 쏟아졌고, 1960년대에는 호모 하빌리스가 발굴되었다. 문제는 전문가들마다 서로 다른 종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증거가 부족해서 기록들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 발견되는 것들이 모두 갑작스럽고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생명체로서 우리 역사의 첫 99.99999퍼센트는 침팬지와 같은 조상을 공유한다. 그런 후 약 700만 년 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이 500만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는 몇몇 변종들이 있었지만 모두 곧바로 서서 걸을 수 있었다. 100만 년을 넘도록 존재했던 종도 있었지만, 수 십 만년 정도 살았던 종도 있었다. 가장 성공하지 못했던 종이라도 현재의 우리보다는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 1974년 도널드 조핸슨 탐사팀이 하다르에서 루시 화석 몸뼈 40% 발견, 318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골, 신장1미터, 직립보행, 나무타기 가능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우리가 루시의 후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많은 전문가들이 확신을 못한다. 인간 대퇴골의 윗부분은 유인원의 것과 아주 비슷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대퇴골과는 달랐고, 2001년 2002년 네 종의 특이한 새로운 종이 발견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케냐의 투르카나 호에서 발굴해서 케니안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넓은 얼굴을 가진 케냐인)이라고 부르게 된 유골이 루시와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실제 우리 조상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왜 루시와 그 동료들은 나무에서 내려와 숲을 빠져나오게 되었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파나마 지협이 솟아오르면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흐르는 조류가 단절되었고, 극지방으로 흐르던 난류의 방향이 바뀌었고 북위도 지역에는 갑자기 극심한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아프리카는 점진적으로 밀림이 사바나로 바뀌게 되었다. 열린 사바나 지역에서 초기 인류들은 훨씬 더 심하게 노출되게 되었다. 유능한 뇌가 빠르게 진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마련되었지만 루시와 동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300만 년 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 도구도 사용한 흔적이 없다.
- 300만 년에서 200만 년 전의 기간 동안에는 아프리카에 6종의 초기 인류가 공존했던 했으나, 그 중 호모만 살아남았다. 아무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라질때까지 100만 년 이상을 함께 살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 호모 히발리스라는 이름은 1964년 붙인 것으로 도구를 처음 사용한 초기 인류였다. 아주 원시적인 상태였지만, 뇌는 루시보다 50퍼센트 더 컸다. 큰 뇌와 똑바로 서서 걷는 것은 서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 호모 에렉투스는 다른 초기 인류들에게 두려울 정도로 강력하고, 재빠르고,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1980년대에 케냐에 있는 투르카나 호의 외딴 계곡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골격이 발견되어 인류의 선구종으로서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투르카나 호수에서 170만 년 된 여성도 찾아냈다. 그녀의 뼈들은 변형되었고 종양의 흔적이 있어, 육식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종양의 양으로 보아 몇 주일 또는 몇 달을 앓았고 누군가 그녀를 돌보아 줬으며 인류의 진화에서 처음으로 애정의 징후가 발견되었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에는 언어와 관련된 뇌의 전두엽 부분인 브로카 영역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침팬지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
-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 등장한 직후 아시아에서도 출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몇가지 이론이 있다. 연대 측정 오류의 가능성. 일부 전문가들은 투르카나에서 발견된 것은 호모 에렉투스가 아니라고 믿는다. 투르카나 종을 비롯해서 같은 시기의 다른 종들을 모두 호모 에르가스테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확실한 사실은 100만 년보다 훨씬 더 오래 전의 어느 시기에 비교적 현대 인류와 가까운 새로운 직립 원인이 아프리카를 떠나 용감하게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제29장 부지런했던 유인원
- 아슐리안 도구(돌도끼)는 아프리카, 유럽, 서부와 중부 아시아에서 발견됐다.(극동지방에서는 발견 X)
- 인류의 이주에 대한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인류가 두 차례에 걸쳐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퍼져 나갔다.
첫 번째는 거의 200만년 전에, 새로운 종으로 출현한 이후 빠르게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에렉투스였다. 상당한 기간 동안 여러 지역에 정착을 해, 아시아의 자바인과 베이징인, 유럽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와 마지막으로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로 진화했다.
두 번째는 약 10만 년쯤 전에, 더 영리하고 유연한 종이었던 우리 모두의 선조가 아프리카 평원에 등장해서 바깥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호모 사피엔스들은 가는 곳마다 덜 똑똑하고 적응력이 떨어지는 에렉투스들을 밀어냈다.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논란거리였다. 대량 학살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 없기 때문(경쟁, 천연두 등의 가능성)
- 화석 기록으로는 최초의 현대 인류가 출현한 곳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으나,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으로 출현한 곳은 현재 이스라엘 부근으로 동의한다.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은 무스테리안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북부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발견된 적이 없지만,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들은 어디에서나 출토된다. 중동지역에서는 수만 년 동안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인류가 어떤 식으로든 함께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중동에서 발견되는 100만 년 훨씬 이전의 아슐리안 도구들이 30만년 전까지는 유럽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는데,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알 수 없다.
- 옛날에는 유럽에 살던 현대인인 크로마뇽인들이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자신들보다 앞서 와 있던 네안데르탈인들을 서쪽 끝까지 밀어냈고, 밀려난 네안데르탈인은 바다에 빠지거나 멸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믿었는데, 오늘날에는 크로마뇽인들이 유럽의 동쪽에서 들어오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미 서쪽 먼 곳까지 도달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
크로마뇽인이 도착했을 때는 온화하던 기후가 다시 오랜 혹독한 추위로 돌아선 기간이어서, 그들이 무엇 때문에 유럽으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기후가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 네안데르탈인들은 강인했다. 빙하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태풍에 버금가는 바람을 동반한 폭설이 자주 있었는데, 그들은 그런 힘든 환경에서 살아남았다. 종으로서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끈질겼고 실질적으로는 불멸의 존재였다. 그들은 지브롤터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에서 적어도 10만 년을 살아남았고 어쩌면 그보다두 배쯤 오래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매우 성공적인 종이었다.
20세기 중엽까지는 네안데르탈인이 둔하고 구부정하고 발을 질질 끌면서 다니던 유인원으로 전형적인 동굴인이었다고 믿었다. 그러다 1947년에 프랑스 출신 알제리아인 화석학자 카미유 아랑부르는 자신의 척추가 구부정하고 몸집이 거대한 네안데르탈인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생리적으로 원시인에 가까웠거나, 아니면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후자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 그런데 몸집이 크고 적응 잘하고 지적인 능력도 가지고 있었던 네안데르탈인들이 왜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까? 논란은 많지만 한 가지 가능성은 그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다지역 기원설의 선구자 앨런 손의 이론에 따르면 인류의 진화는 연속적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진화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로 진화했다.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는 단순히 더 옛날의 호모에서 출현했고, 호모 에렉투스는 별개의 종이 아니라 그저 전환기에 해당할 뿐이며, 따라서 현대 중국인들은 중국에 살던 고대 호모 에렉투스 선조의 후손이고, 현대 유럽인들은 고대 유럽의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이다.
- 다지역 출현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구세계 전체에서 비슷한 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인종 차별주의적 시각을 조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 1999년에 포르투갈의 고고학자가 2만4500년 전에 죽은 것으로 보이는 네 살 정도의 어린이 유골을 발견했는데, 그 유골은 전체적으로 현대 인류처럼 보였지만, 네안데르탈인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인 두개골 뒤쪽의 움푹 들어간 구멍을 가지고 있어, 그 아이가 혼혈아라는 주장이 있었다. 현대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잡종교배의 증거라는 것인데,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인류의 특징이 혼합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 도움이 되지 않는 화석기록 때문에 과학자들은 유전학적 연구, 특히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하는 방법에 집착하게 되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1964년에 발견되었지만, 1980년대에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몇몇 천재들이 두 가지 특징 때문에 일종의 분자시계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마다 부모의 DNA와 뒤섞이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의 핵 DNA보다 20배나 더 자주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친 유전적 형태를 알아내고 추적할 수 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속도를 분석하면 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유전적 역사와 관계를 밝힐 수 있다.
- 1997년에는 뮌헨 대학의 과학자들이 최초의 네안데르탈인 남자의 팔뼈에서 DNA를 추출해서 분석하는 데에 성공했다. 네안데르탈인의 DNA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어떤 DNA와도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웨덴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든 현대 인류는 지난 10만 년 이내에 아프리카에 살던 1만 명 이내의 사람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 현대 인류는 놀라운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 모두가 최근에 아주 작은 집단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다양성을 확보하기에는 시간과 규모가 모두 충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지역 출현설에는 심각한 문제였다.
- [네이처]의 글에서 어느 학자는, 오래된 유골이 진품인가를 어떻게 알아내는지에 관한 동료의 질문을 받은 화석학자가 유골을 혀로 맞본다고 대답했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현대 인류의 DNA 상당량이 유골로 옮겨져서 오염이 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제30장 안녕
멸종 동물들
도도새 : 1693년에 완전히 멸종 땅늘보 스텔라 바다소
- 인간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는가는 아무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지난 5만 년 정도의 세월 동안 우리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짐승들이 사라졌고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사라졌다. 아메리카에서 1만년에서 2만년 전 사이에 현대 인류가 대륙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30속의 대형 동물들이 사라졌다. 대형 동물 4분의 3이 사라졌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대형 동물 중 3분의 1에서 절반 사이가 멸종되었다.
1톤 이상 되는 진정한 대형 육상 동물은 코끼리, 코뿔소, 하마, 사슴 단 네 종만 살아 있다.
- 대부분의 멸종이 잔인하거나 난폭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바보스럽게 이루어졌다- 고양이가 다 잡아서 멸종, 단순 재미로 새들을 죽여 멸종시킨 사람(엄청난 수집가였던 로스차일드 제2대 남작인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 휴 커밍), 1890년 뉴욕주는 이미 멸종위기의 퓨마를 잡기 위해 100여명에게 보상금 지급,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는 유해 동물(사유, 애완용으로 기르지 않는 동물들)을 가장 많이 잡아온 사람에게는 1년치 대학 등록금을 지급.
- 이런 사실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만약 우리의 외로운 우주에서 생명이 어디를 지나 왔는가를 기록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감시할 일을 맡길 수 있는 생물을 디자인하려고 한다면 그런 일을 절대 인간에게 맡기면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1979년 지구상에서 인류의 활동 때문에 일주일에 약 2종 정도의 생물이 멸종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1990년대 초 일주일에 600종, 다시 일주일에 1000종이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95년 UN은 지난 400년 동안 알려진 멸종의 총수는 동물의 경우 500종이 조금 안되고 식물은 650종이 조금 넘는다고 발표했다. 몇몇 사람들은 대부분의 멸종 규모가 엄청나게 부풀려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이렇게 훌륭한 위치에 도달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고, 예술작품을 만들고 복잡한 활동을 조직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행동적으로 현대화된 기간은 지구 역사의 0.0001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짧은 순간 동안 존재하는 데에도 무한히 많은 행운이 필요했다. 우리는 종말이 찾아오지 않도록 단순한 행운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