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성전세를 내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 속에서 성전세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그분이 성전세를 내는 것은 어딘가모르게 어울리지 않는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상의 왕들은 관세와 국세를 누구에게 받느냐 질문하신다.
2.
"자기아들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는 '타인에게' 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은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말씀하셨다. 왕의 아들은 면제가 되는 일의 예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고, 진정한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분이심을 알려주신다.
그러나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성전세를 내셨다. 단순히 돈을 낸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아서 입을 열어 그 속에 있는 한 세겔을 성전세로 내라고 베드로에게 명하셨다. 예수님은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시고 목숨을 거셨던 분이시지만, 때로는 진리가 아니지만 수용하고 타협하시는 부분을 볼 수 있다.
3.
사도바울도 자신의 자유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으로 제한하며 종노릇한다고 고백했다. 직장생활, 가정생활, 교회 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의 논쟁이 아니라 진리를 기반으로 한 관계성 속에서 지혜가 필요한 경우가 더 많다.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잘잘못이 명확히 구분되는 영역보다는 애매한 영역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혜는 도덕적 선악이 명확하지 않는 일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인가? 아닌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모든 성경의 사람들이 다 지혜의 사람들은 아닌 것 같지만, 모든 지혜의 사람들은 거의 다 성경의 사람들이다.
4.
지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오래 교제하면 이런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와 가까울 수록 더욱 그처럼 행동하고 판단하게 된다. 어떤 성경 본문을 보던지 '팀 켈러는 어떻게 설교했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설교를 준비하거나 강의를 준비하고나서 그와 관련된 팀 켈러의 본문을 찾아보는 것이 내게 큰 기쁨이었다. 나와 다른 팀 켈러의 인사이트와 대지를 보면 배울 수 있었고, 비슷한 내용이 있으면 기뻤다.
그렇게 누군가를 존경해서 사랑했더니 자연스럽게 그의 생각과 묵상이 몸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5.
지혜는 누군가의 케이스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그 사건을 나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야고보서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말씀하신다.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한다. 지혜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을 기뻐하실지를 생각하고 그분과 가까이 가는 기도생활과 지혜로운 사람들과의 나눔을 통해 지혜는 자라게 되는 것 같다.
6.
팀 켈러는 지혜는 예배와 고독을 통해 자라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자란다고 말했다. 서로의 생각을 듣고, 서로 안에 있는 하나님을 나눌 때 지혜는 성장하고 커진다.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모든 관계성 속에서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복음적 공동체 안에서 서로 안의 이야기들을 나누어야 한다.
지혜가 없으면 딱딱한 율법주의와 교리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상황과 문화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과 상황과 사람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지혜가 필요하다.
첫댓글 하나님의 선물인 지혜가 오늘도 삶 속에 많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