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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letter
Beyond Understanding
이해를 넘어서
God said:
신이 말했다.
Never mind what you don't understand. Never mind it. Perhaps you don't need to understand. If understanding means explanations, you don't need them.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개의치 마라. 결코 그것을 개의치 마라.
어쩌면 너는 이해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해가 설명들을 의미한다면, 너는 그것들이 필요 없다.
Who on Earth can comprehend Me?
What does that matter?
The more infinite something is, the less you understand.
Your grasping can only contract that which you attempt to hold.
지구상의 누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
무언가가 더 무한할수록, 너는 더 적게 이해한다.
너의 파악 능력은 단지 네가 알려고 시도하는 것을 축소할 수 있을 뿐이다.
Understanding is trying to hold something in place and keep it there. Understanding is a way to finish with something, but you will never be finished with infinity any more than you will ever finish with Me.
이해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장소에 두려고, 그리고 그것을 거기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무언가와 끝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고, 그러나 당신이 나와 함께 끝내는 것 아니고는 더 이상 무한함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Understanding often gives you a sense of completion, but it is a false sense. Even though completion is Truth and you are already complete, your experience on Earth is a hurtling through the universe to find your totality. Understanding has little to do with it. Finding has a lot to do with it.
이해한다는 것은 종종 너에게 온전함의 성취감을 주지만,
그것은 거짓 감각이다.
비록 온전함이 진실이라 해도, 그대는 이미 온전하며,
지구상에서의 너의 체험은 너의 총체성을 찾기 위해 우주를 통해 돌진하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과 거의 관련이 없다.
오히려 찾는다는 것이 그것과 많은 관련이 있다.
When you have an experience, you have it whether you understand it or not. You like to identify your experiences and label them in a place. That feels good to you. And you use words to identify your experiences. Yet there are no words to describe infinity. There are no words to describe you. There are no words to describe Me. How limiting are words! Perhaps you would have greater understanding without premeditated words. Perhaps all the things that matter are wordless.
그대가 하나의 체험을 가질 때, 그대는 그것을 이해하든 아니든 간에, 그것을 갖게된다. 그대는 자신의 체험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어딘가에 심어놓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그대에게는 좋은 기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대는 자신의 체험들을 묘사하기 위해 말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여전히 무한을 묘사하는 단어는 없다.
그대를 묘사할 단어가 없다. 나를 묘사하는 말들이 없다.
말들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어쩌면 그대는 미리 계획된 말들이
없다면 더 큰 이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모든 것들은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What do trees know of words, and yet are they not wise? Are not rolling hills wise as they spread themselves before you? What stories they could tell! They do tell them but not in words.
나무들이 말들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은
현명하지 않으냐? 구불구불한 언덕들은 그들이 너 앞에서 그들
자신을 펼칠 때에 현명하지 않으냐?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말할 수 있었겠느냐! 그들은 그들에게 말하지만, 그러나 말로 말하지 않는다.
Too often there is a disparity between words and Truth. I do not mean what you call lies. I mean that the words, "I love you", no matter how true, are nothing next to the love they represent.
단어와 진실 사이에는 너무 자주 차이가 있다. 나는 그대가 거짓말이라 부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말은 “사랑해”라는 말이
아무리 진실하다 해도, 그것들이 대표하는 사랑으로 상대도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And sometimes words are used because you think they will bolster your truth, make it more true, as though words are wands and create. Sometimes you hope that your words will become true, that words of love, for example, will manifest love.
그리고 때로는 단어들이 그대의 진리를 북돋우고, 그것을 더욱
진실로 만들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되는데, 마치 그 말들이
[요술]지팡이로 창조하듯이 말이다. 가끔 그대는 자신의 말들이
진실이 될 것이라고, 예를 들어, 그 사랑의 말들이 사랑을 구현할 것이라고 희망한다.
Rely less on words. Rely more on truth. Words are empty without truth behind them, and words, even backed by truth, are empty next to the fullness they represent.
말들에 적게 의존해라. 진실에 더 많이 의존해라.
말들은 그것들 뒤에 진실이 없이 공허하고,
말들은 심지어 진실에 뒷받침된다 해도,
그것들이 대표하는 완전함으로도 상대가 안 된다.
So what are you to do then? Well, just be in love. Be and love. Being is silent. Words are talk.
따라서 그때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 음, 단지 사랑 속에 있어라.
존재하고, 사랑해라. 존재하는 것은 고요하다. 말은 말을 하는 것[대화]이다.
And yet what a service words do perform. You read My words now, My attempt at telling you about yourself and the fathomless dimensions of you and of Me, and My words bring you closer and higher. They help your lesser thoughts to drift away, your lesser thoughts that jump on this or that small event or happenstance. Even in matters of great moment, your thoughts are lesser than the moment anyway.
그리고 여전히 말들이 어떤 봉사를 행하느냐? 그대는 나의 말들을 지금 읽는데, 그대에게 그대 자신에 대해 말하려는, 그대와 나의
불가해한 차원들에 대해 말하려는 나의 시도를 읽으며, 나의 말들은 그대를 더 가까이, 더 높이 데려온다. 그것들은 그대의 낮은
생각들이, 이런저런 작은 사건이나 일로 뛰어다니는 그대의 낮은 생각들이 떠나가게 돕는다. 멋진 순간의 문제들에 있어서도,
그대의 생각들은 어쨌든 그 순간보다 더 낮다.
The most gorgeous representation of the sun is but a representation of the sun. The greatest painting of the sun may recreate a great sun, but it captures only elements, only aspects, some consciousness of the sun. But no matter how great the painting, it is not the sun.
태양의 가장 멋진 설명은 단지 태양의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의 가장 멋진 그림은 멋진 태양을 재창조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요소들을, 단지 측면들을, 태양의 어떤 의식을 포착할 뿐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 아무리 멋지다 해도, 그것은 태양이 아니다.
And so it is with words. They can do a lot. They encompass the world. They can weave through the universe. But they are not the universe.
그리고 그것은 말들과도 같다. 그것들은 많은 것을 할 수 없다.
그것들이 세상을 둘러싼다. 그것들은 우주를 통해 엮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주가 아니다.
Man cannot live by words alone.
사람은 말들만으로 살 수 없다.
He cannot live by the world alone.
그는 세상만으로 살 수 없다.
He cannot live alone. He cannot be alone. He IS never alone. Oneness is not alone. Oneness is full. The Oneness that you are is beyond the greatest poetry, beyond the greatest music. All the greatest things in the world are merely symbolic manifestations of the greater that is. You have only a hint of the beautiful totality that is housed in you. You are coming to the infinite more. Not to the talking about it but to the knowing.
그는 혼자 살 수 없다. 그는 홀로 있을 수 없다.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하나됨Oneness은 혼자가 아니다. 하나됨은 완전하다.
그대인 하나됨은 가장 위대한 시를 넘어서는 것이며, 가장 위대한 음악을 넘어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들은 위대한 것의
상징적인 표시일 뿐이다. 그대는 자신 안에 수용된 그 아름다운 전체성의 대한 하나의 힌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점점 더 무한으로 오고 있다.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앎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