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교사와 특별한 아이들이 만날 때
안녕하세요. 3-6 학급 담임 민기식입니다. 우리반 아이들과 좋아서인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네요. 학부모님 덕분입니다. 다음 주면 6월이네요. 소중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조그만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국어 부문에선 자평하건데 물꼬를 틀었다고 자부합니다. 국어교과가 팽개친 금광맥인 한자와 한자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으며, 부족한 여건에서도 日就月將일취월장하는 글짓기가 눈에 띕니다. 글짓기는 누구에게나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환경으로서 학부모님의 관심을 절실히 요청합니다. 부족하지만 카페에 매일 올리는 글을 확인하시며 아이들의 글을 칭찬만 해주시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글짓기가 워낙 힘들기에 뭐든지 관심과 더불어 칭찬하시면 얘들과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우리반에서 누가 가장 잘 쓰느냐는 결국 쓰는 횟수와 쓰는 양에 달려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얘들이 제게 충분히 스트레스 받고 있기에 댁에서 강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녀가 쓰지 않는 경우엔 다른 친구들 글을 함께 읽으면서 얘기 나누시면 자녀가 어떤 글을 써야할까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최근 들어 한자도 조금씩 쓰고 있습니다. 필순을 강조하는데, 이런 기회에 손글씨에 대한 관심과 힘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한자와 한자어 이해는 어휘력 개선과 연결되고 작문의 수준과 같습니다. 아마도 한국인의 작문 실력은 전세계에서 최악일 것입니다. 결정적인 원인은 어휘력의 관건인 한자와 한자어를 국어교과에서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런 실천은 현재 국어교과의 방향과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들의 국어실력은 국내 최고이니까요. 저와 1년 동안 이런 공부를 실컷 하더라도 학교 제도의 국어 수업과 시험에서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비싼 돈 들여 구입(실질적으로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자기주도학습의 확실한 방법)하신 <속뜻사전>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열심히 활용하겠습니다. 댁에서도 애용하시면서 즐거운 대화와 유익한 질문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쏟아지는 한자어를 감당하자면 초등학교 시기에 기본 한자 1000자 정도는 <속뜻사전>과 함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제게 별도로 질문할 수 있다면 제가 더욱 신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와~우!
학교에서 부족한 것은 독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학교 교사로서 제가 쪼갤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과제 확인, 수업, 글짓기, 한자, 한자어, 놀이, 나들이, 체육, 악기 연습, 잔소리 하면 학교에서 도서실 갈 시간조차 없습니다. 독서는 거의 대부분 학생과 부모님의 관심사에 놓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후감 정도는 글짓기에서 드러낼 수 있으니 교사가 과도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섣불리 과제로 접근했다가는 그르칠 수 있어서 글짓기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합니다. 제가 현재 주말에 <창작산방>에서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데, 관심 있으시면 별도로 문의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국어수업의 모형이 <창작산방>수업인데, 독서와 작문의 난점을 유쾌한 情談정담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자발성의 정도에 따라 현재 우리반 아이들에게 적용할 소재가 제한됩니다. 논학교와 수영산 도롱뇽 계곡 탐방도 더위와 벌레를 참지 못하는 아이들로 인해 제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학부모님의 협조 없이는 학급이 옴짝달싹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민감하고 단순하고 미숙하기에 참고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감히 일을 저질러서 경험시킬 필요도 있습니다. 3학년 과정에서 서운하거나 불만이 제기되더라도 담임과 소통하면서 문제를 환기시키고 개선하고자 일정 부분 감내하셔야 합니다. 모든 책임은 담임교사가 떠안고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의 평가가 아니라 담임의 의지와 판단을 믿고 적어도 1년을 서로 감내하셔야 합니다. 1년 후의 평가는 어떤 식으로든 달게 받겠습니다. 적어도 1년 담임하는 동안은 제 使命사명을 다할 것입니다. 자녀에게 혹시라도 가슴 철렁하는 얘기를 듣더라도 잠시 판단을 유보하고, 제게 먼저 연락 바랍니다. 제가 모든 아이들의 안전과 이익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학급의 전체 일정은 제가 어쩔 수 없는 제도이기에 학부모님과 제가 합치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공간과 별도 활동이 제겐 각별합니다. 아침 일찍 와서 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과 언제나 즐겁습니다. 방과후에도 30분씩 남아서 부족한 수학공부 하고 가는 학생들을 보면 제가 교사로서 큰 복을 받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전혀 수고스럽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 제게 다가와 뭐라도 물어보는 아이들은 소중한 제자와 다름없습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하루에 한번은 꼭 질문하라는 유태인의 자녀 양육법은 진실로 교사를 스승의 사명을 갖게 하는 주문인 것입니다. 담임을 봐도 데면데면, 질문은 없고 잡담만 있다면 저는 그냥 직업인으로서 교사로 머물기 십상입니다. 제가 아무리 용을 써도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관심(카페의 글)과 자녀에 대한 주문(“네 담임은 이상한 사람이니 다른 선생님 말고 담임께는 질문을 꼭 하거라!”)을 불어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저도 스승 노릇하기 수월하고 아이들도 제자로서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음악 소재를 하나 더 제시합니다. 오늘부터 국악기 소금을 가르칩니다. 제 관심과 수준에서 리코더는 악보 보고 각자 연습하는 정도라 재미가 적네요. 소금은 아이들이 처음 시작하여 조금 나아갈 소중한 국악기가 될 것입니다. 소금(연습용 플라스틱 소재)과 연주곡집은 예전에 제가 방과후교실 할 때 구입한 게 있으니 자녀 편에 보내주시면(총 1만4천원, 소금 7천원, 교본 7천원) 매일 점심 먹고 천조꾸(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함께 불면서 가르치겠습니다. 소금을 원치 않으면 리코더만 수준을 올려보겠습니다(친구들이 소금 하는 것만 봐도 국악기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가 생깁니다.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2학기 11월 경에 발표회(장소 학교, 양로원, 고덕역, 하나로마트 등등)를 준비할 수 있도록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나가겠습니다.
수학도 주판을 하나 준비시켜주시면 5진법의 원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없다면 시중에서 가장 싼 것을 구입하면 좋겠습니다(이것 역시 구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친구와 함께 하면 되지요^^). 제가 23세 교사가 되어 처음 주판을 가르칠 때 흥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 재미있는 5진법의 원리가 동아시아의 주판에서 구현되는구나!’
저는 제도에 갇힌 교사라기 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을 즐기는 창업가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유명 대학의 가장 뛰어난 학생은 졸업도 하지 않고 창업하고, 그 다음으로 졸업한 후에 창업하고, 특출하지 않는 경우 졸업 후 구글이나 有數유수의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가 길러내는 최고의 대학 졸업생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로선 신바람 나는 소식이 아니지요. 미국의 모범을 따라야 분명 살 길이 나올 것입니다(저는 대중학교 공립교사로 분명히 엘리트 양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창업하고자 하는 것은 “국어교육”과 “무연도(새로운 무술)”입니다. 그래서 토요 방과후교실(일요일 “창작산방”도 포함)로 절차탁마하고 있습니다. 이번 2분기에 신청하면 공사로 인해 꽉 막힌 여름방학에도 그나마 열린 체육관에서 별도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토요일 오전(9시~10시40분)에 진행하는 <국어사전 활용교육>은 일요일에 진행하는 <창작산방>을 대체할 계획입니다. 실질적인 독서와 작문 토론 수업입니다.
학부모님과는 개별 상담의 기회가 좋았습니다. 제 운신의 폭이 커졌습니다. 약속드렸듯이 2학기 11월 말부터 특별한 아이에게 느낀 특별한 능력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안정된 기반에서 모험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이같이 번거롭고 난해한 편지를 전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카페에서 아이들 글에 댓글 달아주시면 보이는 대로 정성을 담겠습니다.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19년 5월 29일, 담임 민기식 드립니다.
이 편지는 제 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지시하고 있어서 3-6 학부모님은 물론 제 방과후교실 학부모님께도 모두 전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편지 내용에 대한 의문은 언제든 제게 표현해주셔도 좋고 상담도 받겠습니다.
첫댓글 특별한 아이들보다는 이 반에 가면 특별해지는 느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