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차법륜당(차길진)의 구명시식
안동일 (뉴욕거주 언론인)
필자가 구명시식(救命施式)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차길진법사를 통해서였지 않나 싶다. 차법사의 이외의 다른 스님들이나 불교 인사들로 부터 그 단어를 들은적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해 가을 필자의 장인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연세도 연로 하셨고 또 얼마간의 노환 끝에 맞은 일이라 필자를 포함해 자손들이 크게 놀라거나 명이 상할 정도로 상심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슬픔이었고 생전에 못한 효도가 못내 가슴을 치는 것이었다.
장지인 부산서 장례는 치러졌지만 그래도 상심한 마음이 들어 불교식으로도 제를 한번 올리고 싶었다.
이 뜻을 차법사에게 언뜻 전했더니 대뜸 자신이구명시식을 해주겠다고 했다.
의식 날짜는 다음날로 정해졌다.
구명시식이란 문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생명을 구하는 의식인듯 싶었는데 당시 차법사가 이 말을 할때는 구명시식이 영가(靈駕)로 젊잖게 표현되는 영혼 혹은 귀신을 불러내 그들과 대화하는 의식이 란 뉘앙스가 짙었다. 그럼에도 처음 들을 때 부터 구명시식이 불교 전래의 의식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졌는지 생소하게 들리지 않았다.
필자는 그날 집에 돌아가 불교사전을 들춰 보았다.
그러나 가장 권위있는 정통의 불교사전이라 일컫는 운허스님이 편찬한 불교사전에는 구명시식이 란 항목이 없었다. 누군가는 구명시식과 귀신과 떡을 나눠먹는다는 귀병시식(鬼甁施式)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불교사전에는 귀병시식이란 항목도 없었다. 또 귀명시식. 구병시식 그 어느것도 나와 있지 않았다. 다만 천도(遷都)라는 항목이 차법사가 사용하는 의도와 비슷한 내용으로 나와 있을뿐이었다.
다음날 차법사가 행한 구명시식은 한마디로 말해 망자를 위한 법회였다.
부모님의 지고한 사랑과 은혜를 옮은 부모은중경, 사바세계와 지옥의 모든 중생을 제도 하겠다는 원력을 담은 지장경, 영가를 서방정토로 모시는 아미타불 독송이 계속이어 지면서 구명시식이 펼쳐지는 불단은 그윽한 향 내음속에 자비와 지혜의 빛이 어우러지는 숙연하면서도 포근한 보현행원이 물들고 있었다.
법륜당의 전언이 시작됐다.
"영가이시여, 내 이제 영가와 인연이 깊어 무상계의 묘법을 다시 주리니 잘 들으시고 깊은 깨달음”을 간직하도록 하소서. 지난동안 영가가 지은 모든 악업은 모두 탐진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으로 이제 더 깊은 인연으로 정토로 가는 영가에게는 모두 부질없는 옛이야기가 되었읍니다.
인연에 따라 모였던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갔고. 피와 수분은 물로 화했으며 따듯한 온기는 불로 돌아갔고, 움직임의 힘은 바람으로 다시 변했읍니다.
사대(四大)로 이루어졌던 영가의 육신은 실로는 거짓이요 허망한 것이었읍니다. 그것이 다했다고 결코 애석하게 여길 일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것이 무상하나니 그것은 모두 생멸하는 속성 가운데 멸로 가는 길입니다. 이제 생하고 함이 다해지면 적멸의 즐거움이 다가오는 법입니다. 이제 오온(五蘊)의 빈주머니 시원히 벗은 영가시여 부디 천상에 들어 위없는 청정계를 닦아 다시 인연 따라 만나게 되면 적의 기쁨도 생멸의 슬픔도 없는 처처안락 복락국을 만들기 위해 함께 보살도를 행하도록 합시다. 영가시여, 그렇다 그렇다 하는 마음에는 하늘과 땅이 열리는 이치가 있으며 아니다 아니다 하는 마음에는 만사가 다 허사인 법입니다. 오늘 영가는 어디에 있으시렵니까?
영가이시여 부디 깨우치셔서 무상계의 묘법속에 계시도록 하시옵소서"
홀연한 기합소리와 함께 놋사발이 울고 영가는 복덕국의 깊은 원력의 길에 들은 듯 했다. 의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은 살아있는 필자와 아내의 안락속의 다짐이 어우러 지는 편안한 길이었다.
달포쯤 지난 뒤 또 한번 법륜당이 행하는 구명시식을 참관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여러 영가를 모시는 합동 구명시식이었다.
생전에 많은 불사를 했던 어머니께서 어쩐지 편안히 잠들어 계시지 못한것 같아 마음 졸이게 된다는 중년의 딸. 젊은 나이에 핏덩이를 두고 유명을 달리한 누님의 얼굴이 사무친다는 착한 남동생 부부, 사는게 뭔지 이국 땅에 살다보니 아버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고 철철우는 장남, 이들이 이 날의 제주였다. 모두들 그 때문에 오늘의 자신들 일이 안풀리고 있다는 듯 온세상의 고뇌와 고통을 한몸에 지닌듯한 괴로운 얼굴들이었다. 먼저와 비슷한 독송의 의식이 있었다. 000영가 신위라고
적힌 지방들 위에는 종이 말(馬) 몇 마리가 붙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였기에 독송의 소리는 더욱 높았고 향내음은 더욱 짙었다. 영가들에게 전하는 부처님의 말씀도 끝나 이제는 됐는가 싶어 일어서 려는데 옆자리의 어떤이는 이제부터 시작이란다.
영가들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는 것이다. "뭐한다 고 미국에 왔어?"
법륜당이 어머니이 천도를 빌었던 불교 집안딸 을 향해 물었다. 중년의 딸은 영문을 모르는 듯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가 나한테 시켜서 묻는 것이니까 대답해."
법륜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냥,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 여인이 목소리를 죽여가며 대답했다.
"다리 아픈 여동생 이름이 00이야? 어떻게 됐냐고 물으시는데?"
여인의 오열이 터졌다.
"어머니 장례를 천주교 식으로 했나? 미사포 쓰시고 오셨는데" 법륜이 불효녀라고 자학했던 검은 옷의 여인에게 물었다.
"네"
"어머니 영세명이 안나이신가?"
"네"
"저 지방 다시 써야겠는데, 당신도 안나로 계시는게 편하신 것 같은데”
"거사님 왜 그때 말한 미국인 영가이름 지방에 쓰시지 않았읍니까? 그녀도 오늘 왔는데요."
법륜당이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중년 남자에게 힐책하듯 말했다.
중년남자가 새로 이사 간 집에서 몇년 전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억울하게 죽은 젊은 미국인 처녀의 영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금발에 자그마한 체구의 20대 초반 미국인 여성이라고 그 외모까지 묘사 하는 것이었다. 워낙 억울하게 젊은 나이에 죽은 그녀 주위에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새로 이사온 한국사람들이 그나마 매일 불공도 드리고 치성도 드리니 그 덕으로라도 천상으로 갈까 싶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등골이 쭈뻣해 진다. 세상에 이런일이 있기는 있구나.
그러나 다음 순간 법륜당의 미인 영가에 대한 순진무구한 천도처방은 웃음을 참게하느라 장내의 사람들을 모두 대굴대굴 굴르게 했다.
법륜당 자신은 영어를 못하니 영가에게 하는 말을 재주인 중년남자에게 영어로 통역하라고 일렀기 때문이다.
"넌 여기 있을 필요가 없으니 빨리 네 갈길로 가라"
"유 돈 해브 투 스테이 히어 고, 고, 유어 웨이"
"우린 네 죽음하고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잘 알지?"
"유 노우? 위 아 낫 으으,위 돈 노우 어바우트 유어 데쓰"
"네가 천상으로 가기를 진심으로 빌어줄께"
"에니웨이 위 리얼리 원트 유 고우 유어 헤븐 피스플리 위 플레이."
호령하듯 외치는 소리하며 떠듬떠듬대는 영어발음은 언제 등골이 쭈뼛해졌는지 모를 정도로 희극적인 것이었다. 나중엔 한술 더 떠 영가를 위해 영어노래를 불러주란다.
재주가 아는 노래가 없다고 쭈뼛대자 좌중의 한 사람을 지명한다.
씩씩하게 일어선 40대 후반의 사내는 추억의 팝 송 '자마이카 페어 웰'을 구성지게 불러 제꼈다. 눈은 지긋이 감고서, 웃음을 너무 참았더니 오줌보가 터질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진행 됐더라면 몇몇 여자들은 정말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어었다.
다행히 법륜당의 돌연한 기합소리와 놋사발 두드리는 소리가 모두를 살려줬다.
"억, 때에엥 –“
"자 이제 모두 끝났읍니다. 오늘 오셨던 모든 영가들께서는 당신들이 바라던 천상이며 천당으로 가셨읍니다. 뒷마당으로 나가 지방을 태웁시다."
지방을 태우고 돌아오는 재주들의 얼굴에는 모두 생기가 철철 넘쳤다.
대보름 불놀이하듯 지방을 훨훨 태우고 와서 그런지 보름달같이 훤해진 모습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필자는 왜 운허 큰스님께서 는 이처럼 후련한 카타르시스인 구명시식을 불교 사전에 등재하시지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차법륜당의 구명시식을 보셨더라면 분명히 다음과 같이 등재하셨을 텐테-
『구명시식 :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진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고 싶어하는 자손지인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면서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을 긍정적으로 보게해 감사하게 여기도록 하는 대승적인 의식, 망자와 생자의 모든 병(病)을 치유한다고 해서 구병시식(救病施式)이라고도 함.」
199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