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7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5 그때에 20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좋은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 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현재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갖은 노력을 다하여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에게는 더 좋은 세상을 살게 하려고 그야말로 뼈 빠지게 희생하면서도 가르치려고 합니다. 유산을 많이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앞날의 영화를 위해서 지금의 고통도 즐거움으로 견딥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꿈꾸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욕망을 하나로 뭉친다면 아마도 행복한 삶이며, 영원한 생명일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아주 큰 의미로 담겨옵니다. 죽지 않으려고 애쓰고 병에 걸려 허망하게 죽지 않으려고 병원도 부지런히 다니고, 운동도 하고 좋은 음식으로 몸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찾아 인고의 세월로 인생을 보냅니다. 산이나 사막으로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섬으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 득도(得道)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피정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관상이나 영신수련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득도(得道)하려고 열심히 수도하고 수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잘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이 결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리라는 것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 구도자가 스승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본 사탄은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서 돌아서도록 힘껏 온갖 수단을 다 쓰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가엾은 구도자에게 재산, 욕정, 명성, 권력, 위신 등 있을 수 있는 온갖 유혹을 다 겪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구도자는 영적인 일에 제법 경험이 있었기에 그 유혹들을 쉽게 싸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영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가 스승의 앞에 갔을 때, 그는 스승이 융단 의자에 앉아 있고, 제자들은 그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성인들의 으뜸가는 덕인 겸손이 모자라는군.” 그러고는 그 스승에 대해서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다른 점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스승은 자기에게 거의 눈길을 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아첨을 안 하니까 그럴 테지.”하고 그는 혼잣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도, 뭔가 잘난 척하는 말투도 마음에 안 들었답니다. 이 모든 점들로 미루어보아 그는 자기가 잘못 찾아왔으며 어디 다른 데를 계속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그 구도자가 방을 나서자, 방 한구석에 앉아 있던 사탄을 본 스승은 사탄에게 말했답니다.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탄아, 그는 애초부터 네 차지였지.”
바로 그런 것이 하느님을 찾으면서 모든 것을 다 떨쳐 버리고자 하되 하느님이 정녕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네 관념들만은 못 떨쳐 버리는 그런 사람들의 운명이랍니다. (앤소니 드 멜로, 개구리의 기도)
그런데 오늘 우화에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르치심과 같은 것입니다. 정말 구도자라면 진실을 배우고 깨우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스승께 맡기고 스승의 가르치심에 몰두하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일본의 대학을 방문했을 때 학교의 정문이 아주 초라해서 1m가 되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습니다. 대학에 공부하려고 오는 사람들은 그 정문보다도 더 낮은 자 되어 겸손하게 배움을 청하려고 해야 한다는 상징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대학은 정문이 그 권위를 상징하듯 아주 높고 웅장합니다. 대학 정문의 크기와 학문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반비례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구도자의 길은 겸손하고 낮은 자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살았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별의별 질문으로 예수님을 황당하게 몰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한 구도자가 아니며, 성경과 하느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물론, 그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