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선장인 나
"선장님."
지금도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르면 가슴이 먼저 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오래되었고, 해상법을 연구하는 교수가 된 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교수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아직도 '선장'이라는 이름이 살아 있다. 나는 교수이기 전에 선장이었고, 지금도 선장이라는 이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선장이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해양대학에서 4년을 공부한 뒤 3등항해사로 승선했다. 다시 2등항해사와 1등항해사를 거치며 수많은 밤바다를 항해했다. 태풍을 만나기도 했고, 짙은 안개 속에서 긴장하며 당직을 선 적도 있었다. 오랜 경험과 국가시험을 거쳐 비로소 선장의 자격을 얻었다.
선장은 단순한 직급이 아니다. 선박과 화물, 그리고 수십 명 선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항구를 떠나는 순간부터 입항할 때까지 모든 판단의 최종 책임은 선장에게 있다. 권한보다 책임이 먼저인 자리, 그것이 선장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선장의 길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해상법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다. 당시 상법 교수님들은 선장 출신 학생을 무척 반기셨다. 상법에는 선장을 '선주의 대리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선장이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떻게 항해하는지는 책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다. 교수님들은 강의가 끝난 뒤에도 나를 붙잡고 선박 운항과 사고 처리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으셨다. 그때 나는 바다에서의 경험이 학문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공부를 마친 뒤에는 대형 로펌에서 해상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선박 충돌, 해양오염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을 조사하고 의견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실장'이라는 직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변호사님도 변호사 면허를 가지고 법률 서비스를 하시듯, 저도 국가가 발급한 선장면허를 가진 사람입니다. 저를 선장이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뒤부터 나는 로펌에서도 '김인현 선장'으로 불렸다. 외국 선주와 보험회사에 보내는 모든 보고서에는 Captain In Hyeon Kim이라고 서명했다. 신기하게도 'Captain'이라는 한 단어는 해외 고객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었다. 선장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직함이 아니라 수많은 항해와 책임의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세월은 다시 흘러 나는 대학 강단에 섰다. 학생들에게 해상법을 가르치면서도 늘 바다를 함께 이야기했다. 공동해손을 설명할 때도, 선장의 권한과 의무를 이야기할 때도 나는 조문보다 실제 항해를 먼저 떠올렸다. 폭풍우를 피해 항로를 바꾸던 순간, 선원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결정을 내리던 기억은 강의실에서도 살아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법은 책에서 시작되지만, 바다에서 완성된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로스쿨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도 선장이라는 이름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졸업식을 준비하면서 이름 앞에 붙일 호칭을 선택하는 항목이 있었다. Professor, Doctor, Captain….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Captain을 선택했다. 졸업식 날 사회자가 또렷한 목소리로 소개했다.
"Captain In Hyeon Kim, from the Republic of Korea."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세계 어디에서나 선장은 존중받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지금도 내 명함에는 '교수'와 함께 '선장(Captain)'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학교에도 실습선이 있습니까?" 그러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닙니다. 저는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다를 항해했던 선장입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다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국가가 발급한 유효한 1급 항해사(선장)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라는 부름이 온다면 지금도 기꺼이 선교에 올라설 자신이 있다. 선장이라는 자격은 면허증 한 장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선장은 직장을 그만둔다고 사라지는 이름이 아니다. 배를 떠난 뒤에도 책임을 먼저 생각하고, 어려운 순간일수록 침착하게 판단하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키려는 자세가 남는다. 그것이 내가 바다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다.
사람들은 나를 교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선장이 살고 있다. 나는 교수이기 전에 선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유효한 선장면허를 가진 선장이다. 아마 생이 다하는 날까지도 나는 선장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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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지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멋지네요..울림이 있는글이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울림을 느끼셨다면 영광입니다.
캡틴 김인현 교수님 멋지십니다!
네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머찌십니다~^^
선장님~항상 건강하길 응원합니다
네 감사드립니다.
선장님 정말 멋지십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저희 아이들도 배울수있다면 정말 좋겟습니다!!
선장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직함이 아니라는 말씀이
자격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는 의미가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이런 자부심을 갖는 선장 'Captain'이 되길 바라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