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와 많은 스타들을 낳은 레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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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와 많은 스타들을 낳은 레게의 역사!
1970년대 이후로, 레게 음악은 세계를 매료시켰고 많은 카피캣들을 배출했다.
전염성 있는 리듬과 재미있고 의미 있는 가사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이 자메이카 음악의 매력에 모든 사람들을 빠지게 만들었다.
레게 전설 밥 말리는 스타덤에 오른 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확고히 하면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이자 작곡가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말리 외에 이 장르의 최고 스타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정확히 어떻게 이 멋진 장르의 음악이 탄생했을까?
이 갤러리에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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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의 깊은 뿌리
레게는 항상 흑인 해방과 자부심이 깊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라스타파리와 결과적으로 레게의 정서는 1920년대 흑인 디아스포라의
세계적 통일과 아프리카로의 회귀 운동을 추진한
자메이카 출신의 마커스 가비(사진)가 주도한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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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타파리
가비의 특별한 선언인 "흑인 왕이 즉위할 아프리카를 보라,
인도 될 날이 가까웠기 때문"은
라스 타파리 마코넨이 에티오피아의 황제로 즉위하고
하일레 셀라시에로 개명하면서 그 예언이 실현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라스타파리의 사회적, 종교적 운동을 낳았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하일레 셀라시에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믿었다.
라스타파리안 신앙은 자메이카의 음악과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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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와 칼립소
식민지 자메이카의 민속 음악의 두 가지 주요 장르는 멘토와 칼립소였다.
이 카리브해의 리듬들은 초기 스카, 루트 레게, 록스테디의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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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
스카는 1950년대에 멘토와 칼립소의 현대적인 혼합물로 발전했으며,
롤링 베이스라인과 감염성 리듬을 특징으로 한다.
스카는 자메이카와 이웃 국가들에게 자메이카 음악의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맛을 보여주었고 레게의 직접적인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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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의 첫 곡들
레게는 1960년대에 스카에서 성장했다.
레게는 리듬 섹션에 더 중점을 두고,
더 의미 있는 가사와 블루스와 재즈와 같은
미국 스타일의 눈에 띄는 영향력으로 스카와 구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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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의 공통 주제
대부분의 레게는 처음부터 라스타파리 종교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으며,
자메이카 역사의 식민주의와 가난에서 나온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메이카 사람들과 라스타 운동의 통합으로 성장한
강한 애국심과 낙관주의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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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족, 레게족, 자메이카 디아스포라
이러한 정서는 자메이카뿐만 아니라 자메이카 디아스포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스카와 레게 그룹이 국제적으로 나타날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특히 영국에서 스카, 레게, 록스테디가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으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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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몬드 데커
스카의 왕으로 알려진 데스몬드 데커는
1960년대 가장 성공적인 스카 가수였다.
데커는 밥 말리가 자메이카의 음반사들의 주목을 받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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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츠 앤 더 메이탈스
레게(reggae)라는 용어의 어원은 토츠 히버트와 그의 그룹
투츠 앤 더 메이탈스(Toots & the Maytals)에서 비롯되었다.
이 그룹은 스카 밴드로 시작하여 레게 장르의
첫 번째 챔피언으로 전환되었다.
1968년, 그들의 트랙 'Do the Reggay'는
레게 단어의 사용의 첫 번째 사례가 되었고,
그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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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크래치" 페리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리 "스크래치" 페리의
레게에 대한 영향력은 굉장히 과소평가된다.
음악가이자 프로듀서로서 페리의 대표적인 사운드는
이 장르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클래식이든 모던이든 레게 트랙에서 스네어 드럼이
멀리까지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모두 페리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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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러스
웨일러스는 레게의 첫 번째 슈퍼 그룹으로 여겨진다.
밥 말리, 버니 웨일러, 피터 토시 등 세 명의 창립 멤버들은
각자 레게 전설이 되었지만, 'Stir It Up'과 'Trenchtown Rock'과 같은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레게 노래를 쓰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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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웨일러
버니 웨일러가 솔로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웨일러스의 핵심 라인업을 떠난 후,
그는 꾸준히 딥 루츠 레게의 기준을 세웠다.
1976년의 'Blackheart Man'과 같은 음반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게 음반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2021년에 사망할 때까지, 웨일러는
베스트 레게 앨범으로 3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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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토시
피터 토시는 또한 웨일러스 밖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많은 성공적인 솔로 음반을 발표하고
라스타파리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그의 삶과 음악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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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그리고 물론, 밥 말리도 있다. 그는 아주 먼 곳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레게 음악가다.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영원히 그리고 국제적으로
사랑을 받은 밥 말리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성공으로
그를 레게 음악과 라스타파리즘 모두에서 영구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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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브라운
데니스 브라운은 레게 1세대의
가장 성공적이고 다산적인 멤버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시작한 음악 경력으로,
브라운은 75장 이상의 정규 스튜디오 음반을 발매했다.
브라운은 또한 '연인의 바위'로 알려진 레게의 하위 장르를 개척했는데,
보통 레게와 관련된 종교적 주제보다는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로맨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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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펄스
자메이카 출신이 아닌 가장 성공적인 레게 밴드는 스틸 펄스였다.
1975년경 영국 버밍엄에서 결성된 스틸 펄스는 이 장르에
음악적으로나 서정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스틸 펄스의 구성은 자메이카에 있는
그들의 우상보다 더 명확하고 복잡했으며,
그들의 가사는 자메이카 밖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관점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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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아이작스
레게의 "멋진 통치자"로 알려진 그레고리 아이작스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가장 성공한
레게이자 연인의 록 음악가 중 한 명으로,
1980년대 히트곡 'Night nurse'로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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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머빈
70년대와 80년대까지 거의 20년 동안 지속된 경력을 통해
주니어 머빈은 레게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까지도 연주되고 커버되는 머빈의 가장 유명한 곡은
1976년에 발표된 '경찰과 도둑'인데, 이 곡은 리 "스크래치" 페리의
독특한 제작 기법을 대중화시킨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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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주니어 공' 말리
밥 말리의 막내 아들 데미안 '주니어 공' 말리는 그 자신의 실력으로
엄청나게 성공한 예술가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는 2005년 장르를 넘나드는 획기적인 음반
'웰컴 투 잼록'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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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드 월드
레게, 펑크, 그리고 심지어 디스코의 요소들을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사운드로 융합시킨 자메이카 그룹인 서드 월드는
1970년대에 '96° in the Shade'와 같은
클래식 앨범으로 레게 음악계를 휩쓸었다.
그들은 주파수와 품질 모두에서 일관된 음악을 계속 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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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스피어
버닝 스피어는 밥 말리와 같은 동시대 사람으로
즉각적으로 인식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레게 왕족이다.
1970년대 레게의 황금기에 활동한 버닝 스피어(Winston Rodney 출생)는
헌신적인 라스타리이자 범아프리카주의자이며 1970년대부터
21세기까지 그의 음악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웅변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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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로미오
맥스 로미오는 음악 경력을 추구하기 위해 18세의 어린 나이에
자메이카 시골에서 킹스턴으로 이사했고,
결국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히트 싱글 'Chase the Devil'은 여전히
세계 최초의 상징적인 노래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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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40
영국 전역에서 UB40은 레게의 두 번째 물결이자
그들의 다민족 라인업으로 다른 것들보다 두드러졌다.
그들은 1983년 닐 다이아몬드의 '레드 레드 와인' 표지를
장식한 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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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아 그리피스
마르시아 그리피스는 경력 초기에 밥 말리와 웨일러스를 지원하는
백싱어 그룹인 I Three의 일원이었다. 후에 그리피스는 남성 위주의 장르에서
가장 강한 여성 목소리로 유명해졌다. 솔로 연주자로서의 그녀의 작업은
그녀의 믿을 수 없는 라이브 쇼와 그녀의 부드럽고 강력한 목소리로 존경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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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맨
킹 옐로맨의 옐로맨은 레게와 댄스홀 공동체의 상징이다.
그는 1980년대 최고의 댄스홀 DJ이자 작사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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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이스 앤디
때로 애정 어린 이름으로 불리는 고전적인 뿌리 레게의 아이콘 호레이스 앤디는
레게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쓴 예술가 중 한 명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자메이카의 전설인 앤디는 1991년 영국의 트립합 그룹
매시브 어택과의 협업을 통해 주류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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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아와 도나
알테아와 도나는 레게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들이며,
세계에서 가장 국제적으로 알려진 자메이카 예술가들이다.
그들의 히트곡 '업타운 탑 랭킹'이 나올 때마다 춤추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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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유스
영국 버밍엄 출신인 뮤지컬 유스는
그들의 첫 번째이자 위대한 싱글인 'Pass the Dutchie'가
1982년에 발매되었을 때 11세에서 15세 사이의
자메이카계 영국인 아이들이었다.
출처: (Smithsonian Center for Folklife and Cultural Heritage) (Reggae Times)
참조: The many musical styles of the Caribb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