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앞에 꽂힌 플라스틱 ~
최홍덕
충청도의 첩첩산중에서 약 2년 간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아주 귀한 진리를 깨달은 바가 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의 지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꿩을 꽤 여러 마리 사육하고 계셨다. 나는 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물었다. "꿩은 야생동물이라서 사육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그분의 대답에 나는 신기함을 느꼈다. 꿩은 앞을 내다보면 날아갈 수 있지만, 볼 수 없으면 날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꿩을 잡아오면 가장 먼저 꿩의 눈 앞에다가 역삼각형의 플라스틱을 꽂아두게 된다.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면 꿩은 날지는 못하고 뒤뚱뒤뚱 걸어다니기만 하는데, 그 상태로 몇 개월을 지나면 아예 날 수없게 되고만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분의 꿩에 관한 얘기 속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였다. 비전과 관련한 진리이다.
'비전'(vision)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비시오'(visio), 즉 '보는 행위(본다)'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 그래서 거기에 희망을 두고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것이 비전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비전>이 있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독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W. Pannenberg)는 인간이란 '개방성'(Offenheit)의 존재라고 하였다. 열린 존재이며, 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근원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비전)을 갖게 하신다"(빌립보서 2:13).
결국 모든 인간에게는 비전이 있는데, 문제는 누가 그 비전을 발견하고 그 비전을 따라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경에 보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세기 13:14)고 말씀하신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또 아무 것도 재어보려고 하지 말고 일단 바라보라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때부터 비전을 갖게 되었으며 그의 터전은 더욱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전을 갖지 못하고 좌절하며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의 눈 앞에 플라스틱이 꽂혀 있어서 앞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돈도 능력도 빽도 없다는 열등감의 플라스틱, 어떤 핸디캡에 대한 좌절의 플라스틱, 환경을 탓하기만 하는 플라스틱, 실패에 대한 패배의식이라는 플라스틱...등 다양한 플라스틱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인생, 성공적인 인생은 이 플라스틱을 빼서 집어던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환경, 어떤 형편, 어떤 조건도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 그냥 내다보면 된다. 산의 정상에 우뚝 서 있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된다.
꿩을 통한 진리에서 가난뱅이인 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여년 전에 겁도없이 달랑 650만원을 갖고 네 가족이서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유학이라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다. 굶어 죽을 고비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굶어 죽지는 않았다. 감사한 것은 유학이라는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서 순전히 장학금으로 그 비전을 이루게 해주셨다는 사실이다.©hd
■ 글쓴이 : 최홍덕 [목사/도시샤대 교원]
・ 메일: honglee0928@yahoo.co.jp
・ 유튜브: 「최홍덕의 복음이야기」
・ fb: hong-duk choi
・ HP: izumiotsu-church.jimdofr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