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무언인가 거두어들인 것이 있고 결실이 있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무엇을 먹고 소화시키고 그것으로 에너지를 얻어 하루하루를 살다가 오늘 이렇게 감사주일까지 왔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먹을 것이고 좀 다르게 말하면 내 삶의 어떤 결과물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을 얻기까지 나의 수고와 지혜와 능력으로 얻은 것이다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일 수 없습니다..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다 광합성의 작품이잖습니까! 모든 잎사귀들이 물에다 이산화타소 넣고 햇빛으로 끓였더니(?) 그것이 전분이 되어 땅속으로 가면 감자 고구마.. 들에는 쌀보리.. 나무에는 과일이 가득합니다.. 땅의 소산은 하나님이 이 땅에 두신 은혜의 소산물입니다..
물론 내가 욕심 것 이루고자하는 소산물을 없었다 해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고자하시는 소산물을 있었습니다.. 육적이든 영적이든 삶의 차원이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진정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심장을 뛰게 하시고 피를 온 몸에 돌리시는 것으로 모든 세포를 살아있게 하십니다.. 삶의 기반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 멀쩡하게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지성을 주시고(요즘 하도 이상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ㅠ .. 그리고 작기는 하지만 금보다 귀한 믿음을 주시고.. 잘못을 빌면 용서해주시고.. 이렇게 주시고 저렇게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의 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상한 감사가 나옵니다.. 11절 12절입니다.. 자신은 죄인들같지 않음이 감사하고 금식하고 십일조는 하는 것이 감사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하나님께 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의 근거와 출처가 자기입니다.. 사람이 미련하게 될수록 받은 것은 안 보이고 자신이 한 것만 기억한다고 하는데 바리새인이 딱 그 모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 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자기의 의로움과 자기의 훌륭함.. 자기의 도덕율을 하나님앞에 가지고와서는 감사라는 이름으로 널어놓고있습니다.. 처음부터 따로 섰다는 것 자체가 바로 자기는 특별대우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기도하고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고있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은 자기 것을 잔뜩 가지고 나와 하나님 앞에 널어놓은 것이고 세리는 자기 것이 없는 고로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과 넓은 품을 구하고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말씀을 바리새인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런 의도 없으니 하나님의 의를 제게 주십쇼..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있어야 천국 갈 거라 하셨습니다..바리새인의 행위가 사람의 의(것)라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것)입니다..그러므로 십자가의 도(의)가 멸망 받을 자 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성경은 참다운 믿음을 가리켜서 자기의 것을 구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자기를 구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자기를 구한다는 것은 자기를 알아달라는 것입니다..내가 얼마나 정직하고 깨끗하고 바르게 살았는지에 대한 바른 평가와 그에 따른 보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게 살아온 삶 자체를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훌륭함이 하나님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취신 의로우신 빛 앞에 내가 깨끗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우기 우리의 의로움이 꼭 죄 진 사람을 비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나보다 못한 이를 정죄할 때야 비로소 획인되는 의로움이라면 그 신앙은 자기만족의 종교행위 그 이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바리새인을 욕하면서 이미 충분한 바리새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모릅니다.. 이런겁니다.. “하나님 저를 바리새인 같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이 감사가 하나님께 근거와 출처를 둔 감사라면 무리가 없지만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는 감사라면 우리는 또 한 명의 바리새인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도 바리새인의 함정은 신앙열심이 있는 사람들이 빠집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한 자신의 의로움(훌륭함)을 늘어놓으면 안 되고 하나님의 것을 막 늘어놔야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무엇입니까..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빛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런 게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것이 하나로 집약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입니다..믿음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것 예수그리스도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교만이 바리새인의 함정이라면 세리의 함정도 있습니다.. 세리가 빠지는 함정은 뺀질이 함정입니다..(?) 똑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짓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겁니다.. 같은 죄를 짓고 와서는 하는 말이 “괜찮아..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까 저 뒤에 서서 그냥 머리 숙이고 가슴치고 제가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것만 한 번 하면 되!”ㅠㅠ
넓은 품을 가지신 자비하신 하나님을 도리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게 말이 어려운데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하는 것은 세리는 13절의 기도를 하고 천국을 간 게 아니라 세상으로 가서 다시 살아야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제 뒤의 19장에서 세리 삭개오가 나오는 것입니다..어찌보면 기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훌륭하게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그 의로움의 근거가 내게 있지 않은 고로 언제나 세리의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리 또한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자신의 죄짓는 탈출구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무리 치열하게 순종하며 산다고 해도 늘 부족한 자신을 보면서 13절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으니까요.. 문제는 13절의 기도가 오용되어서 삶 에서는 옆 사람 상처주고, 험담하고, 성질내고.. 아무렇게나 살면서 다시 말하면 말씀을 바르게 지키고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갈등은 전혀 없이 죄 짓고 나와서 하는 13절의 기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의 메시지는 수미쌍관입니다.. 처음시작인 9절과 마지막인 14절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자기를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 멸시하는 사람에게 .. 14절에서 전혀 다른 반전의 말씀으로 마치셨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의로운 줄 알았는데 도리어 자신이 죄인이라고 멸시한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를 높이다가 결국 교만으로 망했습니다.. 그럼 자기를 낮춘다는 겸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는 의도 없고 지혜도 없고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것을 내게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고전 1장 25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고 ..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크게 쌓아놓은 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보잘것없는 것이 더 크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미련함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건 안 믿건 다 자기가 있는 줄 알고 아는 줄 알고 되는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언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냐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듯 자기가 자기에게 당할 때 라고 합니다..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깨우쳐서 아는 것도 아니랍니다..계속된 고전 26절 이하를 보면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지혜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이라 ..”
나는 미련해서 지혜가 없으니 하나님의 지혜를 달라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임합니다..나는 능력이 없으니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0)
오늘 말씀의 마지막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자기의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자입니다..내 것을 구하는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구하는 것으로 감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찾고 구하고 그것을 맛 볼 때 그때 누리는 은혜는 가히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한 없이 작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커다랗게 빛나는 것으로 복된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