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대학교의 로널드 토비교수가 쓴 책으로 2008년에 일본에서 <鎖国という外交>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라는 이름으로 2013년에 번역 출판된 책 입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한때 흑선(黒船) 이전의 에도막부시기의 외교정책을 쇄국정책이라고 단순하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고, 이후 중세근세 외교사 관련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반론이 꾸준히 제기 되고있었습니다. 2008년에 나온 이 책은 그런 학자들의 연구를 충실히 반영했다고 볼 수 있죠.
이 책의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보통 '일본은 쇄국이 아니었다라'는 주장을 들었을 경우 먼저 떠올리실게 아마도 네덜란드 무역 등의 서양 관련 이야기일 텐데,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은 '조선 통신사'(지면도 조선통신사 관련 내용을 가장 많이 할애)나 류큐와 류큐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등 전통적인 동아시아와의 교류 입니다.
물론 19세기 중반이후 러시아와의 접촉이라던지, 네덜란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미국학자가 에도막부시기 일본의 외교를 쇄국이라는 단순한 시각에 가두어 놓을 수 없다고 주된 근거 중 하나로 내세우는게 - 아이러니 하게도 - 한국의 혹자에게는 그다지 별 의미가 없다고 치부되는 조선통신사(ex)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던, 중국에 지속적으로 조공무역을 하던 조선은 폐쇄적인 사회)라는 이야기. 사실 외부에서 귀중하다고 여기는 걸 정작 가지고 있는 내부에서 쓰레기 취급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있던 일이니 놀라운 일도 아니죠.
요즘은 좀 덜하지만 한때 일본 포함 동아시아에서 근대이후 서구와의 교류 이외의 것은 그다지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고, 그런 인식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제기되었으며, 이 책은 그런 시도들에 의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봐야겠죠.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전근대는 쇄국, 근대이후는 개항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으로 압니다. 뭐 혹자에게는 여전히 먹히는 주장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번역본은 없고 원본만 있는 상황인지라 서문의 일부만 발췌해서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당연히 허은주 선생님의 번역에 비하면 발 번역이겠으나 너그러이 양해를 바랍니다)
쇄국사관으로부터의 탈출
......필자 본인은 조일관계, 그것도 조선통신사가 계기가 되었고, 일본과 조선이나 중국(명, 청)등 동아시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쇄국'에 관하여 생각해 왔다. 그리고 연구를 진행하면 할 수록 근세 일본은 '쇄국' 이 완정되었다고 여겨진 1640년 이후에도, 동아시아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제3장에서 서술 하겠지만, 1640년 이후의 일본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확고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아시의 발전과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종래의 쇄국론은 일본이 아시아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무시하고, 유럽과의 관계만을 따로 떼어서 이야기 했다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일본은 동아시아에 대해서 나라의 문을 닫지 않았고 유럽에 대해서도 완전히 문을 닫지 않았다.......
첫댓글 외교를 할만한 주체의 수가 적다보니,
활발한 외교전이나 외국과의 교류도 발생하기 힘들었던게 아닐까요?
슈퍼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는 통일된 중원만 소극적으로 나서도,
활발한 교류와 외교전 같은게 봉인당하기 쉬워서요.
중국의 5대10국 시기였나,
중국이 분열된 시기에는 좋든 싫든,
외부와 교류를 활발하게 될 조건과,
외교전도 활성화 되는 조건이 쉬워져서요.
중국 - 청, 한반도 - 조선, 일본 - 에도막부라는 동아시아 각 지역에 통일정권이 들어서고 이 구도가 200년가까이 지속 되면서 "다원외교"라는 건 먼 이야기가 되었죠.
그리고 청, 조선, 에도 막부 "집권 세력들"의 서양에 대한 기본적인 스탠스는 비슷했습니다. 강희제가 서양 문물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는 하지만, 황제 개인의 호기심이 청 황실 및 조정 전체 세력의 대(對) 서양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부족했죠.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식과는 달리 청나라가 동아시아에서 - 적어도 규모 면에 있어서는 - 서양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걸 보면, 중국 체급이라는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새삼 깨닫게 되기는 합니다.
흥미로운 발상의 전환이네요. 그러고 보니 쇄국이라는 표현은 전적으로 유럽과 교류만 따져서 쓰는 거군요. 한국이나 일본은 항상 동아시아에서 교류를 이어갔는데..
서양하고의 교류만 개국이고 전통적인 교류는 아무 의미가 없는거냐라는 발상은 한중일 학계에서 꽤나 꾸준히 나오던 담론이기는 했습니다.
특히 일본 학계에서 오히려 좀 더 빨리 나왔지요.
음...중국의 통일왕조인 명 청에겐 계속 교역을 하려는 외교적 시도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통신사...
유럽에도 네덜란드와는 종교포교앖는 제한된 교역으러 300여년 이어온게 일본인데
역으로 생각한다면 "쇄국의 대명사"라고 불려지는 조선 후기가 중국하고는 지속적으로 조공무역을 했고(에도막부는 시도만 하고 성공은 못함), 일본하고는 백제 시절을 제외하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정치적 교류가 유지되었던 상태였습니다.
개항이전 일본 에도막부의 외교 스탠스를 조선통신사를 중심으로한 동아시아 국가와의 교류 형태를 통해 '쇄국'이라는 단어로 국한시킬 수 없다면, 통신사를 파견한 주체인 조선 왕조 역시 동일하게 봐야하지 않은가?라는 한가한 잡담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