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비춰진다. 온몸을 따스하게 감싸고 만물을 포용할 것 같은 충만한 태양의 기운이 대지를 덮었다. 세상은 평화로웠고 한 꼬마소녀의 집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앙증맞고 귀여워 보이는 빨간 머리칼의 소녀는 언제나 집에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북쪽 지방에서 불려지는 '심술쟁이 할아범'이란 노래를 소녀는 곧잘 흥얼거렸다. 작은 몸집에 큰 앞치마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퍽 이나 귀여워 보였다.
"저기 저기 북쪽에는 심술쟁이 할아범이 살아요.
눈을 부릅뜨고서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자기가 심술쟁이라고 말하고 다닌대요.
바보 할아범 바보 할아범
누가 이렇게 말하자 심술쟁이 할아범은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오크로 만들어 버렸대요.
그래서 그 할아범을 심술쟁이 할아범이라
부른대요, 오크가 되기 싫어서."
여기까지 부르더니 소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저도 오크가 되기는 싫어요."
천진한 모습이라 하면 어울릴까? 그 소녀는 인형 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발랄하게 노래를 부르며 몸짓을 하기도, 앞치마를 펄럭이게 하기도 했다. 소녀는 매일 하루를 이렇게 보냈다. 매일 노래를 바꿔가며-이 노래는 예외지만- 부르고 어느 때에는 새들의 지저귐을 가만히 듣기도하며 하루 일과를 지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녀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소녀 혼자 뿐이었고 집에 오는 사람은 어느 이상한 할아버지가 다였다. 적어도 여든은 넘겼는지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었고 입술은 항상 내밀고 다녀 심술 맞아 보이는 키가 큰 할아버지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소녀에게 아주 자상하게 대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지는 의문이지만……. 그 할아버지는 매일 소녀의 집을 찾아와 먹을 것을 주고 소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다른 이가 들으면 눈살을 찌푸리게끔 만드는 것인지라 어린 소녀에게 들려줄 것은 못되었지만 할아버지는 여의치 않고 손짓 발짓 다 동원해서 생생하게 들려주려 노력했다. 순진한 소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할아버지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다. 대화 상대라고는 할아버지가 다이니까 소녀는 할아버지의 말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들으며 모르는 것은 물어보기도 했다.
"…할아버지, 그러니까 단검으로 손목을 긋기만 해도 죽는다는 거야?"
"그래. 자살할 때 유용한 방법이지.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난 아직 살고 싶어서 옆에 있던 한 청년의 손목을 죽- 그어봤지. 와∼ 글쎄 피가 완전히 분수를 이루는 거야. 환상적인 광경이었지. 그 청년의 새파래지는 얼굴,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 까뒤집어지는 눈까지!!! 예술이었어."
진정 이게 꼬마와 노인의 대화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이 둘은 그런 것을 모르기에-'나이차이'라는 개념이 없는 듯- 계속 이상한 대화를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감탄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나서 옷 속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소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할아버지는 자랑스레 무슨 물건을 척- 내놓았다. 이메이져 볼즈(imaysyal balls)라는 마법 도구였다. 한 영상을 담아두었다가 그걸 재생시켜 보여주는 것인데 사람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쌀뿐더러 무엇보다도 일.회.용.이라는 것 때문에 요즘 시중에서는 찾기 힘든 싸구려로 취급받고 있었다. 장점이라면 생동감이 느껴지는 생생한 이미지 뿐……. 그런 것을 할아버지가 꺼내든 이유는 방금 전에 말한 손목 긋기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찌르르 온다니까. 너도 한번 감상해봐."
그렇게 해서 전율이 흐르는(?) 그 장면이 재생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과 번뜩거리는 눈동자는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광경이었으나 소녀는 태연하게 볼 뿐 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공포라는 것을 모르기에……. 그렇게 약 10타티나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쓰러져 죽어갔다. 남자가 완전히 쓰러졌을 때 남자의 뒤에 한 사람이 보였다. 작은 체구를 가진, 빨간 머리칼의 소녀가 남자의 뒤에서 웃고 있었다. 섬뜩하리 만치 차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소녀는 피의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소녀는 그 장면에 충격을 받는다 하던가 하는 것은 없었다. 무지하다고 봐도 전무하니까 말이다. 다만 이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어, 나네?"
소녀의 말에 할아버지는 웃었다. 여태 보여줬던 바보 같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노인의 웃음이 아니었다. 피와 파괴를 갈구하고 피의 향연을 즐기는 미치광이의 역겹고 추한 자의 웃음일 뿐이다. 이 자의 이름은 '코일'이었다. 심술쟁이 할아범 리치 코일…….
코일은 미치광이였다. 오직 피만을 원하는, 사랑을 잃어 미쳐버린 마법사. 그는 이 소녀를 찾고 있었다. 어둠이 축복을 내린 아이를…….
"꼬마야, 이 할아버지와 같이 가지 않으련? 내가 너에게 좋은 선물을 줄게."
"무슨 선물?"
"영생과 엄청난 파괴력. 그것을 너에게 주겠어."
소녀가 그게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았기에 같이 가기로 했다.
"응. 갈게, 할아버지. 선물 있지? 그거 재미있는 거야?"
그 말에 코일은 미미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그래, 아주 재미있단다 꼬마야."
코일과 소녀가 간 곳은 웬 이름 모를 숲 속이었다. 새들이 이상하게 끼룩 끼룩 소리내며 날아다니고 나무들은 이상하게도 검은 빛을 띤 음침하기 그지없는 숲이었다. 코일은 힘들어 헥헥거리는 소녀의 손을 잡고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쯤 왔을 때 코일은 눈앞에 보이는 허름한 나무 집에 멈춰 섰다. 잘못 보면 헛간 같은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으나 코일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제 넌 마녀가 되는 거야. 큭……. 내가 못했던 것을 넌 이뤄내거라. 세계의 파멸을……."
이 허름한 집으로 코일은 소녀를 이끌고 들어갔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거기서 암흑의 기운이 발산되었다는 것 외에는……. 그날따라 이 숲에는 유난히도 새들이 끼룩 끼룩 울어댔다.
어느 년도 7월 34일, 이렇게 피를 부를 마녀는 탄생하게 되었다. '키리아니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갑자기 나온 외전! 원래 '쥬이라는 인도자'편을 다 끝내고 넣으려 했으나
그거 쓴게 갑자기 날아가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해서(다행이라면 노트에 남아있다는 것)
외전을 지금 올립니다.
흑... 아리 욕먹겠당...
좀.. 뭐가 이상한 것 같지만 올립니다. 제가 좀 딸리다보니...... 죄송.
허접한게 많다는 것은 잘알기에 몇번이고 글을 되풀이해서 읽고 고쳤습니다만, 좀 불만족스럽다는...
전달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음... 아직도 아리는 방황(?)에서 다 벗어나지를 못했나 봅니다.
큰일...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문예부 활동 잘하고...
글쓰기 더 잘해야 할터인데...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