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는 왜 희생자들을 호명해야 했던가
이명재 에디터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두고 있는 오늘(28일), 그러나 그 참사는 1년 전의 일이 아니며, 그러므로 지금의 추모는 1주기 애도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겪어내는 것이며, 추모가 아닌 1년째의 장례다, 라고 해야 마땅하다.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 그날, 한밤의 그 순간의 일로 끝난 것이 아니라, 365일째 지금 이 순간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일인 것이다.
생명의 죽음, 특히 인간의 죽음은 단박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순간의 소멸이나 정지가 아니라 통과이며 전이(轉移)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죽음을 레테의 강을 건너가는 것으로 그렸으며, 동양에선 육신의 종식인 사(死)에 이어 그에 대한 남은 이들의 송별인 망(亡)이 있어야 비로소 한 인간의 죽음이 완료된 것으로 봤던 것이다. 육신의 숨이 꺼진다는 것, 그것은 죽음의 시작일 뿐 죽음의 끝이 아닌 것이다. 죽어서 떠나는 자가 떠나야 하고, 남아서 보내는 이가 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떠나지 못하고 보내지 못한 죽음
이태원 참사는 죽은 이가 떠나지 못하고 그를 보내야 하는 이는 아직 그를 떠나 보내지 못한 것이기에, 그 죽음은 죽음으로서 끝난 것이 아니다. 아니, 죽은 이는 죽지 못하고 남은 이는 살면서 죽음의 상태에 있는 지경이어서, 그 죽음의 완료는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할 곳, 있어야 할 곳으로 갈 때라야 그 죽음은 비로소 죽음이 되는 것이다.
이태원에서 한순간에 육신의 운행이 멈춰버린 이들의 원혼과 그 순간 이후 삶이 멈춰버린 희생자들의 가족들, 그리고 그 망자들의 가족 아닌 가족들, 스스로 상주가 돼 그 죽음의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 오열하고 호곡하는 이태원 거리, 그 지상의 거리에서 죽은 이와 산 이들에게 1년 전 10월 29일의 그날은 1년째 여전히 ‘오늘’이 되고 있다.
바로 오늘에도 그 죽음에는 얼마나 많은 모독이 행해지고 있는가. 핼러윈 축제를 금지한다는 어느 당국은 핼러윈 축제에 ‘죄’를 물음으로써, 그 축제에서 삶의 생동을 누리려 했던 1년 전의 젊음에, 삶을 누리려 한 그것에 죄를 묻는 잔혹을 저지르고 있다.
159명의 이름, 그 이름은 아직 여전히 '금단의 익명' 속에 갇혀 있다. 그것은 보호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폐되고 있다. 추모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금되고 있다. 애도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고 있다. '불순'의 이름인 듯 금지되고 있다.
1년 전 그 금지된 명단을 공개했던 시민언론 민들레의 보도는 과연 온당했던가. 그에 대해 패륜이며 망자와 가족들을 짓밟았다는 비판과 매도들, 그러나 그런 외부의 비판과 당국의 조사 이전에 지난 1년은 민들레 자신에게 그 공개와 호명은 온당한 일이었던가, 그것을 스스로에 묻는 자문의 시간이었다.
민들레는 왜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렀던가. 불러야 했던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태원에서의 죽음에 대한 총체적인 부실과 은폐 속에서 긴급행동이었다는 것이 민들레의 공개의 이유였거니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과연 그것은 타당했는가, 그것을 스스로에게 여전히 입증할 수 있는가, 라는 자문의 시간이었다.
망자(亡者)의 이름은 죽은 이의 것이자 남은 이들의 것이다. 사람의 이름이 본시 그 자신에 속해 있으나 그것의 사용은 다른 이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듯 이름은 개인과 사회의 교접이며 합치이다. 육신을 잃은 망자에겐 그 이름이 곧 육신이기에 죽은 이와 남은 이는 망자의 이름을 통해 만난다.
죽은 이의 이름이 본래 그렇거니와 이 참사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은 곧 그를 부르는 것이며, ‘왜?’를 묻는 것이다. 그 죽음의 이유, 왜 죽어야 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동포 시민단체와 유가족협의회·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등은 토요일인 지난 21일 밤 ‘온라인 추모식’을 열었다. 희생자 얼굴과 이름도 공개했다.
이름을 보호하기 전에 그 삶을 보호해야
이태원의 망자들을 향해 이름을 부르는 것, 그건 그들이,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던 그들이, 아직 그곳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거기에 있다는 것을 남은 이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며, 그리고 우리가 그들 옆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죽은 이들의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자신이 ‘인간’이려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민들레의 명단공개가 개인정보보호 위반이라는 조사가 이뤄져 왔고, 어느 언론이 그 조사가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며칠 전에 물어 왔다. 이름을 공개한 것이 정당하냐, 그것을 따지는 것은 언론의 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언론에 당부하기를, 그 이름의 주인의 삶을 보호하고 있느냐를 함께, 그보다는 먼저 묻기를 바란다. 그 이름의 주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왜 이 지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먼저 묻기를 바라는 것이다.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결국엔 우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보호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죽음들이 전적으로 그 자신의 것, 그 가족의 것만 아닌 것이듯, 아니어야 하는 것이듯, 한 사람을 지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이태원의 희생자들이 아직도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고 있는 참사 1년간의 오늘, 죽음을 짓밟음으로써 삶을 유린하는 이 현실, 여전히 2022년 10월 29일의 밤을 현재로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에서 우리는 그 희생자들의 이름을 진정으로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죽음과 삶을 진정으로 보호하기 위해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 그것이 추모의 시작, 아니 추모 아닌 먼저 장례의 시작이다.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 주어진 책무의 시작이다.
출처 :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름, 1년째의 '감금' < 이태원참사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