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속에 비친 달의 파노라마
이 유 식
우주공간에는 이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해만이 아니라 무수한 태양이 있다.그러나 이 지구 중심의 해를 아버지라 한다면, 그 셋째 아들이 바로 지구다.그리고 그 셋째 아들의 유일한 딸이 달이다.해는 대가족이고, 지구는 부녀간만의 핵가족이다.
해가 지구의 낮을 만들어주는 원자로 같은 큰 화경(火鏡)이라면, 달은 밤을 밝혀주는 등불이요 램프다.만약 이 지상에 달이 없다고 가정해 보면,달이야말로 효녀중의 효녀다.
달은 숨은 별을 찾아나서는 술레잡기 놀이의 술레요, 지상의 사람들은 그 구경꾼이다. 또 달은 가면놀이의 각시탈이다.
해와 지구가 아버지와 아들관계로 남성이라면, 달은 여성이다.이는 곧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거의 공통적인 발상이요 생각이다.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가 로마신화로 가서는 다이애나(Diana)가 되고 또 그리스 신화의 셀레네(Selene)도 로마신화로 가서는 루나(Luna)가 된다. 이집트에는 달의 여신으로 떠받드는 이시스(Isis)가 있고, 에스키모는 이갈루크(Igaluk)가 있다. 중국으로 보면 달의 월궁에 항아(姮娥)라는 선녀가 살고 있으며, 우리의 구전 전래설화에는 범에 쫓긴 두 남매가 나무 위에 올라가 하늘에서 내려온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남자아이는 해가 되고 여자아이는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달빛은 강렬한 햇빛을 쏟아내는 해에 비하면, 한없이 부드럽고 우리를 어루만져준다.그래서 베토벤이 월광곡을 작곡 했는지도 모른다.결국 달을 여성으로 보는 의인법이란 것도 알고 보면 이에서 근거하고 있다.
우리의 전승문화와 민속은 바로 이 달의 문화다. 아주 옛시절 이집트인이나 멕시코의 마야인이나 아즈텍인,페루의 잉카인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외경의 해를 숭배하고 찬양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조상들은 달을 안고 살며 달을 찬미했다.심지어 달점도 쳤다.세시풍속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월 대보름날의 달맞이,달집짓기와 태우기,우물에 떠 있는 달을 떠먹으면 아기를 갖게 된다는 속신의 용알 떠먹기 등은 물론, 정월 대보름과 추석 한가위 밤의 강강수월래 춤과 노래는 뭐니해도 달의 축제다. 또 양력이 아니라 음력의 달력 위주로 살았기에 농가의 행사를 다달이 규정해 놓은 이른바 월령(月令)도 달의 운행에 따라 맞추져 있다. 그래서 '농가월령가'도 태어났다.
그런가 하면 지명이나 지난 날의 여자 이름에는 물론 문사의 아호에도 '달월(月)자가 유난히 많이 들어가 있다. 가령 이름에만 한정해 보면 월선(月仙),월희(月姬),월순(月順), 월자(月子), 월임(月任) 등등은 많았는데, 해를 은유하는 '날일(日)자가 들어 있는 이름은 거의 없지 않았던가.
또 신랑감이나 신부감을 구하고 있는 미혼 남녀가 달꿈을 꾸었다면,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는 길조라고 한량 없이 마음이 부풀었다.태몽도 달이면 좋아들 했다. 달이 품 안으로 들어오거나 공중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꿈이라면, 달덩이 같은 건강한 아기를 얻거나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겠다고 해몽하면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또 예부터 달은 많은 시인묵객의 시의 좋은 소재나 배경 그리고 은유였다.저 멀리로는 신라의 향가 '찬기파랑가'를 시작으로 하여 고려가요,시조, 민요에 이르기 까지 곳곳에 달이 얼굴을 내밀었고 달빛이 드리워져 있다. 아니 유행가만 봐도 1960년대부터 비록 태양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긴 했지만 50년대 까지만 해도 달과 관련 있는 노래가 많았다.
달은 마성(魔性)을 지니고 있다. 보름이 가까워지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환자가 많이 생긴다 하며 또 정신병자도 그 발작이 심해지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여자의 생리도 달의 리듬에 맞추어져 있다 하니 참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구는 삼분의 이가 물이고,우리 인체도 그와 꼭 같은 비률로 되어 있다. 달의 인력에 의해 밀물과 썰물현상이 생기듯 우리 인체도 그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는다니 역시 묘하다. 아무튼 달은 마성이 있다. 정서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이런 저런 영향을 준다.
그리고 둥근 달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무늬를 보고 각 민족마다 상상해 보았던 그 상상도 재미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계수나무가 있고 그 밑에서 옥토끼가 떡방아를 치고 있다고 보았고, 인도, 아시아 내륙지방, 일본, 중앙 아메리카 등지에서도 중국이나 우리와 같이 토끼가 살고 있다고 보았다. 북유라시아나 북아메리카 북서해안 그리고 오키나와 등지 사람들은 물 긷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았고, 인도네시아나 폴리네시아 등지 사람들은 베 짜는 여인으로 각각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달 표면의 무늬 모양만의 상상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무늬를 떠나 둥근달 전체를 보며 대리 보상체험도 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건 사흘 굶은 사람이라면 빵을, 돈이 궁한 사람이라면 황금 덩어리를, 고향에 계신 어머니나 아내등을 그 정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연상도 해보았으리라. .
달은 참 변화무쌍하다. 과학적으로야 지구 그림자에 의해서라지만 때에 따라 그때 그때얼굴이 달라지니 변용의 달인이다..가면놀이와도 같다.우선 뜨는 달을 보자. 초하루경의 초승달, 초닷새경의 조각달, 이레와 여드레경의 상현의 반달,드디어 만월의 보름달이 동산 위에 두둥실 뜬다. 지는 달은 그 반대다. 이지러지기 시작해 하현의 반달,조각달, 그믐달이 된다.어쩌면 이 과정은 배턴 터치의 릴레이와도 같다.뜨는 달은 결승선을 향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 보름달이 되고,지는 달은 그 배턴을 다시 받아 그 반대로 되돌아 와 그믐달이 되는 격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변화무쌍한 달의 모습을 두고 명상가들은 삼라만상이나 인생의 철리를 명상해 보기도 했다.뜨는달,지는 달을 보며 있음과 없어짐이나 흥망성쇠를 읽었다.'달도 차면 기운다'는 이치와 교훈이다.
그런데 이 변화무쌍한 달 중에서 초승달과 그믐달을 두고 보면 그 이름도 재미 있다.갈고리,손톱끝 모양 또 눈썹을 닮았다 해서 다 같이 갈고리달,손톱달,눈썹달이라 하지 않았던가.그래서 서정주 시인은 그의 시 '동천(冬天)'에서 '우리 님의 고운 눈썹'과 눈썹달인 초승달의 이미지를 결합시켜 그야말로 겨울 추운 밤하늘에 걸어도 두어 짧은 명시란 칭송을 듣기도 했다.또 악처를 만나 노상 얼굴을 손톱에 할켰던 사람이 있다면, 손톱달인 그믐달을 보면서는 그 지긋지긋한 마누라의 손톱도 연상했으리라.
달은 밤을 밝혀주는 등불로서만이 아니라 달이 주연이 되고 해가 조연이 되어 인력에 의한 조수 간만으로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주니 어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효녀 중의 효녀가 아닐수 없다.
달은 밤달이 주인공이지만 낮달도 있다. 어른들에게는 밤달이 사랑을 받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낮달이 좋다. 윤극영의 '반달'과 윤석중의 '낮에 나온 반달'이 동요로서 어린이의 상상력을 극대화 시켜주었기에 더욱 사랑을 받는다. 두 노랫말에 나오는 '쪽배'나 '쪽박'의 연상에서 천민난만한 생각도 마음껏 펼치지 않았겠는가. 반달에는 상현의 반달과 하현의 반달이 있다. 윤석중의 반달은 하현인지 상현인지 그 어떤 정보도 나타나 있지 않지만,윤극영의 반달은 노랫말의 앞뒤 정황상의 정보로 미루어 상현의 반달이다.
나는 지금 마치 달타령 하듯 떠오르고 있는 이 생각 저 생각들을 마치 파노라마식으로 내비춰보고 있다. 잠시 창밖의 달을 처다본다.내 동심의 달속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도 있다.그런데 오늘의 달에는 그것 대신 말라버린 흔적의 바다,고지대, 수많은 운석 구덩이로 된 월면 사진이 내 시야를 가로 막고 있다.
과학은 정말 좋은 것일까, 수천년, 수백년 동안 신비로만 여겨졌던 일들이 하나 하나 벗겨지니 경의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삭막해진다. 더욱이 핵전쟁을 운위하고 있는 세상이 되고 보니 과학의 유토피아 세계는 커녕 거꾸로 디스토피아 세계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난다.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과학이 보다 더 발달한 20세기를 살았던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며 미학자요 문예 이론가인 죄르지 루카치다. 그의 어느 책 서문에서 '나침반이 아니라 별을 보고 항해 했던 시절이 더 행복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나도 이 사람처럼 주어진 상황이나 정도에는 물론 차이야 있겠지만, 초첨단으로 발달해 가고 있는 현대 과학문명에 대해 저항감은 느끼고 있다.그래서 토끼가 떡방아 찧고 있던 그 시절이 그립고 또 동심의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노스탈지아도 있다.이를 두고 누가 나이 먹어감에 따른 반작용에서 나온 동심의 회귀본능이라 할지도 모르겠다.문득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속의 앙큼한 귀염둥이 주인공 스카렛 오하라가 '내일은 또다른 새로운 시작의 날이야'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그렇다면 나도 그 정답을 내일 밤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참이다..
첫댓글 존재하지 않는 내일...^^^^
내일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터기 사람의 바람일 뿐 존재하지 않습니다. 히힛~
@연보라 새 바람이 불뿐 내일 입니다...나침판 빌리줄까요....ㅋ
@터기 그 바람이 아인데...ㅋ
@연보라 힌터가 있어야 지대로 답을 달지롱....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