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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kocdu의 여행스케치 | 꼭두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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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kocdu/223021012631
아내의 액세서리 장식장
아내는 시골살이를 싫어했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아직 아들 녀석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입. 시. 생. 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첫 시골살이는 혼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골과 도시를 오고 가는 저 혼자만의 2도 5촌 생활입니다.
그런데 아들과 상관없이 아내는 시골살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 시골을 싫어하냐는 물음에
'답답해서 싫어.'
'친구도 없잖아.'
'쇼핑몰도 영화관도 없고 문화시설이 없으니까.'
'병원이 멀어서 불안해......'라고 다양한 이유를 들더군요.
아내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속내는 '시골살이는 싫다'입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인생에 시골살이는 없다'란 주장입니다.
시골살이는 남편의 로망일 뿐이지 본인은 도시 생활이 좋다는 거지요.
그러니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이대로 홀아비 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과 기우도 없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내에게 작은 섬을 하나 내주었습니다.
아내는 그 섬을 가꾸고 키워 나가더군요.
그러다 점점 섬이 커지더니 급기야 시골집의 주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답니다.
아내의 섬은 작은방 하나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건 니 방이야. 너 혼자만 사용하는 방이지."
"그런 게 어디 있어? 친구들 오면 재우고 그럴 것 아냐?"
"절대 그럴 일 없지! 봐, 여기 자물쇠도 있잖아."
시골집엔 두 개의 거실과 두 개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한 개의 거실은 말 그대로 주방이 딸린 일반적인 거실입니다.
또 다른 거실은 아내와 공동으로 그림 그리는 작업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두 개의 방중 하나를 아내 방으로 정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시큰둥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아내의 방엔 커다란 창문 하나만 달랑 있었거든요.
아내는 텅 빈 방을 채우려는 듯 도시에서 이삿짐을 날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출발은 버리기 아까운 옷 들이었습니다.
처음엔 '쯧, 시골집이 창고도 아니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옷장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더군요.
텅 빈 방에 옷장이 필요하다니 붙박이 장롱을 주문했습니다.
한 쪽 벽면의 길이가 12자였으니 기성 옷장이 맞춤이라도 한 듯 딱 들어가더군요.
옷장이 생기니 아내는 안 입는 옷이나 철 지난 옷들을 도시에서 가져와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홀로 2도 5촌이 아내의 5도 2촌과 병행되기 시작하더군요.
"화장대도 있으면 편하겠네."
어려울 것 있나요?
가구 도매상에 가서 아내 마음에 드는 하얀 화장대와 스툴, 장식함을 세트로 구입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도시로 올라가는 경우보다 아내가 시골로 내려오는 일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장식장 같은 거 없을까......"
장식장은 직접 만들어 벽에 설치해 주었습니다.
"난 사는 것보다 핸드메이드가 더 좋더라.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잖아......"
작은 장식장엔 온갖 액세서리들이 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토기와 작은 토우들, 이집트 장식품, 뉴질랜드의 문진, 러시아 마트료시카, 힌두교 불상, 이탈리아의 비노 마개와 따개, 에스토니아의 보석함, 리가에서 사 온 냉장고 자석, 탈린의 호박 액세서리들......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갖 액세서리가 장식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더군요.
"이걸 다 어디에 보관하고 있었던 거야?"
"그냥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서랍에 처박아 두었던 거지.
나름 모두 사연과 스토리가 있는 거였는데 얼마나 미안했던지......"
아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액세서리를 닦고 정리합니다.
'... 이건 탈린에서 사 온 호박 귀걸이야... 아주 작고 예쁜 마을이었는데......'
'이 코끼리 도자기는 자기가 태국에서 사다 준 거지. 한 마리는 코가 떨어져서 접착제로 붙였는데......'
'이 흙인형은 우즈베키스탄의 히바에서 산 거야. 그때 만난 친구가 이 팔찌도 선물해 주었는데......'
장식 선반은 아내의 추억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2도 5촌은 끝나고 아내의 5도 2촌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아내의 섬은 점점 더 영역을 넓혀 갔습니다.
처음엔 작은방으로 시작하더니 화단과 나물 밭 조성에 재미를 붙이자 차츰차츰 밭두둑을 넓혀 갔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자 망설임 없이 시골집으로 합류했습니다.
지금도 아내의 방은 아내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손님이 많이 와도 그 방은 단 한 번도 내어 준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도 그 방이 자기와 시골생활을 이어준 교두보란 걸 알고 있습니다.
텅 빈 방에 아내의 추억과 물건이 채워지니 온전히 아내의 방이 되었습니다.
가끔 부부 다툼을 하면 자기 방에 틀어박히는 부작용도 있지만
자기만의 동굴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법이니까요.
[출처] 아내는 시골살이를 싫어했습니다. (지성아빠의 나눔세상 - 전원 & 귀농 -) | 작성자 꼭두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