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희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어깨너머의 연인>은 서로 다른 결혼관과 연애관을 가진 두 여자를 통해 사랑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다. 이 남다른 여자들의 이야기, 어떻게 탄생했는지 물어봤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흥미롭다. 소위 ‘된장녀’라 불리는 두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남자들은 거부감을, 여자들은 이해하는 편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을 끝낸 뒤 나와 주변 여자들은 영화에 대해 만족했다. 하지만 촬영하는 동안 접한 현장의 남자들 반응에서는 이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두 주인공의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못 받아들이는 인상이더라. 의도한 건 아니고 두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필요하다고 봤다. 희수(이태란)의 경우는 일부러 강조한 면이 있다. 처음 희수가 등장할 때 러닝머신을 뛰고 로봇 청소기가 나오는 건 그 캐릭터를 살리는 데 사회적인 부라든가 럭셔리한 생활방식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스토리가 흐름을 탄다기보다는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라이프스타일이 강조됐다.
그런 점 때문에 <섹스 앤 더 시티>와 비교되기도 한다. <섹스 앤 더 시티> 중에 캐리가 아이를 가진 친구와 싸움을 벌이고 화해를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친구 아이의 생일파티에 놀러갔다가 장난꾸러기 아이가 신발을 망쳐놔서 캐리가 친구와 싸운 후 끝내 변상을 받는다. 그것만이라면 싱글을 옹호하는 드라마일 수 있겠지만 끝에 보면 화해하면서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로 결말을 맺지 않나. 나는 캐리라는 캐릭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싱글이 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결혼과 가족이 부러울 수도 있을 거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 화려한 장소와 의상 등에 혹하는 게 있는데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점 말고도 사람들의 진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살리고 싶었다.
희수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어떤 캐릭터와도 닮지 않았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희수 캐릭터가 재미있었다.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4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희수와 비슷한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다. 일례로, 최근 방영한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의 엄정화가 연기한 주인공도 그렇지 않나. 그래서 김이 샌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그런 캐릭터가 재밌다. 아무리 부유하고 쿨한 사람인 척해도 진짜로 행복한 건 아니지 않나. 나도 그런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에 반성하고 있는데, 영화계 쪽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웃음)
그러면 캐릭터 설정하는 데 크게 힘든 점은 없었겠다. 시사회 간담회에서 ‘캐릭터가 흔들린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나는 일부러 두 주인공 캐릭터가 각각 타입화되지 않고 중간에 합쳐지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는 게 영화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실제적으로 가능한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영화를 시작할 때 정완과 희수가 한 인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출발했다. 나는 어떤 여자든 두 캐릭터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를 찍으면서 둘이 같이 간다기보다는 한 인물이 어떤 순간에 어떤 고민을 하느냐에 따라 양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봤다.
양방향적인 설정 때문인지 두 캐릭터의 상반되는 행동 패턴이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 때문에 배우와 부딪치기도 하고 상의도 많이 했다. 사실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희수와 정완(이미연) 같은 캐릭터를 많이 만났다. 주변에서도 나를 보고 정완 캐릭터와 닮았다고 했는데 나는 정완이가 너무 싫다. (웃음)
그러고 보니 나이도 서른두 살로 두 주인공과 같다. 아니다. 처음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이었다. 일부러 내 나이와 겹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작업기간이 오래되고 개봉이 늦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같아지게 됐다.
소비 지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는데 작업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낡아 보일 가능성도 있는데? 1년 사이에 유행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신선하지 않은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속상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단순히 그런 모습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니까. 다만 의상이 1년 전에 협찬받은 거라 그 의상들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노출이 많이 돼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유행이 지났다고 뭐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다.
개봉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 처음 제안 받았을 때 2년 정도면 찍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완성까지 3년이 걸렸다. 시나리오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원작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확실하고 깊이도 있고 게다가 재미까지 있었는데 문제는 결말이 <싱글즈>(2003)와 같다는 거였다. 남자를 떠나보내는 상황과 그 순간의 대화가 너무나 흡사해서 이를 변경하는 데 오래 걸렸다. 물론 <싱글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지만 결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엔딩을 만들고 무엇보다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싱글즈>의 결말에 왜 동의할 수 없나? 나난(장진영)의 경우, 그렇게 조건 좋은 남자가 외국에서 공부까지 시켜주겠다고 하고 심지어 남자친구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따라가지 않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봤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동의할 수 없었던 건 동미(엄정화)가 처한 상황에서 과연 미혼모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의문이었고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봤다.
<어깨너머의 연인>의 영화상 결론은 어떠한 판단도 유보한다. 맞다. 확실한 맺음은 아니다. 감정만 전하고 그 뒤의 상황은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사실 결혼만이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어떤 분께서 여자가 대학 졸업하고 이십대 후반이 돼서 사회생활 하다보면 결혼 아니면 여행,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이 영화도 보면 그 두 가지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여자의 삶이란 이런 거야’라고 내가 정의내릴 수는 없는 거다. 물론 삼사십 년 후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러면 좀 ‘꼰대’ 같아 보일라나. (웃음)
처음 구상은 서른 즈음에 맞닥뜨린 여자의 이야기였던 건가? 우리가 스물아홉 나이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있지 않나. 서른이 되는 순간 젊은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이미지가 되는 느낌이랄까. <싱글즈>가 나왔을 때만 해도 나는 이십대 중반이었지만 어울리던 사람들은 삼십대 초반을 넘어갈 즈음이었다. 그때 내가 보는 삼십대 초반의 이미지는 <싱글즈>와는 달랐다. 극중 스물아홉의 여자가 주장하는 이야기가 서른다섯이라고 다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것처럼 <어깨너머의 연인>에서도 주인공의 나이를 서른두 살로 하기보다는 좀 더 늘렸으면 했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면서 나이와 연관되는 점이 많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제작사 쪽에서는 서른두 살로 못 박기를 원했다.
불치병을 다루지만 신파정서를 최대한 줄인 전작 <...ing>(2003)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보면 쿨한 태도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다. 쿨함에 대해 집착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ing>는 사실 제작사에서 엄청난 신파를 원했지만 내 성격이 그런 편이 아니라서. 이번 영화의 주제라고 하면 사랑에 대한 본질을 드러내는 게 아니다. 사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쿨해 보이고 싶어하고 그것이 멋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쿨하기는 힘들다. 바로 그것이 내가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였다. 쿨하지 않다고 멋없는 게 아니잖나. 그저 순간순간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대하는 게 더 멋있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노력은 했는데 그런 내 생각이 잘 표현됐는지 모르겠다. (웃음)
사진 백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