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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스님의 기도 – 8
불자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모두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행복 시작 불행 끝 성공 시작 실패 끝
승리자 붓다 축복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미타불
오늘도 여러분들과 계속이 힘이다 하는 주제로 공부하겠습니다.
‘운명은 존재하나 변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불교 텔레비젼이나 불교 언론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 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인기 단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된다. 마음을 알아야 된다 해서 마음을 알려고 불교 공부를 한다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데 요즘 용어로 ‘자아 발견’이라고 해야될 것 같아요. 물론 불교는 근본적으로는 무아라는 가르침을 설하는데 그 ‘무아’하고 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개념적으로 같으면서도 달라요.
‘자아 발견’이란 여러분들이 일단 사람 몸 받아서 태어나 나와 있는데 이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 이예요. 여러분들의 성격을 발견하고 여러분들의 습관을 발견하고 또 여러분들의 환경을 발견하는 거예요. 발견한다는 건 여태까지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내는 거예요.
내 성격은 어땠고 내 습관은 어땠고 내 환경은 어땠구나. 요걸 운명이라고 해요. 자아 발견이란 운명에 대한 발견을 이루어내는 거예요.
모든 사회생활이든지 종교신앙이든지 자아의 발견에서 부터 시작이 될꺼예요.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이야기로 위로를 삼기도 하지요
자아를 발견한다. 이게 불교 수행과 기도 정진의 목표가 되는 거예요.
자아의 발견은 왜 하냐? 자아의 발견을 통해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겠죠? 자아의 계발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성격은 좋은 쪽으로 습관도 좋은 쪽으로 환경도 좋은 쪽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느냐? 그것이 자기 계발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계발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냐?
불교라고 하는 종교는 자기계발 부분에서 2600년 동안 지속적으로 그 시대와 공간에 맞게 정립을 해왔어요. 부처님 말씀에 정확하게 근거를 해서 거기에 맞게 발전시켜 왔다 말 이예요.
며칠 전에는 불교학자들이 질문을 했어요.
‘역대 고승 또 용수보살이라든가, 보살이라고 칭호를 받는 분들은 왜 중생들을 위해서 그렇게 고민을 하실까요?’ 당신은 이미 크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고 도를 이루셔서 더 이상 괴로움도 번뇌(탐.진.치.만.의)도 아무것도 없고 열반의 세계, 극락의 세계를 누려가면서 왜 중생들을 위해서 고민을 할까요?
<용수보살님은 십주비바사론에서 이행도가 난행도라는 가르침을 통해 모든 중생들이 염불과 정토신앙의 이행도(쉽게, 모두 쉽게 불보살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를 해야된다고 침이 마르고 닳도록 입안이 쓰도록 말씀을 하셨죠.>
나도 늘 그게 궁금했다. 지장경 읽어가면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 이런 분들은 중생이 뭐가 이쁘다고 고민을 하셔 가면서 피로와 괴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그 중생들을 구제하려고 세세생생 성불을 포기하시고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아라한이 되고 벽지불이 되고 보살이 되면 이 땅에 온 사명들이 바뀌어 지는거예요. 오로지 중생들을 구원을 해서 삼악도로 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여러분들도 지장경을 꾸준히 읽다 보면 가장 가까이 자기자신 또 가족들부터 사랑하는 마음들이 생기게 돼요, 그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서 궁국적으로는 무연대자(無緣大慈-없을무. 인연연) 인연이 전혀 없는 중생들에게도 자비를 베푼다. 진정한 자비.
지장보살님이 관세음보살님이 그 어려운 길을 왜 가시는거야? 동체대비. 여러분들 아픈 것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이 분들이 똑같은 아픔으로 느낀다 말 이예요.
유마경 문수보살문질품에 보면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보살도 아프다’는 말씀이 있어요. 대학 시절에 그 구절을 보면서 말도 안돼! 무슨 중생이 아프다고 보살이 왜 아퍼 했는데 진짜 아퍼. 진짜 아파요.
여러분들이 아픈 걸 어떻게 알겠어요? 똑같이 아프니까 아는 거예요. 아픈 사람이 오면 아픔을 그대로 다 느끼는 거예요. 느끼는 거예요. ‘아!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보살도 아프다.’ 여러분들 탁 보는 순간에 어디가 고장났다 제가 다 알아요. 육체적으로 고장이 났든 심리적으로 고장이 났든 그대로 와서 비친다 말 이예요. 큰 거울이 되어서 그대로 비친다 말이예요. 이렇네 이렇네 하면 다 맞는 거예요. 아! 보살심까지 가지 않더라도 원을 세워 기도하게 되면 상대방들의 고통이 전부 다 와서 닿는구나.
페이스북이나 이런데 보면 개 돼지 닭 살생하는 모습들 보이잖아요. 그러면 그 고통이 그대로 와닿는 거예요. 그 아픔이 와닿는 거예요. 굉장한 고통이 와닿잖아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육식을 안하게 되고 육식이 정말 끔찍한 일이 되는 거예요. 고통이 와닿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 단계가 아니예요. 중생이 당신 몸 이예요.
축생이 됐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됐든 전부 다 당신 몸이라 말 이예요. 몸을 이루고 있는 구조들이다. 거기서 병이 나면 당연히 아픈 거예요. 아프니까 안 아프게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중생들이 잘 살아야 되는 거야 행복하고 성취적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 지장보살님의 원력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는 거예요.
운명은 존재해요. 너무나 무섭게 존재해요 그러나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운명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했어요.
정말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 부터 확인을 하고. 어? 있네. 그러면 어떻게 변화를 시킬 수 있지? 어느 부분에 어느 부분에 건강이 안좋은데 이것은 어떻게 개선을 할 수 있을까?
운명에 행복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성공할 수 없는 사람도 있어요, 운명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많은 분들이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없고 성공 못 할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그 분들은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만큼 연구를 안하신 분들이예요. 안한 분들은 무식하기 때문에 부정을 해요. 현실적으로는 존재해요. 그러나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루의 운명을 우리가 일진이라고 하는데 하루 일진을 못 피하는 게 중생이예요. 전에 밥 먹고 할 일 없을 때는 너 몇 년 몇 월 며칠에 죽는다 제가 일러줘요. 그러면 그날 가서 죽어요. 그날 가서 죽으라고 일러준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해서라도 피해가라고 일러준 거예요.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라고. 그런데 그날 죽는 거예요. 아! 진짜 무섭네. 어떻게 이게 될 수 있어? 다 예측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알았으면 바꾸기까지 했어야 되는 것 아냐? 그래야 정말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냐? 당연하지요. 그런데 중생들이 복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알려줘도 말을 안들어요. 귀에 말뚝부터 박고 접근하기 때문에 설득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많은 운명에 대한 연구를 하고 운명을 바꾸는 방법도 연구를 하고 하다보니까 결국은 가장 완벽하신 부처님께 귀의하는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 보만론寶鬘論 >이라고 용수보살께서 쓰신 글이 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언젠가는 여러분들에게 이 논서들을 공부를 시켜드리고 싶었어요.
모든 부처님과 보살께 귀의합니다.
모든 허물에서 벗어나시고 모든 공덕으로 장엄하신 분
일체 중생의 유일한 벗 일체지자께 절합니다.
왕이여, 그대가 법을 성취할 수 있도록 오직 선한 법만을 말하겠노라.
정법의 터전이 되어야 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삼선취의 법을 설한 이후에 최고선의 법을 설하오니
삼선취를 얻고나서야 점차적으로 해탈이 가능해진다네
선취란 행복이며 최고선이란 해탈이니
그 성취를 요약하면 신심과 지혜라네.
신심이 있어야만 법에 의지하고 지혜를 갖춰야만 바르게 이해하니
이 두 가지 중에 핵심은 지혜이나 이에 앞서 신심이네.
욕망 증오 두려움과 어리석음으로 법을 거스르지 않는 자를
신심이 있는 자라 하며 해탈의 최상 법기라 하네.
몸과 말고 생각의 행위 모두를 잘 살펴
나와 남에게 이로운 바를 알아 항상 실천하는 그는 현명한 자라네.
이 구절까지 오늘 여러분들과 공부하려고 합니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께 귀의합니다.
모든 허물에서 벗어나시고
부처님은 완전무결하신 분 이예요. 타 종교의 교주들이나 천신들과 비교할 때 부처님은 완전무결하신 분이고 일체지자(모든걸 다 아시는 분)세요. 지구에 많은 성인들이 왔다 가셨다고 하는데 그분들은 일부분에서는 진짜 굉장히 훌륭하신 분들이예요.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아는 일체지자로서 또 모든 허물에서 벗어나신 분은 부처님밖에 안계세요.
모든 공덕으로 장엄하신 분
모든 허물이 다 소멸되고 모든 공덕으로 장엄하신 분
일체 중생의 유일한 벗 일체지자께 절합니다.
왕이여, 그대가 법을 성취할 수 있도록 오직 선한 법만을 말하겠노라.
정법의 터전이 되어야 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삼선취의 법을 설한 이후에 최고선의 법을 설하오니
삼선취를 얻고나서야 점차적으로 해탈이 가능해진다네
삼(=세가지) 선(=좋다) 취(=세계) 세개의 좋은 세계. 삼선도와 같은 말이예요. 삼선도는 천상, 인간, 아수라예요.
어제 서울 안심정사에 6지장보살님을 모셨어요.
순서가 천상 인간 아수라로 되어있고 반대쪽부터 지옥, 아귀, 축생 6도예요. 우리가 6도 윤회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고 저도 6도 윤회를 해요. 요 6곳을 계속 돌아다니는 거예요. 어느 정도 속도로 빠르게 다니냐 하면 자동차 RPM10,000 정도로 돌아다녀요.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각자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서 60년 살았네. 70년 살았네. 100년 살았네 하고 느끼는 거예요. 자동차 RPM10,000 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데도 지금 여기 앉아서 100년 따지고 있는 거예요. 감각상으로 느끼고 있는 거예요.
삼선취는 천상계 인간계 아수라계예요. 아수라는 사는 모습은 제일 멋져요. 정치지도자들 경제계의 재벌그룹 오너들 이분들이 아수라예요. 보통 사람들 보다 화려하게 살아요. 화려하게 사는 데 비해 늘 극단적인 투쟁을 해야되는 거예요.
먼저 삼선취를 설한 이후에 최고선의 법을 설하오니.
여러분들이 인간은 되었네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행복한 인간을 말하는 거예요. 행복한 천상 세계. 행복한 인간 세계. 행복한 아수라 세계.
행복을 먼저 성취해야, 삼선취(행복)를 얻고 나서야 점차적으로 해탈이 가능해진다네!
이게 부처님의 위대한 법이예요.
‘어 나는 그냥 앉아 있어 가지고 어느 땐가 탁 터져 가지고 그냥 해탈해야 되겠네’ 하는데 안된다는 거예요. 안된다. 안돼요. 안돼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안된다고 하셨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도의 용수보살, 중국의 천태지자대사 이 분들이 다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말 이예요.
먼저 삼선취(천상락과 인간락과 아수라락)을 성취하고 나서야 얻고 나서야 점차적으로 해탈이 가능해진다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불자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돼?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건강하게! 일단은 모든 것이 다 잘되게 성취해야 된다 말이예요.
그런데 지장경에 보니까 전생에 지은 업 때문에 지장경을 읽어도 당장은 업에 끌려가면서 괴로움을 받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말이예요. 그게 그렇게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장경을 꾸준히 읽어 업을 멸해서 삼선취(천상락과 인간락과 아수라락)를 얻고나서야 점차적으로 해탈이 가능해진다고 되어있네요.
선취란 행복이며, 최고선이란 해탈이니
그 성취를 요약하면 신심과 지혜라네
선취란 행복이며
선취란 뭐냐? 물어보니까 ‘행복’이다 했네요. 그러니까 불자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불자는 행복해야 된다.
그 행복이 쌓이고 쌓여 점점 더 커져서 이제 나만 행복한 게 아니라 동체대비(생명을 가진 존재는 전부다 행복했으면 좋겠네), 무연대자(나와 인연이 없는 중생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네)의 마음을 자꾸 키워나가는 거예요.
‘법안 스님은 육식 같은 거 안 해’하니까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한다는데
나는 우주를 다 줘도 육식 안한다니까요. 내 살 내가 먹는 느낌을 갖는데 그걸 왜 먹어요 그죠? 그리고 그 아픔이 와닿는데 어떻게 먹어요.
얼마 전에 어떤 법우가 자라는 애기들이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먹게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까페에 질문을 올렸더라구요. 자라는 애기들이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해주자니 그렇고 안해주기도 그렇고 고민이 자연스럽게 되지요?
저도 누가 저 건강하라고 꿀을 갖다줬는데, 내가 안 먹는 꿀을 남들한테 줘도 될지 독약을 주는 기분이어서 엄청시리 고민하다가 너는 아직 거기까지 안갔으니 먹어라 하고 줬어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좋아하는 꿀을 주더라도 내가 나한테 안맞는걸 주니까 독약 인데 독약인데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불자들이 갑자기, 스님 제가 아파요 하면 ‘너 뭘 먹는데? 비린내 난다?’ 하면 친정 어머니가 딸 건강하라고 염소 무슨 액기스를 해와서 먹었다는 거예요. 3봉지 먹었는데 죽어도 못먹겠어요 옆집에 줄까요? 그러길래 아니 옆에 사람 죽으라고? 너 건강에 안 좋은 걸 옆에 사람 어떻게 줘? 갖다 버려야지. 그 얘기를 해주고 막상 제 경우가 되니 꿀을 옆에 사람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고민 많이 했어요.
최고선이란 해탈이니 그 성취를 요약하면 신심과 지혜라네
구체적으로 그러면 행복을 뭘로 얻을 수 있어? 하고 용수보살께서 자문자답을 하신 거예요. 여기서 말한 신심은 5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을 말하는 것이며 5바라밀을 통해 지혜로 접근한다.
신심은 ‘방편’이라고도 표현해요.
방편(=신심)이란 내가 뭘 수훨하게 하는 수단 이런 뜻이 아니고 상대방을 속이고 얼르고 뺨치고 하는 게 아니고 지혜로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말한다. 중국말로는 편리가 방편 이예요. 여러분들이 지혜롭게 사는 데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신심(=방편)이란 말 이예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이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 신심과 지혜가 꼭 필요하다. 신심을 통해서 지혜로 접근한다.
많은 분들이 입만 열면 나는 부처님을 믿습니다 하는데 하는 짓은 사기꾼이면 그것은 신심이 아니예요. 부처님을 욕보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간지옥에 갈 업을 짓는 거예요. 부처님 팔아서 도둑질하는 거예요. 이건 진짜 무서운 거예요. 부처님 팔아서. 지장경에 나오잖아 그죠?. 오무간지옥 아 지옥이 어디 있어? 하는데 그러니까 무식하면 모르는 거예요 그죠?
이 공간에 지금 스마트폰에 필요한 전파가 꽉 차 있어요. 여러분들은 인지를 못하지요. 스마트폰 켜서 통화할 때나 와이파이 할 때만 전파가 있다는 걸 아는 거예요. 스마트폰이라는 특수한 도구를 통해서 아는 거예요. 현재 이 공간에 그 전파가, 극초단파가 가득 차 있어요. 전혀 못느끼잖아 그죠?. 못 느낀다 말이예요.
인과가 어디 있어? 지옥이 어디 있어? 이 안에 다 있다니까요. 있는데 본인이 감지를 못하는 거예요. 전혀 인지를 못하는 거예요.
신심과 지혜가 꼭 필요해요.
신심을 견강부회(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어 자기 정당화를 시킴) 하면 안된다는 뜻이예요.
신심이 있어야만 법에 의지하고, 지혜를 갖춰야만 바르게 이해하니
이 두 가지 중에 핵심은 지혜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신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지혜만 있으면 돼. 그게 안된다는 거예요. 안된다는 거예요. 안돼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는 거예요. 신심이 있어야만 법에 의지하는 거예요. 부처님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고 승보에 의지하는 거예요.
‘어~ 심즉시불(내 마음이 부처) 무심무불(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어)
내 마음도 없고 부처도 없는데 무슨 신심이 필요해’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건 정확한 뜻을 몰라서 그래요. 심즉시불 무심무불도 그런 뜻이 아니예요. 이건 지혜가 최대로 발휘가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부처님이나 또 큰 도인들이 마지막 단계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우리 경계의 얘기가 아니란 말 이예요. 우리는 이에 앞서 신심을 갖춰야 된다! 신심을 갖춰야 된다!
신심을 갖추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요범사훈 얘기를 여러 번 했어요.
요범이란 분이 자기 아들에게 네 가지 교훈에 대해 글을 써 준 거예요.
아들아 니가 말이야 요런요런요런 때가 되면 요렇게 해야 돼. 하고 글을 써서 알려줬네요.
첫 번째. 입명지학(立命之學 - 내 운명에 대해서 아는 것)
두 번째. 허물을 고치는 것이다. 개과지법(改過之法)
오늘은 요 개과지법을 얘기를 하겠습니다.
과(過)는 허물 과라고도 하고 지나갈 과 라고도 해요. 허물, 과거 이것을 고치는 방법이예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허물을 고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네요.
첫 번째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
나의 이 행동이 자랑스러운 것인지 부끄러운 것인지. 그걸 먼저 알아야 돼요.그래야 내 허물을 고칠 것 아니예요 그죠? 과거를 고칠 것 아니예요? 똑같은 실수를 해가면서 정당화해 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 요고 요고는 부끄러운 짓이다. 아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다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두 번째는 두려움을 알아라.
이 일을 하게 되면 어떤어떤어떤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니까 두려운 일이네. 결과가 어떻게 되니까.
두려움이 없으면 설마 내가 걸리겠어? 하는데 걸려요 그죠? 설마가 사람 잡지요. 그런 부분에서 지금 한국은 좋은 세상이예요. 꼼짝마라 CCTV.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촘촘하게 박아놓은 나라 한국. 꼼짝마라예요. 여기서 두려움은 심리적 두려움을 말하는 거예요. 심리적 두려움. 그러면 두려움에 떨다가 자살해야 되느냐 그런게 아니고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라는 거예요.
부끄러움을 알고 두려움을 알도록 한방에 가장 쉽게 고치는 방법이 있어요.
오계(五戒).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중독성 있는 물질에 중독되지 않고. 이렇게 되면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쉽게 소멸할 수가 있어요. 굉장히 쉬운 거예요. 불교는 이렇게 단순해요. 간단해요.
여러분들이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 하지말고, 사음하지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중독성 있는 물질 장기적으로 하지 말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 운명들을 바꾸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 쉽네. 쉬운 거예요.
쉬운데 막상 하려고 해보면 인이 배겨서 잘 되지를 않아요. 인이 배겼다는건 습관이 되었다는 뜻이예요. 하다못해 담배를 끊으려고 해도 그게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습관이 제2의 천성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첫 번째 부끄러움을 알고
두 번째 두려워할 줄 알고
세 번째 허물을 고치는데 용감하라.
불교에서는 이 부분에 굉장히 철저하게 하는 처절한 방법이 있어요.
포살(布薩 - 같은 지역의 승려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행하는 의식. 이때는 설계(說戒)와 더불어 지나간 반 달 동안의 일을 반성하고 죄가 있으면 고백하고 참회한다)과 자자(自恣 - 하안거(夏安居)를 마칠 때 하는 행사. 같이 안거에 들었던 승려들이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승려들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한다)라 해서 두려운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부처님 당시에는 보름마다 자기가 드러내고 참회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나는 이런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하고 대중앞에서 발로참회(發露懺悔. 펼발자 노출할 노자 드러내서 참회한다)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똑같은 잘못 두 번 하기 쉽지 안잖아요.
그걸 이제 공산주의사회에서 자아비판으로 써먹었지요. 천주교에서는 가져가서 고해성사로 써먹었어요. 천주교에서 불교꺼 가장 많이 가져갔어요. 성당에 가보니까 우슬착지 합장향불(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바라보는 것.) 하대요? 그게 불교 예법이예요. 그리고 깃발 꽂는 것은 무속에서 가져갔어요. 그죠? 좋은 건 다 가져갔어요. 고해성사는 발로참회 포살과 자자인데 오늘날은 잘 않죠. 한국에 가끔 하는 데가 있더라구요.
부끄러움을 알라. 두려운 줄 알라. 허물을 고치는데 용감해라. 이 세 가지를 먼저 아는 게 개과지법(잘못된 부분들을 고침) 하는데 아주 중요해요. 이제 고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요.
첫 번째로는 행동으로 고치는 거예요.
아 내가 행동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 됐으니까 고쳐야 되겠다. 고쳐지더라구요.
지금부터 한 20년전에 초파일 다음날에 어떤 분이 왔어요.
스님 저 좀 살려주세요. 술만 먹으면 20일 주기로 광기가 나온대요. 술 먹고 주로 부인을 두들겨 패는 거예요. 갈비뼈도 부러지고 코뼈도 부러지고해서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술 깨면 모른대. 미치는 거예요.
그래서 절에서 21일 3주간 같이 살았어요. 내 써빙 해가면서. 한번도 안해봤다는데 콩나물국도 잘 끓이고 반찬도 밥도 그렇게 잘하는 거예요. 전생에 절에서 살았던 것 같애.
집에서는 완전 폭군이예요. 옛날 조선시대에는 거안재미라 해서 남편의 밥상을 이렇게 눈썹에 밥상을 맞춰서 들고 공경하며 들고 가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 시대에 안태어난 것을 다행인 줄 아셔야 돼. 그 때 부려먹어서 지금 남자들이 쌔빠지게 일하는 경우들 많아요 그죠? 부인들은 분위기 좋은 강변 까페 가고 분위기 좋은 데서 밥 먹고 살 뺀다고 돌아다니고 남편들은 직장가서 죽으라고 일하고, 그때 그 업 받는다고 그러는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행동으로 고치는 거예요.
술을 끊어야 되잖아. 술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절에서는 당연히 술이 없으니까 끊지요.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는 구절을 화장실에 써놨는데 그걸 보고서 이 분이 크게 깨달아서 술을 끊었어요. 술도 끊고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행동으로 끊는 거예요. 어떻게 끊었냐 하면 ‘술을 보면 돌아선다. 술을 보면 돌아선다.’ 그 주문을 하루에 천 번씩 했어요. 우리 시골에 가면 소곡주라고 하는 유명한 술이 있는데 한 병 사서 ‘이리 와 대게 좋은 술이야’했는데 딱 보더니 ‘술을 보면 돌아선다’ 10미터 전에 돌아서는 거예요. 재 보면 10미터예요. 술 병 있는데는 10미터 안으로 접근을 안하는 거예요.
행동으로, 행동을 통해서 고치는 거예요. 술병만 보면 10미터 안으로 절대 접근을 안하니까요. 자동이예요 자동. 무슨 레이져 측정기가 있나 봐요. 딱 끊었어요. 행동으로 고친다.
두 번째. 이치를 통해서 고친다.
이치로 생각해봐서.
이분이 집에 가면 폭군이예요. 그때만 해도 자녀들이 어리니까 맞짱도 못 뜨고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거예요. 밖에 나가면 어 박선생 너무 좋아. 하는데 집에만 가면 헷가닥 해서 완전히 집이 살벌해지고 지옥이 되어버리는 거예요.이 때도 주문을 만들어서 ‘내 가족이 최우선이다’ 내 가족이 최우선이다. 이 생각을 하루에 천 번씩 하니까 가족한테 잘 해줘야 되겠지. 이치로 ‘가족한테 잘해야 돼’ 이치로. 이치로 허물을 고친 거예요. 이분 너무 멋진 거예요.
세 번째 가슴과 마음으로 고치기.
부부가 젊어서는 서로 사랑으로 사는데 늙어서는 안타까워서 산대. 그지? 그런 노래 있었잖아.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졌지 그지? 세월이 그렇게 가는 거니까 그래서 서로 안타까워서 산대.
가슴과 마음으로 고치기까지 가야지. 가슴과 마음으로 고치기 까지 하게 되면 전부 다 사랑스러워 그지? 살면서 때로는 한대 딱 때리고 싶은 때가 왜 없겠어요? 그런데 안타깝다.
慈사랑자 悲슬플비 인데 자(慈) 보다 비(悲)가 더 높은 사랑이예요.
자는 사랑이고 비는 요즘 표현으로 무조건적 사랑이예요.
동체대비(同體大悲) 얼마나 사랑스러우냐 하면 자기 몸과 똑같이 생각하는 거예요. 중생은 자기 몸보다 더 사랑스러운 게 없잖아요. 때로 못생겼다고 여기저기 견적 받기도 하지만 어쨌건 간에 자기 몸보다 더 예쁜 건 없잖아요. 그래서 동체대비. 한 몸이라고 생각하고.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사랑을 쏟는 거예요. 그죠? 그때의 사랑을 비(悲)로 쓰는 거예요.
중국 정토종 조사들이 제일 힘든 게 남의 살에 입맛 들인거라고 되어있는데 안힘들더라구요. 어느 날 내 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 아픔이 와닿으니까 맛이 어디 있어 그지? 천리만리 떨어져 나가지.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가슴과 마음으로 고치기.
신심을 갖추는 두 번째 방법은 허물을 고치는 것이다.
허물을 고친 공덕은 뭐냐? 지성합천(至誠合天) 그랬네요. 그죠.
진실하고 정직할 때 마음과 하늘의 뜻이 합치된다.
여기서 하늘은 인과응보라는 뜻이예요. 그때부터(지성합천이 되면)는 내가 마음먹고 뜻하는 대로 전부 다 이루어진다는 뜻이예요. 지성합천. 지극한 정성으로 인과에, 인과중에서 삼선도(삼선취)에 합치된다.
신심이 있어야만 법에 의지하고 지혜를 갖춰야만 바르게 이해하니
이 두 가지 중에 핵심은 지혜이다.
핵심은 지혜가 맞다. 그러나 이에 앞서 신심이 필요하다.
욕망 증오 두려움과 어리석음으로
욕망 증오 두려움 어리석음은 번뇌를 말하지요
법을 거스르지 않는 자를 신심있는 자라 하며 해탈의 최상 법계라 하네.
우리가 번뇌(욕망, 증오, 두려움, 어리석음)로 부터 지면 안돼요.그죠? 허물, 허물이 뭐냐하면 욕망, 증오, 두려움, 어리석음인데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이렇게 표현해요. 행동, 이치, 가슴과 마음으로 이긴다. 법을 거스르지 않는 자를 신심 있는 자라고 한다.
나쁜 짓 다 해가면서 말로만 매일부처님 찾는 건 신심이 아니다.
욕망이 허물이라니까 내가 잘살고 싶은 뜻이 없어야한다. 그런 거 절대 아니예요. 그런거 말하는것 아니예요. 허욕, 쓸데없는 욕망을 말하는 거예요. 세상을 다 갖고 싶은 거. 안가져지잖아. 안가져져.
그러니까 번뇌(탐심. 분노. 무지. 교만. 의심. 사견)의 어리석음으로 부터 부처님 말씀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자꾸 신심(5바라밀)쪽으로 가는 거예요. 처음부터 안돼요. 저도 안돼요. 안되는데 하려고 노력을 하는 거예요. 지속적으로 노력하다 보니까 하나씩 하나씩 나를 끌고 가는 업의 줄, 한아름도 더 되는 업의 동아줄이 원샷에는 잘라지지 않으니까 하나씩하나씩 뜯어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굉장히 약화가 된 거예요.
그래서
번뇌로 법을 거스르지 않는 자를 신심이 있는 자라고 하며 해탈의 최상 법계가 되네.
언젠가 여러분이 윤회의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아! 다음 생은 어떡하지? 그런데 다음 생이야 여러분들 지장경 읽었으니까 도리천에 갔다 오겠죠. 당연히 오는데, 문제는 여러분 가족들 중에서 지장보살님을 모르는 분이 있으면 문제가 되잖아.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미국에 있는 신증법사가 아들 셋하고 부인하고 어디 외출갔다가 다음 생에 우리 다섯이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했다고 글 올렸더라구요. 여러분들은 그 생각 안해보세요?
저는 둘째가 다음 생 엄마 아빠 못 만나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하고 불교 서적 열심히 읽는 거예요. 다음 생에 못 만나면 어떡해? 얼마 전에 세째가 또 그러는 거예요. 다음 생에 엄마 아빠 못 만나면 어떡해? 그 생각을 해보니까 지금은 이렇게 부모 자식으로, 부부로 만나 더없이 친하고 고맙고한 존재인데 서로 업이 다르면 어디로 가서 어떻게 태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사는 거예요. 다음 생에 이 조합이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생각하니까 어~ 이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지장경에 나오는대로 아무리 가까운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업이 다르면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거예요. 알지 못하는 거예요.
열심히 번뇌(탐진치만의)를 줄이고 법에 의지하는 것을 신심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좋은 기회에, 또 지장보살님 원력을 만났을 때 정말 확실하게 구원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돼요.
그래서
<몸과 말과 생각의 행위 모두를 잘 살펴 나와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라. 항상 실천하는 그는 현명한 자라네>
신심있고 현명한 불자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미타불
그리고 여러분 사랑합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
저힘화 법우님의 재능 기부에 감사드립니다,
법안스님의 귀중한 법문을 복습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운명은 존재하고 너무나 무섭게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기에
무서움을 느끼게 되지요,
불법승에 귀의하는데 아는만큼 보이기에
열심히 공부하여
안락한 안심정사 불자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어요,
부처님 복 많이 받으세요,
아미타불
잘 읽었습니다.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