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에서 예수의 정체
― “그대들은 나를 빗대어 내가 누구와 같은지 내게 말해보라” (GTh 13:1-8)
문우일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연구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xo5Smuqw6_o
도마복음 (GTh 13:1-8) 선행 연구
이 단원에서는 도마복음의 원어와 출처에 관한 최근 학계 동향을 간략히 소개함으로써, GTh 13을 필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도마복음의 원어와 출처에 관하여는 1세기 중반에 팔레스타인 아람어로 쓰였다는 가설부터 3세기에 적그리스도 마니의 제자 도마가 시리아어로 썼다는 가설까지 다양하지만, 마니는 3세기 중후반에 활동했으므로 개더콜(Simon Gathercole)의 지적대로 그 제자 도마가 도마복음을 썼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2세기 교부들의 도마복음 언급과 AD 2-3세기로 추정되는 옥시린쿠스 그리스어 파편들(P.Oxy.1, 654, 655)의 발견으로 인해 도마복음은 늦어도 2세기 말에는 이집트 지역에 널리 유포되었고 그 이전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른 가설 주창자들 가운데 퀘스터(Helmut Köster)와 크로싼(John D. Crossan)은 도마복음과 가설적 ‘Q 복음서’가 예수 어록을 30%나 공유한다면서, 그 두 복음서들이 정경 복음서들보다 먼저 쓰였다고 주장하는 한편, 중도적 편집·확장설을 취하는 퀴스펠(Gilles Quispel)은 도마복음이 《이집트인들의 복음서》(Gospel of the Egyptians)에서 유래한 늦은 부분과, 공관복음과 유사한 이른 부분이 결합된 것이라고 봅니다.
퀴스펠은 도마복음의 이른 부분이 1세기 중후반에 “아람어로 기록된 유대-기독교 복음서”, 소위 《히브리인들의 복음서》(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에서 시작되었고, 이것을 2세기에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 AD 150-215년경)와 오리게네스(AD 185-253년경)가 언급했으며, 이 아람어 복음서가 그리스어와 콥틱어로 번역되고 확장되어 2세기 중후반에 시리아 지역에서 최종 편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유사하게 기요몽(A. Guillaumont)도 도마복음이 팔레스타인의 아람어로 기록되기 시작하여 그리스어, 콥트어, 시리아어 등으로 점차 번역되고 확장되었으리라 추측했으며, 드코닉(April D. DeConick)도 도마복음이 1세기 중엽에 아람어로 기록되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고, 다시 그리스어에서 콥트어로 번역되었다고 보았는데, 드코닉은 클레멘스가 도마복음을 알았고, 힙폴리투스(Hippolytus of Rome, AD 170-235년경)가 인용한 도마복음은 초기가 아닌 중기 단계의 본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람어 가설들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아람어 도마복음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이 가설들이 의존하는 가장 이른 입증 자료들이 모두 2-3세기 알렉산드리아 교부들의 글이라는 데 있으며, 또한 도마복음의 이른 저작설을 취하는 이들이 대개 도마복음 어록들의 무작위적 배열이 아람어 예수 어록의 원시적 수집 형태를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페린(Nicholas Perrin)은 도마복음은 무작위적으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269개의 연상어들(catchwords)로 주도면밀하게 짜인 175년 이후의 저작물로서, 타티안(Tatian the Syrian, AD 120-180년경)의 시리아어 《디아테사론》(diatessarōn)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고 주장하며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하지만 개더콜은 아람어설과 시리아설을 모두 반박하며 그리스어 기원설을 제안했는데, 먼저 개더콜은 드코닉이 제시한 도마복음의 셈어적 요소가 아람어 유래를 입증할 정도는 아니며 주로 “성서 관용어(biblical idiom), 70인역 특유의 표현들(Septuagintalisms), 다양한 언어들 속에 유입된 유대 관용어(Jewish idiom)”에 기인한다고 바르게 지적했으며, 또한 개더콜은 페린의 연상어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도마복음의 디아테사론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다음과 같이 그리스어 기원설의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①옥시린쿠스 그리스어 파편들(P.Oxy.1, 654, 655)에 상응하는 낙함마디 콥트어 본문들은 27개의 그리스어 음역어들(transliterations)을 포함하는데, 그 가운데 24개가 옥시린쿠스 파편들의 그리스어와 완전히 일치하여 콥트어 도마복음이 그리스어 ‘저본’(Vorlage)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②콥트어 도마복음에 그리스어 차용어들과 관용어들이 밀도 높게 나타나며 (예: ⲙⲉⲛ... ⲇⲉ..., ⲇⲓⲁ ⲧⲟⲩⲧⲟ, ⲕⲁⲕⲟⲛ, ⲁⲅⲁⲑⲟⲛ, ⲡⲟⲛⲏⲣⲟⲛ, ⲧⲁⲗⲁⲓⲡⲱⲣⲟⲛ 등).
③현존하는 도마복음 사본은 필체가 서로 다른 그리스어 파편 셋과 콥트어 하나뿐이므로 그리스어 사본의 수가 콥트어 사본보다 많고 도마복음을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4세기 이전까지의 자료들이 모두 그리스어 저작물들이기에 도마복음이 그리스어 문화권에서 생산되어 유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④2세기까지 복음서들 대부분은 그리스어로 저술되었고,
⑤NHC II.1-7은 모두 그리스어 저본에서 번역된 듯한 문체로 되어 있으며,
⑥도마복음 그리스어 파편들과 공관복음서들은 공통적으로 1세기 이전 문헌이 좀처럼 사용하지 않은 용어들, 예컨대, διαβλέπειν과 κάρφος 같은 용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개더콜은 그리스어 도마복음 그리스어 파편들(L. 2, 4, 5, 26)을 《히브리인들의 복음서》 및 공관복음들과 대조하며 이들이 사용한 그리스어가 얼마나 유사한지를 입증했습니다.
한편, 개더콜은 도마복음의 시리아 출처설과 이집트 출처설을 모두 부정하면서도 데한트슈터(B. Dehandschutter)의 이집트 출처설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는데, 데한트슈터는 도마복음의 그리스어 파편들과 콥트어 사본이 모두 이집트에서 발견된 사실을 이집트 출처설의 주요 단서로 보았으나, 개더콜은 그 파편들과 사본이 이집트에서 발견된 까닭은 오로지 이집트 날씨가 문서 보관에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러나 미로쉬니코프(Ivan Miroshnikov)는 도마복음의 “다중언어성”(polyglot)을 인정하면서도 도마복음이 “중-플라톤주의라는 방언(dialect)”을 구사한다는 패터슨(Stephen J. Patterson)의 통찰을 상기시키며, 중-플라톤의 형이상학,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의 형이상학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도마복음 기록 시기를 1세기 말부터 3세기 초 사이로 광범위하게 배정한 뒤, 도마복음은 그 기록 시기와 무관하게 전체 어록의 최소한 1/6이 플라톤 사상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며 플라톤적 형이상학이야말로 도마복음의 “주석학적 난제”를 풀기 위한 “열쇠”라는 것입니다.
리트와(M. David Litwa)는 패터슨과 미로쉬니코프가 제기한 도마복음의 플라톤적 요소들을 인정하는 한편, 보다 구체적으로 알렉산드리아 출처설을 소환하며, 그리스어 도마복음의 최초 인용자가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AD 117-138년경에 활동; Clemens, Strom. 7.17.106-107) 또는 그 추종자들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이집트 옥시린쿠스에서 파편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리스어 도마복음이 2세기 중후반부터 이집트 지역에서 사용되었음을 암시하고,
②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카시아누스(Julius Cassianus, AD 150-180년경에 활동)가 인용한 《이집트인들의 복음서》 일부를 보도하는데(Strom. 3.13.92.2), 2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에서 작성된 이 복음서는 도마복음 L.61처럼 ‘살로메’를 언급하고, 도마복음 L.22 및 37처럼, 둘이 하나 되기, 옷 벗기, 성별 초월하기 등의 주제를 다루며, 또한 오리게네스는 살로메가 알렉산드리아 카르포크라테스파의 권위자였다고 증언하고(Origen, Cels. 5.62),
③클레멘스가 전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카시아누스의 글에는(Strom. 3.13.93; 3.15.98), 도마복음(NHC II.2) L.114 및 L.27과 유사하고 P.Oxy.1.5-6 및 P.Oxy. 5575와도 유사한 내용이 있으며,
④《진리의 증언》(NHC IX 3 The Testimony of Truth)은 생식기, 바실리데스와 그의 적자 이시도루스, 발렌티누스 가르침, 요단강을 올라가는 나아센 전승 등 알렉산드리아 고유의 전승이 나오고, 《진리의 증언》은 도마복음과 “내면을 외면처럼”(GTh 22; Clemens 2.12.2); “찾는 자는 찾을 때까지 멈추지 말라”(GTh 2) 등의 내용을 공유하며,
⑤GTh 23은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의 말이라고 이레니우스(Irenaeus, AD 125-202년경)가 증언하고(Haer. 1.24.6; 참조 Clemens, Strom. 4.26.165.3),
⑥《이집트인들의 복음서》를 언급하는 클레멘스의 《테오도투스 발췌문》(Excerpts from Theodotus)은 발렌티누스 시대(AD 160-190년경)의 알렉산드리아 특유의 전승을 보도하고, 이 작품은 GTh 114의 막달라 마리아를 성모 마리아로 치환하며(Clemens, Exc. 21.3, 79; 67.2),
⑦알렉산드리아인 나아센 설교자의 《모든 이단에 대한 반박》(Refutation of All Heresies)은 도마복음을 인용하는데(GTh 1-4, 29.2, 33; Ref. 5.6-10; Clemens, Strom. 3.6.45; 3.9.63), 나아센 설교자의 아가토스 다이몬, 창조자 헤르메스, ‘힘’으로서의 지상적 아담 개념, 기독교적 윤회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리트와는 《투사 도마서》가 도마복음을 사용한 2세기 후반 작품임을 소개하며, 《투사 도마서》에 나오는 ‘마티아스의 비밀의 말씀’ 주제는 바실리데스의 적자 이시도루스와 연관이 있고(BTh 2.7.138; Clemens, Strom. 7.18.108; Ref. 7.20.1), ‘투사’ (ⲁⲑⲗⲏⲧⲏⲥ)는 필론이 야곱을 가리킨 용어로서, 《투사 도마서》는 도마를 필론적 ‘투사’로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리트와의 연구는 현재까지 밝혀진 도마복음의 최초 수용자가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였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도마복음이 이집트인들의 복음서, 히브리인들의 복음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등과 연관이 있음을 입증할 뿐, 도마복음의 원어와 출처에 관하여 확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리게네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알렉산드리아 전통이 가이사랴로 전파되고 다시 거기에 팔레스타인의 전승이 더해져 로마나 시리아로 재확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느 지역보다 특별히 이집트 지역에서 도마복음 관련 자료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도마복음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알렉산드리아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높여주며, 이를 토대로 도마복음 GTh 13을 해석하기를 시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