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투어 | 청송] 청송, 자연을 노래하다

[이장희]

외씨버선길, 객주문학관, 야송미술관, 주산지 등 답사

청송백학수무분(靑松白鶴雖無分)

푸른 솔에 흰 학은 연분이 없고

벽수단산신유연(碧水丹山信有緣)

푸른 물과 붉은 산은 과연 인연이 있네

- 퇴계 선생의 ‘청송백학시’

원했던 청송부사가 아닌 단양군수로 가게 된  퇴계 선생은 그 청송앓이의 아쉬움을 시를 지어 달랬다. 대학자 퇴계 선생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만큼 청송은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빼어나 많은 선비들이 ‘동쪽에 있는 신선세계’로 여기며 흠모하던 땅이었다. ‘신선이 사는 세계’란 달리 말하면 사람 살기엔 그리 좋은 곳이 못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청송은  산림이 전체 면적의 80%가 넘는 산간 오지 중의 오지다. 오죽하면 찾아갈 땐 너무 힘들어서 울고 떠나올 땐 너무 정이 들어 운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 청송읍 용전천에 설치된 섶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이 다리는 통나무를 엮은 후 그 위를 흙으로 덮은 길이 80m, 폭 120cm의 전형적인 옛 섶다리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옛 이야기일 뿐,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든 지금은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은 도회지 삶에 지친 사람들이 꿈꾸는 휴식처이자 이상향이다. 그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가 청송이다. 솔향기 은은한 푸른 숲길을 거니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청송으로 내닫는다.

아침 7시, 30여 명의 팸투어 일행을 태우고 서울 교대역을 출발한 버스가 청송읍내 소헌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경이었다. 냇가 둔치엔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고 고요히 흐르는 냇물은 은빛 햇살을 받아 윤슬이 반짝였다. 청송읍 한가운데에 자리한 소헌공원은 조선조 세종 10년에 처음 지은 청송도호부 객사였던 운봉관과 찬경루 일대를 정비해 조성한 공원으로 군민을 대상으로 공모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옛날 손님을 맞아 연회를 베풀던 객사 앞엔 고색창연한 찬경루가 말없이 용전천을 굽어보고 있다. 찬경루는 청송 심씨의 시조묘를 바라보며 조상을 찬미하고자 세운 16칸짜리 2층 누각이다. 세종의 비로 조선 최고의 왕비로 칭송 받는 소헌왕후를 비롯해 4명의 왕비와 13명의 정승을 배출한 청송 심씨는 조선의 명문가로 꼽힌다. 소헌왕후가 51세로 생을 마감하자 안평대군은 외가인 청송을 찾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물에 비친 기암절벽을 현비암이라 칭하고 시조묘가 바라보이는 곳에 찬경루를 세웠다.

▲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가 낳은 왕자 8형제가 외가인 청송 심씨 시조를 위해 지은 찬경루./ 수달생태공원 입구, 옹기 조각을 일일이 붙여 만든 외씨버선 조형물.

다리가 없던 옛날에 물이 불어 내를 건널 수 없을 때에는 건너편 묘를 바라보며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고 한다.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현비암 위쪽으로 놓인 섶다리가 가을볕 아래 졸고 있다. 해설사의 이야기로는 해마다 장마철을 피해 섶다리를 놓는데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라 걸어서 건너편에 있는 보건의료원을 오가는 노인들에게 유용한 다리라고 한다.

섶다리를 건너보고 5일장이 선 청송장터를 돌아보았다. 예전만큼의 흥청거림은 없어도 작은 규모에 비하면 싱싱한 해산물이며 사과·고추 등 있을 건 다 있는 시골장터의 풍경은 여전하다. 직접 농사지은 농작물을 가져와 좌판을 펴고 앉은 시골 할머니들의 구수한 사투리도 정겹다.

외씨버선길 핵심 명소와 경관지 순례

점심을 먹은 뒤엔 외씨버선길 둘째길인 슬로시티길을 따라 걸었다. 외씨버선길은 청송에서 영양과 봉화를 거쳐 강원도 영월까지 이어진 13구간 총 길이 200km에 달하는 길이다. 조지훈이 쓴 ‘승무’의 한 구절인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에서 따왔다는 외씨버선길 청송 구간은 모두 3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길(18.5km)은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운봉관에 이르는 ‘주왕산 달기약수탕길’이고, 둘째길(11.5km)은 운봉관에서 신기리 느티나무에 이르는 ‘슬로시티길’, 그리고 셋째길(15.6km)은 신기리 느티나무에서 진보면 고현지에 이르는 ‘김주영 객주길’이다.

▲ 심청(沈淸) 선생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지어준 벽절정.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취가 아름답다

운봉관을 출발해 천변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니 도자기로 빚어 놓은 외씨버선 조형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그 옆엔 조지훈의 ‘승무’가 적힌 시비가 서 있다. 수달생태공원이란 이름이 붙은 조붓한 강변산책로엔 붉은 산수유 열매와 노란 산국이 그윽한 향기를 풀어놓아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20, 30분쯤 걸었을까. 우리는 강을 버리고 절벽 위 노송 사이로 보이는 벽절정을 바라보며 비탈진 길을 올랐다. 벽절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한 의병장 벽절 심청을 기려 세운 정자다.

벽절정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난 뒤 송림이 우거진 작은 동산을 넘어 청송 심씨의 본향이라 하는 덕천리로 들어섰다. 덕천마을엔 조선 영조 때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에 세운 99칸 집인 송소고택이 있다. 지금은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해 평일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송소고택 옆에는 송정고택도 있다.

덕천리 심부자댁은 고려 말 이성계를 도와 건국공신이 된 형 심덕부와는 달리, 역성혁명에 반대해 두문동에 은거한 동생 심원부의 후손이다. 송소고택 안에는 형태가 특이한 나지막한 ‘헛담’이 있는데 이 헛담은 사랑채의 남정네들이 안채로 드나들던 아녀자를 볼 수 없도록 여자들을 배려한 장치였다. 뿐만 아니라 꽃담엔 안채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구멍을 뚫어놓았는데, 안주인들은 이곳을 통해 손님 접대할 채비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또한 아녀자들이 바깥세상을 보는 창의 기능도 했다.

송소고택을 안내해 준 해설사 김경희씨는 청송 심씨가 대를 이어온 비밀을 알려 주겠다며 굴뚝이 서 있는 사랑채 뒤쪽의 쪽마루를 가리켰다. 그 쪽마루는 점잖은 양반이 하인들의 눈을 피해 부부 금슬을 이어갈 수 있었던 ‘러브로드’였다는 것이었다.

송소고택을 나와 버스를 타고 객주문학관을 찾았다. 폐교된 진보제일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객주문학관은 연면적 4,640㎡의 3층 건물로 한국문단의 거목이자 청송이 낳은 대표적인 작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소재로 2014년 6월 10일 개관했다. 소설 객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객주전시관을 비롯해 소설도서관, 스페이스객주(기획전시실), 영상교육실, 창작스튜디오, 여송헌(작가집필실), 연수시설(객실), 세미나실,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다.

▲ 주왕산 용추폭포(제1폭포) 옆을 지나는 등산객들.

문학관 이름을 작가의 이름이 아닌 ‘객주’로 한 것은 특정 인물이나 작품에 대한 자료 수집도 중요하지만 ‘객주’가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활동상이나 상업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듯, 우리 상업사와 관련한 어떤 것이든 이곳에서 전시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라고 했다.

마침 문학관에선 이재효 조각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다양한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폐교로 방치되었던 건물이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태어나 청송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문학관을 빠져나와 찾아간 곳은 야송미술관이다. 신촌약수탕 근처에 있는 청송야송미술관은 청송이 고향인 동양화가 야송 이원좌 선생의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량대운도’를 비롯해 서울 정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린 ‘주왕운수도’,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그린 ‘무릉하운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폐교된 신촌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2004년에 문을 연 청송야송미술관은 대전시실, 중전시실, 소전시실, 미술도서관, 수장고, 작업실 등을 갖추고 운동장이었던 야외 공간은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야송 이원좌 선생은 초등학교 때까지 파천면에 살고 고향을 떠났다가 미술관 건립과 함께 43년 만에 귀향해 관장으로 있다.

야송미술관에서 단연 으뜸은 ‘청량대운도’다. 작품 크기가 가로 46m, 세로 7m로 일반 산수화와는 비교가 안 되는 장대한 스케일의 초거대작이다. 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실경산수화인데 멀찌감치 서서 바라봐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청량대운도는 봉화군에 있는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실경산수화로 ‘서울 천도 600주년’(1994년)을 기념해 1992년 4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약 180일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한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대형 작품으로 평가됐지만 작품 크기 때문에 변변한 전시조차 못한 채 20년 넘게 수장고에 머물다가 2012년 청량대운도전시관이 건립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야송 이원좌 화백의 필생의 역작이다.

▲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의 암봉. /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지는 대전사의 돌계단.

야송미술관의 감동을 뒤로하고 미술관을 나왔을 땐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고 있었다. 청송의 달기약수가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게 신촌약수다. 같은 탄산수로 고혈압, 당뇨, 위장병에 좋은 탄산약수로 인근의 음식점들은 이 약수를 이용해 대표적인 메뉴인 닭백숙을 만들었다.

이 화백과 함께 가까운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녹두를 듬뿍 넣은 닭백숙과 닭불고기로 저녁을 먹었다. 떡갈비와 흡사한 닭불고기는 뼈를 발라낸 닭가슴살을 다져 갖은 양념을 넣고 반죽해 넓게 펴서 석쇠에 구워내어 담백하다.

식사 후엔 주왕산 입구의 펜션 ‘탄해와 로라’에서 청송의 밤을 맞이했다. 버스에서 내려 펜션으로 가며 바라본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 주인장이 내어 주는 원두커피의 그윽한 향에 취해 맞이한 청송의 밤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왕버들의 주산지와 전설의 주왕산 답사

팸투어 둘째날은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고요와 원시의 풍경을 간직한 주산지 주변 산세의 고운 단풍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관을 만나려는 것이다. 펜션을 나서니 길을 가로막는 짙은 안개 때문에 차가 거북이걸음을 한다. 마음이 먼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인 주산지로 내달았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1720년) 8월에 착공해 이듬해에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다. 길이 100m, 너비 50m, 평균 수심 7.8m의 작은 산중호수는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는 농민들이 믿고 의지하던 저수지였다.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한적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 준다.

▲ 형형색색의 단풍에 물안개가 일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주산지.

주산지의 가장 아름다운 배경은 물에 반쯤 잠긴 채 자생하고 있는 왕버들이다. 국내 30여 종의 버드나무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왕버들은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하는 대신 아예 호숫가를 비롯한 물 많은 곳을 택해 다른 나무보다 빠르게 성장한 뒤 수백 년을 유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허위허위 가쁜 숨 몰아쉬며 찾아간 주산지엔 왕버들의 멋스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스무 그루 남짓 하던 왕버들도 이젠 단 몇 그루만 남아 옛날의 영화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아쉬운 마음에 이제 막 단풍물이 들기 시작한 산빛과 물안개를, 새벽녘의 고요를 밟고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아침식사 후엔 주왕산 트레킹에 나섰다. 주왕산은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제일의 명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돌로 병풍을 친듯하다 하여 석병산으로 불리기도 했던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의 하나로 꼽힌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품은 전설도 많게 마련이다. 주왕산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당나라 때 중국 동쪽에 있던 진나라에서 복야상서란 벼슬을 지낸 주의 팔대손 주도가 진나라를 회복하고자 수만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를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장안으로 쳐들어가다가 당나라 군사에게 패해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이 산으로 숨어들었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에 그를 잡아 줄 것을 청해 신라왕은 마일성 장군을 시켜 주도를 잡게 했다. 마일성 장군은 자기의 네 아우와 합세해 대군을 거느리고 석병산을 포위해서 주왕을 잡았고 주왕은 주왕굴에서 최후를 맞았다. 그후 나옹스님(서기 1320~1376년)이 이곳에서 수도하며 이 산을 주왕산이라 하여 지금에 이른다는 얘기다.

주왕산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천년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한 사찰과 아름다운 계곡, 폭포와 굴이 있으며, 주왕산(720m), 가메봉(882m) 등의 산봉우리가 있다. 대전사에서 용연폭포까지 이어지는 주왕계곡 코스는 청송 최고의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대전사 뒤편에 솟아 있는 기암(旗岩)을 비롯해 이곳 주방천 좌우로 도열해 있는 병풍바위,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의 기암괴봉과 어우러진 고운 단풍 숲길은 모퉁이를 돌 적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용추(龍湫)폭포(제1폭포), 절구폭포(제2폭포), 용연(龍淵)폭포(제3폭포)로 이어지는 폭포의 향연은 마음속의 속기를 깨끗이 씻어 주기에 충분하다.

▲ 청송 도예촌 옆의 민예촌에서는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주왕산 단풍과 폭포로 오감을 충전한 후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새로 문을 연 주왕산관광지를 찾았다. 단지에는 청송을 대표하는 백자와 꽃돌을 만나볼 수 있는 청송백자전시관과 수석·꽃돌박물관, 그리고 청송심수관도예전시관이 있다. 청송 꽃돌은 30여 년 전 폭우로 산사태가 나 신촌마을 개울을 덮쳤을 때, 굴러 떨어진 바위 중에 아름다운 꽃무늬가 박힌 암석이 발견되면서 탄생했다. 꽃무늬가 들어 있는 암석을 수없이 많은 공정과 연마를 거쳐 탄생하는 꽃돌은 국화, 매화, 모란, 해바라기 등 다양한 꽃 모양으로 자연을 품고 있어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발한다. 청송 꽃돌과 함께 수석계의 선구자 청강 남정락 선생이 평생을 모아 기증한 수석이 전시되어 있다.

심수관도예전시관에선 정유재란 때 남원성에서 일본으로 잡혀가 사쓰마 도기로 명성을 얻은 심수관가의 역사와 도자기를 만나볼 수 있다. 사쓰마(현 가고시마)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가 1598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 함께 끌고 간 80여 명의 조선 도공이 사쓰마에 뿌리를 내리면서 시작된 사쓰마 도자기는 심수관가가 있는 나에시로가와를 주산지로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416년간 선조들의 예술혼과 전통을 바탕으로 사쓰마도자기의 세계적 명성을 쌓은 12~15대까지의 심수관가 작품 ‘사군자무늬 대화병’ 외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심수관가는 정유재란(1598년) 당시 초대 심당길이 전북 남원에서 일본 사쓰마로 끌려간 이후 416년 동안 청송심씨(靑松沈氏) 성(姓)을 그대로 간직하며 12대 심수관부터 ‘심수관’으로 이름을 이어받아 민족혼과 예술적 자긍심을 지켜오고 있다. 특히 심수관가 도자기는 정교한 투각기법과 화려한 금채기법이 뛰어나다.

청송을 새롭게 발견하고 주왕산 단풍물 곱게 들던 시간

청송백자는 500여 년간 생성과 단절, 복원·전승을 이어 온 청송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도석(陶石)’을 빻아 만들어 눈처럼 아주 흰 빛깔로, 기물의 두께가 매우 얇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4대 민요(民窯) 중의 하나로 문경사기와 양대 산맥을 이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민생활도자기다.

▲ 송소고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청송 팸투어단.

현재 청송백자 기능보유자인 고만경 옹이 1944년(15세)부터 1958년까지 14년간 이곳에서 일해 온 청송사기의 산증인으로 2009년 청송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어 전승보존 활동에 마지막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청송백자전시관은 산간이라는 소박한 청송의 지역성을 담은 생활용 도자기인 ‘주병’ 외 4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해 놓았다. 청송의 청정원료만을 사용해 빚어낸 청송백자는 ‘밥맛 좋고 물맛 좋은 웰빙 도자기’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도예촌 옆의 민예촌은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정승댁, 참봉댁, 주막 등 한옥 8동에 28실을 갖춘 민예촌은 주왕산 관광단지 안에 있어 청송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다.

7대에 걸쳐 전통한지의 맥을 이어온 이자성 한지장의 청송전통한지를 찾아 전통한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한지체험을 하는 것으로 1박 2일 팸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객주를 쓴 길 위의 작가 김주영과 ‘청량대운도’를 그린 야송 이원좌 화백, 청송백자의 장인 고만경 옹, 그리고 이자성 한지장 같은 사람들이 청송을 더욱 청송답게 만들고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솔바람을 불어넣는 힘이 아닐까 싶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청송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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