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만나기전 고민이 많았다.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두고도 네티즌이 들끓을 만큼 아직 그의 연예 활동은 평탄치 않다.
오늘의 취중토크 손님은 ‘여자 최민수’란 별명을 갖고 있는 탤런트 이승연(38)이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고 남다른 카리스가 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듣던대로 호탕한 성격의 이승연은 똑부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 풍파를 겪으며 가슴앓이가 심했을 그의 속은 기자가 쉽게 측정하기 힘들었다.
“요즘은 정말 살맛 나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죠.” 시작무렵 그가 한 말은 취중토크가 끝날 때즘 이해가 됐다. 부침을 겪고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에겐 단맛이 한결 가치있게 느껴지는 법. 외모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이승연과의 술자리를 들여다보자.
● 집에서 폭탄주 만들어 홀짝
서울 압구정동 실내포차 ‘탱자탱자’. 자리에 앉자 술안주를 주문하던 이승연이 갑자기 죽을 시킨다. “매니저가 오늘 치아를 뽑았어요.그는 늘 이렇게 남을 챙긴다.
소주를 한잔씩 따르고 “반갑습니다~” 건배를 했다. 성격 때문에 ‘주당’처럼 보이지만 그가 마음먹고 마시는 술자리는 일년에 1~2번 정도란다.
“작정하고 마시면 작은 양주 한 병. 소주 한 병 반 정도예요. 그런데 술 자체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얼굴 빨개지고 심장뛰고 졸리고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게 싫고…. 특히 대리운전 시키는걸 싫어해 밖에서보다는 집에서 마셔요.”
드라마 회식 등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있을 경우엔 ‘마시는 척’으로 피해간다. 주당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도다.
“나랑 친한 사람들 빼고는 내가 술 잘 안마신다는 것을 몰라요. 다른 사람들 석 잔 들때 한 잔 정도 마시지만 다들 내가 석 잔을 다 마신 줄 알죠. ㅋㅋ”
일년에 한 두번 갑자기 술이 그리운 날 혼자 집에서 폭탄주를 든다. “술 못마시는 사람들은 소주보다 소맥이 편하잖아요.”
이승연을 두고 가끔 ‘여자 최민수’ ‘연예계 의리녀’란 얘길 한다. 최민수는 연예계에서 의리를 중시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형의 상징. 또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한 사람으로도 통한다.
유난히 의리를 중시하기로 소문난 이승연도 이런 별명에 대해 알고 있다. “음…잘 모르겠네. 칭찬인가요? 그런데 정말 여자 최민수는 이미연씨 아니에요?” 다시 소주잔을 짠 부딪히고 술을 넘겼다. 못마시는 술은 절대 아니다.
●나이 먹는게 행복해요
만나보니 도도한 이미지의 겉모습과 많이 달랐다. “꼿꼿해 보이는 외모때문에 늘 손해에요. 제가 얼마나 우스운데요?”
술 자리의 이승연은 개그 프로그램을 많이 본 듯 위트가 넘친다. “드라마 촬영때는 일찍가서 매일 기다려요. 그럼 스태프에게 ‘왜 이렇게 난 기다리게 하냐. 다음부터 이러면 또 일찍와서 기다릴게’라고 비겁하게 얘기해요.”
SBS TV <사랑과 야먕>에 출연 중이다. 그동안 화려한 배역을 주로 맡았지만 이번에는 후배 한고은을 돌보는 ‘선생님’으로 자리를 바꿨다. 나이 드는 것을 실감하며 서운한 마음이 생길만도 할텐데….
“정말 서운하지 않아요.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나이가 들고 싶었어요. 그럼 좀 마음이 안정되고 세상보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애늙은이 같았죠. (한)고은이나 예쁜 후배들을 보면 잘못된 선택하지 않고 힘든일 없이 잘 자라게 해주고 싶어요. 난 나이먹는게 행복한데 왜 다들 그런 얘길 물어볼까요?”
화려해보였던 그의 청춘에 대해 물었다. “아비규환이고 참 외로웠다.” 의외의 답이 잠시 정적을 만들었다. “내 청춘은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었죠. 일주일에 6시간 밖에 잘 수가 없었어요. 자야할 만큼 잘 수 없으니 힘들 수 밖에 없었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왜 날 좋아할까 고민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외형적인 것을 보고 좋아했으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하면 외로웠어요.” 소주를 한 잔씩 따라 원 샷!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더니 좀체 취기를 확인할 수 없다. 오늘도 기자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승연은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근무중이던 1992년 미스코리아 미로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친한 미용실 원장님 권유로 대회에 나갔어요. 연예인이 꼭 돼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승무원은 미인대회에 나가면 그만둬야 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직업으로 연예인을 택한 것 뿐이죠.”
●한번도 배신한 적 없어
그는 “지금이 살맛 나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비해 인기도. 수입도 많이 줄어들었다. “왜 좋냐구요? 못할 줄 알았던 일을 시작하게 됐잖아요. 그것만큼 좋은게 어딨어요? 일하기 싫다고 불만 많은 사람들도 못하는 상황이되면 불만이 없어질거에요.”
일을 쉬었던 얘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그간 겪었던 ‘사건’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그동안 부침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무엇이 그의 재기에 도움이 됐는지…. 사실 가장 궁금했지만 참 곤란한 질문이고 힘든 답변일 것 같아 미루고 있었던 참이다. 2004년 2월 터진 ‘위안부 화보 파문’은 연예인 이승연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앗아간. 그에게는 ‘재앙’이었다.
“나만큼 물의를 많이 일으킨 연예인도 없을 거에요. 제가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힘은 딱 하나에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용기죠. 전 분명히 잘못을 많이 했어요. 과정상 변명을 할 일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다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속상했지만 옛날을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을 때 그렇게 많이 사랑을 해주셨으니 지금 조금 억울한 것이 있더라도 더하기 빼기를 하면 제로가 되지 않겠나 생각을 했죠. 제로가 됐으니 지금부터 열심히 살면 된다는 생각을 했구요.”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에 의해 다치기도 하고 억울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는 남 탓을 하지 않았다. 일을 그르친 쪽을 고소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반대했다.
“예전에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배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드니 이젠 잘 당하지 않게 되네요. 하지만 전 지금껏 한번도 남을 배신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별로 결혼 하고 싶지 않아요. 마땅히 결혼할 사람도 없고요. 연애 할 때 결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 욕심을 낼때마다 이상하게 사랑이 잘 되질 않더군요. 깨달았죠. 결혼뿐 아니라 세상 일은 욕심을 낼때 어그러진다는 걸….”
연애를 하면 이승연은 자칭 ‘신사임당’이 된다. 끊임없이 잘해주고 싶어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는 스타일. “남자한테 맞추고 희생하다 보니까 오히려 실패도 많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결혼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아이를 키워보고 싶어요.”
입양에 관심이 많아 적극적으로 알아보기도 했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배우자와 협의해 입양 문제를 결정할 생각이다.
욕심을 내봐야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깨달은 이승연에겐 물론 미래에 대한 큰 욕심은 없다.
“돈을 얼마 벌어야겠다. 명예를 채우겠다는 욕심도 없어요. 연예인으로서 평생을 살아야겠다는 그런 욕심이나 확신도 없어요. 일을 하게 되면 열심히 하겠지만 연기를 평생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죠. 그냥 노년에 대한 생각이라면 넉넉해보이고 편안해보이는 할머니였으면 해요. 누구라도 배고프면 밥달라고 하고 밥한끼 편히 퍼줄 수 있는 사람이요.”
마지막으로 이승연과 건배를 하고 자리를 마감했다. 이승연은 취중토크 자리에 친한 언니동생을 불러 또 2차 자리를 가졌다. 대모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