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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꽃피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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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10대뉴스 1997년 국내 10대 뉴스
겨울비(오덕희) 추천 0 조회 129 14.08.13 11: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97년 국내 10대 뉴스  
월드컵 본선 4회 연속진출

그것은 경제추락과 정치혼란에 찌든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 청량제였다. 차범근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은 아시아 B조 최종예선을 6승1무1패(조1위)로 통과했다. 9월 28일 한-일 1차전에서 종료 7분을 남기고 서정원, 이민성이 동점-역전골을 터뜨린 '도쿄 역전드라마'는 한반도를 열광시켰다. 86, 90, 94년에 이어 4회 연속 본선 진출. 한국 축구사에 큰 획을 그었다.

간첩 고영복 교수 검거

서울대 고영복 명예교수가 36년간 북한의 고정간첩으로 암약한 것으로 밝혀져 구속됐다. '엘리트 간첩'을 양산, 혁명조직원으로 활용하려한 북한의 공작이 드러난 것이다. '부부간첩'조사과정에서 북한이 1970년대 중반 고교생 4명을 납치, '이남화(以南化)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한영씨 살해사건도 북한 전문테러요원이 남파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위기와 IMF가입

대한민국의 운명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은 사건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11월21일). 외화난에 쫓겨 IMF에 SOS를 구했고, IMF는 그 대가로 한국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개혁 조치를 요구했다. 부도의 벼랑끝에 몰린 한국정부는 금융불안, 기업도산, 대량실업 등 숱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이 밀어붙이는 개방압력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처지가 되었다.

재벌그룹 연쇄 부도

올들어 재벌 그룹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재벌은 영원하다'는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졌다. 1월말 도산한 한보그룹을 포함, 기아-한라-삼미-진로-해태-뉴코아 등 30대 재벌 중 무려 6개 그룹이 도산했다. 재벌들의 몰락은 모래 위에 성을 쌓은 수많은 재벌그룹들이 부도의 고비를 아슬하게 넘기며 지금도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보사건과 김현철 비리

1997년 1월 한보그룹 부도사태로 5조원에 이르는 특혜대출비리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여-야의 실세로 꼽히던 홍인길-권노갑 의원 등 정치인 5명과 은행장 3명이 구속됐다. 검찰은 '몸통을 밝히라'는 축소수사의혹에 떠밀려 재수사에 착수,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와 김기섭 전 안기부차장을 구속하고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을 소환 조사했다.

대한항공 괌추락 참사

1997년 8월 6일 새벽 2시30분 CNN을 통해 전해진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 소식은 전국을 비탄에 빠뜨렸다. 승객 2백54명중 2백29명이 사망(신원 미확인 1백2명 포함)하고 25명이 부상했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 사고를 계기로 국내외 항공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점검이 진행됐다. 이후 괌 여행객이 대폭줄어 현지 교민들의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 귀순

1997년 2월 12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북한 주체사상의 대부인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황장엽씨가 귀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황씨는 남북한과 중국간의 치열한 외교전 속에서 3월 18일 필리핀으로 간뒤 한달여만인 4월 20일 서울에 도착했다. 이 사건으로 북한 지배계층의 동요가 적지 않아 8월에는 장승길 이집트주재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

1997년 12월 18일 치러진 15대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총 유효투표 2천5백64만2천4백38표의 40.3%인 1천32만6천2백75표를 얻어 38.7%(9백93만5천7백18표)의 득표에 그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39만5백57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이는 사실상 사상 첫 선거를 통한 여-야간 정권교체로 평가된다. 김 당선자는 71, 87, 92년 세 차례 실패 후 자민련과 연합해 3전4기에 성공했다.

북한 식량난 속 권력 승계

1997년 10월 8일 북한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와 중앙군사위 추대로 노동당 총비서직을 승계함으로써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후 3년여동안 비정상적인 형태로 운요돼 온 북한 권력체계가 외형상 정상화됐다. 김정일 체제의 공식출범을 계기로 북한이 개혁-개방 노선을 취할 것인지가 관심이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는 가운데 악화되는 북한의 식량난이 계속 국제뉴스가 됐다.

전두환-노태우씨 사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997년 12월 22일 구속 2년여만에 석방됐다. 두 사람은 특별사면과 함께 복권까지 돼 정치활동 재개가 가능해졌다. 전-노씨는 추징금을 각각 1천8백93억원, 2천2백29억원을 미납한 상태이다. 전-노씨와 함께 12.12-5.18및 부정축재 사건 관련자 15명도 석방됐다. 그러나 전-노씨를 전직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특별사면한 것은 사회정의에 반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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