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5부 18
레빈은 차분하게 형을 바라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형 앞에서 자연스럽고 침착하게 굴 수도 없었다. 병자의 방에 들어설 때면 그의 시선과 주의력은 무의식중에 차단되어 형의 상태를 세세하게 살펴보지도, 분별하지도 못했다. 끔찍한 악취를 맡고 더러움과 난잡함, 고통스러운 상태와 신음을 목도하면서도 그것을 개선할 길은 없다고 느낄 뿐이었다. 병자가 어떻게 누워 있으며 이불 속에서 저 몸을 어떻게 구부리고 있는지, 저 여윈 정강이와 허벅지와 등허리는 어떻게 놓여 있는지, 어떻게든 더 편하게 놓일 수는 없는지, 더 좋아질 수 없다면 덜 나쁘게라도 할 수는 없는지, 병자의 상태를 세세하게 헤아릴 생각을 그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 모든 세세한 점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곤 했다. 그는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도,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의심할 바 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어떤 도움도 부루가능하다고 여기는 그의 의식이 병자에게도 전해져 그의 화를 돋우었다. 그로 인해 레빈은 더욱 힘들었다. 병자의 방에 있는 게 괴로웠고, 거기 있지 않는 건 더 괴로웠다. 그는 끊임없이 온갖 구실을 대면서 나갔다가, 혼자 있을 수가 없어 다시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키티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했다. 환자를 보면 그녀는 그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연민은 그것이 그녀의 남편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혐오의 감정과는 전혀 다르게, 몸을 움직여서 병자의 상태를 세세하게 알아보고 그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그녀의 여성적인 심성에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의심하지 않았으며, 주저 없이 그 일에 착수했다. 생각만으로도 그의 남편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세세한 점들이 곧바로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는 의사를 부르는가 하면 약국에 사람을 보냈고, 그곳에 데려온 하녀와 마리야 니꼴라예브나에게 먼지를 쓸고 닦도록 시켰으며, 자신 또한 이것저것을 씻거나 닦아 내고 이불 밑에 뭔가를 덧씌우 곤 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이런저런 것들을 병자의 방에 들이거나 내갔다. 그녀는 지나치며 마주치는 사람들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몸소 자기 방에 몇 번씩이나 들러서 면포나 베갯잇, 수건, 루바시까를 가져오곤 했다.
홀에서 기술자들에게 식사를 나르던 급사가 그녀의 호출을 받고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몇 차례나 다녀가곤 했는데,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끔 그녀가 너무나 상냥하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빈은 그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그런 처사가 병자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병자가 노여워할까봐 염려했다. 하지만 병자는 그런 처사에 무심한 듯 노여워하지 않았고, 다만 부끄러워할 뿐이었다. 그녀가 자기를 이해 하는 일들에 그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키티의 심부름으로 의사에게 다녀온 레빈은 방문을 열자마자 키티의 지시에 따라 병자의 속옷을 갈아입히는 장면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큼직한 견갑골과 갈비뼈와 추골이 불거져 나온 병자의 길고 하얀 등이 훤히 드러난 가운데, 마리야 니꼴라예브나와 급사가 늘어진 긴 팔을 루바시까의 소매에 제대로 넣지 못해 허둥거리고 있었다. 키티가 황급히 레빈의 뒤로 가서 문을 닫은 다음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나 병자가 신음하자 그녀는 잽싸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빨리 좀 입혀 드려요.” 그녀가 말했다.
“오지 말아요.” 병자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뇌까렸다. “내가 알아서….”
“뭐라고 하셨어요?” 마리야 니꼴라예브나가 되물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알아들은 키티는 그가 자기 앞에서 벌거벗은 것을 부끄럽고 꺼림칙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니, 안 볼게요!” 그녀가 팔을 바로잡아 주면서 말했다. “마리야 니꼴라예브나, 건너편으로 가서 좀 잡아 주세요.” 그녀는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저기, 방에 가면, 내 작은 주머니에 작은 유리병이 있거든요. 옆 주머니에요. 그것 좀 가져다줘요. 그 사이에 여기를 다 치워 놓을게요.”
유리병을 갖고 돌아온 레빈은 병자가 이미 자리에 누워 있고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진 광경을 목도했다. 지독했던 악취는 향수 섞인 식초 냄새로 바뀌어 있었다. 키티가 입술을 내밀고 불그레한 뺨을 부풀려 대롱을 통해 그걸 내뿜었던 것이다. 먼지는 온데간데없어졌고, 침대 밑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탁자에는 유리병들과 물병이 가지런히 세워지고, 필요한 속옷들과 키티의 broderie anglaise(영국식 자수) 용품도 보였다. 병자의 침상 옆에 있는 또 다른 탁자 위에는 음료와 양초, 가루약이 놓여 있었다. 한편 병자는 깨끗이 씻고 머리도 빗질된 채 깨끗한 시트 위에 푹신한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가느다란 목을 감싸는 흰 옷깃이 달린 깨끗한 루바시까를 입은 채 키티를 주시하는 그의 표정에는 희망이 어려 있었다.
클럽에 있는 걸 발견하고 레빈이 데려온 의사는 니꼴라이 레빈이 불평했던 원래의 담당 의사가 아니었다. 새로운 의사는 청진기를 꺼내 환자를 진찰한 다음 고개를 내젓더니 처방전을 써주었다. 그러고는 먼저 약의 복용법에 대해서, 그다음에는 식이요법에 대해서 각별히 세심하게 설명하며 날달걀 혹은 삶은 달걀과 일정한 온도로 중탕한 우유를 섞은 탄산수를 권해 주었다. 의사가 나가자 병자는 동생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나 레빈은 “너의 까짜”라는 마지막 두 마디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키티를 바라보는 형의 눈빛을 보고서야 그는 형이 그녀를 칭찬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형은 늘 하던대로, 그녀를 까짜라고 부르며 오라고 했다.
“훨씬 나아졌어요.” 그가 말했다. “제수씨와 함께 있었더라면 한참 전에 병이 나았을 텐데.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가 키티의 손을 잡고는 자기 입술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녀가 불쾌해할까 봐 저어했는지 생각을 고쳐먹고는 손을 내려놓고 그저 쓰다듬기만 햇다. 키티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서 꼭 쥐었다.
“이제 나를 왼쪽으로 눕혀 주고 그만 가서 자요.” 그가 말했다.
누구도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키티만은 알아들었다. 병자가 뭘 필요로 하는지를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살피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이해했던 것이다.
“반대편으로 눕혀 달라시네요.”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항상 그쪽으로 누워서 주무시거든요. 고쳐 눕혀 드리세요. 하인을 부르기가 뭣해서요. 나는 못 해요. 당신은 할 수 있나요?” 그녀가 마리야 니꼴라예브나를 향해서 물었다.
“못 하겠어요.” 마리야 니꼴라예브나가 대답했다.
저 무시무시한 몸뚱어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알고 싶지 않았던 이불 속의 그 부위들을 만지는 일이 너무나 두려웠지만, 아내의 영향에 압도된 레빈은 아내가 익히 알고 있는 예의 결연한 얼굴을 하고는 두 손을 밀어 넎어 형의 몸을 안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힘이 모자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쇠약해진 사지가 기이할 정도로 무거워 그는 깜짝 놀랐다. 그가 자신의 목에 감긴 큼지막하고 깡마른 손을 느끼며 형을 돌아눕히는 사이, 키티는 소리 없이 재빠르게 베개를 디집어놓고서 살짝 두드린 다음 병자의 머리와 또다시 관자놀이에 들러붙은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가다듬어 주었다.
병자는 동생의 손을 부여잡았다. 형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하고자 그것을 어디론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레빈은 심장을 졸이며 몸을 내 맡겼다. 그러자 형은 그의 손을 자기 입술로 가져다가 입을 맞추었다. 레빈은 흐느낌이 북받쳐 올라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