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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을 부어 주소서
겔11장 14절 ~ 21절
1. 바벨론 포로중인 유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한 다음,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에스겔도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발 강가에서 환상을 보고 그것을 적은 것이 바로 에스겔서입니다. 그 때 일부 백성은 예루살렘에 남아있었습니다. 남아있던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 있는 사람들을 향해 좋지 않은 소리를 했습니다. 15절 뒷부분에 그들이 한 좋지 않은 소리가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이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예루살렘 이 땅은 이제 우리 것이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참 고약한 소리입니다. ‘여러분, 먼 외국 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까? 속히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기 바랍니다.’ 해야 할 텐데 그 반대의 소리를 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을 보면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쓸 만한 사람들은 잡아가고 비천한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남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세상이다.’ 하는 마음으로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있는 사람들이 이 소리를 전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끌려가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으고 이스라엘 땅을 그들에게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17절) 16절 뒷부분을 보세요. 하나님은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의 성소가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면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성소를 만드는 것이지 성소가 하나님의 임재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해서 그 곳이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19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마음, 일치된 마음과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19절에 있는 “그 속에 새 영을 주고” 이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에스겔은 여러 곳에 이 “새 영”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36장 26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에스겔은 새 영을 강조한 예언자입니다.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새 영을 받아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새 영을 받아야합니다. 우리 민족이 새 영을 받아야합니다. 새 영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2. 삶의 의욕이 넘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인들, 의욕을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아무런 소망이 없다. 이 강대한 바벨론 제국에서 우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포로로 지내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듣자니 예루살렘 성은 잿더미가 되었다고 하더라. 여기에서 이대로 이 사람들이 섬기는 말둑 신을 섬기며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이 새로운 의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여기시고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은 비극적인 일, 위험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질병 가운데 근육이 점점 힘을 잃고 굳어져 버리는 근무력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몸을 차차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무서운 질병입니다. 그런데 근무력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의욕무력증입니다. 보통 의욕상실증이라고 합니다. 이 의욕상실증에 걸리면 슬럼프에 빠지고 탈진상태가 됩니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이것을 ‘대피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엘리야에게 이 의욕상실증이 찾아왔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밑에 앉아서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의욕상실증은 주변에 빠르게 전염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의욕을 잃고 디베랴 호수에 모였습니다. 디베라 호수는 많은 제자들이 제자로 부름 받기 이전에 어부로 일하던 곳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포기했다. 먹고 살기 위해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가겠다.‘ 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리에 도마, 나다나엘, 요한, 야고보, 또 다른 제자 둘이 있었는데 요한복음 21장 3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했습니다. 베드로의 의욕상실증이 순식간에 이들에게 전염되어서 집단의욕상실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의욕상실증이 전염되는 것은 조류독감 전염보다 더 빠르고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제일 치료하기 힘든 환자는 낫겠다는 의욕, 또는 살겠다는 의욕을 포기한 환자들입니다. 살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환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의욕을 잃은 가운데 있습니까?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까? ‘하나님, 내게 새 영을 주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 영, 새 정신을 주어 의욕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욱 넘치는 의욕을 가지고 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흔히 나이가 많아지면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그저 현상유지에 힘쓴다고 합니다. 안전제일주의로 나간다고 합니다. 정년퇴직한 분들이 좀처럼 새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이 안전제일주의가 잘못되면 무사안일주의가 되기 쉽습니다.
새 영을 달라고 간구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을 받아 새로운 의욕, 큰 의욕을 갖고 사시기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새 영을 주셔서 넘치는 의욕을 갖고 가운데 활기 있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여러 명의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사사라고 하면 타고난 영웅, 타고난 장사,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잘 살펴보면 사사 가운데는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 당시 왼손잡이는 장애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드보라는 여자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여자는 싸움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서 가출한 사람입니다. 잡류들과 어울렸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조폭이었습니다.
이런 사사들이 어떻게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첫 사사는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을 비롯해서 삼갈, 입산, 압돈 이런 사사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소사사라고 부릅니다. 첫 사사 옷니엘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사사기 3장 10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에게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라사다임을 이기니라
여호와의 영은 기드온에게도 임합니다. 사사기 6장 34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사사기 11장 29절은 입다에게도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고 말합니다. 삼손의 이야기에는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는 이야기가 유난히 여러 번 나옵니다. 사사기 13장 25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사사기 14장 6절, 삼손이 딤나라는 곳에서 젊은 사자와 맞닥뜨렸을 때의 일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의 영이 임했기 때문에 삼손은 아스글론 사람 삼십 명을 죽일 수 있었고,(삿 14: 19)
자기를 결박한 새 밧줄 둘을 불탄 삼과 같이 끊을 수 있었습니다.(삿15: 14)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서 떠났을 때 그는 무기력하게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힙니다.
사도행전은 성령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릅니다. 사사기 역시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일한 기록이기 때문에 마찬가지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인류의 역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선포한 예언은 시대와 나라와 개인이 가야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GPS나 네비게이션은 자꾸 새 것이 나옵니다만 예언서는 2,000여 년 전의 것인데도 성능이 변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언자들 가운데는 그 출신이 아주 낮고 성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여러분, ‘새 영을 주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을 받아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새 영을 주소서. 그래서 큰 일을 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하나님, 이 교회에 새 영을 주소서. 그래서 세계선교를 위해서 큰 일을 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삶이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라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새 영을 받으면 20절 중간 부분을 보세요.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새 영을 받은 사람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습니다.“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은 새 영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되십니다. 새 영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목자가 되십니다. 상담자가 되십니다. 잠시 잠깐의 하나님이 아니라, 스물네 시간의 하나님, 365일의 하나님, 내 평생 함께 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에스겔서 37장은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입니다. 이 환상의 이야기는 37장 1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라는 말로, 하나님이 영으로 역사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았다면 에스겔은 골짜기에 가득한 뼈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으면 우리는 뼈가 가득한 골짜기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스겔이 대언하니까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고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고 극히 큰 군대가 됩니다. 이 환상은 에스겔서 37장 14절의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이 납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경의 여러 환상들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환상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영으로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려가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영을 우리 가운데 두겠다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영으로 시작해서 영으로 끝납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새 영을 주셔야만 진정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약속하는 말씀인데 회복에는 영적 회복이 선행되어야합니다. 새 영을 받는 회복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회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새 영, 새 심령을 주시고 새 언약을 마음 판에 새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백성에게 순종할 수 있는 동기를 주셔서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며 변화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 우리에게도 새 영을 주소서!‘ 하는 기도, 중요한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새 영에서 여러 가지가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도 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을 할 때도 영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서 “그런즉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에게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 나에게도, 우리 교회에게도, 우리 민족에게도 새 영을 주소서!’ 힘써 기도하여 새 영을 받아 새로운 의욕을 갖는 성도들, 큰 힘을 받아 큰 일을 하는 성도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고, 또 새로운 생활을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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