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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정토를 가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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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절 순례 답사 여행 스크랩 지리산 깊은 곳 - 7암자 순례기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
까만건반 추천 0 조회 133 06.12.14 10:22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무식한 놈이 절에 갑니다..

산을 넘어 다니다 절이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 항상 내 이름으로 등을 걸고

치성을 드리는 어머님이 생각나 등산화 끈을 풀고 부처님께 넙쭉 절만 올릴

줄 아는 넘입니다.

부처님께 삼배만 올리고 소원만 빌면 모든 게 잘 될 것으로 믿는 무식한 놈.

불교와 절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넘이 귀연팀의 지리산 탐구산행 암자 순례의

길에 합류 했습니다..

 

지리산에 떼거리로 몰려 오는게 못마땅한지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습니다.

암자란 지리산의 깊은 자락의 명당에 있어 그 곳의 풍수와 풍경이 보통이

아닐 거란 생각에 암자보다도 그 산세와 조망이 더 욕심이 났는지도 모르겠

습니다.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는 외지리(外智異) 최고의 전망대가 남부능선 삼신봉

이라면 내지리(內智異)의 최고 망루는 중북부 능선의 삼정산이라고 했습니다.

삼정산은 하나의 봉우리 인데도 양정,음정,하정의 삼정리를 대표하여 삼정산

으로 記名하고 있다 합니다.

그중 경남 함양시 마천면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도경계를 이루는 연하천

삼각고지부터 살상사가 위치한 남원 산내면 까지 이어진 이 능선에 3개의

사찰과 4개의 암자가 있어 지리산의 수려한 풍광 속에서 불심을 세우고 있다

하는데 오늘 아니면 언제 이 순례의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까?

 

 

 

산행지 : 지리산 삼정산 능선 7암자 순례

일  자 : 2006년 8월 23일 (일)

날  씨 : 흐리고 가랑비

거  리 : 약 14km

동  행 : 귀연 산우회 20명

 

08:10   살상사 입구 (약 20분 절 구경)

08:30   살상사옆 우측 등산로

08:50   소나무 군락지

08:53   임도

09:07   약수암

09:38   도마리

10:00   삼불사 가는 길 별장

10:22   삼불사 1km 전방 이정표

10:55   삼불사

11:35   문수암

11:45   중식(약 30분)

12:30   상문주암

12:40   헬기장 (삼정산 철판 이정표)

13:23   삼정산

13:23   영원사 갈림길  상무주암 1km ,삼정산 1.2km

13:45   영원사

13:57   임도에서 도솔암 들머리

14:39   도솔암

14:53   도솔암 출발

15:25   들머리 회귀

15:30   임도 옆 두트굴 이정표

15:44   두트굴

15:50~16:20   알탕

16:45   음정리 갈림길 (정류소)

 

 

 

무식한 넘이 실상사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실상사란 지리산의 더 유명한 절 화엄사,쌍계사,천은사 등의 그늘에 가리어

이름만 간신히 기억하는 수준에다 그 옛날 새만금 삼보일배의 땀을 뿌린 스님

한 분이 이 절 출신이었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차 안에서 졸다 자다 휴게소에서 아침 밥 먹고 다시 혼수상태를 헤메다 보니

이동 베이스 캠프는 실상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8시, 평일 이면 회사 출근 시간에 실상사로 출근 합니다.

도로 옆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알루미늄 매표소에는 매표원도

없습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석장승이 서 있습니다.

중요 민속자료 15호에 속합니다.

왕방울 만한 눈이 불거지고 큼지막한 코가 해학적입니다.

크게 뜬 두 눈은 세상의 도를 보고자 하는 것이라 치고 큰 코는?

관상학적으로 코는 재물과 정력에 깊게 관여한다는데 재물을 많이 모아 건강

하고 즐겁게 한 세상을 살고자 하는 염원까지 담긴 얼굴입니다.

 

 

 

해탈교를 건너 갑니다.

사바 세상의 미망과 번뇌는 다리 저편에 내려 놓고 갑니다.

 

 

 

다리를 건너자 성지 순례를 환영하는 자연 목각이 반색을 합니다.

 

 

 

 

비닐 하우스 옆에는 덩굴을 따라 무성한 잎새를 올린 더덕이 꽃을 잔뜩 피워

내고 있습니다..  

더덕의 꽃은 처음 봅니다.

 

 

 

산능성이 까지 구름이 내려와 있고 초록이 짙어간 밭과 마을은 평화로운 풍경

입니다

산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벌써 천왕문이 보입니다.

아뿔사 절이 들판에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실상사는 김제 금산사처럼 들판에 서 있습니다.

해발 500m 아래의 유적지는 노년의 순례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는데 오늘

창졸 간에 평지의 절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천왕상이 장검을 비켜든 채 눈을 부라리고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석등과

석탑이 보이고 넓은 경내가 눈에 들어 옵니다.

 

구산선문 중 실상사가 최초로 문을 연 선문이라 합니다.

무식해도 구산선문은 알고 있습니다.

귀족과 왕실들에 결탁하여 타락한 교종 불교에 대한 신진 불자들이 반기를

불교정화 운동이라 배웠습니다.

달마대사의 선법에 의거한 종풍을 일으켜 아홉산에 뿌리를 둔 선종불교를

말하는데 교학보다 참선을 중시하는 불교라 합니다.

실상사는 구산선문의 본산인 셈입니다.

 

 

 

실상사는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갔다가 자장의 문하에서 선법을

배운 뒤 귀국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 동안 전국의 산을 헤메고 다니다가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합니다.

원래는 산 속이었다는 군요

절과 암자에 소장한 국보와 보물이 12개나 된다고 합니다.

정말 엄청 유명한 절인데 무식한 제가 너무 몰랐습니다.

 

호국사찰이라 합니다.

이 절에는 예로부터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 고이즈미가 설치고 극우파들이 날뛰는 요즘 유서 깊은 호국의 절

실상사가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 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광전에서 삼배를 드렸습니다.

克日의 절이라고 했습니다.

실상사 보광전 범종에는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어서 예불을 할 때는

자연스럽게 일본 열도를 두들겨 팬다고 합니다.

범종을 살펴보았는데 벌써 일본 지도가 너무 맞아서 문드러졌는지 잘 찾지

못하겠습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약사전에 모셔 놓은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

보고 있는데 그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 후지산이 일직선 상에 놓여져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절의 배치도 일본이 있는 동쪽을 째려보고 있다고 하는군요.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왜곡되고 우리의 민족혼이 엷어지는 이 때 호국 정신의

맥을 이어가는 실상사야 말로 우리가 먼저 둘러보아야 할 절입니다.

 

 

 

경내 연못가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냥 넘어가기는 아깝고 내친김에 실상사와 실상사의 보물들을

살펴봅니다.

 

 

 

 실상사

사적 제 39호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흥덕왕 3년(828) 흥척스님이 세웠다.

신라말기 교학보다 참선을 중시한 선종의 여러종파가 전국 명산에 절을 세웠

는데 살상사가  그 중 하나이다.

정유재난(1597)때 모두 불타 숙종(1674~1720)때 건물 36동을 다시 지었으나

고종 때 화재를 당해 현재의 소규모로 복구하였다.

실상사는 훌륭한 스님을 배출하여 선종의 위상을 드높였다.

경내와 관련 사찰에 국보와 많은 보물이 남아 있어 이 절의 역사적 의의와

품격을 대변해 준다.

천왕봉을 정점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이 절 앞으로 성큼 다가와 부처의

자비를 보이듯 포근히 감싸고 있고 지리산에서 발원한 맑고 투명한 반선계곡의

물이 속세의 번뇌를 씻어 주려는 듯 절 옆을 돌아 굽이쳐 흐르고 있다.

 

경내와 부근의 국가지정 문화재

백장암 삼층석탑       - 국보 제 10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 보물 제 33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 - 보물 제 34호

실상사 석등          - 보물 제 35호

살상사 부도          - 보물 제 36호

삼층석탑 2기         - 보물 제 37호

증각대사 응료탑      - 보물 제 38호

증각대가 응료탑비    - 보물 제 39호

백장암 석등          - 보물 제 40호

철제여래좌상         - 보물 제 41호

청동은 입사향로      보물 제 420호

약수암 목조 탱화      – 보물 제 421호

 

이 모두가 경내의 안내판에 씌여진 내용입니다.

디카란 참 편해서 찍고 나서 나중에 찬찬히 읽어 보면 됩니다.

내친 김에 보물까지 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자료사진)

백장암 삼층석탑 (국보 제 10호)

북쪽으로 얼마쯤 가다보념 백장암이 나타나는데 실상사에 딸린

소박한 암자로 그 아래 경작지에 국보인 이 탑이 세워져 있다.

 

 

 

 

 

                                            (자료사진)

수철화상 능가 보월탑과 탑비 (보물 제 33호 , 제 34호)

   극락전을 향하여 그 오른 쪽에 서 있는 탑으로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

   수철화상은 신라 초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 번째 창건주가 되었다.

   진성여왕 7년(893)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하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내리었다.

 

 

 

 

실상사 석등(보물제 35호)

    보광전 앞 뜰에 세워져 있다.

 

 

 

                                            (자료사진)

실상사 부도 (보물 제 36호)

    살상사 본전에서 멀리 떨어진 잔디밭에 있다.

 

 

 

 

실상사 3층석탑 2기 (보물 제 37호)

   실상사 중심법당인 보광전 안뜰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 탑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자료사진)

증각대사 응료탑비 (보물 제 38호 ,39호)

   흥척국사로 남한조사로 불리며 통일신라 헌강왕 때 당나라에 들어 갔다가

   흥덕왕 1년(826)에 귀국한 뒤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

 

 

 

                                            (자료사진)

백장암 석등(보물제 40호)

   국보인 백장암 삼층석탑과 함께 백장암에 있다.

 

 

 

 

철제 여래 좌상  (보물 제 41호)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상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보존

   되고 있는 유명한 철불

   당시의 불교양식을 잘 표현한 불상으로 8세기에서 9세기 불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불상의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자료사진)

청동은 입사향료 (보물 제 420호)

   백장암에 있다.

   절에서 피우는 향은 마음의 때를 씻어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향로는 그 향을 피우는 그릇을 말하는데 그 중 하완,향완은

   밥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를 갖춘

   향로만을 말한다.

   높이 30cm 입지름 30cm의 이 향로는 몸체와 받침대를 따로

   만들어 연결하였고 은실을 이용한 장식(은입사)이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조선 선조 17년 (1584)에 만들어 졌다.

 

 

 

                                                   (자료사진)

약수암 목조탱화 (보물 제 421호)

   탱화는 대개 종이나 천 위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가는 불화를말하지만 이젓은 나무에 불상을 조각해 만든

   탱화이다.

정조 6년 제작된 것으로 원만한 불사의 모습과 배치구조, 정교한

세부조각들은 조선후기의 목조탱화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

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상사를 나와 다시 우측으로 산길을 따라 오릅니다..

가는 길에 벌통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20분 쯤 가면 벌목한 소나무 군락지가 나옵니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 건너서 리본이 붙은 오름길로

오르면 능선으로 붙게 되니 조심해야 합니다..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200m 쯤 가면 약수암 쪽 등로가 나옵니다.

 

 

 

10여분 가면 문수암 가는 표지판과 약수암이 나타 납니다.

 

 

 

보물 제 421호를 보관하고 있는 약수암은 고즈녁합니다.

서장암 그리고 국보를 소유한 백장암과 함께 살상사에 소속된 암자인데 1937년

한 불자의 시주에 의해 중수되었고 맑은 약수가 솟아 약수암이란 이름을 얻었

다고 합니다..

암자란 큰절에 소속된 규모가 작은 절을 말함이고 암자의 스님을 암주(庵主)나

감원(監院)으로 부른다는 군요

무식한 넘이 많이 배웁니다.

멍멍이가 짖는데 돌아 보는 사람도 없고 약수암에는 안개와 적막만 흘러

다닙니다.

산사의 적막을 깰 용기가 없어 탱화를 보여달라고 말도 못 붙이겠습니다.

 

 

 

그저 이끼가 붙어 연륜을 말해주는 멋드러진 샘에서 목을 축이고 물을 보충한

다음 조용히 산사를 물러납니다.

표지판 이 있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길을 잡아 갑니다.

 

 

 

문수암 가는 길에 대나무 숲길을 지나 갑니다.

 

 

 

이런 너덜 길도 지나야 하구요.

 

 

 

산속을 한 참 헤멘 것 같은데 해발은 더 낮아져 있고 속세에 더 가까이 와

있습니다.

산릉을 따라 흘러내리는 구름이 몽환적입니다.

 

 

 

일부러 재배를 하는지 이런 고사리 밭이 엄청 많습니다.

고사리 밭 너머로 계곡과 민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도마리는 평화로운 산골의 풍경입니다.

 

 

 

호박비탈을 지나고

 

 

 

대나무와 소나무가 마주보고 선 숲 길을 지나 갑니다.

 

 

 

이 마을에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수수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고향마을에 온 것 같은 푸근함이 느껴집니다.

 

 

 

마을을 벗어나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 산길로 접어 듭니다.

 

 

 

실상사 가는 길에 땅에 붙어서 조그맣게 피어나는 것을 보고 땅콩이라고 했던

결명자가 이곳에서는 훤출하게 자라서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등로는 점점 거칠어 집니다.

삼불사 가는 길에 근사한 팬션이 지어져 있습니다.

국립공원 내에 지어진 멋진 팬션

누군가 막강한 권력을 비호하에 있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서민의 권리란 한번씩 비분강개의 침을 튀기고 아무런 힘 없는 불만의 목청을

높여보는 것입니다.

 

 

 

삼불사 1km전 지점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영원사와 삼불사 상무주암을 위치와 빨지산 루트에 대한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씌여 있지요

지리산은 민족의 기상과 혼,정서, 그리고 애환이 깃들여 우리와 함께 숨쉬어

왔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한 때 우리의 역사에 있어 가장 처참하고 비극

적인 빨지산 사건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곳 영원사 루트는 빨지산들이 토벌대의 추적을 피해 울창한 산죽들 사이로

몸을 은신하던 산죽비트,바위비트,굴비트 등이 있습니다.

당대의 고승 100명이 도를 닦던 영원사와 상무주암 , 문수암, 삼불사로 이어

지는 고찰들이 있으며 천왕봉과 임천강이 조망도는 천하절경이 펼쳐지는 등산

로 입니다.

이제 우리의 기억에서 조차 사라져 가는 빨지산 사건의 비극을 천혜의 자연

경관과 함께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삼불사 가는 길이 점점 가파라 집니다.

비만 내리면 금새라도 이끼 폭포가 되어버릴 고색창연한 길을 지나 갑니다.

 

 

 

노란 꽃들이 피어 있고 안개가 조용히 흐르는 돌담 너머로 먼저 간 누군가

아랫쪽을 내려다 보고 있는 곳 저곳이 삼불사인 모양 입니다.

 

 

 

조용한 암자 하나 있습니다.

갈기를 세워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채 큰소리로 짖어 대는 덩치 큰 백구

한 마리 있습니다.

여스님의 든든한 보디가드인 듯 합니다.

 

 

 

입구에는 탑과 석등 비석들이 안개 속에 조용히 앉아 있고

 

 

 

암자 위에는 잣 나무 사이 또 작은 한 채의 건물이 있습니다.

앞마당에서도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습니다.

 

 

 

스님이 나오셔서 감자 한 쟁반 내 오십니다.

홀로 정진하시는 스님께 우리가 무엇을 좀 드려야 하는데

괜히 스님의 양식만 축내고 말았습니다.

시주라도 좀 하고 부처님께 예라도 좀 올릴걸 떼거지로 난입한 우린 그저

목마른 것만 생각해 물만 채우고 감자만 먹고 그렇게 물러 났습니다.

그래서 빈 감자쟁반 돌려 주려고 산꼭대기님이 대표로 스님께 갔다가 잔뜩

골이 난 백구한테 물려버렸습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등산바지가 찢어지고 자국이 남았습니다.

처음 가만히 있던 백구가 예비동작도 없이 갑자기 달려들어 혼비백산 했는데

앞으로 삼불사를 찾으시는 산님들은 꼭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시주하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백구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20여분 거리에 문수암이 있습니다.

 

 

 

남자 스님이 한 분 계십니다.

법명이 도봉(道峰)이라고 이곳에서 20년 넘게 계신다 합니다.

문수암은 섬마을의 재래식 가정집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바위 동굴 같은 큰 바위의 샘터에서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습기가 많아서 인지 바위 천정에도 고사리풀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습니다.

스님께서 마당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멋지다 하시는데 아쉽게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옛날 백두대간에서 비와 눈을 무진장 맞은 경력이 있는 귀연팀이고 보면

지난 번 종주 때 폭우를 만난 거나 이번 암자 순례 길에 가는 비와 자욱한

안개를 만나는 것이나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지리산 산신령님의 뜻입니다.

한꺼번에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씩  보라고.  

오늘은 암자들만 잘 돌아보고 다음에 다시 돌아와 멋진 조망의 절경을 다시

돌아 보라하십니다.

 

 

난간에 걸터앉았습니다.

바람이 잠깐 앞산 자락을 열어 보여 줍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집과 산비탈 사이의 작은 공간에 스님이 정성스레 가꾼

잘 정돈된 밭이 눈에 들어 옵니다.

번뇌와 미망에서 놓여나 자연 속에 무리 없이 스며든 스님의 맑은 삶이 부러워

집니다.

 

 

 

가는 길 풍경 좋은 곳에 해우소가 앉아 있습니다.

안개만 걷히면 너무 풍경이 좋은 곳입니다.

정말 근심을 덜어내고 니르바나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원의 전망 좋은

화장실입니다..

 

 

11시반 문수암 옆 공터에 식단을 풀었습니다.

20명이 넘는 대 식구라 산상의 만찬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20여분을 가다가 삼정산 정상과 상무주암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조금 후에 산길에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스러운 우물과 상무주암이 나타납니다.

 

 

 

담이 둘러 있고 대문에는 출입금지의 로프가 걸려 있습니다.

호기심에 안을 들여다 봅니다.

마당엔 들마루가 있고 테이블과 의자도 보입니다.

건물은 통유리로 되어 흡사 전원의 별장 같은 느낌입니다.

상무주(上無住)란 부처님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경계이고 머물수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라 합니다.

지리산 영원사의 말사로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큰 깨우침

을 얻은 곳이며 고려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던 곳이라 합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 정진에 방해가 되는 듯 아예 세속의 범접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찌 어찌 자꾸 높은 데로 가다 보니 흐린 하늘이 뻥 뚫립니다.

앞에는 더 오를 곳이 없는 넓은 헬기장 입니다.

대우 국민차 본넷 강판을 뜯어서 만든 삼정산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해발 1210m입니다.

장대한 지리산 주릉이 조망되고 지리세상을 후련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이라는데
속절 없는 안개는 왜 그리 우리 따르는지...

 

 

삼정산 표석이 돌로 되어 있음을 사진으로 확인한 터라 일행들은 옆 쪽 능선

으로 더 높은데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로 올라 갔습니다.

사진에서 보았던 돌로 된 이정표를 확인하고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었습니다.

더 높은 이 봉우리의 해발은 1182m입니다.

여기는 차가 거꾸로 올라가는 제주도의 도깨비 도로 같습니다.

 

 

 

가는 길에 나무가 잿빛 화폭에 그린 그림을 구경합니다.

흐린 날은 우수를 머금고 사색에 잠겨 있는 방랑자의 얼굴 입니다.

 

 

 

피곤한 나비가 꽃 위에서 쉬고 있습니다.

 

 

 

영원사 갈림길 상무주암 1.0km 지난 지점 입니다.

지도를 보면 이곳에서 영원 능선을 거쳐 도솔암에 들렸다가 하산하여 영원사를

둘러 볼 수 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능선의 거리가 길고 선답자가 답사한 길이 아니라 영원사로 내려서서

임도에서 도솔암을 다녀오는 코스를 선택합니다.

 

 

 

 

흐린 날씨에 산죽과 수림이 울창하여 길은 더욱 어둑 합니다.

길 에서 떨어진 곳에 비트를 만들고 몸을 숨기면 찾아 낼 재간이 없을 듯

합니다.

그렇게 넓은 지리산이라 역사의 질곡과 민족의 아픔을 말 없이 보듬어 왔습니다.

영원사 가는 길에는 산죽 비트가 많이 있습니다.

 

 

 

 

영원사에는 큰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걱정했던 청계님은 벌써 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역시 백전노장의 노련함은 일행들의 걱정을 부질 없게 합니다.

 

 

 

어째 옛날에 지은 고찰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순반란사건과 6.25 공비토벌 때 아군에 의한 방화로 소실되어 다시 지어

졌다 합니다.

아깝습니다..

많은 명승대덕을 배출한 걸출한 도량이 화재에 소실되었다니

 

 

 

안내판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영원사(靈源寺)는 정확한 창전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 하여 절 이름을 영원사라하며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하고 있다.

한 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로써 절의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이

9채에100칸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 할 수 있는

조봉안록(祖峯案錄)을 보면 부용영관, 서산대사, 청매 ,사명,시안, 설파상언,

포광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

이 있다.

사찰경내에는 정암당탑,중봉당탑,박허당탑,청매탑등 이름 있는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군이 현존하고 있다.

 

 

 

 

뒤 뜰에는 노랑 꽃이 흐드러지게 핀 우물이 있습니다.

우물물 색깔이 뿌연합니다..

비가오면 수압 때문에 그렇다는데 모든 암자 물맛을 다 보았는데 여기만 지나

칠 수 없어 한모금 마시니 물맛도 어째 좀 이상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처마 끝에 풍경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거대한 입석에 일필휘지로 영원사라 쓰여져 있습

니다...

100여  미터 내려가면 우측에 도솔암으로 통하는  산길이 나타납니다.

이정표도 없고 길 옆에 타이어 두개 덩그러니 박혀 있습니다.

초입부에 계곡을 지나 가지만 계곡을 지나면 누군가 최근에 잘 닦아 놓은

이 도솔암까지 이어집니다.

 

 

 

한뿌리에서 이렇게 미끈하게 솟은 나무를 지나 갑니다.

 

 

 

고색창연한 아름드리 나무 옆도 지나 가구요

 

 

 

제법 거친 길을 약 40분 오르면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만든 문과 작은 건물이

반가이 맞아 줍니다.

 

 

 

도솔암은 돌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야호! 여기가 마지막 사찰 입니다.

작은 움집의 상상은 여지 없이 허물어지고

초록의 잔디가 싱그러운 넓은 마당 저편에 암자 하나와 부속건물이 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순례지라는 흥분과 흡사 산장 같은 넓은 마당 그리고 그 한 켠

에서 시원하게 흘러나오는 물 때문에 마냥 들떠서 조용히 책을 보고 계시는

스님께 예의를 차리지 못했습니다.

 

 

 

별로 시끄럽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사진 찍고 세수를 하고

한참을 두고 보시던 스님이 한소리 하십니다.

백운봉님이 대표로 무지하게 혼났습니다.

 

 

 

스님이 정진하시는데 무례를 범했습니다.

다음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단체로 시주도 하고 또 부처

님께 예도 올려야 하겠습니다.

관홍님의 심우정사 108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아깝습니다.

천하절경 일 것 같은 도솔암 조망도 지리산 안개가 거두어 갔고

마지막 암자순례의 쓸쓸함을 슬퍼하 듯 빗방울이 굵어 집니다.

 

세월따라님이 우비로 중무장을 했지만

금새 우리가 스님의 역정을 잊어버렸듯이 비도 더 올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이정표가 나옵니다.

두트굴 1km 표지가 있습니다.

이 길이 무장공비들이 식량과 보급품을 운반하던 통로라고 합니다.

 

 

 

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굴 앞에서 공비가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살려주시라요 동무

우리는 민간인 입네다

공비들의 굴 비트였습니다.

 

 

굴비트 앞에 계곡물이 탕탕합니다.

백운봉님이 벌써 배낭을 내려 놓고 있습니다.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만큼 외지고 은밀한 계곡이 없을 듯

싶습니다.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새도 오늘은 울지 않습니다.

홀딱벗고 알탕하자 홀딱벗고 알탕하자

 

 

충동질 하는 새는 없었지만 우린 목까지 차는 시퍼런 계곡의 소로 뛰어들었습니다.

칠암자 순례 후 갖는 마지막 해탈의 의식입니다.

물 속에서 한 참 동안 세사의 시름과 번뇌를 씻었습니다.

백운봉님이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열반을 기웃거린 속인의 기쁨과 편안함이 느껴지십니까?

 

 

 

몸을 씻고 나니 홀가분한 마음처럼 날씨도 개이고

 

 

 

속세를 벗어난 암자를 흉내낸 이런 팬션을 지나고

지리산의 맑은 정기를 가슴에 담고 우리는 날아갈 것 같은 홀가분함으로 양정

계곡길을 휘휘적 거리며 내려 갑니다.

 

마눌 델구  다시 오겠습니다.

잃어버린 문수암과 도솔암의 절경을 다시 찾으려 말입니다.

그 때는 능선을 타고 도솔암을 거쳐 영원사로 하산하겠습니다.

 

 

 

양정 마을을 지나자 음정 너머 가는 고갯길이 나오고 도로는 60번 지방도로와

만나게됩니다.

핸드폰을 때리니 송구스럽게도 기사님이 버스로 마중을 하십니다.

아! 명찰의 맑은 기운과 지리산의 정기는 마음을 정갈하게 합니다.

 

깨달음과 불심의 세계 가까이에 있는 지리산 깊은 산중의 암자 순례는 의미

있는 여행길 이었습니다.

배낭과 가슴에 담았던 세속의 짐과 시름을 잠시 내려 놓고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희망을 채워 보았습니다.

 

올 들어 벌써 다섯 번 째 지리산 순례 길을 떠났지만

마음의 평화와 대자연의 감동이 필요한 어느 날 다시 지리산으로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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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12.14 10:31

    첫댓글 우리들의 7암자 순례가 생각나 옮겨왔습니다.

  • 06.12.14 10:41

    예전의 생각들이 다시금 살아 납니다..난 까만건반님이 쓰신줄 알았습니다..^^

  • 06.12.14 17:37

    약 10년전에 7암자마다 육법공양에 108 망신참을 같이 하던 애기보살은 출가하고, 박복한 이 중생은 아직도 갈피를 못잡고 미망에 사로잡혀 꿈속을 헤매니...노오란 금잔화 향기를 맡으며 해바라기하는 키다리국화 마냥 진리를 향한 목마름을 달랠 날은 언제나 될런지??? 무덥디 무더운 날 청량함을 벗삼아 또 다시 그 길을 가고싶다^^ ___()()___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 06.12.14 23:04

    그때 나도 거기 있었죠.. 불량감자님도 생각나고요^^

  • 06.12.15 15:16

    정말 고마우이다. 복많이 빋으시요

  • 06.12.15 23:34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 06.12.23 12:53

    좋은글 너무 재밌게봤습니다. 네이버로 퍼갈께요 http://cafe.naver.com/bogabs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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