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8월 5일)
<히브리서 12장> “믿음의 선구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히12:1-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잠3:11,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2,3)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3,14)
『11장에서 선진들이 보여준 살아있는 믿음의 본들을 예시한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12장에서는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살아야 할 믿음의 삶에 대해서 권면을 합니다. 그는 성도들의 믿음으로 사는 삶을 장거리 경주를 달리는 것에 비유하면서 우리보다 앞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믿음의 선진들이 그런 우리들의 믿음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로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리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들을 벗어버리듯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나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달려가되,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는 예수님을 ‘우리 믿음의 주이시며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소개하는데 여기서 ‘주’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창시자', 또는 '주권자'라는 뜻의 ‘아르케곤’으로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심을 뜻하는 동시에 우리보다 앞서 달려가신 믿음의 선구자(pioneer)이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온전케 하시는 이’란 말은 헬라어로는 ‘텔레이오텐’로서 '완성자' 또는 '완전자'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는 분이시며 동시에 그 자신이 완전한 믿음의 본이 되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에서 여러 가지 고난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처럼 우리 믿음의 선구자이시며 본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즉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많은 고난을 당했으나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심으로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음을 기억할 것과, 죄인들이 대적하며 거역했음에도 끝까지 참으신 사실을 생각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discipline)로 설명하면서 고난의 유익에 대해 가르칩니다. 여기서 ‘징계’에 해당하는 ‘파이데이아스’는 본래 ‘아이를 훈련시키다’는 뜻의 말로서,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이나 징계를 받을 때 감사하게 여겨야 함을 말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 아들로 여기시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난이나 환난이 없다면 그것은 사생자, 즉 구원받지 못한 자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고난이 없고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말하지 많습니다. 오히려 반드시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요16:33). 그리고 환난을 당하며 징계를 받을 때 그 당시에는 힘들고 슬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친자녀로서의 증거임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환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인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며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있더라도 믿음의 선구자이시며 온전한 믿음의 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푯대를 향하여 힘을 내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오늘의 기도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발자취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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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