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끝없는 도정
- 한국의 대통령선거와 정치발전
은호기 ( 자유기고가 / 샌디에고 거주)
• 미주동포의 관심도 컸던 선거
유난히 미국에 사는 동포들의 관심이 컸던 한국의 대통령 선거였다. 각 후보를 지지 • 지원하는 단체가 큰 도시마다 생겨 열을 올렸는가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에 나가 직접 선거운동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두 김씨가 마지막 승부를 가름하는 대결이라는 점, 거기에 재력과 기업조직을 등에 업고 서슴없이 직격탄을 쏘아부치는 정주영후보가 뛰어들어 선거판을 재미있게 만든 현상이 흥미를 북돋았다. 그러나 단순한 흥미거리만은 아니었다. 한 • 미관계가 한국의 존재양식을 크게 규정하여 왔다는 일반적이고도 종래적인 인식의 바탕을 넘어서, 로스 엔젤레스 인종폭동을 직접 겪은 재미동포로서는 숙명적으로 등에 업고 있는 모국이 존경받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절실한 역사적 경험, 그리고 세계가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물결과 욕구는 한국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바로 얼마전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인민들의 변화구가 거세게 일어났고 그 변화욕구가 표로 연결되는 정치게임을 몸소 겪어본 터이어서 이러한 관점은 당연한 것이었다. 박정희장군의 쿠테타 이래, 지겹게 한국정치판을 짓밟아 온 군화 발자욱소리가 선거판에서 사라졌다는 것도 자뭇 관 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일곱명의 후보 모두가(다행히 이종찬후보가 사퇴하여서)순수 민간인이었다. 당연한 논리가 새롭게 느껴지는 한국정치판의 슬픈 역사이다.
• 되찾은 문민정치
집권세력의 예정대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주영후보의 거센 바람, 그 틈새를 비집고 조용한 추격을 차분히 시도했던 김대중후보. 예측에 잠시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김영삼후보의 완승으로 선거는 끝이났다.
비로소 문민정치가 시작된다.
그렇다고 군사문화가 청산되고 군부통치가 심판을 받은 것은 아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김영삼당선자는 군부통치에 반대, 투쟁하여 온 30여년의 경력을 스스로 버리고 군부 통치 집단과 합작, 군부통치 집단이 쌓아놓은 기반을 가지고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개발도상국가를 열병처럼 휩쓸던 군부통치를 모든 나라들이 선거로써 군부통치를 심판하여 멋있게 퇴장시킨 것과는 퍽 대조적이라 하겠다. 군부통치세력의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김영삼후보의 개인적 욕망이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런 형태나마 문민정치를 되찾았다는 것이 다행이며. 김영삼당선자의 결 단 여하에 따라 통치형태와 내용은 달라질 터이다.
군부통치는 끊임없이 정통성문제를 불러일으켰고 또 정 통성시비에 시달려 왔다. 강압적이고 요식행위에 그친 선거였기 때문이다. 물론 오랫동안 길들여진 관권선거, 금권선거가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자유스런 선거였다는 평가이고 보면 김영삼당선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비록 40%를 조금 넘겼지만, 특정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았기에 정치의 정통성마저도 이번에 되찾은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정치판세가 크게 변하고, 판이 다시 짜여질 전망이다.
군부통치가 끊임없이 조작해 낸 세대교체론과 양김씨 퇴진론에 자연스럽게 물고가 터진 셈이다. 죽음의 고비를 여러번 넘긴 김대중후보에겐 억장 무너지는 끝맺음이지만, 김 대중후보도 이제는 스스로 정계은퇴를 선언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하여 야당은 물론 정계가 개편될 것이며 자발 적이고도 희망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기회를 맞은 셈이다. 따지고 본다면, 두 김씨가 협력-대결-갈등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의 신진대사를 막아 온 것도 군부통치가 그들의 정치행위를 강제적으로 규제하고 제약하여 왔기 때문이다.
신진대사는 생명의 기본작용이며. 살아있음의 구체적 표현이기도 하다. 늘 푸른 나무라고 해서 낙엽이 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는 만큼 새로운 잎이 끊임없이 돌아나기 때문에 늘 푸름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생명도 마찬가지다.
• 김영삼 정권과 세계질서의 개편
김영삼당선자의 임기 5년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구조가 다시 짜여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사회내부에 무섭게 도사리고 있는 지역갈등과 계층 간의 갈등, 해방 후 줄곧 민족의 역량을 쓸데없이 소모시키고 축소하여 온 민족분단의 문제, 기반이 매우 허약한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 그리고 세계구조의 재편성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몫 찾기 등 할 일이 막중하고 또한 시기를 다투는 일들이다.
얼핏 이러한 일들은 각기 개별적인 일로 파악되어지기 일쑤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문제로 보아야 한다. 내치의 연장이 외교이며. 정치의 다른면이 경제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이점 얼른 수긍이 가는 일이다. 따라서 큰 구도 안에서 개별적인 사안을 연결지워 해결해 나가야 할 줄 안다.
사실 한국은 세계질서의 개편과정에서 늘 희생당하여 온 역사를 가진다.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분할을 목적으로 세계를 개편할 때 한국은 식민지로 전락하였으며, 선진제국주의 국가들간의 갈등이 빚어낸 2차대전의 결과가 동서 양진영으로 세계를 갈라놓으면서 민족이 분단되었다.
이제 세계는 동서양극체제가 무너지고 경제블럭을 기반으로 하는 다극체제로 개편되어질 전망이다. 이 개편과정에서 이번에는 우리 몫을 주체적으로 되찾아 확보하여야 한다. 이는 민족역량의 문제이며, 민족역량은 사회구조가 올바로 짜여지는데서 창출된다. 이것은 곧 변혁을 의미한다.
• 민주주의, 끝없는 도정
그런데도 한국국민은 '변혁'보다는 '안정 (속의 변화)을 선택하였다. 미국같은 나라도 변화를 갈구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국민이 변혁을 거부했다는 것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른바 탈냉전시대의 선거판에서 아직도 빨갱이논쟁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으니, 도대체 세계의 변화를 느끼기나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견고한 기득권층의 기만, 수구적인 살찐 언론, 그리고 중산층 허위의식 등이 상승적으로 작용, 남한사회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국민의 정치역량이 발전되고 발휘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더구나 지난 30여년간. 정치과정이 삭제된 정치판이었음을 상기할 때 측은감마저 들기도 한다.
· 끝으로 도덕성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그간 한국의 역사가 조선왕조체제에서 일본 식민통치체 제로. 해방과 더불어 공화제로, 국체와 정체가 여러번 바꿔었지만, 통치세력집단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다시 말하면 이조의 지배계급이 식민지체제의 지배계급으로, 식민지 체제의 지배계급이 다시 해방 후의 지배계급으로 군림해 왔 다. 따라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도덕성 문제가 남한정치 문화의 원초적 문제로 제기되어왔다. 그런데도 김영삼후보의 군부통치집단과의 야합, 대통령당선은 편의한 기회주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으며, 야당은 절대 집권할 수 없다는 정치적 허무주의를 만연시킬 소지마저 없지 않다. 한 국의 정치적 도덕성은 영원히 실종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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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이 대통령 선거로는 두번째인 셈이다. 60년대 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학교를 다닌 사람은 으레 특정한 사람(장군)이 그저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교육받아 왔다. 전혀 합당치 않는 일이지만, 박정희시대에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간 학교를 다닌 사람은 대통령은 곧 박정희이고 박정희는 곧 대통령이라는 기하학적 공식을 받아들이며 성장해온 세대이다. 정치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하며 국민의 정치훈련과정인 선거가 아예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곁들여. 통치집단은 국민의 정치의식을 짓누르고 따돌려서 정치적으로 바보를 만드는 우민정책을 줄곧 써오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국민의 정치의식은 높은 정치적 관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경제적 성장에 걸맞지 않게 왜소하기만 하다. (이러한 의식수준이 경제성장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하였다 하더라도 정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정치문화가 선진화 하지 못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정치에는 지름길이 없고, 역사를 단축하는데에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성급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훈련, 그에 따른 역량의 확대만이 역사의 자양이 된다.
민주주의, 그 끝없는 길을 참고 가는 수 밖에는 없다.
시작은 이제부터다.
199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