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레미제라블」그리고 안철수
요즘들어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라는 단어가 무척 친숙하게 느껴진다.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영화「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배경음악을 사용한 김연아선수가 2년의 공백이 무색한 완벽한 우승을 거두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세상에 회자되고 있다. 비록 스포츠대회였지만 김연아의 연기는 과연 예술의 경지였다. 우리국민은 환호했고 세계도 열광했다.
김연아선수의 우승이 더더욱 돋보이는 것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의 심판들의 불공정한 판정에 따른 점수배정은 우리국민을 흥분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계언론의 강력한 항의와 더불어 세계가 분노한 일대 사건이었다. 배경음악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내용처럼 거대권력을 거머진 심판진과 일본선수 「아사다 마오」에게 주어지는 막무가내식의 높은 점수의 거대한 바람앞에 선 촛불같은 김연아선수였기에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승리를 만끽할수 있었다.
빅토르 위고(V. Hugo)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주인공 장발장은 숙적 자베르경감의 추적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베르는 장발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문학적 예술적 변증법은 두사람의 극적인 갈등을 필요로 한다. 정정당당한 김연아에게는 심판을 등에 업은 「아사다 마오」가 있듯이 장발장에게는 자베르가, 자베르에게는 장발장이 필요하다. 둘중에 하나가 빠지면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시시해 지기마련이다. 김연아는 2년의 공백을 쉽게 뛰어넘은 것은 아니다. 피눈물나는 고통을 참아내면서 스스로를 이겨내고 잘못된 심판들의 항복을 받아낸 값진 승리이기에 우리국민은 기쁨의 눈물로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일 다 그렇지만 소수의 정의가 이긴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알면서도 당하고 살아간다. 세상은 1%가 99%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화두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젠가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대선이후 미국에서 머물다가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언급했다. 그리고 영화 「린컨」도 말했다. 우리의 정치현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烏飛梨落(오비이락)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교착상태에 있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TV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99%를 상징한다. 언제까지나 확고하게 1%가 계속 영원히 이길수만은 없다. 대선이후 여야가 보여준 정치형태는 안철수의 등장을 재촉한 결과를 초래했다. 1%의 정의가 우리사회의 주류를 이뤄 99%가 될 때 우리는 선진국민의 자격이 가능할 것이다.
경제는 선진국인데 정치와 사회제도는 옷이 맞지 않다. 노원병에서 안철수후보가 승리한다면 정치개혁을 위한 대과제가 그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개혁의 헤게모니를 잡을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잘못된 정치적 역사가 지니는 설명력을 존중한다면 말이다.
첫댓글 노원에서의 승리는 단순한 국회의원선거 1석의 승리가 아닌 새정치의 실현의 장구한 과정의 출발점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될 것입니다.
깊고 넓은 의미에서 반추되는 변화와 희망의 촛불이 당겨지길 기원합니다...^*^
끈을 놓치지 않고 기도와 염원속에 승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