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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 모세의 노래
[1절]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여호와께 노래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가오 가아)[심히 높으심이요](NASB, NIV)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노래한 이유는 그가 심히 높으시고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기 때문이다.
‘말과 그 탄 자’는 단수명사로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키는 것 같다.
물론, 바로 외에 그의 장관들의 병거들도 있었고 그들도 다 바다에 삼키웠다.
[2절] 여호와(야흐)는[께서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안웨후)[내가 그를 영화롭게 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애굽 왕 바로와 그 군대를 이길 힘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기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망과 죽음에서 구원을 얻었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노래하였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시고 최고의 가치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다. 즉 참된 신앙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로 계대(繼代)된다.
[3절] 여호와는[께서는] 용사(이쉬 밀카마)[전사(戰士)]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군대를 파하신 전사(戰士)이시다.
그의 이름인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이다(출 3:14).
[4-5절] 그가 바로의 병거[들]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 큰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바로의 병거들(원문)과 장관들이 바다에서 죽은 것은, 우연이거나 재수가 없어서거나 이스라엘 자손과의 전투에서 패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본문은 그 바다를 ‘홍해’라고 불렀다. 그것은, 자유주의자들이 추측하는 대로, 애굽 북동쪽 끝, 지중해의 한 해변이 아니고, ‘홍해’라고 불리는 애굽 동쪽의 큰 바다의 북단, 즉 수에즈만 북쪽의 어느 지점이었다고 보인다.
[6-10절]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카쉬)[겨]같이 사르니이다.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대적의 말이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내 마음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흉용한[거센]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
홍해 사건은 하나님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일이었다. 그의 오른손이 원수들을 부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 위엄으로 그를 거스르는 자들, 즉 그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엎으셨다.
그는 진노를 발하셨고 그의 진노는 그들을 겨같이 사르셨다.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무사히 건넜지만, 바다는 바로와 애굽 병사들을 덮었고 그들은 거센 물결에 납같이 잠겼다.
[11-12절]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펠레)[기적]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시고 자기 백성을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대적자들을 다 물에 빠져 죽게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과 거룩하심과 영광이 밝히 증거되었다.
세상에 여호와와 같은 신은 없다. 모세는 “주께서 오른손(능력의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라고 말한다.
‘땅이 그들을 삼켰다’는 표현은 특이하다. 실제로는 땅이 아니고 바다가 그들을 삼켰지만, 바다가 땅 위에 물이 고인 곳이며 넓게는 땅에 포함된다는 뜻에서, 즉 하늘과 땅 곧 천지(天地)라는 말 속에 우주만물이 다 포함된다는 뜻에서, 표현된 것 같다.
[13절] 주께서 그 구속(救贖)하신 백성을 은혜로(베카스데카)[주의 자비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속(救贖)하셨고 그의 자비로 인도하시는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가나안 땅이 그들이 가려는 목적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으로 그들을 그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신다.
[14-16절]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홍해 사건의 소문은 애굽 주위의 여러 나라들에 널리 퍼질 것이다.
이방 나라들의 백성들과 용사들 곧 블레셋 거민들, 에돔 방백들, 모압의 영웅들, 가나안 거민들 등이 다 듣고 두려워 떨고 낙담할 것이다.
40년 후,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주의 백성’ ‘주의 사신 백성’이라고 표현했다. 신약 성도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핏값으로 사신 자들이다.
[17-18절]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시는 그의 기업의 산, 그의 예비하신 처소, 그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는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19절] 바로의 말과 병거[들]와 마병[들]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바로의 말’이라는 원어는 단수명사이다. 바로 자신이 그때에 홍해에 빠져 죽었다고 보인다. 바로의 말과 애굽의 병거들과 마병들이 다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했다.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라는 표현은 네 번째 나왔다(출 14:16, 22, 29; 15:19).
이렇게 반복해서 증거된 대로, 홍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며 하나님의 놀랍고 은혜로운 기적의 사건이었다.
[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네비아)[여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작은 북]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구약시대의 미리암이나 신약시대의 전도자 빌립의 네 딸과 같이 여자가 선지자인 경우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선지자, 신약시대에 사도나 장로와 집사는 남자들 중에서 택했다.
[22-23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수르 광야는 시내 반도의 북서쪽, 홍해 건너편 애굽 가까이에 있는 광야이었다고 본다(창 20:1; 25:18; 삼상 15:7).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행하면서 물을 얻지 못하여 매우 불안하고 고통스러웠고 물이 있는 한 곳에 이르렀지만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여 그 곳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 마르라는 말은 ‘쓰다’는 뜻이다.
인생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3일 전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던 그들은 이제 물이 없거나 물이 써서 어려움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홍해를 건너는 기쁨도, 물이 없거나 물이 쓴 고통도 주셨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신 일들이었다.
[24-25절]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불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보이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향해 불평하였다. ‘원망하다’[불평하다, 투덜거리다]는 원어(룬)는 출애굽기에 다섯 번(출 15:24; 16:2, 7, 8; 17:3), 민수기에 여덟 번 사용되었다(민 14:2, 27, 27, 29, 36; 16:11, 41; 17:5).
고난 중에 불평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공통적 연약성이다. 불평과 투덜거림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모든 은혜를 잊어버리고 고난의 현실을 참지 못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려울 때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놀랍게도 물맛이 달아졌다. 그것은 나무 자체의 효능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 기적이었다.
[26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솨모아 티쉬마 )[진심으로 듣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교훈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계명들과 율례들을 힘써 지키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셨다.
이것은 잠언 3:7-8의 말씀과 동일하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건강, 치료]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큰 의사이시다. 몸의 건강과 병의 치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70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엘림은 오아시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간 목마름도 주셨지만 시원한 물도 주셨고, 얼마간 고난도 주셨지만 기쁨과 평안도 주셨다.
출애굽기 15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홍해의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모세의 노래는 홍해 사건의 체험에 근거했다. 우리는 홍해의 사건의 역사성을 비롯해 모든 성경 내용의 진실성을 믿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원수들인 바로와 그 장관들을 멸하셨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 기업의 산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우리 개인과 교회와 국가와 온 세계를 섭리하시고 통치하신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영광의 천국을 예표한다. 신약 성도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이 구원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이 세상에는 고난이 많이 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잊지 말고 그의 능력과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평과 원망이나 낙심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데서 나온다. 무슨 문제이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그들에게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건강과 치료를 약속하신 것이다. 계명 순종은 건강뿐 아니라, 모든 평안과 행복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