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같은 제사장
(베드로전서 2:9~10)
한국에 IMF가 터지고 나서 한 때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부성부재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 큰 남자인가? 아침에 밥 달라고 식탁에 앉아 있는 남자, 아내가 잔소리하는데 자꾸 말을 끊는 남자,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대꾸하는 남자,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남자, 아내가 텔레비전 드라마 보는데 채널 돌리는 남자, 돈을 달라는 아내에게 어디 쓸거냐고 물어보는 남자, 밤늦게 들어온 아내에게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보는 남자, 아내가 꾸짖는데 자진해서 무릎 꿇지 않는 남자, 은퇴 후에 집에 들어 앉아 큰 소리 치는 남자. 이러한 모든 것은 아버지 부재와 약해지는 남성상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남성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공연히 어깨가 움츠려들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사실은 굉장히 귀한 존재인데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늘 자기를 비하하면서 자존감이 낮게 살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는데 우리는 매사에 자신이 없고 좌절하고 한숨짓고 어둡게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크리미아 전쟁 때 제정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가 군대를 시찰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암살시도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어떤 졸병이 니콜라이 황제를 피신시켰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니콜라이 황제가 살았습니다. 이것을 고맙게 여긴 황제가 졸병에게 ‘자네 소원이 무엇인가?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네’라고 했습니다. 졸병이 말하길 ‘상사가 악질인데 매일 괴롭히고학대합니다. 전역시켜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니콜라이 황제가 한숨을 쉬며 ‘전역하지 말고 내가 상사가 되게 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열왕기하 13:14~21에 보면 엘리사가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기 전에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를 불러 축복합니다. 당시 아람과 이스라엘이 계속 싸웁니다. 전쟁에 이기면 화살을 땅에 칩니다. 엘리사가 왕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시리아 전쟁에서 이기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화살을 가져와서 땅에 치라고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 세 번 밖에 안칩니다. 왕에게 엘리사가 화를 냅니다. 왕께서 5~6번 이상 치셨으면 아람과의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었을 터인데 세 번 밖에 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전투 세 번 밖에 승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인들도 구원의 기쁨 속에 살지 않고 자존감이 낮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괴롭게 살아갑니다.
이것은 남들이 볼 때는 얼굴이 예쁜데 자기가 자기 얼굴을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성형수술하는 여자와 똑같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예수를 믿는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택하셨습니까?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 구별해서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구별하셔서 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했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 책임지시고 돌보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식이 잘 났어도 사랑하고 못났어도 사랑하듯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귀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의 신앙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4대째 예수님을 믿는 집안이었는데 첫 아기를 나았는데 그 아기가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런 아기였습니다. 하나님께 원망도 해보고 속으로 사실 이 아기가 빨리 죽었으면 바랬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창세기를 공부하다 만물은 하나님이 만들고 인간도 하나님이 만들고 그래서 내 아기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었으니까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그때부터 깨닫기 시작해서 그 아기를 정성을 다해 키웠고 그래서 그 아기 때문에 부부가 은혜를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귀한 존재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를 믿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복음송 중에 다음과 같은 찬양이 있습니다.
왕, 왕, 왕, 왕 나는 왕자다
하나님 나라에 나는 왕자다
내가 비록 어릴지라도 나는 왕 나는 왕 나는 왕자다
이 노래가 뜻하는 것은 왕자병, 공주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왕자처럼 공주처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처럼 우리는 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왕으로서 행세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두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백성의 문제를 아뢰고 백성을 대신해서 백성의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역으로 백성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문제는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 모두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회는 우리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여러분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잘 해야 이 세상 사람들이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 세상 사회보다 교회가 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참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어려운 것입니다. 교회가 제사장 역할을 못합니다.
또한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빛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34:28~35에 보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40 주야를 하나님과 함께 지냅니다. 모세의 얼굴에 놀라운 광채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두려워서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모세의 얼굴이 왜 광채가 났을까요?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광채가 반사되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광채를 늘 쬐고 우리의 생활과 인격에 빛이 나서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비추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어둡게 삽니다. 옛날에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영적으로 어둠의 자녀입니다. 그들은 태양광선을 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빛으로 살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통해 빛을 쬘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빛이 이 세상을 치유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예수 믿는 집에 교회 명패를 붙입니다. 집 찾기 좋으라고 붙일까요? 아닙니다. 여기 택한 족속이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가 왕 같은 제사장의 관저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의 집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집은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을 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소유한 거룩한 백성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여러분의 삶에 침범하게 못합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예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행복하고 빛이 찬란한 풍성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두 마리의 송충이가 땅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를 찬란한 나비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송충이 한 마리가 한 숨 섞인 말을 합니다. ‘똑같은 생물인데 어떤 놈은 날아다니는데 우린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그러자 친구 송충이가 대꾸했습니다. ‘내려다 보고 살자. 솔잎이나 실컷 먹다가 죽자구’ 여러분 이 송충이의 비극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얼마 후 자신들도 변해서 공중을 나는 나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장차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될 귀한 존재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행복하게 사십시오. 자신감 있게 사십시오. 빛을 발산하십시오. 세상을 향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