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高聲)도 삿대질도 없었다
요8:3~9
하루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 예수님께 물었다. “이 여인이 간음 현장에서 잡혔는데 돌로 쳐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돌로 쳐야 한다”고 하면 예수님은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이번에는 모세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양도논법에 걸린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답하셨다. 이에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군중들은 모두 조용히 떠나갔다. 예수님과 그들 간에는 고성도 없었고 삿대질도 없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다음 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권위를 네게 주었느냐”며 따졌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며 되물었다. 이에 저들은 서로 숙의한 후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며 잠잠히 떠났다. 역시 예수님과 저들 간에는 멱살 잡는 일도 없었고, 고성이 오가는 일도 없었다. 눅2:42~46을 보자.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12살 난 아이가 흰 수염이 난 랍비들에게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다. 즉 논쟁을 벌인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 같았으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디서 말대꾸야!”라며 혼쭐을 내어 내쫓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후츠파(חֻצְפָּה)”라 하여 가정과 회당과 학교와 기업과 군대와 총리 관저 등등 이스라엘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토론문화이다. 이래서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은 항상 시끄럽다.
소수 민족인 유대인들이 세계적인 금융, 세계적인 대기업, 석유 메이저, 식량 메이저, 미국의 신문방송 산업, 영화 산업, 다이아몬드 산업, 노벨상 등등을 석권하고 있는 이유는 이런 토론문화(반대의견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토론하면서 절대로 멱살을 잡거나 주먹질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논쟁만 한다. 반대의견이란 무엇인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다른 시각일 뿐이다.
p.s.
이정수 목사와 내가 만나면 항상 토론했다. 성경, 신학, 책, 역사, 사회문제 등등... 토론에서 서로가 일치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항상 반대의견 때문에 서로 부딪혔다. 그 이유는 그의 삶과 나의 삶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나의 판단력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