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충실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이다. 이 작품은 수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다. 그중 1936년 조지 큐거가 감독하고 레슬리 하워드가 주연한 작품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1996년 작품이 유명하나 가장 대중적인 사랑과 지지를 많이 받은 작품은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제피렐리의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원작답게 대부분의 대사가 "내 목숨은 원수의 빚이로다."와 같은 은유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이런 싯귀로 된 대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생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 원작 중 등장인물의 나이에 가까운 배우를 기용한 최초의 영화라는 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의 남녀 배우 두 사람은 촬영 당시 15살, 16살인 미성년자로, 지금까지 나온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 중 가장 원작의 나이에 가깝다. (사진 : 올리비아 핫세)
엇갈린 운명으로 인한 두 젊은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로 알고 있지만, 정작 4대 비극은 <햄릿>·<리어왕>·<맥베스>·<오셀로>이다. 이는 작품성 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4대 비극에 못 미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확실히 <로미오와 줄리엣>은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고통 따위를 파헤치기 보다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통속 멜로드라마와 같은 느낌을 많이 풍기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기 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 이 작품을 따라올 작품은 없을 것이다. 햄릿이나 오셀로의 줄거리는 잘 몰라도 이 작품의 줄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훤히 꿰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미성년자임에도 전신 베드신이 등장한다. 1970년대 국내에서 개봉할 때는 베드신이 통째로 삭제되었다. 나중에 무삭제로 나온 비디오테이프나 DVD를 보고서야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누드신과 관련해서 2023년 1월 두 배우는 제작사 파라마운트사를 상대로 미성년자 나체 장면에 대한 성 착취 및 아동학대혐의로 5억 달러의 배상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영화를 찍을 때 제피렐리 감독(2019년 별세)이 사전에 누드 촬영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으나 촬영 마지막 날 간곡한 요구로 과도한 노출 신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찍기 전에는 영화상의 공개는 없을 것이라는 설득에 어린 나이의 두 주인공이 깜박 속아 넘어 갔다는 것이 소송의 전말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닷새에 걸쳐 일어난다. 그 닷새 사이에 서로 죽자 살자 하면서 반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결혼식을 올리고 동반자살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두 사람의 관계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초스피드로 진행된 것이다.
10대 중반의 청소년들이 우연히 만난 상대방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주변 여건이 두 남녀의 결합을 용납하지 않는 바람에 순식간에 운명이 꼬이면서 죽어버린다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이걸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사진 : 레오나드 위팅과 핫세)
“말리면 말릴수록 불타는 것이 사랑이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막으면 막을수록 거세게 흐르는 법이다.”
이 영화는 85만 달러를 들여 무려 389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정작 두 주인공은 이후 별 성공작이 없다. 그나마 줄리엣 역의 올리비아 핫세는 띄엄띄엄 영화에 출연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남자 주인공 레오나드 위팅은 완전히 묻혀 버렸다. 오히려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 역으로 나온 마이클 요크가 이후 훨씬 더 유명해졌다.
<길>·<대부>·<태양은 가득히>·<해바라기>와 같은 주옥같은 영화 음악을 남긴 거장 니노 로타의 음악은 이 영화에서도 뛰어나다. 이 영화의 주제곡인 캐플릿 가의 축제에서 가수가 부르는 노래 ‘What is a youth’는 팝송으로 ‘A time for us’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졌다.
간략한 줄거리
몬태규 가의 로미오는 원수 집안인 캐플릿 가의 가장무도회에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가 줄리엣을 본다. 그녀에게 첫눈에 홀딱 반한 로미오는 줄리엣이 바로 원수 캐플릿가의 딸이란 사실을 알고는 더욱 놀란다. 하지만 그녀에게 끌리는 감정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야밤에 담장을 넘어 창가에서 그녀를 만난다. 줄리엣 또한 로미오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이튿날 두 사람은 신부님의 주례로 몰래 결혼식을 치르고 첫날밤까지 치른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친구 머큐쇼와 싸움에 휘말린 로미오가 줄리엣의 사촌오빠인 티볼트를 죽이게 되면서 로미오는 쫓기는 몸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 다양한 재능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
프랑코 제피렐리는 1967년에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데뷔작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이어서 사춘기 나이의 젊은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을 발탁해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떠오른다. 이후 1990년에는 액션 배우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멜 깁슨을 기용해 만든 <햄릿>도 모두 셰익스피어 작품들이다. 이탈리아 감독이 왜 이렇게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화화에 집착했을까.
* 사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그의 성장 과정이 이를 말해준다. 제피렐리는 여섯 살 때 폐렴으로 어머니가 죽고 피렌체의 생부의 사촌 집에서 군식구로 살면서 이 지역에 있는 영국인 공동 커뮤니티에 들락거리면서 성장했다. 이때 그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영국인 매리 오닐을 만났다. 오닐은 그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의 참맛을 알게 해주었고 한편으로는 영국식 자유민주주의 가치관도 불어 넣었다.
이와 같은 배경 때문에 제피렐리는 독재자 무솔리니 집권 당시 공산주의자 게릴라들과 함께 무솔리니 파시스트 군대에 맞서 싸우게 된다. 피렌체 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학업을 중단한 채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이 와중에 그는 파시스트에게 체포됐다. 총살 위기에 몰렸던 그를 심문한 사람이 마침 배다른 형이었기 때문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교황청의 총애를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 영화도 줄줄이 만들었다. <성 프란치스코>와 TV 시리즈물로 제작된 <나사렛 예수>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사렛 예수>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했던 올리비아 핫세가 마리아로 출연했다. 한때 무신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 편에서 싸우던 그가 기독교 성인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자못 역설적이다. 이외에도 그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인 <챔프>와 <끝없는 사랑> 등을 감독하기도 했다.
* 사진 : 이태리 밀라노 스칼라 극장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제피렐리의 재능이 가장 돋보이는 분야는 그의 탁월한 무대디자인 솜씨가 빛을 발하는 오페라 무대였다. <라 트라비아타>·<오셀로> 등의 오페라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제피렐리는 1952년부터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연출을 맡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1960년대 이후로는 <아이다>·<토스카> 등 풍성하고 화려하며 스펙터클한 무대 연출을 통하여 뛰어난 오페라감독이라는 명성을 누렸다. 그의 오페라 연출은 섬세함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오페라란 한 마디로 ‘재미와 환상과 여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 사진 : 극장 내부
고상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만들고 한편으로는 멜로드라마 영화를 감독하면서 대작 오페라를 줄줄이 연출하는 제피렐리의 하이브리드적인 다양한 재능은 그의 가족사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그는 유부남과 유부녀였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피렌체 근방인 빈치에서 양모, 비단을 파는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피렌체의 패션디자이너였다.
르네상스 시절 빈치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다재다능했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출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제피렐리는 레오나르도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제피렐리는 2019년 6월 15일 향년 96세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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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태리가 제2 고향인 소생 많이 배우고 갑니다. ㅎㅎㅎ
화이팅군과 허세양이 베란다에서
사랑을속삭였다는 베로나골목에
있는 자그마한 집을 가본적이
있읍네다 근디 아무리봐도조금
구라같은기분이들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