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버려진(?) 삼남매가 있습니다. 아빠 슬하에서 자라고 아빠와 함께 살아왔지만 그 아버지는 이제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연히(?) 큰 누나가 집안에서 엄마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엄마의 부재가 마음 아프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두 남동생도 이제는 다들 커서 자기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누나에 대한 생각은 남다를 것입니다. 엄마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환경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누나의 부탁이나 말이라면 대놓고 반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따르려고 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각자의 삶이 있습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때는 지났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자기 인생길이 있다 해도 여전히 가족입니다.
큰 누나, ‘미정’ : 무슨 이유였을까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자식들을 두고 가정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가능한 멀리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남쪽에서 저 멀리 북쪽으로 갔습니다. 연락이나 하며 살았을까요? 어디 있으려니 생각은 하면서도 왕래는 없었던 듯싶습니다. 그 한을 짊어지고 미정이는 동생들을 챙겨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결혼했습니다. 딸 하나 생기고 미정이도 남편과 헤어졌습니다. 홀로 딸 하나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떠나간 엄마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원망스럽다가도 자신의 현재와 비교해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 떠나가야만 했는지 말입니다. 엄마의 부부생활도 쉽지 않았으리라 이해할 만하지 않았을까요?
딸에게는 아빠가 멀리 외국으로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찾으려는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은 듯합니다. 그러니 국내에 버젓이 살아계심을 알았을 때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을까요? 사실 그렇습니다. 헤어지면 부부는 남남이 될 수 있지만 자식은 남이 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자식입니다. 부부야 만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나든 못나든 아빠 아니면 엄마이고 자식입니다. 어디를 가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식이 어느 한쪽 부모를 만나든 안 만나든 그 선택은 자식에게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예 차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자식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지요.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정이 역시 자기 딸에게 잘못한 것입니다. 본인의 뜻과 달리 떠나간 엄마로 인하여 가진 아픔에 자신의 딸을 속인 죄책감까지 덤으로 가집니다. 아픔을 가지고 살아온 인생인데 남편과의 이혼이라는 상처에 이제는 딸에게까지 아픔을 얹어주어 그야말로 주저앉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도 함께 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아빠와 동생들. 그리고 내 배에서 나온 딸, 다 자란 이 딸 녀석도 이제는 자기 맘껏 놀아보겠다고 졸라대는데 마냥 거부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도망쳐 나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 아니겠습니까? 좀 미운 짓한다 한들 사랑해주어야지요. 행여 나 같은 인생을 만들면 안 됩니다.
동생 ‘경환’ : 이제 결혼 초년생, 막 아빠가 되려는 참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삶을 꿈꾸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사진관, 이제는 사향산업. 없어져가는 직종 아닙니까?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니까 뭐 하나 시작하기가 겁난다.’ 삶이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비해서 아내가 더 늠름해 보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유지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착하고 선한 성품만이라도 아내에게는 복된 남편일 수 있습니다. 누나의 부탁이니 거부할 수도 없어 따라 나섰지만 마음은 아내에게 가 있습니다. 부랴부랴 달려와 아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명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막내 동생 ‘재윤’ : 우리 모두 할 말 다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할 말 하지 못하고 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가족이기에 더 말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차라리 남이라면 속 시원히 꺼낼 수 있는 비밀(?)을 가까운 가족이기에 함부로 꺼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상처 받을까 두려워서 그러는 겁니다. 남이야 자기 일도 아니니 상처 받을 일 없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다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이기에 숨겨두는 것입니다. 홀로 지켜내랴 힘들지요. 그것을 꺼내려면 신뢰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엄마 같은 누나, 인생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니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품어줍니다. 또한 그래서 가족입니다.
소식 끊고 살다가 어느 날 아주 간단한 엽서 한 장이 경환에게 옵니다. 이제는 정리하고 넘겨준 사진관, 그 옛날 집이 그냥 남아있는 동안 우편함에 모여 있던 우편물을 넘겨받았습니다. 이것저것 넘기다 쳐다본 엽서, ‘아들 보고 싶구나.’ 삐뚤빼뚤 적혀 있는 한 마디. 그래서 누나가 앞장서 삼남매와 미정의 딸이 짧은 여행을 떠납니다. 티격태격하며 찾아간 엄마는 사실 그 자리에 없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유물과 남은 기억들. 상처와 아픔을 이겨낸 깨달음, 인생이 뭐 별거냐? 다 그게 그거지. 영화 ‘니나 내나’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일고 갑니다
복된 주말을 빕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
좋아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