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94) 고추잠자리
중앙일보
2023.09.28 00:04
고추잠자리
지성찬(1942∼)
해 질 녘
고추잠자리
꽃잎 물고
잠이 들었다
그 넓은
하늘을 날다
마지막
고른 자리
가녀린
다리로 짚은
작은 꽃잎이었다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추석 풍성하게 맞으소서
그 넓은 하늘을 날던 고추잠자리가 결국 작은 꽃잎에 내려 잠이 들듯이 추석을 고향에서 맞이하고자 하는 귀성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인의 귀소 본능은 유별나다. 자신의 잘된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어한다. 설령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산소를 찾아 보여드린다. 온 세상을 누비며 살다가도 뼈는 고국에 묻히고 싶어하는 한국인들. 끈질긴 귀소 본능이 흥망이 명멸하는 세계사에서 이 작은 나라를 단단하게 지켜온 힘이 아니었을까? 힘들여 고향을 찾은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풍성하고 가슴 설레는 우리의 추석!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193) 춘풍(春風) 도리(桃李)들아
중앙일보
2023.09.21 00:23
춘풍(春風) 도리(桃李)들아
김유기(?~1718)
춘풍 도리들아 고운 양자 자랑마라
창송(蒼松) 녹죽(綠竹)을 세한(歲寒)에 보려무나
정정(亭亭)코 낙락(落落)한 절(節)을 고칠 줄이 있으랴
-악학습령(樂學拾零)
예술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다
봄바람에 핀 복사꽃과 오얏꽃아, 고운 모습을 자랑하지 말아라. 늘 푸른 소나무와 녹색 대를 한겨울에 보려무나, 곧게 우뚝 서 있어 당당하고 뛰어난 절개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은가. 오얏은 자두를 말하며, 세한은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혹한(酷寒)을 이른다.
좋은 시절에 아름다운 모습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봄철에 앞다투어 피는 꽃들과 같다. 그러나 역경에 지조를 굽히지 않기는 쉽지 않다. 그 모습을 추위에도 꿋꿋한 소나무와 대나무에서 본다. 훗날 제주 대정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자기를 찾아와 중국의 귀한 서책을 전해준 제자 이상적을 한겨울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겨 칭송한 연유도 그와 같았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우리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며…….
김유기(金裕器)는 조선 숙종 때 활동했던 명창이다. 중인(中人)이나 서얼(庶孼), 서리(胥吏), 평민 출신을 이르는 여항(閭巷) 육인의 한 사람이었으며 김천택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192) 바다
중앙일보
2023.09.14 00:16
바다
-낱말 새로 읽기 13
문무학(1951∼)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상상력 넓혀주는 새롭게 보기
‘바다’가 다 ‘받아’ 주기 때문에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어머니의 ‘괜찮다’는 말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는 한량 없는 품이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바다’가 된 것이다. 어머니의 넉넉한 품이 자식들을 품어주고, 세상을 키웠으니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 얼마나 위대하신가.
문 시인은 또 품사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품사 다시 읽기’도 시도한다. 그는 조사(토씨)에 이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애당초 나서는 건 꿈꾸지도 않았다/ 종의 팔자 타고 나 말고삐만 잡았다/ 그래도 격이 있나니 내이름은/격조사.’
조사란 단어 아래 붙으니 종의 팔자이고, 그래서 말고삐를 잡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격조사의 경우, 그 조사에 의해 주어의 자격이 부여되니 종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
그의 이런 ‘새롭게 보기’는 언어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준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191) 꿈에나 님을 볼려
중앙일보
2023.09.07 00:30
꿈에나 님을 볼려
호석균(생몰연대 미상)
꿈에나 님을 볼려 잠 이룰까 누웠더니
새벽달 지새도록 자규성(子規聲)을 어이하리
두어라 단장(斷腸) 춘심(春心)은 너나 나나 다르리
-청구영언
이별의 아픔은 예술로 남고
임이 떠나신 후 그리운 마음을 참을 길 없다. 꿈에서라도 임을 보려고 잠을 청하였는데, 밤새도록 두견새가 울어 잠을 이룰 수 없다. 두견은 짝을 찾아 운다고 하니 애끊는 그 마음이야 너나 나나 다르겠는가.
호석균(扈錫均)의 호는 수죽재(壽竹齋)이며, 안민영과 함께 운애산방(雲崖山房)에 출입하던 가객이었다. 운애산방은 당대 풍류가객으로 이름 높던 박효관이 흥선대원군의 후원으로 필운대에 만든 장소였다. 이곳에서 19세기 후반의 수준 높은 가곡이 다듬어졌다. 따라서 호석균은 당대의 가객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한 생애는 이별의 연속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단장(斷腸)의 아픔이지만 그 슬픔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기도 한다.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범죄의 형태로까지 나타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공자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 하였으니 아무리 슬퍼도 몸과 마음을 상하지는 않아야 할 일이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