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나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왔더니 아침을 먹고 책상앞에 앉아 있으니 꾸벅꾸벅 졸려 안방에 가서 이불위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데 휴대폰 소리가 요란하다.
성당에 갔던 아내가 지금 비가 많이 쏟아지니 베란다 창문과 세탁기옆 창문을 좀 닫으라는 전화다. 바깥의 빗소리를 들으니 느닷없이 아득한 옛날 어릴 때 추석이나 설날에 엄마손을 잡고 외갓집이 있던 의령을 가던 때가 생각난다.
마산서 의령으로 가는 시골버스를 타고 가면 양쪽으로 쭉 늘어 선 가로수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긴 기둥의 행렬처럼 보이기도 하고
버스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로수가 휙휙 지나쳐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버스를 타고 가면 왜 머리가 빙빙 돌고 아픈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커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아 그게 멀미였구나 하고
외갓집에서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화장실이 외딴곳에 있어 귀신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겁이 나서 마루에서 그냥 마당으로 오줌을 갈기기도 했는데 마당 가운데에는 감나무에 단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어른들한테 들킬까봐 얼른 고추를 감추기도.
그때는 명절이 되면 외갓집에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쫄랑쫄랑 따라가서 용돈이나 세뱃돈도 받고 맛 있는것 실큰 얻어 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모두 돌아가시고 그 외갓집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 하긴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내 나이가 팔순이 다 되어가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 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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