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명칭 :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慶州 羅原里 五層石塔) 지정일 :
1962.12.20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 1기 시대 : 통일신라 주소 : 경북
경주시 현곡면 라원리 676
나원리 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면마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가운데 조각을 아래층은 3개씩, 위층은 2개씩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예리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부서진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잘려나간 찰주(擦柱: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쇠꼬챙이)가 남아있다.
짜임새있는 구조와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5층 석탑으로, 탑이 지니고 있는 듬직한 위엄에 순백의 화강암이
가져다주는 맑은 기품이 잘 어우러져 있다. 높은 산골짜기에 우뚝 솟은 거대한 모습에서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이 묻어난다.
-문화재청
신라 팔괴(八怪)
백탑(白塔)
나원리 오층석탑을 신라 팔괴 중 하나라고 한다. 신라 팔괴(八怪)란 경주에 있는 여덟 가지
괴이한 것을 말하는 데 구체적이지 않고 전설적인 것까지 포함하여 대략 열 가지 정도인데 사람에 따라 여덟 개를 정하여 팔괴라고
한다.
여름에 누레지는 잎사귀를 보고 최치원이 신라 국운의 쇠퇴를 예언했다는 '계림황엽', 아사달 아사녀의 전설이 서린
'불국영지', 아름다운 선도산 새벽 경치 '선도효색', 금오산 저녁 노을 '금오만하', 남산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바위 '남산부석', 안압지 물
위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떠있는 마름 풀 '압지부평', 문천(남천)의 모래는 물위에 떠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문천도사(倒沙)' 등을
말하며 나원리 오층석탑 역시 신라 팔괴에 속한다. 천 년이 넘도록 이끼가 끼거나 색이 바래지 않고 순백색을 띠어 예로부터 나원 백탑(白塔)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탑이 있는 지역은 화강암이 산출되는 곳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제작 당시 다른 곳에서 원석을 옮겨와 탑을 건립했다고 추정한다. 이 석탑을
품었던 사찰을 추정할 만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사찰명 대신 지명을 따서 나원리 오층석탑이라고 부른다.
신라의 대표적 오층석탑
나원리
오층석탑은 감은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등과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초기 석탑으로 손꼽힌다. 특히 거대한 규모 때문에 거탑(巨塔)이라
부르는데 대부분이 삼층석탑이지만 나원리 석탑은 드물게도 오층석탑이다. 일설에 따르면 삼층석탑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을 뜻하는데 오층탑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사상으로 부처가 온 곳에 상주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이 층의 기단 위에 오 층의 탑신이
세워진 구조이다. 아래층 기단은 모서리에 우주를 세우고 한 면에 탱주를 3개씩 조각하였다. 윗층 기단은 우주와 함께 탱주를 2개씩 조각하였다.
5층의 탑신 중 1층 몸돌은 너무 커서인지 각 면에 판석을 세운 조립형태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각 층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또한, 5개의
지붕돌은 1층과 2층의 경우 아래쪽 5개의 층급받침과 지붕돌이 별개의 석재로 되어 있다. 그리고 3층 이상은 층급받침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매끈하고 날렵한 마감처리로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석탑이다. 다만 상륜부는 온전치 못한 노반석만 남아
있어 아쉽다.
국보탑이 모두 31기인데 그중 오층탑은 7기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이 백탑은 백미(白眉)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리장엄구 발견
나원리
오층석탑은 감은사지 석탑과 함께 도굴이 되지 않아 온전하게 서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그동안 도굴꾼들의 도굴 행위가 심하여 마을
사람들이 원두막을 짓고 지키기까지 하였다. 손실을 우려해 1995년 말부터 1년여간 해체 수리를 진행하였는데 3층 옥개석 윗면의 사리공에서
사리함과 금동소탑, 금동소불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대부분 몸돌 상부에 사리공을 마련하는 데 비하여 지붕돌 상부에 사리공을 만든 것은
매우 특이한 점이다.
금동사리함에서는 사리 15과가 나왔는데 조계종 차원의 진신사리 친견행사를 한 후 석탑 복원 시 다시 사리공에 넣었다. 나머지 금동구 층 탑
3기, 금동삼 층 탑 1기, 순금 소불상, 먹으로 쓴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파편, 구슬 30여 개 등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라고 한다.
특히 금동탑의 경우 그 형태와 모양이 온전하여 신라 탑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현재 나원리 오층석탑 뒤편에는 나원사라는
작은 절이 있지만, 이는 근래에 들어선 것이다. 석탑까지 불과 1Km도 못 되는 거리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우선 큰 버스는 아예 진입할 수
없고 승합차도 겨우겨우 바퀴 빠지는 걸 걱정하며 솜씨운전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국보 문화재가 위치한 곳의 여건치고는 최악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작년에 탑 아랫면을 정비하여 주차장을 세우고 화장실 등을 갖춘 듯 한데 진입로의 조속한 확장과 직선화가
필요하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