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홍의 아동문학 통신 / 112〕서평
그늘진 곳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 같은 마음
안덕자 동화집〈캥거루 주머니엔 뭐가 들어있을까〉
김 문 홍
동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미학
①
한 수녀가 길을 가고 있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한 소녀의 참담함에 수녀는 절규하듯 하나님께 원망에 가까운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왜 저런 참담함을 그대로 보고 있사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인자한 목소리로 수녀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너를 있게 하지 않았느냐.”
- 전광렬, KBS 연예대상 시상식, 2010. 12. 26.
②
.....(앞은 줄임)
아마도 너희들은 동현이나 석이처럼 가슴에 먹구름이 낀 친구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있게 될 거야. 예쁜이처럼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의 좋은 점을 찾아보게 되겠지. 또 친구를 겉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대할 게 분명해. 까치 아저씨처럼 한 번쯤은 넉넉한 친구의 모습도 되어 보고 말이야.
얘들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이렇게 너희들의 마음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면 누가 더 행복해질까?
정답을 아는 친구는 손들어 봐.
뭐? 다 안다고?
- 안덕자, 캥거루 주머니엔 뭐가 들어있을까, 머리말.
위 인용문 ①은 지난 12월 26일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희망 로드 대장정’ 프로그램의 수상자로 나섰던 탤런트 전광렬이 인용한 이야기이고, 인용문 ②는 첫 동화집『캥거루 주머니엔 뭐가 들어있을까』(청개구리, 2010. 12)를 내놓은 지은이 안덕자가 쓴 머리말 중의 한 부분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용문 ①의 소녀와 ②의 지은이가 겹쳐 보이게 된다. 하나님이 헐벗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옷을 입혀 주는 ‘착한 사마리안’의 역할을 수녀에게 부여했듯이, 동화작가는 그늘진 곳에 있는 소외당한 아이들에게 따스한 사랑의 햇살을 비춰주는 목자(牧者)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동화작가는 아동문학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동화작가 안덕자의 첫 동화집『캥거루 주머니엔 뭐가 들어있을까』에 수록된 6편의 단편동화들은 그런 점에서 모두가 그러한 주제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제마다 서사구조는 달리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늘진 곳에서 생활하는 마음이 외로운 아이들의 해맑은 영혼에 스며드는 한줄기 햇살과도 같다.
①
캥거루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애들아, 캥거루 주머니엔 뭐가 들어 있을까? 이 커다란 주머니 속을 보고 싶지 않니?”
아이들은 어느새 아기 캥거루로 변했습니다. 아기 캥거루들이 캥거루 선생님의 주머니 속으로 폴짝폴짝 뛰어들어갔습니다.
캥거루 선생님의 주머니 안은 무척 따뜻했습니다.
-「캥거루 선생님」, 28쪽.
②
밤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의 꽃섬이 환해졌습니다. 꽃등대에서 불빛이 흘러나왔습니다.
석이는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등대의 불빛이 꺼질까 봐 밤새도록 조마조마했습니다.
“엄마, 아빠. 길 잃지 말고 엄마가 좋아하는 꽃 보고 잘 찾아 와.”
어두운 밤,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위로 반짝반짝 꽃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꽃등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붉은 꽃잎이 되어 바다 위로 흩어졌습니다. 멀리 보이는 캄캄한 수평선을 향해 꽃잎이 흘러갔습니다.
등대에서 나오는 불빛이 자꾸만 꽃잎을 만들어 냈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수많은 꽃잎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더니, 드디어 수평선까지 꽃길이 열렸습니다.
그동안 석이가 바다에 뿌린 꽃송이가 물결을 타고 모두 모여드는 것 같았습니다.
- 「수평선으로 난 꽃길」, 66-67쪽.
위 인용문 ①의 캥거루 주머니는 ‘천사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 공부를 가르치는 대학생 누나의 앞치마를, 그리고 인용문 ②의 꽃등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석이가 살고 있는 섬을 방문한 젊은이가 석이를 위해 그려준 그림 속의 등대를 나타내고 있다. 캥거루 선생님의 앞치마(캥거루 주머니) 속에서는 천사원 아이들의 영혼을 위무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갖가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림 속의 꽃등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석이의 그리움의 대상인 엄마, 아빠가 돌아올 길을 밝힌다.
인용문 ①에 나오는 대학생 누나와 ②의 그림 그리는 젊은이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연민의 눈길을 통해 격려와 용기를 주는 작품을 통해 그늘진 곳의 소외된 아이들을 구원해야 하는 동화작가의 책임과 의무를 상징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인용 대목에서 동화의 본질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인용문 ①에서는 캥거루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갖가지 물건들이 아이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고, 끝내는 그러한 주머니가 하나의 판타지적 공간이 되어 아이들이 그곳으로 뛰어들어 현실 속의 아픔을 잊는 치유의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②에서는 그림 속의 꽃등대라는 판타지적 공간이 매개가 되어 석이의 현실적 그리움으로 상징되는 ‘바다 위의 꽃잎’과, 가여운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작가의 사랑과 연민을 상징하는 ‘꽃등대의 불빛’이 혼연일체가 되어 아름다운 판타지적 공간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동화문학의 궁극적 목표와 동화작가의 소명감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과 판타지의 융합을 통한 상처의 치유
이 동화집에 실려 있는 6편의 단편동화들은 모두 판타지를 다룬 순수동화가 아니라 현실의 리얼리티에 판타지를 접목시킨 생활동화에 속한다. 이 작품집 속의 동화들 역시 일상적인 현실을 중심축으로 서사구조를 전개시키면서 부분적으로 판타지적 공간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거기에 접목시키는 생활동화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접목시키는 그러한 판타지적 세계는 현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시키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①
종빈이는 엄마 귀에다 속삭였습니다.
“음, 해님은, 바로 우리들의 웃음을 먹고 살아, 맞지?”
“종빈이 대단하구나! 혼자서 그걸 알아 내다니! 엄마는 방글방글 웃는 종빈이가 있 어 하루 종일 지하실에서 재봉틀을 돌려도 힘이 나.”
엄마는 웃으며 종빈이를 꼭 껴안았습니다.
“종빈아, 아빠가 얼마 전부터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어, 이제 곧 종빈이를 알아볼 거야. 내일 아빠 보러 갈까?”
“정말?”
“우리 종빈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아빠도 힘이 날 거야. 아빠는 우리 집의 해님이니까.”
“정말이네? 그럼 내일 아빠 앞에서 많이 웃어야지.”
종빈이와 엄마의 웃음이 방 안 가득 퍼졌습니다.
-「해님은 무얼 먹고 사나요」,49쪽.
②
할아버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벽화에다 당신처럼 고운 학을 그리려고 했는데......”
학이 빙그레 웃으며 속삭였습니다.
“우리가 저 벽화 속으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자, 어서 가요.”
학은 가늘고 긴 목을 쭉 뽑아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부리로 할아버지를 콕콕 찍었습니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몸이 붕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학이 되어 훨훨 날고 있었습니다.
학 두 마리가 벽화 쪽으로 날아올랐습니다. 벽화 속으로 들어간 학은 한 바퀴 맴돌더니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보름달은 벽화 속에서 날아가는 학 두 마리를 환하게 비춰 주었습니다.
-「벽화를 그리는 할아버지」, 118-119쪽.
위 인용문 ①에서의 ‘해님’은 현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판타지적 공간의 기능을 하고 있다. 종빈이의 현실적 아픔은 여러 가지이다. 사고로 머리를 다쳐 가족의 얼굴조차 기억을 못한 채 병산에 누워 있는 아버지, 한 살 빠르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엄마의 직장 일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 일 등이 종빈이의 상처이자 아픔이다. 이 작품에서의 ‘해님’은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든든한 힘의 상실과, 종빈이와 엄마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판타지적 세계를 상징하는 이중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종빈이가 해님이 무얼 먹고 사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의미적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해님에 대한 종빈이의 궁금증이 풀리면서 아빠의 병세가 호전되고,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엄마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로 작품이 마무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에서의 판타지적 공간은 현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구원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인용문 ②에서의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난 뒤부터 치매라는 현실적 아픔, 그리고 손자인 정호로부터 사랑을 단절당하는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권유에 의해 자신이 그리고 있는 벽화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러한 현실적 아픔으로부터 해방된다. 이 작품 속에서의 판타지적 공간 역시 현실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적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두 작품에 차이가 있다면 인용문 ①에서는 현실적인 공간에 머물면서 상처를 치유하지만 인용문 ②에서는 그러한 현실적 공간을 벗어남으로써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덕자 동화문학의 앞으로의 과제
안덕자의 동화는 일단 아동문학의 기능 중의 하나인 교훈성과 어린이 독자를 겨냥한 작품의 ‘가독성’에 충실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동화문학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동화들은 그 서사구조의 단순명쾌함과 재미성, 그리고 꿈과 희망이라는 주제적 측면에서 우선 1차적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적 완성도라는 동화문학의 예술적 효과에 있어서는 주제가 작품 속에 융합되지 못하고 노출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시적이고 상징적인 비유가 부족한 문체의 건조함은 앞으로 극복해야 될 과제라고 생각된다.
단편동화는 장편동화와는 달리 재미성과 문학성을 아우르고 있어야 한다. 1차적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재미성이라는 가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적이고 상징적인 문체의 확립과 입체적인 서사구조, 그리고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작품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문학적 향기가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안덕자의 동화집『캥거루 주머니엔 뭐가 들어 있을까』는 ‘지금 이곳’의 어린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상업적 흐름에 휘둘림이 없이 동화문학의 본질적 목표에 충실하려는 고집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가장 빼어난 점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생활하는 소외된 아이들에게 연민과 사랑의 눈길을 보내어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하는 동화문학의 소명의식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문학과 인간의 일치라는 하나의 전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다음 <아동문학 통신>의 서평은 소민호의 장편『다라국 소년 더기』입니다. 그 리고 앞으로 서평은 동화작가 류석환 선생님도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첫댓글 선생님, 앞으로 더 많은 꾸짖음 달게 받겠습니다. 아동문학의 길을 가려는 설익은 후배의 작품을 이렇게 조근조근 따져 읽어 주시고 서평까지 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걱정해 주신 부분은 더 노력하여 갈고 닦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어제,이땅바다 님 주관하에 마련한 글나라 깜짝 모임에서 김문홍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자가 보내준 책은 꼭 읽고 감사 답장을 보내준다" 책이 나오기까지의 노력과 마음고생, 그리고 보내주기 위해 일일이 서명하고, 봉투에 넣어 발송하기까지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꼭 지켜야 할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올해도 보내주신 책들 다 챙겨 읽지 못한 데 대해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를 넘기더라도 제대로 읽도록 해야겠습니다. 참으로 바쁘신 선생님께서 도담님 작품을 잘 살펴주셨네요~~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집니다.
좋은 평 감사합니다.
열심히, 꾸준히 써서 좋은 동화집을 내신 도담님, 정성 가득하게 서평을 해주신 김문홍 선생님.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