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옛날 우리가살던 추억어린
사진◈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4.4 거리에서 파는 냉차 행상. 한 어린이가 시원한 음료수 한병으로
목을 축이는 중학생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959년 1월16일 을지로2가에서 차량이 충돌해 길가 한가운데 나뒹굴고 있다.
1959년 4월8일 서울 종로2가의 화신백화점 과 신신백화점
(왼쪽.지금의 제일은행 본점
건물자리)
1959년 4월8일 원구단 방향에서
바라본 조선호텔의 옛모습.
1970년에 헐리고 이 자리에
현대식 고층건물(롯데호텔)이 들어섰다
1959년 4월8일 조선호텔과 원구단.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조선호텔의 옛모습과 팔각정 형태의 원구단
1959년 3월 중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부모와 함께
교모와 교복 가방을구입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허니문 카를
본따서 만든 이동 어린이 놀이기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1959년 3월2일 50년대 말
명동거리의 패션. 양장차림의
서양여인과 한복차림에 쪽진 머리의
한국여성이 대조적이다
1959년 3월3일 풍문여자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거행되고 있는
교문밖에는 꽃다발 행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59년 4월 4일 냉차, 아이스크림 등 거리의 노점상들이
어린이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군것질을 팔고있다.
1959년 4월 6일 유치원생들과 학부모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1959년 4월14일 비가 내리는 광화문의 한 가게 앞에
비닐우산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959년 4월14일 우량아선발대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한 어린이들의 앉은키와 몸무게 등을 재고 있다.
1959년 4월18일 덕수궁에 놀러나온 여자 어린이들
1959년 4월15일 급수 리어커가 오면 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15일 수돗물 사정이 좋지않던 시절 급수
리어커가
오면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년 4월 소공동 환구단(원구단) 주변 모습. 환구단 뒤로 반도호텔이
보인다.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1959년 4월의 돈암동. 낮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1959년 4월 을지로 입구. 도로에는 버스와 전차가 다니고
있다.
1908년 8월 일제가 설립한 경성동양척식주식회사.
위 사진 오른편에 이 건물 모습이 보인다.
경성동양척식 주식회사 지금은 외환은행 명동본점 건물이
들어서있다.
1959년 4월 종로거리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광화문 사거리 주변 모습. 사진 왼쪽에는 서울
시민회관이
건축중이고, 뒤쪽 가운데에 중앙청(구 조선총독부)의 모습이
보인다.
1959년 남대문로 주변 모습. 서양식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1959년 명동거리 모습. 명동거리는 50년대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1959년 서울 중심가 건물 앞에 주차된 다양한 모습의
차량들
1959년 기존의 목조건물을 헐고 준공되어지고 있는
창성동 별관 정부청사 신축지 현장
1959년 명동거리
1959년 서울 을지로 입구. 오른편 맨 윗쪽 끝 건물이
서울시청
1959년 종로 거리. 건물들 사이에 보신각이
보인다.
1959년 종로 거리. 오른편 건물이 화신백화점.
1959년 종로 대로변 모습. 전차가 지나고 있다.
1962년 10월 공사중인 김포국제공항. 1958년 1월 국제공항으로
지정되어
1959년 종합청사를 신축하고 그후 각종 시설의 확충과 기능을
확대하였다.
1962년 3월 서울 명동에 신축중인 유네스코회관
빌딩
1962년 3월 서울 중구 명동에 유네스코회관 빌딩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유네스코회관은 1959년에 착공해 1967년, 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1959년 4월30일 봄바람을 즐기러 강변으로 외출 나온
주부들.
1959년 5월8일 부랑인 일가족이 종로거리에 누워 구걸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12일 제13회 어린이건강심사대회에서 입선한
우량아의
부모들이시상식에 참석해 수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959년 5월23일 미스코리아와 미스해병 등으로
선발된
미녀들이오픈카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28일 관광업계는 관광객유치를 위해 관광용고급버스를
구입하고 관광버스 시운전 행사를 했다.
1959년 5월29일 자전거 위에 올라가 제1회
국제마라톤
경기대회 골인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과 학생들의
모습.
1959년 5월6일 바느질과 다림질 등 재봉일을
하고있는
50년대 말의 주부들 방안에는 화로도 있다.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서장과 맞붙잡은 김두한
의원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1959년 8월4일 서울 미아리 일대의 50년대 말
모습.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6일 야외가설 무대에서 공연중인 시민위안의 밤
무대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8월31일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명륜동
주택가 상점 앞을 지나는 주민의 모습
1959년 8월31일 장마로 물이 불어난 청계천벽
천일극장 뒷편에 밀집한 판자촌의 모습
.
1959년 8월4일 여성 피의자가 재판을 받기위해
포승줄에
묶인채 호송관에 끌려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서 줄을 이루고 있는 귀성객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서울역의 귀성객들이 광장에 줄을 이루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모델을 둘러싸고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1959년 9월1일 좋은 앵글의 작품사진을 만들기
위해
1959년 도로 공사 모습
정간 당했던 경향신문이 1959년 6월 26일 다시
속간케 되었음을 알리는 대자보가 경향신문 사옥 앞의 게시판에
나붙었다.
정간당했던 경향신문이 1959년 6월 27일 조간부터
속간케되었다.
직원들이 그동안 내려졌던 사기를 사옥 옥상에 다시 게양하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
1962년 1월 시민들이 출근을 하기위해 줄을서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아카데미극장 매표소 앞에
영화를
보기위해 나온 시민들의 줄이 이어져 있다.
1962년 1월 눈오는 세종로 거리에 펼쳐진 좌판에서 상인들은
물건을 팔고 있지만 시민들은 무관심한채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1962년 창경원(현 창경궁) 수정궁 앞 연못이 얼어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타며 겨울을 즐기고 있다.
1962년 기찻길 옆으로 판자집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철로에서 놀고
있다.
1962년 청계천 주변 판자촌
1962년 추운 겨울 세종로에 상주하는 한 노숙자가 근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1962년 기찻길 옆으로 판자집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철로에서 놀고
있다.
1962년 서울 시내버스 여성 버스차장 모습. 대중 교통수단인 모든
버스에는
여성 버스차장이 근무해 운임 수납 업무와 손님의 승하차를 통제하는
등
안전운전을 위한 보조역을 했다.
1962년 서울 청계천 주변 길가에서 넝마를 줍고 있는
사람들
1968년 6월 도로확장 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1968년 7월15일 중학입시 무시험 발표
1968년 10월12일 종로3가 창녀촌
1968년 10월1일 서울 모습
1968년 10월1일 서울시청 주변 모습.
1968년 10월5일 초만원을 이룬 추석 귀성열차
1968년 8월24일 악명높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행방불명)
1968년 10월 17일 정강자씨 등 젊은 미술가들이
한강변에서 전위예술을 공연하고 있다.
2003.8.26 한국 최초 행위예술가 정강자. 가수 남일해
누이동생이다.
1968년 11월 29일 운행 70년만에 폐차 처분되어 차고에 몰려있는
서울의 전차
1968년 11월 3일 새벽 3시30분 대구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큰 불.아래 왼쪽이 계성고등학교
서문시장 제3지구 1층에서 연탄 과열로 큰 불. 멀리 동산병원 본관 건물이
보인다.
1968년 봉천동 꼭대기 까지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가옥들
1968년 봉천동 주민들이 마술단 공연을 보기위해 공연장 앞에 줄을 서
있다.
1963년 9월 7일, 자하문으로 가는 청운동 언덕길을 달리던 서울
시내버스가 때마침
휘발유를 가득 싣고 고갯길을 내려오던 트럭에 들이받혀 인근 가옥과
충돌하는
바람에 길에서 놀던 어린이 5명중 2명이 즉사하고 승객 39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사고 피해자는 대부분 하교하던 학생들이었다.
사진은 사고현장의 모습
사고현장에 학생들의 가방이 길에 나뒹굴고 있다.
사고현장의 부서진 버스의 내부 모습
사고현장의 부서진 트럭과 버스의 잔해
효자동 야간 도로공사. 대낮의 교통불편을
막기위해심야에
도로포장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인부들
60.4.19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꺾어 올라가던
데모대가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흩어졌다.
1960년 4월 29일 학생데모대가 경무대로 가는 것을 경찰이 최초로 발포한
곳이다.
해무정 앞 지금의 종합청사와 국립박물관 사이 효자동으로 가는
길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꺽어 올라가던
데모대가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쓰러졌다
1968년 6월 도로 확장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95,10,22 금융실명제 실시후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세일에
나선
괴자금과 5-6공 비자금의 연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자금 보관소로 애용되었던 상업은행 효자동지점
보내온
자료.
◆노인의
필수 건강 수칙◈
1.노인의
위장은 소화 기능이 떨어지므로
과식하면 윗배까지 차오른다.
음식을 소화 시킬때 대량의 혈액이 위장에
집중하므로
뇌와 심장에는 상대적으로 혈액이
줄어들어
심근경색이나 중풍을 일으키기 쉽다.
※2.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노인이 음식을 짜게 먹을 경우 염분 섭취량이
많아져서
순환하는 혈액의 양이 많아진다.
게다가 노인의 신장은 염분 배설기능이
떨어지므로
염분이 축적되고 혈관이
수축되어
혈압이 올라가 심장의 부담이 커진다.
3.노인은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수면 시간이 너무 적으면 건강에
해롭다.
잠을 잘때 인체는 휴식을 취하고 피로를
회복하며
에너지를 재 충전 한다.
노인은 생리기능이 떨어지고 피로회복도
느리므로
잠을 !
충분히
자야 한다.
4.노인이라고
채식만 하면
콜레스테롤을 무서워하여 고기는
삼가하고,
채식만하면 신체에 해롭다.
인체가 쇠약해지는 증세로,
두발의
탈색과
치아와 뼈의 기능이 쇠약하다.
망간은 골격의 발육에 없어서는 안 되는데 부족할
경우
전신에 통증을 유발,
등을
굽게하고,
감각을
둔하게 한다.
식물성 음식에 들어있는 망간은 체내에서 흡수하기
어려우나,
육류에 함유된 망간은 흡수되기 쉽다.
5.노인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면
노인에게
슬푼소식을 알리면 노인은 두려워하거나
걱정으로 편히 있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한다.
이러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6.노인은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장시간 앉아 있는 노인은 골반에
혈액순환이
자유롭지 못해 둔부에
피부 질환을 유발한다.
7.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면
뇌 속의 혈액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일시적인 빈혈이
생긴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침침해서 쓰러지기
쉽다.
8.갑자기
고개를 돌리면
노인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 척추동맥이목의
이동에
따라 압박을 받아 가늘어 진다.
그리고 목의 교감신경이 자극을받아서 뇌 혈관이
마비된다.
이로 인하여 뇌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감소되고,
뇌혈관의 혈액순환도 떨어진다.
가벼운 경우에는 뇌의 혈액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서 생기는 현기증 구역질 구토 착시 귀울림
그리고
팔다리의 국부적인
마비등의 증상을 보인다.
혈전이 생긴쪽은 조절기능을 상실하여 얼굴의
감각이
없어지거나 반신불수가 되기도 한다.
9.먹으면서
이야기하면.
노인은 대뇌와 중추신경 계통의 기능이
떨어져서
감각과 운동신경이 둔하고 동작이 자유롭지
못하다.
또 구강과 인후부의 점막이 위축 되거나 비대해져
있기
때문에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사레가 들리기
쉽고
식도에 대추씨 생선가시 닭뼈 등이 박힐수
있다.
10.해바라기씨를
많이 먹으면
해바라기씨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노인이 이것을 많이 먹으면 체내의
콜린이
소모되어 지방대사가 균형을 잃고 그에 따라
과다한
지방이 간에 축적되어 간에 이상이
온다.
심하면
간이
썩거나 간경화증이 생긴다.
11.너무
자주 씻으면
노인의 피부는 얇고 주름져
있다.
또
피부의 지방조직이
위축되어 있으므로 목욕은 일주일에 2~3번이
좋다.
피부가 건조해서 가렵는 경우가
많다.
목욕한 후 피부 보습제 연고나 화장품을 발라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해도 가렵거나 피부가 갈라지는
경우라면
비부과의치료를 받아야 한다.
12.똑바로
누우면
노인이 똑바로 누워서 자면
설근(혀를
움직이는 근육)과
인후부의 조직이 이완되어 호흡기를
막음으로써
산소 결핍을 초래한다.
산소
결핍 상태가 오래 되면
동맥 내벽의 삼투성이 높아져서 혈관내에 지방질이
축적 된다.
이는 동맥경화를 촉진하여 고혈압 관상동맥경화증 등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뇌조직에
산소가 부족하면
뇌동맥의 수축기능이 떨어져서 뇌의 기능이
저하된다.
13.과다한
당분의 섭취를 삼가해야 한다.
노인은 활동량이 적고 췌장의 기능이 떨어져
있다.
당분을 너무 만히 섭취하면 간장의 지방질
합성이
촉진되어 혈액속의 중성지방이 증가되고 이에
따라
혈관의 경화가 가속 된다.
또
당분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뚱뚱해지기 쉽고 당뇨병이 발병할 가는성이
커진다.
그리고 당분은 산성이므로 당분을
과다하게
섭취하면체질이 중성 혹은 산성으로
변하여
체내의 알카리성물질인 칼슘이 소모
된다.
칼슘이 부족해지면 뼈가 약해진다.
14.고단백질
음식을 삼가해야 한다.
고단백질 음식은 체내의 칼슘 배출량을 증가
시킨다.
노인의 체내에서 칼슘 배출량이 많아지면 뼈가
약해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에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노인은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있으므로
단백질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신장의 부담이 커져서
신장 장애가 생길수 있다.
15.식사후에
TV를
보면.
혈액이 소화기관에 공급되어 소화를 시켜야
한다
그런데 TV를
보면 대뇌활동에도 혈액이 필요하다.
소화기관이 공급 받는 혈액의 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음식물을 소화하는데 지장이 있다.
16.항생제를
남용하면.
항생제는 신경계통과 조혈계통 그리고
간장,
신장,
심장 등에 모두 기능을 해롭게
한다.
간과
신장의
기능이 좋지 않은 노인에게는 그 해가 특히
심하다.
17.바둑에
몰입하면.
노인의 심리상태는 승패에 따라 변화가
심하여
바둑에 몰입하게 되면 대뇌의 활동과
반사능력이
떨어지고 자율신경의 기능도 장애를 일으켜서
질병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오래 앉아 있으면
위장의
연동운동이 느려져서 변비를 초래하고 치질도 걸리기
쉽다.
18.이가
빠지면 의치를 꼭 끼워 넣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치아의 상태도 안
좋아진다.치아는
발음과
얼굴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소화기능에도 영향을
주는
위의 부담을 증가 시킬 수
있다.또,
이가
빠지면 관자놀이
관절의 기능이 떨어지고 남아 있는 치조골이 계속
위축 된다.
얼굴의 1/3이
수축 되거나 근육도 정상적인 힘을 잃는다.
주름도 많아지고 아귀가 아래로 쳐져서 한층 늙어
보인다.
또 아래턱의 위치가 이상해지고 그 기능도
떨어진다.
이의 빈자리를 방치해 두면 턱뼈가 뒤로
물러나서
이명 현기증의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19.격렬한 시합이나 아슬아슬한 장면을 보면
이전에 심장병을 앓았던 노인이 긴장되는 시합등을
보면
뜻밖의 큰 사고가 날수 있다.
극도의
긴장 또는 흥분은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부신의 분비량을
증가시키고
심장 박동을 !
빠르게
하며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이 올라 간다.
동맥경화 환자는 이때 뇌혈관이 파열되어 중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관상동맥경화 환자는 심근에 혈액이 부조과여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을 일으키기도 한다.
20.과거에
너무 젖어 있으면.
노인은 추억에 잠겨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탄식과 감상은 적막감과 고독감 우울증 등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심리상태는 대뇌의 부담을
가중시켜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기
쉽다.
또한 대뇌와 신경계통의 기능이 떨어져서 초조함
우울함
자기비하 등의 감정이 나타나고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 한다.
각종 질병은 이때를 틈타
발병한다.
고혈압
관상동맥경화증 천식
당뇨병 동맥경화 암,
심지어
노인성 치매가 생기기도 한다.
21.노인은
식사 직후에 분주하게 걸으면.
음식을 소화시키려면 복부의 혈관이 확장
충혈되는데,
이때 뇌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그래서 식사 후에는 졸음이 오는
것이다.
노인은 심장의 기능과 혈아 조절기능이
떨어지고,
혈관도
좁아져 있으므로 식사를 하면 혈압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식사 후 분주하게 움직이면
저혈압으로
혼절하거나 실족할 수 있다.
22.식후의
낮잠을 삼가야 한다.
식사 후에는 혈액이 위장으로 몰리기 때문에 대뇌의
혈액이
줄어들어서 혈압이 떨어지고 산소의 양도
줄어든다.
대뇌의 혈액 부족으로 인해 중풍을 일킬 수도
있다.
23.크게
화를 내면.
노인이 일단 화를 내면 체내의 혈관을 지배하는
교감신경이
흥분하여 전신의 소화혈관이
수축한다.
이에
따라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심근에서
소모되는
산소의양이 많아져 심장의 부담이
커진다
원래 질환이 있던 노인은병세가 더 심해지고
뇌출혈
급성심근경색 심장파열 등을일으킬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심박동의 리듬이
깨져서
사망할수도 있다.
24.치료를
마음대로 중단하면
노인은 감각이나 신경의 반응이 느리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에
따라 병세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노인의
질병의 대부분은
만성적으로 진행 되는 것이다.
체계적이고
꾸준한 치료를
받지않으면 병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확실한 진찰!
을
받은 후의사의 처방을 따라야지,
자신의 느낌에 따라 앞으로의
치료나
약물의 복용 여부를 결정하여 병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몰고 가서는 안 된다.
25.뚱뚱한
노인은 달리기 운동을 하면
비교적 뚱뚱한 노인이 달리기 운동을 하면
골격이
푸석푸석하고인대가 딱딱해질 수
있다.
또 근육 아킬러스건 인대
등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러므로 60세
이상의 남성과 50세
이상의
여성 중에 뚱뚱한 사람은 달리기 운동을
하면
관절과 인대에 손상을 입는다
<받은글
공유>
단계 식단
혁명
- 다방 커피여 안녕! 쓴맛을 즐겨라 -
식단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1. 현미밥에 도전하자
현미는 칼슘과 마그네슘 등 영양소와 비타민이 풍부할 뿐
아니라
식이섬유가 백미의 10배 가까이 높아
변비를 해소시키고
중금속 등 기타 유해물질을
배설시킨다.
또 현미는 비만과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 백미(10분도미)와 현미를 8대2의 비율로 섞다
차츰 5대5, 또는 그 이상의 비율로
바꾼다.
● 처음엔 5분도미를
먹다
익숙해지면 3분도미에 도전해
본다.
● 처음 시도할 때
현미찹쌀을 섞거나
압력밥솥에 밥을 지으면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 취학 전 아동이나
노인, 위염·위궤양 환자에겐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는다.
2. 라면을
줄이자
라면이 정말 먹고 싶으면
뜨거운 물에 면을 한 번 삶아낸 뒤
다시 뜨거운 물에 끓인다.
● 라면 대신 생라면 또는 생우동을 먹는다.
값이 2~3배 비싸지만
튀기지 않은데다 칼로리는 절반 정도다.
최근 다이어트용으로 유행하는
곤약 라면 또는 곤약 우동은
칼로리가 50~70㎉ 수준이다.
● 라면 대신 먹을 수
있는,
간편하고 신속하게 조리 가능한 대용식을 개발한다.
3. 국물을 마시지
말자
세계 보건기구의 하루
나트륨 섭취 권장량은 2000㎎(소금 5g)이지만
한국인 평균 섭취량은 4900㎎(소금 12.5g) 정도다.
주범은 국물이다.
칼국수 한 그릇엔 약 2900㎎의 나트륨이,
우동이나 라면엔 약 2100㎎의 나트륨이 들어
있다.
대부분은
국물에 녹아 있으므로 국물만 남기면
나트륨 섭취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 식품을 구입할 때는
나트륨 함량을 체크한다.
● 소금이나 간장 대신 고춧가루, 후추, 마늘, 생강,
양파,
식초로 맛을 낸다.
● 국이나 찌개는 끓인
후 먹기 직전에 간을 한다.
● 국물보다 건더기를
많이 먹고, 아무리 맛있어도 국물은
남긴다.
● 장아찌, 젓갈, 절임 및 조림 음식의 ‘맛있는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애쓴다.
4. 쓴맛에
익숙해지자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단맛을 찾고 쓴맛은 뱉는다고 한다.
단맛은 대부분 칼로리가 높아 에너지원이 되지만,
쓴맛에는
독(毒)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본능도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은 단맛만
찾는다.
이제 본능을 극복하고 쓴맛에 익숙해져야 한다.
첫째 현대인의 단맛은 칼로리만 높고 영양분은
없는
설탕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둘째 건강에 좋은 나물과 야채, 차(茶) 등은
대부분 쓴맛이기
때문이다.
● 흑설탕을 포함해 모든 설탕은 아예 끊는다.
● 청량음료, 주스 대신 물을 마신다.
청량음료엔 설탕이 12~13%며,
대부분의 주스에도 설탕이 들어간다.
‘무가당’ 주스도 과일 자체의 과당 때문에 칼로리가
높다.
●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다방커피’를
끊고, 세련된 블랙 커피나
녹차를 마신다.
5. 퍽퍽한 닭 가슴살을
즐기자
음식의 맛은 지방이 좌우한다.
닭 가슴살보다 닭 다리나 닭 날개가 더 맛있고,
쇠고기도 지방이 촘촘히 박힌 꽃등심을 최고로
친다.
찌거나 삶은 것보다 볶거나 튀긴 요리가 더 맛있는 것도
조리 과정에서 기름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은 비만의 원인이 되며,
혈관을 공격한다.
기름에 튀긴 인스턴트 식품은
트랜스 지방으로 변해
암을 유발할수도 있다.
● 콩·옥수수 기름보다 참기름, 들기름, 올리브유를
사용한다.
콩·옥수수 식용유를 착유할 때 핵산이란
유기용매와
합성 산화방지제,
방부제가 첨가된다.
● 볶을 땐 충분히 센
불로 단시간에 볶고,
튀길 땐 기름이 충분히
달궈진 상태서 튀긴다.
● 볶음, 튀김, 전
보다 구이, 찜, 무침에 입 맛을 길들인다.
6. 가공식품은 ‘똑똑하게’
먹자
인스턴트· 가공 식품에는
여러 종류의 화학 조미료와 방부제·색소 등
식품 첨가물이 들어
있다.
햄이나 소시지 등에는 발색제, 산화방지제,
PH조정제
(부패 방지와 고기 산도 조정 목적),
인공색소 등이 들어 간다.
과다 섭취하면, 호흡 장애와 신경쇠약, 두통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가공식품을 완전히 끊을 수 없다면
‘똑똑하게’라도 먹어야
한다.
● 햄이나 소시지 등은 끓는 물에 한 번 데친 후 조리한다.
어묵에도 방부제가 들어 있으므로
조리 전 미지근한 물에 담가뒀다
가열해서 먹는다.
● 통조림 식품은 함께 들어있는 기름이나 국물을
버리고 조리한다.
● 화학조미료를 끊고 다시마, 멸치, 버섯 등을 이용한 천연
조미료를 만들어
사용한다.
7.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이겨내자
패스트 푸드와 인스턴트 식품은 영양학적으로 열량과 포화지방산,
나트륨 함량이 매우 높아
비만과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의 원인이 된다.
또 과일과 야채를 덜 먹게 돼
비타민과 무기질 섭취 부족을 초래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해결책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직접 요리하는
것뿐이다.
● 장을 볼 때 인스턴트·가공 식품 코너는 아예 쳐다 보지도 않는다.
●
구입한 음식 재료는 필요에 따라 씻거나 데치거나 절이는
등
잘 다듬어서 한 번 먹을 양으로 나누어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한다.
● 밑반찬 등을 활용해서 조리 시간을 단축시키도록 노력한다.
● 식단 혁명의 주역인
주부를 도와주고 격려한다.
8. 조금씩 덜
먹자
비만 인구는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의 유전자는 아사(餓死)를 대비해
가능한
많이
먹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그러나 이젠 살기 위해 이 유전자를 개조시켜야
한다.
● 칼로리가 낮은 음식부터 먹어 포만감을
유발한다.
물은 포만감은 들지만 소화액을 희석시켜
소화장애를
초래하므로 너무 많이 마시지
않는다.
● 반찬을
먼저 많이 먹고 밥을 나중에 조금 먹는다.
탄수화물은 한국인 비만의
제1 원인이다.
● ‘좀생원’ 소리를 듣더라도 식당에선 주문량을 줄인다.
음식을 많이 시키면 요즘엔 “미련하다”고
말한다.
● 하루에 500㎉씩 줄이면 한 달에 2㎏ 빠진다.
매끼 밥 3분의1 공기만 줄여도 하루 300㎉를
줄일 수
있다.
민들레:보내온 글
편집
여자 연예인들 모음
1. 윤정희 . 1944년생
문희,남정임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리던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다.
19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으로 데뷔했고 . 데뷔하자마자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 하였다.
60~70년대 한국 사회에서 윤정희는 청순미의 대명사였다.
(1970년 백상예술대상 최수우연기상 / 1971 대종상 여우주연상 /
1971 백상예술 최우수연기상 /
1972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 1973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
1973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
1994 대종상 여우주연상)
보면 알겠지만 1970~73 3년간은 윤정희가 백상.청룡.대종상 최고의 상을
다 휩쓸었다.
2. 남정임 . 1945 - 1992년 9월 2일
문희 . 윤정희와 함께 여성배우 트로이카를 구성했으며 1966년 춘원 이광수
원작인
영화 유정의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1966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
1966 아시아 영화제 신인상 / 1967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 1970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1989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다
1992년 사망했다.
3. 유지인 1956년생
1974년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데뷔했으며 수상경력은 그닥 화려하진
못했다.
(79 연극영화대상 연기상 / 79 대종상 여우주연상) 하지만
인기하나
만큼은 국민배우였다. 참고로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한진희씨다.
4. 정윤희 . 1954년생
눈이 굉장히 커서 그 당시 사슴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했으며 1981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게 최초이자 마지막 상으로 알고있다. 사진속 남자는 역시 한진희
씨다.
참고로 한진희씨는 당시 178cm가 되는 큰 키에
(1949년생으로 . 1960~70년대 인기 남자배우중에서는 키가 제일
컸다.)
세련된 마스크에 . 당시 전국 최고 수재집단이였던
경기고등학교 출신에 . 연세대학교 입학이라는 당시 배우들중
찾기
힘든 학벌/마스크(마스크는 잘난배우들이 많았다만)/키를
소유하고
있던 배우였다. 그래서 인기가 엄청났다고 한다.
(지금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신다.)
5. 원미경 . 1960년생
1978년 당시 고3이였던 원미경은 미스 롯데 선발 / TBC 공채탤런트
20기로 데뷔한다.
본격적으로 그녀가 세상에 알려 진 것은 데뷔하고 2~3년 뒤라고 한다.
MBC 연기대상 / 29회(1990년) 대종상 여우주연상 / MBC 방송대상
대상(1989) /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1990) 등등..
그녀의 최고 전성기는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1남2녀의 어머니로서
작품활동을 잘 안하고 있다.
6. 임예진 1960년생
1974년 당시 15살의 나이로 파계 라는 영화 주연으로 데뷔한다.
그 이후 여고졸업반,빨간구두,소녀의기도,정말꿈이
있다구,
너무너무 좋은거야,진짜진짜 미안해,진짜 진짜 좋아해 , 고교 명랑교실
,
불 , 아무도 모를꺼야 , 우리들 세계 선생님 안녕 , 첫눈이
내릴때
기타등등 많은 다작활동을 하였다. 그만큼 그녀의 인기는
1970년대
최고였다고 본다. 그때 그녀의 나이 고작 10대였다. 1974~80년
6년간
15~21살 어린나이에 엄청난 영화 작품속 " 여 주인공 " 으로 활동했고
.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 였던지 영화가 대부분 흥행을 했어도 큰
상을
받진 못했다. 그리고 80년대 부터 동갑내기 스타
원미경
에게 조금 밀리기 시작하면서 그녀를 스크린에서 볼수는 없었다.
화려하게
펴야 될 20대를 그녀는 그렇게 흘려 보냈다.
그리고 98년도부터 다시 국민들에게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지금은
TV드라마나 영화에서 감초역할을 하고있다.
7. 황신혜 1963년생
황신혜... 1983년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MBC
신인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는데
그녀의 이목구비는 그전까지 본 여배우와 너무나도 달랐다.
1980년대야 여배우들이 성형을 별로 안해서 성형파문이
불지
않았는데(패티김등 불긴 불었지만 그렇게 이슈화 되진
못했다)
황신혜 이후로 성형파문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불어닥쳤다.
그만큼 믿기 힘들정도로 한국인이 가지기 힘든 이목구비를 가진
여성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어렸을적 사진을 공개했고 모든 성형루머는
사라졌다.
많은 작품활동을 했으나 수상내역은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 지금
현재도
꾸준하게 활동하는 배우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8. 이지연 1971년생 .
이 명단에 포함된 유일한 가수다. 그닥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88년 1집 앨범으로 데뷔했고 앨범은 총 세장밖에 안나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도피생활등 여러가지 말들이 많아서 반짝하다가
금방 사라진 가수다. 근데 예뻐서 그냥 넣었다.
9. 이상아 1972년생
진짜로 심각하게 정말로..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다.
1985년 14살의 어린 나이로 데뷔하면서 그녀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너무 귀여웠고 깜찍했던 그녀가
인기가 없을이유는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16편의 영화의 출연했고 물론 모두다 주연이였다.
1985년 어린 이상아부터 1995년 20대
이상아까지
10년이란 긴 세월을 이상아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남자들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최고의 자리에서 제일 밑바닥으로 너무나도 빨리 떨어졌고 이제는
성인화보에
살쪄버린 모습으로 화려했던 과거를 추억할뿐이다.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아쉬운 여배우라고 할수있다. 그때 그 인기와 , 이미지 관리만 잘
받았다면..
지금쯤 드라마에서 중년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을수도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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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렸을 적에...
60년대의
제주 모슬포
이사진은 Neil Mishalov 한국의 준둔했던 미군에 의해 촬영된
것
민 들 레 : 보내온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