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애국가를 작곡하신 안익태(安益泰)선생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길에 저희 학교에 들려 애국가합창을 지휘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으례하던 대로 느릿느릿하게 동해물과 백두산을 불렀습니다. 安익태 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시더니 {내가 애국가를 작곡할 때는 이렇게 힘없이 부르라고 한 것이 아닌데 왜 이 모양이냐}하고 화를 내시더니 {다시}하시면서 애국가를 빨리 힘차게 부르도록 했습니다. 애국가를 빨리 불렀더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힘이 차 오르는 것 같고 특히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가앙산]의 대목을 여리게 섬세하게 동시에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표현하면 우리 국토에 대한 자랑이 절로 솟구치는 것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도 이 시간이 끝난 뒤에 애국가를 힘차게 빨리 한 번 불러보십시오. 아마도 힘없고 답답하다면서 구박만 해오던 애국가가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하버드에서 만난 한국인 교수 한 사람이 {우리도 이제 통일이 되면 애국가를 치워버리고 새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제가 화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4.19이후 한때 애국가와 태극기를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요사이 거론되고 있는 국가 교체론은 그 저변에 북한과는 장차 화해를 하는 식으로 평화통일을 할텐데 애국가도 좀 바꾸고 해서 북쪽 사람들도 좀 기분 좋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에이 라는 회사가 비 라는 회사를 합병하면 이름도 바꾸고 상징마크도 바꿀 수 있겠지만 국가라는 조직은 그렇게 협상하듯이 국가와 국기를 변경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애국가를 부르면서 죽어간 많은 반공투사와 전몰장병, 돌이 나르고 최루탄이 터지는 거리에서도 시위대와 전경들이 한 목소리로 불렀던 그 애국가, 해외에서 애국가를 부르면서 조국의 스포츠 팀을 응원求?기억,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어 거리로 달려나가던 1945년8월15일의 감격, 1950년9월28일 지금은 철거된 옛 중앙청에 다시 게양되었던 태극기, 그리고 태극기를 숨겨두었다가 발각이 되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사라진 북한동포들. 애국가와 태극기에는 이처럼 수많은 사연과 피와 환희, 그리고 충성과 배신의 이야기들이 녹아 있는 살아 있는 대한민국의 현대사 그 자체인 것입니다. 국가라고 하면 영토 국민 정부를 3대요소로 칠 수 있는데 그것을 더 구체화시켜서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국가이고 국기입니다.
따라서 국기와 국가는 미술적으로 떨어진다느니 음악적으로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비판을 초월하는 존재이면서 대한민국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영속할 수밖에 없는 국가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것입니다. 그런 국기와 국가를 통일과정에서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가는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더 깊은 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통일원이 통일캠페인 광고를 방송에 내보내면서 통일이 되면 수도와 국화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의미를 전달하여 말썽이 된 적이 있더니 국민회의의 이석현이라는 국회의원은 명함에다가 남조선이란 명칭을 괄호 안에 넣은 표기를 했다가 비판을 받고 사과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가의 상징물에 대한 철없는 생각은 비단 정부 야당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김영삼 대통령부터 문제가 많은 표현을 여러 번 썼습니다. 한국병이란 말을 쓰더니 신한국 창조란 모토를 내걸었고 국군의 날에는 신한국군의 원년이란 말까지 사용했습니다. 소위 역사바로세우기 캠페인을 하더니 민자당이란 당명을 신한국당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신한국이란 말에는 구한국이란 말이 있다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광복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까지의 대한민국을 청산해야 할 역사를 가진 구한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야 할 나라의 이름에다가 질병을 뜻하는 문자와 낡고 다 떨어졌다는 의미의 문자를 갖다 붙이려는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대통령과 여당이 구한국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1945년부터 1993년까지의 기간에 우리 국민들은 세계가 경탄해마지 않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누가 병이 들었고 어째서 낡은 한국이란 말입니까.
어느 나라의 정치수준을 알려면 정치인들이 쓰는 용어의 정확성과 격을 살펴보면 됩니다. 정치란 것은 기본적으로 말로 하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선동적이고 부정적이며 과장되고 격이 떨어지고 아름답지 못한 거친 말들이 판치는 정치가 건강할 리가 없습니다. 金泳三대통령은 [5천 년 썩은 역사]란 말도 쓴 사람입니다. 조국에 대한 경멸과 증오감마저 느끼게 하는 이런 말이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한테서 나왔다는 점에서 소위 문민정부의 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은 링컨의 취임연설, 그 마지막 문단입니다. 남부가 흑인노예 문제로 분리를 선언하여 미 합중국이 과연 연방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나라의 분위기가 분열과 전란의 전야에 처해 있을 때 대통령에 취임한 링컨은 독립정신으로 돌아가 신성한 합중국 연방을 보존해가자고 눈물어린 호소를 한 뒤에 이렇게 말하면서 연설을 끝냅니다.
<당신네들은 정부를 파괴하겠다는 맹세를 하여 저 천당에다가 등록한 적이 없지만 나는 나라를 보존하고 수호해야 할 가장 신성한 서약을 한 사람입니다. 이 연설을 여기서 끝내기가 아쉽습니다.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적이 되어서는 안될 사이입니다. 감정이 우리를 뒤틀어놓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이에 있는 애정의 연대까지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수많은 전장과 수많은 애국선열의 무덤에서 나와서 이 광대한 대지 위에 살아 있는 수많은 가슴과 난로가로 뻗어나간 이 신비한 추억의 현줄은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천사 같은 천성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줄을 다시 한번 건드릴 때 우리 합중국 연방의 노래소리를 다시 물결치게 할 것입니다>
링컨은 언어의 힘을 안 사람입니다. 그는 정확하고 격이 높은 언어가 수많은 사람들의 감성과 이성을 움직이는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 사람입니다. 게티스버그 연설의 마지막 문장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란 말이 들어 있어 유명한데 2백66개 단어로 되어 있는 아주 짧은 연설입니다. 읽는 데 3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링컨은 이 연설문을 수십번 고쳐 썼습니다. 이 연설문을 읽어보면 운률이 있고 단어가 고상하여 꼭 시를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이 짧은 연설문에는 [데디케이트], 즉 바친다 또는 헌신한다란 뜻을 가진 단어가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연설문의 호소력을 높이기 위한 언어선택입니다. 이 연설은 그 현장에서는 그리 열광적인 반응을 부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며칠 뒤에 에이 피 통신을 통해서 신문에 배포되어 게재되면서 유명해진 것입니다.
이 링컨은 남북전쟁중 한번도 남부를 정부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더 시빌 워, 즉 내전이란 표현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전쟁은 국가와 국가간에서 이루어지는 무력충돌을 가리키므로 전쟁이란 표현을 쓰면 남부를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남부를 반라집단으로 생각한다는 뜻에서 반란이니 반역이니 하는 말을 썼습니다. 무력대치상황에서는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링컨식의 용어선택법이라면 북한의 남침은 6.25남침이나 6.25동란이라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한국사람들도 6.25동란이라 부르지 않고 한국전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호칭법은 주체성과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된 용어사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 때 분명히 패전을 했는데도 일본사람들은 8.15항복을 패전이나 항복이라 하지 않고 終戰이라고 합니다.
1995년 우리 국방부는 6.25포스터를 만들면서 [형제가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아픈 기억]이란 취지의 말을 써넣었습니다. 김일성 집단의 남침에 의하여 수백만이 죽은 전쟁을 아무런 도덕적 판단 없이 중립적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이 문구만 읽고 있으면 누가 먼저 도발한 전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해자가 분명하지 않은 문구입니다. 제3국에 사는 사람이 쓴 문구를 연상시킵니다. 적과 아군의 구분이 없는 이런 의식을 대한민국국군의 수뇌부가 갖고 있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소총을 손에 잡고서 북한지역을 바라보고 서 있는 군인들의 생각이 [형제가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누었던 아픈 기억]의 수준이라면 적이 쳐내려올 때 과연 방아쇠가 당겨지겠습니까. 살인범을 잡으러나선 형사가 살인범을 살인범이라 부르지 않고서 [우리는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야 하는 아픈 사연을 가진 사이]라고 한다면 과연 범인을 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6.25동란은 [김일성 집단에 의한 남침으로 시작된 무력도발로서 공산주의의 침략노선에 최초의 제동을 건 자유진영의 승리]인 것입니다.
한국 지식인 사회의 비극은 6.25남침을 경험한 사람들의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고 있는데 6.25를 북침이라 주장하는 북한과 외국의 일부학자들 주장을 수입하여 북침설이니 남침유도설이니 하여 논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입니다. 6.25가 13세기에 일어난 것도 아니고 바로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일인데도 이런 사악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북침설이니 남침유도설을 주장한 사람들이 소위 진보적 지식인을 자칭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으니 이 지구상에 이런 지식인 사회가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조선 국회의원이란 명함이 탄생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고 역대 정권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비판을 안하거나 노골적으로 편들고 무조건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진보적이니 양심적이니 하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를 발로 차고 흠집을 내야 유명해지고 지식인으로서의 존재증명을 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공, 승공, 애국심이란 말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친북세력들은 대한민국의 국어사전을 거꾸로 뒤집어놓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보스턴에 근거를 둔 아메리칸 풋볼 팀의 이름은 [뉴 잉글랜드 패트리엇]입니다. 뉴 잉글랜드의 애국자란 의미입니다. 미국에서 애국은 관념이나 구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호 국기에 대한 존경심과 친근감을 통해서 표현되고 전몰자에 대한 국가적 배려와 보호를 통해서 살아 있습니다. 미국 예산의 2%가 퇴역군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기의 맹세]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미국에도 국기의 맹세가 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성조기를 아무렇게나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1942년에 제정된 [미국국기의 사용에 관한 윤리규정]은 엄격하게 국기의 사용법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관에 성조기를 두를 때는 무덤속으로 성조기가 들어가지 않도록해야 하고 절대로 성조기가 땅에 다여서는 안됩니다. 쿠션이나 손수건에 성조기를 사용해서도 안되고 한번 사용하고 버릴 물건이나 상자에다가 성조기 도안을 사용해선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낡은 국기를 폐기할 때는 엄숙한 절차를 통해서 해야 하며 불에 태워서 없애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밤에 국기를 걸 때는 조명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밤풍경 중에서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조명을 받고 펄럭이는 큰 성조기입니다.
평화를 무조건 좋아하는 한국의 지식인들 수준에서 보면 미국의 국가는 군사문화의 전형입니다. 이 국가는 19세기 초 있었던 미국과 영국의 전쟁통에서 영국함대의 포격을 받고도 계속해서 펄럭이고 있는 성조기를 본 프란시스 스캇 키라는 변호사가 그 감동을 즉석에서 시로 옮겨 쓴 것에다가 나중에 곡을 붙여만든 것입니다. 이 가사에는 로키트의 붉은 화염, 공중에서 터지는 폭탄, 전쟁의 황폐, 전투의 혼란, 무덤의 음울함 등등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위선적 평화주의자들이 보면 전쟁광의 작품이라고 욕을 해댈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화를 너무나 좋아해서인지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김정일 집단이 남침을 해올 때도 [어떤 경우에도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한다면 항복해서 평화통일을 이루는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대표적 명연설에서 위선적인 평화론자들을 이렇게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1861년에 미합중국연방을 사랑한 사람들이 평화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한 것이고 전쟁과 분쟁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나쁜 것이라고 믿었다면 우리는 수십만 명의 생명과 수억 달러의 재산을 잃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수많은 여인들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과 수많은 가정의 파괴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싸움으로부터 몸을 피함으로써 이런 고통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전쟁을 피했더라면 우리는 우리가 겁쟁이들이며 지구상의 위대한 국가의 반열에 낄 자격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폭로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선조들의 피 속에 강철과 같은 결의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한다. 링컨의 지혜를 믿고 그란트 장군의 군대에 들어가 총검을 잡았던 선조들에게 감사한다>
한국에서는 링컨이 노예해방으로 해서 존경을 받는데 미국에서는 합중국의 분열을 막고 단합을 유지한 통일대통령으로 더 유명합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하고 그 방향으로 국민들을 끌고 갔다는 점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전쟁은 링컨이 남부의 선제 도발을 유도하여 시작된 것이지만 아무도 링컨을 전쟁광이라고 욕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통일대통령으로 기억할 뿐입니다. 남북전쟁 때 양쪽의 전사자는 약60만으로서 1차 2차 세계대전과 6.25동란 및 월남전쟁 때의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도 많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미국은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력을 조직화하는 경험을 했으며 국민들의 통합성이 공고하게 되었고 이 힘을 딛고 20세기에 세계의 강대국으로 올라서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링컨은 치욕적인 평화에 의한 합중국의 해체인가 전쟁에 의한 합중국의 유지인가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전쟁을 택했기 때문에 미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결심해야 할 때 결단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진 국민과 그런 전쟁의 고통을 감당할 각오를 가진 국민이라야 일류국가 일류국민의 자질을 갖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고된 일류국민은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2류국가의 2류국민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일류국가와 일류국민이 강제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출처 : 방송
첫댓글 월드컵에서도 유럽국가 대부분은 국기를 들고 다녔는데 한국은 빨간 셔츠를 입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군요